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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17화 (317/473)

317화. 적임자

“크라아아아악!”

찢어질 듯한 구울의 비명에 샤를이 인상을 찌푸렸다.

성당에 오면서도 질리게 들은 비명이지만 아까와는 그 느낌이 달랐다.

처음엔 포식자가 먹이를 사냥하는 듯한 소리였다면 지금은 살고 싶다고 울부짖는 것 같았다.

파지지직!

길 좀 무너뜨려도 되냐고 물었던 백운.

처음에 샤를은 곧장 대답하지 못했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영상에서 봤던 힘이구나.’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땅을 짚기 무섭게 백운의 건틀릿에서 뿜어져 순식간에 구울과 절벽을 감싼 붉은 스파크.

사신이 쳐들어왔을 때 영상을 보며 샤를이 혀를 내둘렀던 바로 그 힘이었다.

말도 안 되게 커다란 공중의 섬과 모든 사신을 한 번에 추락시켰던 중력.

- 분석해보겠습니다.

영국에선 영상을 토대로 백운의 힘을 분석했었다.

나쁜 목적이 아닌, 어떻게 해야 저런 게 가능한지에 관한 순수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덕분에 영국에서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분석에 달라붙었었다.

과학 관련된 능력을 각성한 이들로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천재들이었다.

- 불가능합니다.

결과가 나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참여했던 모든 과학자가 조금의 이견도 없이 입을 모았기 때문이다.

백운이 한 건 섬이나 사신의 질량 등 모든 과학적인 요소를 따져봤을 때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이다.

-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분석을 주도했던 센터장은 마지막에 말했었다.

- 불가능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무기왕이 어떤 존재냐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물론 초점을 바꾼다고 과학적으로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을 겁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센터장마저도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든 존재와 힘.

그것이 지금 샤를의 눈앞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이었다.

드드드드드득!!

절로 마른침을 삼키게 하는 광경이었다.

거침없이 달려오던 수천 마리의 구울이 순식간에 땅으로 처박힌 것도 모자라 얼마 지나지 않아선 땅에 금이 가더니 길 전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키아악!”

구울은 속수무책으로 땅과 함께 파도치는 바다로 떨어지는 중이었고 말이다.

‘이제야 그 반응이 이해가 되네.’

당시 전투를 가까이서 봤던 사람들에게 그게 어떤 힘이었고 개인적으로 어떻게 보는지를 샤를은 물었었다.

- ….

모두가 일관된 반응이었다.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콰아아아…!

중간이 완전히 끊겨버린 절벽 지대.

성당이 위치한 곳을 포함해 주변이 멀쩡한 걸로 보아 백운은 중력이 적용되는 위치를 선택할 수 있는 것 같았다.

툭툭.

“휴.”

더 이상 구울이 넘어오지 못하자 백운이 손을 털며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나타났던 건틀릿은 보랏빛을 띠며 서서히 흩어지는 중이었다.

‘휴… 라니.’

샤를이 그런 백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런 엄청난 일을 하고도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한 반응이 사뭇 놀라웠다.

“샤를 님? 괜찮아요?”

자기도 모르게 너무 멍하게 있었던 걸까.

“네, 네.”

이름을 부르는 백운에 정신 차리며 대답하는 샤를.

샤를이 천천히 비켜서며 성당의 문을 열어젖혔다.

“제가 먼저 들어갈게요.”

앞장 서며 안으로 들어서는 백운에.

샤를이 조용히 백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무기왕… 백운.’

샤를의 눈엔 설명하기 힘든 경이로움이 담겨 있었다.

* * *

음!

성당 안으로 고개를 빼꼼 들이민 후 내부를 둘러봤다.

뒤에 샤를이 있는 만큼 당당히 들어가면 좋겠으나 그러기엔 구울의 존재가 너무 무서웠다.

이상 무!

아까 샤를의 말대로였다.

구울은커녕 아주 깔끔한 모습이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며 걸음을 옮겼다.

“멈추시죠.”

안으로 얼마나 들어갔을까.

묵직하면서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르륵.

잠시 후 하얀색 복장과 함께 황금색 빛을 두른 신부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저마다 커다란 십자가와 묵주 등을 들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온 거죠?”

신부들은 날 경계하고 있었다.

아마 구울 사태를 낸 놈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저는….”

내 소개를 하기 직전.

뒤에 있던 샤를이 앞으로 나와 모습을 보였다.

“샤를 공주님!”

샤를이 나타나기 무섭게 경계를 누그러뜨리며 깜짝 놀라는 신부들.

그들 중 책임자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나와 샤를에게 다가왔다.

“어, 어째서 이곳에…?”

신부의 물음에 약간 땀이 흘렀다.

나 같아도 궁금하겠다.

원래라면 영국 깊은 곳에서 철벽 보호를 받고 있어야 할 공주가 구울 한복판에 나타났으니.

안 놀라는 게 더 이상했다.

“이곳에 있는 빛을 찾으러 왔습니다.”

샤를이 답하자 신부의 얼굴로 놀라움이 깃들었다.

“… 기억을 계승하셨군요.”

뭔진 몰라도 왕실과 긴밀한 접점이 있는 성당 같았다.

“즉위도 전에 계승하셨다는 건 역시.”

“네. 빛이 꼭 필요한 상황이에요. 이곳에 빛이 있나요?”

“예. 기억하시는 대로 빛은 이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말끝을 흐린 신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공주님께서도 아시겠지만 그게 온전한 빛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온전한 빛…?

의아해하는 사이 신부가 말을 이었다.

“아주 오래도록 많은 이가 빛을 찾아왔었습니다. 당연히 자격을 갖춘 당대 여왕들께서도 함께 오셨었고요. 하지만….”

“빛은 밝혀지지 않았었죠.”

말을 받는 샤를을 바라보자.

샤를이 나를 위한 설명을 시작했다.

“빛의 근원이 이곳에 있는 걸 알면서도 성기사단의 빛이 계속해서 사그라든 이유예요. 건네받을 땐 찬란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빛이 사라진 거죠. 왕실에선 오랫동안 의견이 갈렸었어요. 시간이 흐르며 빛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의견과 적임자가 나타나면 다시 빛이 나타날 거란 의견이요.”

역대 왕들의 의견은 모두 후자였다고 한다.

잔다르크와 함께 했던 페리아 여왕의 기억을 직접 이어받았기에.

모두가 잔다르크가 했던 말과 그녀가 건넨 빛을 믿은 것이었다.

“저 역시 후자예요. 전 잔다르크 님을 믿고.”

말을 잠시 멈춘 샤를이 고개를 들어 날 응시했다.

“백운 님이 빛의 적임자라고 믿거든요.”

무언가를 더 물어보기 전.

길을 연 신부가 나와 샤를을 안내했다.

저벅.

따라 걸으며 샤를이 조금 전 하던 말을 이었다.

“백운 님이 영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잔다르크 님과도 연관이 없고요.”

“그, 그렇죠. 저희 할아버지가 프랑스인인 것도 아니니까요.”

“백운 님이 지금 가지고 계신 무기들을 어떻게 얻었고 이전 무기의 주인들과는 어떤 관계인지 알지 못하지만. 전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거든요. 전 무기왕이란 존재에 걸어 보기로 했어요. “

“도착했습니다.”

지하로 길을 안내한 신부가 옆으로 비켜섰다.

어딘가로 향하는 듯한 거대하고 두꺼운 문 앞.

문으론 이전에 봤던 것보다 몇 배는 두껍고 복잡한 빛의 사슬이 걸려있었다.

스륵.

문 앞으로 걸어간 샤를이 손을 뻗으며 날 돌아봤다.

방금 하던 말을 마무리 지으려는 것 같았다.

“무기왕은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무기왕은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그리고 잔다르크 님이 건넨 빛이 어둠을 밝힐 수 있는 무기라면.”

샤를의 입가로 미소가 그려지고.

“분명 무기왕은…. 그 빛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뻗어진 손에서 빛이 흘러나오나 싶더니.

철컹!

묵직하고 낡은 소음과 함께.

복잡하게 얽혀 있던 사슬이 차례대로 풀리기 시작했다.

* * *

“…!?”

방어선에서 멀지 않은 장소.

여유로운 얼굴로 전투를 바라보던 발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지?’

조금 전 수천 가까이 되는 구울이 순식간에 사라졌었다.

죽은 건 아니지만 무언가에 강제로 이동 당하며 발리아의 범위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스륵.

눈을 감은 발리아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구울과 시야를 공유했다.

# 크르르.

구울은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오래된 성당이었다.

그리고 성당으로 향하는 길은 완전히 무너져 내려 있었다.

헬기 같은 게 없다면 넘어갈 수 없게끔 말이다.

‘지형이 원래 이랬었나.’

발리아의 신경은 오로지 런던을 향하고 있었기에.

딱히 변두리 지역 하나하나를 다 둘러보진 않았었다.

‘… 조금 전에 무너진 거다.’

발리아가 구울을 이용해 끊어진 길 아래를 바라봤다.

산산조각이 난 바위 위로 발리아의 구울들이 엉망진창으로 엉겨 있었다.

범위에서 벗어난 개체들은 분명 물에 휩쓸려 나간 것이었다.

‘대체 무엇이.’

파도가 일긴 했지만 커다란 태풍이 오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지금으로썬 딱히 길이 갑자기 무너진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발리아가 눈을 떴다.

가만히 모른 척하기엔 희미한 빛을 머금은 성당이 마음에 걸렸다.

“조멜. 타루아.”

“예!”

발리아의 물음에 두 명의 남자가 몸을 숙였다.

“방향을 공유해 줄 테니 곧장 절벽 성당으로 가라.”

지시를 내린 발리아가 성당이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무언가…. 있는 거 같구나.”

* * *

지하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니.

앞으로 걸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높은 층고를 가진 공간.

공간의 모든 벽엔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잔다르크… 인가.

아주 작은 아기였던 모습부터 검과 창을 들고 빛을 뿜어내는 모습, 그리고 말을 타고 전장을 휘젓는 장면까지.

확실하진 않아도 잔다르크의 일대기를 조각으로 그려 놓은 것 같았다.

“안쪽 끝이에요.”

샤를과 함께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왠지 모르겠지만 경건해지는 기분이네요. 따듯하기도 하고요.”

천천히 걷는데도 발소리가 울려 퍼질 정도의 공간.

그곳엔 딱히 횃불이나 불이 없었음에도 고성과 마찬가지로 따듯한 온기가 흐르고 있었다.

“웅장해지는 느낌이기도 하고요.”

샤를도 기억은 하지만 실제로 들어온 건 처음이라 그런지 약간 긴장한 얼굴이었다.

“도착했어요.”

긴장한 목소리로 말하는 샤를에 고개를 들었다.

말을 탄 채 한 손에 깃발이 달린 창을 들고 있는 잔다르크의 조각상.

조각상은 공간의 끝을 대부분 차지할 정도로 거대했고 들고 있는 창은 조각이 아닌 실제 무기였다.

“잔다르크 님은 죽는 순간 페리아 여왕님께 저 창을 빛이라 칭하며 건네셨어요.”

나 역시 기억에서 본 장면이었다.

그땐 눈 부신 빛만 보일 뿐 그게 뭐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마리아와 천사들이 그려진 백색 깃발이라.

나 역시 들어본 적은 있었다.

잔다르크가 생전 사용하던 무기로 과거 혁명 당시 모두 불태워졌다고 알려졌었다.

남아있었구나.

“백운 님.”

샤를이 떨리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항상 활기차고 당당한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샤를 님.”

그런 샤를에게 미소를 그려 보이며.

조각상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제가 사용할 수 있어요.”

조각상의 창에선 뿜어지고 있었다.

나의 무기임을 알리는 눈부신 황금색 빛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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