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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02화 (302/473)

302화. 여기엔 아무도 없는데

“와우.”

이연화에게 대략적인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서부터 대사관 헌터들이 왠지 모르게 의기소침해 보였었는데.

코앞에서 연수정의 전세기를 놓쳐 침울해진 것이었다.

아까 지나간 게 장관에 장군이라고.

걸어오며 마주쳤던 여자와 남자를 떠올렸다.

둘 다 눈깔에 탐욕이 가득한 것이 뒷돈 잘 받을 거 같이 생긴 얼굴이었다.

“면목이 없습니다. 연구소도 백운 님한테 다 떠맡겨 버리고.”

미안한 듯 웃는 김대혁에 잽싸게 손을 내저었다.

당장 입원해도 모자란 몸으로 최선을 다해 여기까지 달려온 김대혁이었다.

연구소에서도 마찬가지로 김대혁이 아니었다면 에밀리는 살아남지 못했을 테고 말이다.

“아주 그냥 저놈들이 나쁜 자식들이죠. 뒷돈이나 받아먹고.”

“카풀라 대통령이 돌아오시면 정식으로 건의 드릴 생각입니다. 저들이 아무리 손을 써도 연구소 사건은 덮을 수 없을 테니까요.”

이야기를 들으며 슬쩍 하늘을 올려다봤다.

서서히 노을 지고 있는 하늘.

조금만 있으면 해가 완전히 지며 밤이 찾아올 것 같았다.

“아 백운 님. 이건 아까 찍어놓은 영상이에요.”

헌터에게 패드를 넘겨받은 이연화가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공항에 도착한 이후부터 전세기가 떠나는 순간까지를 찍은 영상이었다.

얼레.

영상에 등장한 연수정의 얼굴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스로 오며 탔던 퍼스트 클래스에서 만난 여자였다.

그땐 분명 다른 이름이었었는데 아무래도 이름을 숨기고 탄 모양이었다.

너는 날 알고 있었구나.

라운지에서 뜬금없이 처놀라던 연수정을 떠올렸다.

귀신을 보나 싶었는데 대산 습격 시 어떠한 경로를 통해 날 본 모양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내 이름도 들었을 테고.

100% 까진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확신이 들었다.

연수정은 무기왕과 백운이란 이름을 매칭했을 거라고.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구만.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영상을 응시했다.

- 날벌레가!

오우야.

연구소가 날아가서일까.

눈이 돌아간 연수정은 악을 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연수정이란 인간 자체가 얼마나 오만하게 살아왔는지가 말이다.

- 이 썅년이…!

다시 한번 하늘로 간 이천호의 말이 떠올랐다.

마지막만큼은 정말 기가 막히게 옳은 말을 하고 떠났다.

연수정은 천하의 씨앙년 그 자체였다.

삑.

영상이 끝나고 턱을 슥슥 문질렀다.

어쨌든 연수정은 내가 아테네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어쩌면 우카론 자체가 날 겨냥하고 만든 걸지도 몰랐고 말이다.

“사실 연수정이랑 저도 악연이 좀 있거든요.”

“네에?”

“정확히는 연수정이 절 아주 죽이고 싶어할 거예요.”

의외의 이야기였는지 놀란 김대혁과 이연화에게 대산 습격 사건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보통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은 했는데 그런 짓까지.”

깊은 한숨을 내쉰 김대혁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까 그렇게 자신감 넘치던 이유가 있었군요. 위치는 알고 있지만 정말 쉽지 않겠어요.”

김대혁의 말대로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대기업 대산을 공격한 것도 모자라 한 나라의 장관과 장군까지 구워삶아 생물학 연구를 벌인 인간이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잡는 게 불가능할 터였다.

“그래서 말인데요.”

살짝 시선을 돌려 이연화의 빛나고 있는 손을 바라봤다.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무언가를 추적하는 듯한 이연화를 슬쩍슬쩍 훔쳐보고 있었다.

“연수정이 하늘에서 죽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두 분이 곤란해질까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며 두 사람의 얼굴을 살폈다.

예상했던 대로 화들짝 놀란 얼굴이었다.

이게 보통의 반응이겠지.

일반 사람을 넘어 누구보다 법을 준수하는 국가 소속 헌터들이었다.

일단 슬쩍 말을 던져 보긴 했으나 두 사람이 개인적인 친분을 넘어 거절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공식적으로 연수정이 탄 전세기는 추적이 불가능해요. 등록되지도 않았고 저희에게 그럴 권한도 없죠.”

이연화가 작은 한숨을 쉬며 손을 들어 올렸다.

“이것도 이미 법을 어긴 거고요.”

사뭇 심각한 듯한 이연화에 머리를 긁적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연수정을 진짜 뭐 어떻게 하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여쭤본 거예요. 하하하!”

“연화야. 그 장치는 얼마나 유지되는 거라고 했었지?”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 하던 김대혁이 이연화를 바라봤다.

“제가 힘을 주입하지 않으면 두 시간 정도요.”

김대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자.

그런 김대혁을 바라보던 이연화가 묘한 미소와 함께 마도공학 장치를 건넸다.

“연화는 애초에 승인되지 않은 마도공학을 펼친 적이 없고. 난 우연히 주운 기묘한 장치를.”

날 바라보던 김대혁이 장치를 건네왔다.

“대사관 복귀 길에 잃어버렸고.”

“땅에 이런 게 떨어져 있네요. 신기하게도 생겼네.”

장치를 받아 들며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올려 어둠이 찾아온 하늘을 응시했다.

“밤이 깊었네요.”

* * *

그리스 상공을 벗어난 전세기.

홀로 자리에 앉은 연수정이 와인을 들이켰다.

“하!”

자신을 잡겠다고 우루루 몰려왔던 대사관 인원들을 떠올렸다.

그야말로 단내가 풍긴다 싶으면 우루루 몰려들 줄이나 아는 날파리 같은 인간들이었다.

아무리 용을 쓰고 발버둥 쳐도 손이 닿지 않는 걸 그 나이가 되도록 모르다니.

참으로 개탄스러울 따름이었다.

톡. 톡. 톡.

손가락으로 와인잔을 두드리며 이번엔 무기왕을 떠올렸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악연이었다.

딱히 백운이 연수정을 노리고 쫓아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백운은 연수정의 아주 중요한 사업만 골라 제대로 엎어버리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소피아를 못 죽이면서 졸지에 도망자 신세가 됐고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손톱까지 물어뜯으며 고민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묘안이 없었다.

연수정이 가진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도 우카론보다 강한 전력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까득!

이젠 정말 알아서 피해 다니는 수밖에 없나 하는 생각에.

연수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는 굴욕이었다.

누군가에게 패배했음을 인정한다니 백운을 만나기 전까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아.”

연수정이 의자로 몸을 기댔다.

‘또 기회가 있겠지.’

우카론도 우연히 발견한 관에서 의도치 않게 탄생한 괴물이었다.

백운도 사람인 이상 분명 그를 훨씬 상회하는 존재가 어딘가에 또 있을 터였다.

‘그때가 오면.’

연수정이 입술을 깨물었다.

‘반드시 죽여주…?’

굳게 다짐하던 연수정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둠이 찾아와 제대로 보이진 않았으나 뭔가 이상했다.

‘연기…?’

안개나 구름은 아니었다.

묘하게 일렁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낯익은 연기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오싹.

계속해서 짙어져 달빛 아래에서 선명한 칠흑을 띠는 연기에.

연수정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비행기를 사이에 두고도 검은 연기는 말도 안 되는 불길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 이건…!’

연수정이 헛숨을 들이키며 창문에서 몸을 떨어뜨렸다.

본 적이 있는 연기였다.

대산 습격 당시 마지막 드론이 찍었던 무기왕.

영상 속의 무기왕은 칠흑에 가까운 연기를 일렁이며 서 있었다.

덜컹!

“!?”

엄청난 진동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날아가던 비행기의 속도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추락하지 않는 걸로 보아 어떤 힘에 붙잡혀 있는 것 같았다.

꿀꺽.

어느덧 완전히 멈춰버린 비행기에 연수정이 마른침을 삼켰다.

심장이 빠르게 뛰며 온몸으로 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 연이사님! 지금 밖에…!?”

비행기를 조종 중이던 부하가 무언가 말하려는 찰나.

쾅!

비행기 문이 순식간에 뜯겨져 나가고.

영상 속에서 봤던 검은 연기를 온몸에 두른 무기왕 백운이.

저벅.

문을 통해 걸어 들어왔다.

* * *

비행기 좋네. 이게 부자의 삶인가.

“여기가 어디라….”

휘릭!

“끄아아아악!”

연기를 이용해 달려드는 녀석을 문밖으로 퇴장시킨 후.

천천히 걸어 연수정 앞으로 걸어갔다.

연수정은 마치 사신이라도 본 것처럼 얼굴이 허옇게 질린 채 굳어 있었다.

“안녕 연수정.”

태연하게 말을 걸며 연수정 건너편 자리로 몸을 앉혔다.

연기가 잡아 놓은 탓에 하늘 한가운데에서 멈춰버린 비행기 안.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첫 대면이었다.

“벌써부터 왜 그렇게 얼어있어?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여전히 얼어있는 연수정에 테이블로 시선을 옮겼다.

“와인 처먹고 있었네. 남은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흉측한 괴물이랑 피 터지게 싸우고 있었는데.”

피가 터진 건 우카론이었지만, 어쨌든.

“너 때문에 핸드폰도 뽀개졌어. 산 지 일주일도 안 된 건데.”

먹다 만듯한 와인잔을 연수정 쪽으로 건네줬다.

“마저 먹어.”

“…?”

의아한 표정을 짓는 연수정에 입을 열었다.

“마지막 와인일 수도 있잖아.”

“!!”

소스라치게 놀란 연수정이 심호흡하기 시작했다.

아까 영상에서 악을 써대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아까 태어나면서 정해진 법칙이니 뭐니 그런 소리를 하시던데. 법칙이란 게 생각보다 잘 깨지거든. 안 그래?”

“워, 원하는 게 뭐야.”

“내가 묻고 싶은데. 뭔데 자꾸 나랑 부딪히는 거야.”

“그건 내가 하고 싶은 소리다. 히메지 성부터 여의도, 대산까….”

“잠깐.”

손을 들어 연수정의 말을 끊었다.

“히메지 성?”

미간을 찌푸리며 되묻자.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연수정이 입을 다물었다.

“너 그 암살대 할아범이랑 연관 있구나?”

여전히 입을 다문 연수정에 다시 한번 말을 건넸다.

“셋 셀 때까지 입 안 열면 강제로 찢는다. 참고로 나 셋까지 온전히 세는 경우가 별로 없어. 하….”

“나, 나와 같은 소속이었다!”

입이 찢어지는 건 무서웠는지 순순히 대답하는 연수정에.

몸을 뒤로 눕히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암살대랑 할아범으로 끝낼 일이 아니었구나.”

회귀 전 쿄스케의 죽음.

암살대와 그 총괄을 죽이며 끝마쳤다 생각했는데 아직 꺼뜨려야 하는 불씨가 남아있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물어볼게. 이제 어떻게 살아남을 거야?”

“뭐…?”

“지금까진 무슨 짓을 하든 네 돈이, 네 인맥이 항상 널 살려줬었잖아.”

양팔을 벌려 주변을 가리켰다.

“그런데 여긴 아무도 없네?”

아주 높은 상공 한가운데였다.

그 한가운데의 비행기엔 연수정과 나 단 둘뿐이었고 말이다.

스윽.

깍지를 낀 손으로 턱을 괴며 앞쪽으로 몸을 내밀었다.

“어떻게 살아남을 거냐고.”

“자, 잠깐.”

겁에 질려 손을 내민 연수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행기를 감싸고 있던 연기를 천천히 압축해나갔다.

“대답 못 하겠어? 그럼 내가 대신 대답해 줄게.”

스윽.

연수정 바로 앞까지 얼굴을 가져가며.

“넌 여기서 절대 살아나갈 수 없어. 왠 줄 알아?”

입가 한가득 우월한 미소를 그려 보였다.

“내가 그럴 생각이 없으니까.”

콰드드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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