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화. 성당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런던의 밤바람.
칼데아를 펄럭이며 앞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상쾌하네.
상쾌하고 시원한 상공이었다.
평소라면 룰루랄라 하면서 편한 마음으로 날았을 텐데.
아쉽게도 지금 내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백운 님. 땀을 왜 이렇게 많이 흘려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내렸다.
현재 샤를은 공주님 안기로 내게 안겨있었다.
그야말로 신분에 딱 맞는 자세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주륵.
샤를은 현재 내 불편한 마음의 주원인이었다.
“곧 차기 여왕님을 납치했다고 수배당할 거 같아서요.”
난 진심으로 한 말인데 샤를이 풉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 저도 함께 가야 해요.
방향을 들은 뒤 칼데아를 꺼내자 샤를은 이어 말했었다.
장소엔 이전 고성과 마찬가지로 왕가의 봉인이 걸려있으며.
그건 현 왕의 자격을 가진 자만이 열 수 있단 것이었다.
자격은 오늘 샤를이 건네받은 기억이었고 말이다.
- 예…?
원래라면 그냥 시원하게 오케이! 같이 갑시다! 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무려 샤를은 영국 왕실의 공주였고 오늘 기억까지 넘겨받아 이젠 왕이 되는 일만이 남은 상태였다.
영국 내에서도 무언가 일이 터졌을 때 보호 순위 최상위권에 속해 있을 터.
그런 사람을 데리고 구울이 득실거리는 장소로 간다는 건 아무리 정신 나간 편인 나라도 힘든 일이었다.
- 가, 가시죠!
그럼에도 승낙한 건 방법이 없어서였다.
단순히 내 무기를 빨리 찾고 싶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무기는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후 찾아갈 수도 있었다.
단지.
- 빛이 없으면 방어선은 무너질 거예요.
런던이, 정확히는 영국이 문제였다.
그럴 수 없다고 손을 내젓는 내게 샤를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말했었다.
방어선엔 강한 전력이 많지만 결국엔 성기사단의 빛이 부족해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말이다.
- 백운 님은 무기를 위해서. 전 영국을 위해서.
이렇게 말하며 샤를은 손을 내밀었고.
난 그래도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선택지가 없어 샤를의 손을 붙잡은 것이었다.
“괜찮아요. 제가 테라스로 나갔다가 사라진 거뿐이니까요.”
“같이 나가는 걸 모두가 봤는데요…?”
“그렇긴 하죠.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구울이 되더라도 그건 제 선택이었으니까요.”
“제가 데려갔다가 그렇게 됐는데도…?”
이번 질문엔 샤를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니까 잘 부탁드릴게요. 제가 구울이 되지 않도록.”
마음속으로 꼭 그러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여왕을 구울로 만든 대한민국의 1급 헌터 무기왕.
상상만 해도 끔찍한 타이틀이었다.
“허.”
여왕의 저택에서 얼마나 날아왔을까.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 방어선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언제 갖춘 건지 전차와 구조물로 라인을 그은 런던 측과 그 반대편에서 천천히 밀려오는 초록빛의 구울 군단.
물론 탄성의 이유는 구울 때문이었다.
너무 많은데.
모니터로 볼 때도 많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직접 보니 그 위용이 장난이 아니었다.
중간중간엔 어떻게 만든 건지 여러 마리가 누더기처럼 겹쳐진 개체도 보였고 말이다.
헌터나 군인도 섞여 있는 거 같고.
제복을 입은 이들은 생전에 사용하던 검이나 화기 등을 들고 있었다.
단순히 구울로 만들어 조종하는 게 다가 아닌 생전의 능력까지 그대로 사용이 가능한 것 같았다.
“….”
슬쩍 고개를 내리자 굳은 얼굴의 샤를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농담을 건네며 최대한 심각해지지 않으려 노력한 샤를이었는데.
지금 샤를의 얼굴엔 슬픔을 넘어 이런 짓을 한 발리아에 대한 분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금방 다시 돌아올 거예요. 그때까지 방어선도 무사할 거고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자 샤를이 내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버텨 줄 거예요. 모두가 지금까지 영국을 지켜 준 분들이니까요.”
“맞아요. 에밀리아 님만 해도 아주 강하시니까요!”
최대한 밝게 맞받아치며 나아가는 방향으로 얼굴을 들었다.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점점 진해지고 있는 불길한 초록빛.
얼른 가자.
비행에 어느 정도 적응한 듯한 샤를에 조금씩 속도를 올려갔다.
저 빛이 런던을 뒤덮기 전에.
* * *
“전차 및 원거리 전력 공격 준비!”
지휘관의 신호에 맞춰 원거리 공격을 맡은 이들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근거리에선 힘을 못 쓰지만 거리가 떨어져 있을 땐 누구보다 강한 화력을 발휘하는 이들이었다.
“준비됐으면 저 빌어먹을 구울들한테.”
공격을 알리는 신호가 올라오고.
“다 쏟아부어!”
외침과 함께 사방에서 불꽃이 뿜어졌다.
전차의 포와 포대의 미사일은 물론 각자가 든 화기까지.
순식간에 주변이 밝아지며 탄이 구울 부대 한복판으로 쏟아졌다.
꿀꺽.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이사벨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사벨도 꽤 오랜 시간동안 헌터 생활을 하며 적지 않은 임무와 전투를 겪어왔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전쟁… 인가.’
지난번 사신 때는 이런 생각을 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었다.
급작스럽게 하늘에서 사신이 나타났고 일반 헌터들은 그들을 공격하지 못하는 건 물론 눈으로 볼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땐 정말 백운이 아니라면 런던이 멸망하는 상황이라 이사벨은 그저 기도하며 멍하니 백운의 무용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코로 스며드는 화약 냄새와 몸을 울려대는 커다란 굉음까지.
전운이 감돈다는 느낌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중이었다.
콰아아아아아---!
쏘아진 공격이 도달하며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공중에서도 지원이 도착해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화염으로 뒤덮이고.
시야에서 구울들이 사라지며 대신 화약에 의한 시커먼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큰 효과는 없을 겁니다.”
“…!?”
성기사단의 부단장 로테.
로테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전방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사일이나 포탄엔 빛을 두를 수 없으니까요.”
빛이 없으면 죽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사벨은 기대하고 있었다.
이 정도 화력이면 웬만한 개체는 가루가 됐을 테니 죽은 거 아닐까 하고 말이다.
스스스…!
시야를 가리던 연기가 걷히기 시작하고.
눈으로 들어오는 광경에 이사벨과 방어선 모든 이의 입이 벌어졌다.
끼…끼기…긱.
예상했던 대로 구울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살점이 사방으로 흩어진 건 물론 몸이 성한 개체가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구울은 살아있었다.
“이럴… 수가.”
날아간 손이 혼자 움직여 대고 있었다.
그러다 얼추 맞는 몸을 찾자 곧바로 붙어버리는 손과 몸뚱아리.
원래 자신의 몸이 아니었어도 붙을 수만 있다면 아무 곳이나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크라아아아아!”
“키라라락!”
빛이 둘러진 공격에 맞은 구울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지만.
전체 숫자에 비하면 극히 소수였다.
오히려 조금 전의 공격이 화를 돋군 건지 구울 군단은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결국 부딪혀야 합니다.”
로테가 등에 있던 망치를 꺼내 들었다.
“빛을 효율적으로 담을 수 있는 건 근접 무기뿐이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이사벨이 에밀리아 옆으로 붙었다.
파동을 뿜어내는 능력에 빛을 부여할 순 없기에 에밀리아의 서포터 역할을 맡은 이사벨.
이사벨이 몰려드는 구울을 한 번 본 뒤 전투 준비를 마친 에밀리아를 바라봤다.
‘구울이 붙지 못하도록 제가 지켜 드릴게요…!’
심호흡을 한 이사벨이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 * *
“여기예요!”
속도를 늦추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바닷가에 있는 거대한 성당 건물.
아까 본 고성만큼이나 정말 오래되어 보이는 성당이었다.
오씨.
고도를 낮추며 아래를 살폈다.
바닷가인 만큼 구울이 좀 없길 바랐었는데.
더럽게 득실대고 있는 걸 보니 의미 없는 바람이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쉽게 가는 법이 없구만.
“크르…?”
녀석들도 칼데아의 기운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한두 마리씩 고개를 들더니 눈에서 초록색 안광을 뿜어내는 구울들.
마음 같아선 라의 불꽃으로 시원하게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안겨 있는 샤를이나 성당 때문에 그건 힘들 것 같았다.
“크라아아아악!”
시, 시발.
살면서 이렇게 인기 많았던 적이 있었을까.
대충 봐도 수천 마리 정도의 구울이 내 쪽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이렇게 열렬한 걸 원하진 않았는데.
안겨있는 샤를의 몸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영국을 위해 날 따라오긴 했지만, 왕실의 공주인 샤를이 지금까지 저딴 놈들과 마주할 일은 없었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샤를 님. 이제 내려갈게요. 일단 길을 좀 뚫어야 할 거 같네요.”
“네…!”
“꽉 잡으세요!”
어차피 안 뒤지는 놈들이니까.
날개로 연기를 끌어모은 뒤.
아래로 빠르게 착지하며 연기를 터뜨렸다.
퍼어어엉!
순식간에 휩쓸리며 사방으로 날아가 버리는 구울들.
“크륵!?”
동족이 바다로 떨어져서인지 더 멀리 있던 놈들도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개무섭네.
연기를 계속해서 터뜨리며 주위로 충격파를 뿜어냈다.
몇 발자국 다가오지도 못한 채 저 멀리로 날아가는 구울들.
작지 않은 충격일 텐데도 고통을 못 느끼는 탓인지 놈들은 곧장 일어나 다시 달려오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 오뚜기야 뭐야.
연기 때문에 접근할 순 없겠지만 경계를 풀진 않았다.
물렸다간 아주 사달이 나는 걸 넘어 구울 무기왕이 되는 것이었다.
“이쪽이에요!”
샤를의 안내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굳게 닫혀 있는 성당의 문.
“안쪽에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샤를의 말에 성당 주변을 둘러봤다.
가까이서 보니 희미한 빛의 결계가 둘러져 있었다.
보고 있는 중에도 희미해지는 걸로 보아 뚫리기 직전이었던 모양이다.
낭떠러지에 놓인 성당이라니.
평소라면 감성 있네 라고 했을 테지만.
지금은 쉴 새 없이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는 구울에 그런 생각을 할 새가 없었다.
퍼어어엉!
어느새 도착한 성당의 문 앞.
놓인 위치만 보면 등대 같은 게 있어야 자연스러운 장소였다.
“결계를 풀게요.”
품에서 내린 샤를이 눈을 감고 손을 뻗었다.
그 와중에도 구울 녀석들은 절벽을 향해 우글우글 달려오고 있었다.
안 되겠네.
이대로라면 성당 안에서 제대로 포위당할 것 같았다.
철컥.
“백운 님.”
문이 열리고 날 부르는 샤를에.
“샤를 님 혹시 여기 길 좀 무너뜨려도 되나요?”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넸다.
순간 눈동자를 흔들며 내 눈을 응시하는 샤를.
“네… 네!”
무슨 의민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생각하는 걸 해보라는 듯한 제스쳐에.
[아이작 뉴턴 - 데모닉]
날개를 집어넣고 건틀릿을 꺼냈다.
턱.
몸을 숙이며 땅바닥으로 손을 마주 댔다.
우글대며 몰려오는 탓에 절벽은 쉴 새 없이 울려대고 있었다.
부디.
멀리서부터 뿜어지는 초록빛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기도했다.
수영은 못 하길.
[그라비티 - 디바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