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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03화 (303/473)

303화. 경이로운 존재

상쾌한 공기를 맞으며 아래를 응시했다.

종잇장처럼 구겨져 추락한 연수정의 전세기.

바다로 떨어지며 폭발한 전세기는 검은 매연을 뿜어내고 있었다.

“음.”

전세기와 최후를 맞이한 연수정을 보고 있자니 뭐랄까.

주륵.

이마로 땀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바로 하늘로 올려보내지 말고 대산에 넘겼어야 했나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딱 봐도 쉽게 입을 열 인물은 아닌 듯했지만 잘 캐다 보면 이것저것 들을 이야기가 많았을 터였다.

히메지 성 얘기에 그냥 보내버렸네.

나도 처음엔 상황이 된다면 이야기나 좀 할까 생각했었다.

히메지부터 여의도까지 연수정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는 걸 안 이후 생각을 바꿨지만 말이다.

재활용 불가능이었어.

확신에 가득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위험을 선물할 인간이었다.

음…! 어쨌든 해피엔딩이구만!

내 멋대로 엔딩을 내린 후 아테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날도 선선하니 천천히 여유를 즐기며 날아갈 생각이었다.

에밀리 님은 이틀은 있어야 만날 수 있을 테고.

큰 부상은 없지만 에밀리는 몹시 지쳐있었다.

아마 내색은 안 했지만 뒷골목 사람들의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연구소에서 밥도 제대로 안 챙겨줬는지 이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수척해 있었고 말이다.

- 이틀 정도면 기력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퇴원 후에도 에밀리의 스케줄은 가득했다.

우카론의 관부터 연구소에서 벌어진 일의 증인으로 여기저기 불려 다닐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가 에밀리에게 볼일이 있어서 온 걸 아는 김대혁이 퇴원 후에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도록 손을 써주었다.

펄럭.

추락 지점부터 얼마나 날았을까.

저 멀리로 아테네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회중시계를 감정받고자 가볍게 들린 그리스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한 서른 배쯤 빡셌었다.

굿이라도 한 번 받아야겠어. 가는 곳마다 아주 그냥.

머리로 어렸을 때보던 탐정 만화가 떠올랐다.

가는 곳마다 살인 사건이 터져 나중엔 사건을 몰고 다니는 주인공이 진짜 빌런이 아닐까 의심했던 만화였다.

의,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막상 비슷한 처지에 놓이니 그 주인공도 억울했겠다는 생각에.

닿지 않을 사과를 건네며 다시 한번 날개를 크게 펄럭였다.

* * *

제주도 구석에 비밀스럽게 위치한 시설.

“끄… 끄윽.”

바닥을 뒹구는 이들을 바라보며 시설을 습격한 아티라가 입을 열었다.

“연수정은 어디에 있죠?”

“네, 네놈들은 뭐냐…!”

남자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깔끔한 정장 차림에 올려 묶은 머리, 그리고 말끔한 테를 가진 안경까지.

전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원들이 쳐들어와 순식간에 시설을 제압한 것이었다.

“전 대산의 아티라입니다.”

남자에게 세검을 겨눈 아티라가 고개를 들었다.

“저분들은 제 직속 부대인 마틸다고요. 자 전 대답했으니 이제 그쪽 차례예요. 다시 한번 물을게요. 연수정 어딨나요?”

대산의 습격 사건 이후.

아티라와 마틸다는 몸을 회복하기 무섭게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었다.

지난번 소피아의 부름으로 백운을 잠시 만났던 걸 제외하면 항상 대산 밖에 나와 있었다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우리 같은 말단이….”

띠리리.

걸려오는 전화에 아티라가 시선을 옮겼다.

“네 회장님.

회장 소피아로부터 걸려온 전화.

작게 대답하며 몇 번 고개를 끄덕인 아티라가 마지막 인사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마틸다 전원 철수.”

의아해하는 남자를 남겨두고 아티라가 발걸음을 돌렸다.

연수정에 관해 묻는 것도 그만둔 채였다.

“더 물어볼 필요가 없어졌네요.”

몇 걸음 걸어가던 아티라가 돌아서 벙쪄 있는 남자를 쳐다봤다.

“죽은 사람을 찾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 * *

대산의 회장실.

아티라에게 연락을 마친 소피아가 핸드폰을 내려놨다.

- 띠리리.

10분 전 회사의 회선을 통해 연락이 왔었다.

보통은 아무리 요구해도 회장인 소피아에게 연결되는 건 불가능했지만.

전화를 건 게 백운이라면 이야기는 달랐다.

‘….’

의자에 몸을 기댄 소피아가 조금 전의 대화를 떠올렸다.

회중시계를 갖고 온 지 얼마 안 됐던 터라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백운이 필요한 건 가능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와줄 생각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전화를 통해 들려온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 안녕하세요. 소피아 님. 그… 제가 연수정을 좀 죽였거든요.

소피아가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듣는 당시에도 좀 죽였다는 게 어떤 의민지 물으려다 말았었다.

대산에서 정보를 캐내야 할 텐데 냅다 죽여버렸다고 백운이 진심으로 난감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별말씀을요. 항상 신세만 지네요.

계속 쭈글쭈글해 하는 백운에 오히려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말한 뒤 소피아는 전화를 끊었었다.

백운을 배려해서 해준 말은 아니었다.

대산의 목표는 연수정을 잡아 그 끝에 숨겨진 뿌리까지 모두 캐내는 게 아니었다.

그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애초에 현실적이고 리스크 없는 목표를 가지고 연수정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 연수정 제거.

무언가를 캐묻고자 연수정을 살려둘 생각은 없었다.

그녀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잠재적인 리스크였으니 발견하자마자 바로 죽일 생각이었다.

‘이걸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요.’

소피아가 막막하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머금었다.

이미 대산 습격 사건으로 평생 갚지 못할 은혜를 입은 소피아였다.

그런 상태에서 대산의 잠재적인 위험까지 제거해버리다니.

백운은 자기도 연수정을 죽여야 할 이유가 있었다고 말하긴 했지만, 대산과 소피아가 큰 도움을 받은 건 분명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무기와 관련된 유물을 찾아야겠네요. 그나저나.’

몸을 일으키려던 소피아의 머리로 본능적인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찾았을까요.’

소피아가 손가락을 까딱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습격 이후 필사적으로 찾아 헤맸지만 연수정은 잡힐 듯하면서도 끊임없이 대산의 감시망을 피해 달아났었다.

어느 순간부턴 아예 잠적해 꼬리조차 잡을 수 없었고 말이다.

“아. 맞다.”

골똘히 생각하던 소피아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생각해봐야 알 수가 없겠네요.”

자리에서 일어난 소피아가 처음 백운과 마주쳤을 때 본 빛을 떠올렸다.

계단을 넘어 건물 바깥까지 퍼져 나갔던 엄청난 황금빛.

그 빛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말도 안 되게 커져 더 이상 소피아의 눈으로도 가늠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변해있었다.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하는 일을 이해하려 한다는 건.”

소피아가 후련한 얼굴로 미소를 머금었다.

“오만이니까요.”

* * *

우카론과 백운이 싸웠던 장소.

무너져 내린 연구소로 이연화를 포함한 헌터들이 걸음을 옮겼다.

현장 보존과 함께 이번 사건과 관련된 증거를 수집할 요량이었다.

“청아 님. 발아래 조심하세요.”

이연화의 말에 이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조사엔 이청아도 함께였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능력을 사용해 대사관을 도우려는 것이었다.

“정말… 엄청나네요.”

연구소를 둘러보며 이청아가 혀를 내둘렀다.

엄청난 전투가 벌어진 장소라고 들은 터라 단단히 마음먹고 왔는데도.

막상 현장을 두 눈으로 마주하니 아찔함을 넘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까지 들고 있었다.

“어렸을 때 만화에서 보던 거대 괴수들이 싸운 거 같아요.”

이청아의 표현에 이연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말은 안 했지만 이연화 역시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다.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니까 믿는 거지 어딘가에서 들었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전투였다.

“청아 님이 도와주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보시다시피 실질적인 증거 찾기가 쉽진 않을 거 같거든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이청아가 눈을 반짝이며 주먹을 움켜쥐자.

이연화가 미안한 미소를 머금었다.

“얼마 안 있으면 한국으로 돌아가실 텐데 너무 죄송하네요.”

“아니에요. 백운 님 덕분에 돌아갈 때도 퍼스트 클래스거든요!”

저벅.

엄지를 치켜세우는 이청아를 데리고 이연화가 무너진 잔해를 넘어 중앙으로 이동했다.

“가장 먼저 봐주셨으면 하는 게 있어요.”

“…!”

따라 걷던 이청아가 걸음을 멈추며 입을 벌렸다.

그게 뭔지는 이연화가 딱히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 이게 무슨…?”

원래라면 잔해가 잔뜩 쌓여 있어야 하는 위치였지만.

그곳은 다른 곳보다 잔해가 현저히 적었다.

정확히는 네 줄로 그어진 엄청난 상흔에 잔해가 모조리 사라진 것이었다.

“엄청 크고 깊네요.”

단순히 범위만 넓은 게 아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구멍이 파여 있었다.

마치 말도 안 되게 거대하고 강한 발톱이 땅을 할퀸 것 같았다.

“감식반도 고개를 내저었어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자국은 아무도 남길 수 없다고요.”

“….”

말도 안 된다는 말에 이청아와 이연화가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둘 다 말도 안 되는 일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을 알고 있어서였다.

“백운 님이 했을 거라 생각은 하지만. 정확히는 어떻게 해야 이런 게 남는지 궁금해서요. 부탁할게요. 청아 님.”

“네! 한 번 봐볼게요.”

이연화가 작은 통 하나를 이청아에게 건넸다.

통 안엔 작은 귀걸이 하나가 들어있었다.

널브러진 우카론의 잔해에 섞여 있던 걸로 보아 아마도 융합된 누군가의 귀걸이일 것 같았다.

스윽.

귀걸이에 손을 올린 이청아가 두 눈을 감았다.

희미한 빛과 함께 기억을 보기 시작한 이청아.

“우카론이 공중에서 백운 님과 전투를 벌이고 있어요.”

기억을 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청아는 벌써 몇 번이나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설명에 집중하려고 해도 너무 현실감 없는 전투라 본능적으로 내뱉어지는 것이었다.

“이, 이젠 우카론의 시선이 위를 향하고 있어요. 아래로 추락하고 있는 거 같아요.”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한 이청아.

그런 모습에 이연화가 힘들면 그만해도 된다고 말했지만, 이청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연화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이청아는 지금의 기억을 계속 보고 싶었다.

“푸른 비늘에 둘러싸인 백운 님이 발톱 형태로 변한 손을 들어 올렸어요. 비늘이 모이더니 엄청 거대해졌고요.”

이청아가 마른침을 삼키며 두 눈을 찡그렸다.

햇빛에 반사되어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백운.

기억을 통해 보는 건데도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빛이었다.

“그리고…!!”

말을 하던 이청아가 눈을 번쩍 뜨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처, 청아 님! 괜찮으세요?”

“네…. 네. 괘, 괜찮아요.”

애써 고개를 끄덕인 이청아가 천천히 심호흡했다.

기억에서 마지막에 휘둘러졌던 백운의 공격.

지금 이곳에 말도 안 되는 흔적을 남긴 공격을 이연화에게 설명해줘야 했지만.

‘….’

당장의 이청아에겐 불가능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정확히는,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을 것 같았다.

꿀꺽.

지금 이청아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단 한 가지였다.

강하다 아니다의 수준을 이미 아득히 뛰어넘어 버린, 누군가 따라 하려 해도 그 발끝에 미치는 것조차 불가능해 말도 안 되는 압도감을 안겨 주는 존재.

이청아는 알 수 있었다.

이런 흔적을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남긴 백운은 그야말로.

“경이로운…. 존재.”

경이로운 존재.

그 자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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