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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15화 (315/473)

315화. 방어선

런던에도 마가 낀 건가.

사신이 런던을 뒤집은 게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능력자들로 빠르게 복구 중이라고 하지만 아직 당시의 상흔이 도시 여기저기에 남은 상태.

그게 채 아물기도 전에 어디서 왔는지 모를 구울 놈들이 떼거지로 몰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대피가 우선입니다. 그리고 방어선을 펼치도록 하죠.”

구울의 목적지가 런던이란 걸 알아낸 후 저택 안은 몹시 분주해져 있었다.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전화를 거는 사람들과 각종 보고를 들으며 판단과 결정을 내리고 있는 총리까지.

천천히 둘러보니 멍하니 서 있는 건 나뿐이었다.

뒤로 짜져 있자.

사람들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도록 슬금슬금 슬리퍼를 끌며 기둥으로 붙었다.

아직 안으로 들어갔던 샤를이 나오지 않았기에 난 일단 대기였다.

“백운 님. 저희도 이만 런던청으로 돌아가 볼게요. 구축되는 방어선으로 갈 거 같아요.”

다가온 이사벨이 말을 건네왔다.

침착하게 말은 하고 있지만 얼굴이 무척이나 상기된 이사벨.

마른침까지 삼키는 걸 보니 현재 상황에 몹시 긴장한 모양이었다.

하긴 구울이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이사벨이 들고 있는 가방을 바라봤다.

재주는 없지만 약간이나마 긴장을 풀어 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요즘은 소설 안 들고 다녀요?”

“아… 네!”

크게 대답하며 주변을 살핀 이사벨이 몸을 숙여왔다.

“원래는 가지고 다니는데 이번엔 워낙 급하게 나오느라 깜빡했어요. 로즈 작가님의 신간이 나왔거든요!”

“오 정말요?”

관심사가 등장한 덕분인지 이사벨이 흥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먼 곳에서 돌아온 소나타 윈스가 로즈에게 무언가를 건네려는 순간이었는데!”

약간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이사벨.

“그때 연락이 와서 못 읽고 나와버렸거든요. 그게 너무 알고 싶어 미치겠는 거 있죠. 물론 지금은 아니에요. 그게 뭔지 궁금해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니까요.”

“커피일 걸요.”

“네?”

무심하게 대답하자 이사벨이 뭔 소리하냐는 듯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앗스포일런가.

나도 모르게 해버린 비매너 행동에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을 휘휘 저어 보였다.

“이사벨.”

“네, 네!”

때마침 부르는 에밀리아에 이사벨이 호다닥 몸을 돌렸다.

“그럼 나중에 뵈요. 백운 님!”

“네! 조심하세요. 이사벨 님.”

이사벨의 모습이 문 너머로 사라지고.

에밀리아가 천천히 다가와 입을 열었다.

“공주님을 잘 부탁드려요. 런던청에선 저와 이사벨도 여기에 머무르라고 했지만 딱 봐도 당장 현장에 갈 인력이 부족해 보여서요. 또 여긴 백운 님이 계시니까 다른 인력이 필요 없을 거 같고요.”

“하하…. 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겠습니다!”

우렁차게 대답하자 에밀리아가 희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꾸벅 숙였다.

분위기로 보아 아직도 버킹엄 궁전에서의 일을 자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인사를 마친 에밀리아가 몸을 돌렸다.

저택 입구로 걸어가는 에밀리아.

평소와 같은 듯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축 처져 있는 걸음걸이였다.

“에밀리아 님.”

“네?”

오지랖이라고 생각해서 조용히 있었지만.

그런 뒷모습을 보고 있다 나도 모르게 에밀리아를 불러 세웠다.

“그…. 뭐랄까. 궁전에선 누구도 대비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대비의 할아버지가 있었더라도요.”

약간 눈이 커진 듯한 에밀리아에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개인의 방심이나 잘못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란 걸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하하…!”

괜한 말을 했나 머쓱해 하는 사이.

놀란 듯한 에밀리아의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고맙습니다.”

나지막이 인사를 건네며 꾸벅인 에밀리아가 문밖으로 사라지고.

찰싹.

에밀리아의 모습이 사라지기 무섭게 주댕이를 한 대 후려쳤다.

대비의 할아버지라니.

주제넘은 말을 한 건 물론 해도 꼭 저딴 말을 골라서 한 죄였다.

미친 주둥이 같으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느새 한산해진 저택을 둘러봤다.

이곳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은 한두 명씩 저택을 떠나고 있었다.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흐음.”

작은 한숨을 내쉬며 저택 중앙에 놓인 모니터를 응시했다.

방금까지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 무언가를 그려댄 모니터였다.

방어선이라.

모니터엔 바다와 런던 사이를 길게 잇는 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 아래론 구울을 표시한 듯한 초록색 점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말이다.

더럽게 많나 보네.

초록색 점은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아까 성기사 단원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땐 당한 인원까지 구울로 변한다고 했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저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더 늘어날 터였다.

꼴깍.

물리면 구울이 된다는 생각에 고개를 휙휙 흔들며.

조, 조심하자.

싸울 땐 약간의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다.

끼이익.

혹시나 물려서 구울이 되면 어떡하지 호돌돌거리고 있을 때.

닫혀있던 문이 열리며 샤를이 모습을 나타냈다.

왠지 모르겠지만 들어가기 전보다 분위기가 확 달라진 느낌이었다.

“백운 님.”

곧장 내 쪽으로 걸어와 말을 건네는 샤를.

사뭇 심각한 얼굴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넘겼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 * *

“움직이기가 어렵네요.”

런던청에서 방어선으로 향하는 차량 안.

이사벨이 온몸을 감싼 보호구에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잘 착용하고 있어. 구울에게 물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네… 네!”

에밀리아의 말에 이사벨이 꼴깍 침을 삼켰다.

물리면 구울이된다니.

좀비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실제로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아까 본부장님이 말씀하신 건 백운 님이었죠?”

이사벨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에밀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 이번엔 정말 조심해야 해.

출발하기 전 본부장은 각 인원에게 거듭 강조했었다.

졸개 구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발리아의 힘은 성기사들도 알지 못하는 범주이니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고 말이다.

- 적의 섬멸보단 구울이 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본부장은 단순히 발리아의 강함을 경계하는 게 아닌, 이쪽 전력이 구울화 되며 적이 되는 것을 더 걱정했었다.

- 특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백운 님이 그런 일을 당했다간….

그 순간엔 본부 전체가 찬물이 끼얹어진 것처럼 싸늘해졌었다.

본부장이 말을 하다 말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발생했다간 그야말로 대재앙이었다.

“저택에선 별말씀 없으셨지만 총리님도 걱정하고 계셔. 그래서 최대한 발리아란 놈에게 백운 님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지 않으시고.”

“그래서 방어선 전투는 어떻게든 영국 전력만으로 막고 싶어 하시는 거군요.”

“맞아. 원래도 백운 님은 샤를 공주님의 호위를 위해 저택에 남아있어야 하기도 했고.”

에밀리아의 생각도 본부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압도적이게 강한 백운이라 적의 접근을 허용조차 안 할 것 같았지만.

만에 하나라는 변수가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이건 영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도 엄청난 영향이 있을 일이었다.

“방어선은 괜찮을까요? 아까 얼핏 들으니까 이미 아래쪽은 피해가 꽤 심각하다고 들었거든요.”

평소라면 부하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최대한 좋은 쪽으로 얘기했겠지만.

이번엔 에밀리아도 그럴 수가 없었다.

평범한 공격에 죽지 않는 것도 문제였으나 이미 목숨을 잃은 성기사나 헌터가 구울이 되었다는 정보들이 속속 들어오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각 지역에서 지원도 오고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성기사단이 구울을 처치할 수 있도록 빛을 나눠 줄 테고.”

최대한 긍정적이게 답변한 사이 도착한 차량이 멈추며 문이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오는 차가운 밤바람.

차에서 내린 이사벨과 에밀리아가 언덕으로 나란히 섰다.

“아…!”

전방으로 고개를 들기 무섭게 이사벨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직은 꽤 먼 거리였으나 벌써부터 보이고 있었다.

아주 먼 거리에서부터 천천히 밝아져 오는, 보는 것만으로도 불길함이 느껴지는 초록빛이 말이다.

으득.

에밀리아가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시야가 닿는 모든 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은은한 초록빛.

놈들이 다른 지역은 무시한 채 런던으로 오는 건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겠지만, 보기만 해도 아찔해지는 숫자인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저런 건 저도 처음이군요.”

에밀리아와 이사벨 옆으로 다가온 성기사단의 부단장, 로테.

로테는 입가로 난처한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이곳은 절대 무너져선 안 됩니다.”

주변 방어선을 둘러본 로테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어선이 무너진다는 건 여기에 있는 모든 이가 구울이 된다는 걸 의미했고.

그건 곧 영국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런던 전력이 모두 발리아에게 넘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럼 빛을 나눠 드리겠습니다.”

나지막한 말과 함께 로테가 목걸이를 뜯어내고.

화아아아악…!

황금빛이 방어선 전체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 *

“믿기 힘드시겠지만. 방금 말씀드린 대로예요.”

입을 벌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에서 나온 샤를은 날 데리고 인적이 없는 테라스로 향했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었다.

방 안에서 현 여왕에게 받은 기억에 관한 이야기였다.

쩌, 쩐다.

들을수록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수 세기에 걸친 왕의 기억이 계속해서 계승되며 내려오고 있었다니.

어디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옛날부터 이런 게 가능했다는 것 역시 신기했고 말이다.

“지금 당장은 적응하는 단계라 기억이 온전치 못해요. 얼마 후면 잔다르크 님에 관한 기억도 떠오를 거 같아요.”

조금 전 샤를은 잔다르크에 관련해서도 잠깐 이야기를 했었다.

마치 본인이 겪은 일인 것처럼 스며드는 역대 왕의 기억.

샤를은 어느 순간부터 잔다르크를 정말 소중하고 친근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영국 왕실의 기억 계승. 이건 당대의 왕만이 알아야 하는 비밀이에요. 왕조차 즉위하기 전까진 몰라야 하는 사실이기도 하고요.”

“넵…?”

나도 모르게 땀이 흘렀다.

알면 안 되는 걸 안 죄로 슥삭 제거당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럼에도 제가 백운 님께 말씀을 드린 건…. 부탁을 드려야 할 거 같아서예요. 아무 설명도 없이 무작정 해달라고 부탁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요.”

말해 보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랜 뭐가 나오든 별 상관없다는 주의인데.

지금만큼은 말도 안 되는 비밀을 들어서인지 살짝 쫄리는 기분이었다.

“적응이 되어 스며든 기억 중에 잔다르크 님의 빛에 관한 게 있어요.”

“!?”

“희미하고 아주 부분적이지만 백운 님이 말씀하셨던 장면과 비슷한 기억이 있거든요. 그 빛을 가지러 가야 할 거 같아요. 그래야만….”

두 손을 꼭 쥔 샤를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말을 이어 가는 샤를.

“런던을 지킬 수 있어요. 문제는 그 빛이 있는 장소가 지금 구울이 우글거리는 바닷가 도시란 거예요.”

여기까지 말한 샤를이 미안함과 죄책감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주륵.

미안함 가득한 샤를의 눈을 보고 있자니 등 뒤로 땀 한줄기가 흘렀다.

샤를은 날 구울 구덩이로 밀어 넣는다고 생각해 미안해하는 듯했지만.

난 지금 무기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중이었다.

그곳에 구울 수만 마리가 있든, S급 데몬이 백만 마리가 있든, 가지 말라고 뜯어말리든 결국에 난 갈 생각이었고 말이다.

티, 티 내지 말자.

“걱정하지 마세요. 구울 같은 건 제 상대가 안되니까요!”

환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지금 바로 출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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