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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18화 (318/473)

318화. 사그라드는 빛

여기도 상상이랑 다르구만.

뒤바뀐 배경에 어깨를 으쓱였다.

공명이 시작되며 도착한 곳은 어느 정원 내부였다.

새가 지저귀고 향긋한 풀향이 가득한 정원.

창에 손을 대며 상상하던 장소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역시 역사랑 달랐던 건가.

샤를의 기억과 지난번 공명으로 본 것을 통해 어느 정도 다른 결말이 있을 거라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었다.

잔다르크가 역사에 나온 것처럼 화형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방금 도착한 아름답고 평화로운 정원을 보며 그 가능성에 조금 더 무게를 싣게 되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눈이 부신가 했더니.”

?!

목소리를 따라 눈을 돌렸다.

싱그러운 풀잎이 가득한 나무 아래.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금발을 늘어뜨린 잔다르크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잔다르크 님.”

잔다르크를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회중시계와의 공명에서도 난 잔다르크의 얼굴을 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눈앞의 잔다르크는 처음 보는 얼굴이 아니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샤를의 저택에서 페리아 여왕이 팔짱을 끼고 있었던 친우.

그 친우의 정체가 잔다르크였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적국의 장군급이었던 잔다르크와 여왕인 페리아가 설마 같은 초상화에 담겼을까 했었는데.

설마 플래그가 그대로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언젠가 빛을 다룰 수 있는 적임자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은 했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난 잔다르크가 내게 다가왔다.

“엄청난 사람이 와버렸네.”

“하하…. 다행이네요. 잔다르크 님이 내치시지 않아서요.”

잔다르크의 입가로 차분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렇게 잠시 날 응시하더니 입을 여는 잔다르크.

“밖의 상황은 어때? 빛이 절실한 상황이겠지.”

잔다르크에게 현재 런던의 상황을 이야기해주었다.

버킹엄 궁전에서 일어난 습격과 런던으로 향하는 중인 발리아와 구울 군단에 관한 이야기였다.

“발리아.”

잔다르크가 발리아란 이름을 되뇌며 미간을 찌푸렸다.

표정을 보니 아주 옛날부터 썅놈의 자식이었던 모양이다.

“그놈을 아시나요? 아주 구울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서 시체도 폭발시키고 난리던데요.”

“잘 알고 있지. 태초의 구울 발리아. 백 년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나를 바닥까지 떨어뜨렸던 자니까.”

“백 년 전쟁을 일으켰다고요?”

고개를 끄덕인 잔다르크가 말을 이었다.

“발리아의 정복 전쟁이라고 부르는 게 맞겠지. 조금 더 정확히는 발리아에게 놀아난 꼭두각시들의 전쟁이겠고.”

무언가를 더 물어볼 새도 없이.

팔을 휘저은 잔다르크에 의해 시야에 닿는 공간이 바뀌기 시작했다.

* * *

강가에 앉은 잔다르크가 손을 움직였다.

처음엔 작게 반짝이던 빛이 점점 크기를 키워갔다.

싱긋.

눈부신 빛을 이리저리 돌려보던 잔다르크가 미소를 머금었다.

‘나의 빛이라.’

빛에서 태어난 아이.

마리아의 선택을 받은 아이.

세상을 구원해야 하는 아이.

- 모두가 넋을 놓은 채 그 광경을 바라봤었단다.

잔다르크가 태어나는 날 마을엔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었다.

대낮임에도 사방이 어두워지더니 하늘에서 눈부신 황금빛이 내려온 것이었다.

빛은 곧장 어느 집으로 향했고, 곧이어 집에선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었다.

프랑스의 성녀라 불린 잔다르크의 탄생이었다.

“잔. 소집 명령이야.”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잔다르크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친한 친구이자 부관인 메이였다.

“메이.”

미소를 지은 잔다르크가 투구와 무기를 챙겼다.

갑옷의 가슴 언저리엔 프랑스를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 최연소 지휘관.

빛을 받으며 태어난 아이, 잔다르크.

왕궁 역시 이 소문을 알았기에 잔다르크가 어렸을 때부터 관심과 기대를 가져왔었다.

그리고 잔다르크는 그 관심과 기대에 부합하는 걸 넘어 한참 뛰어난 활약을 펼치기 시작했다.

성스러운 빛을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전술학과 무술에서도 큰 두각을 드러낸 것이었다.

“드디어 실전인가.”

“긴장되네.”

잔다르크와 메이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화로운 나날은 오늘로써 끝이었다.

프랑스의 왕인 루크가 영국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었다.

“흑마법을 이용한 구울이라니. 정말 끔찍해.”

메이의 말을 들으며 잔다르크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죽지 않는 구울이란 존재를 사용해 프랑스를 공격해 오는 영국.

이미 적지 않은 수의 국민이 구울에게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나의 빛이 구울을 죽일 수 있다.’

잔다르크의 주변엔 항상 빛이 가득했었다.

어느 날 그 빛을 받은 병사가 구울을 죽이는데 성공했고, 프랑스의 왕인 루크는 그날로 잔다르크의 전쟁 투입을 명한 것이었다.

“메이. 내 옆을 떠나지 마.”

잔다르크가 빛을 뿜어내며 친한 친구인 메이를 바라봤다.

“내가 지켜줄게.”

* * *

처음 전쟁에 나서고 몇 년의 시간이 흘렀을까.

“….”

온몸이 붉게 물든 잔다르크가 주변을 둘러봤다.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불사의 존재인 구울까지.

수많은 시체가 뒤엉킨 참혹한 전장에선 참기 힘든 악취가 뿜어지고 있었다.

“메이. 괜찮아?”

“으, 응.”

약간의 부상을 입은 메이가 몸을 일으켰다.

“….”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잔.”

잔다르크를 부른 메이가 눈을 찌푸렸다.

“우리가 옳은 거겠지? 우리는 옳은 걸 위해 싸우고 있는 게 맞겠지?”

메이의 물음에 잔다르크가 입술을 깨물었다.

잔다르크 역시 수없이 물어온 질문이었다.

적군에게 창을 찔러 넣을 때도, 적이 피를 뿜으며 원망스러운 눈으로 잔다르크를 바라볼 때도.

잔다르크는 스스로에게 물으며 동시에 대답했었다.

- 우리가, 내가 옳아.

영국은 구울이란 존재를 이용해 전장을 일으킨 악이었다.

자신은 하늘에서 내려진 빛으로 그 악을 물리치는 정의였고 말이다.

‘우리가 빛이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이런 생각으로 다시 스스로를 다잡아 온 잔다르크.

몇 번인가 심호흡한 잔다르크가 메이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메이도 알잖아. 우리는 어둠을 물리치는 빛이란 걸.”

메이를 다독인 잔다르크가 빙글 몸을 돌렸다.

동시에 오른손의 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우리가 빛이다.’

으득.

잔다르크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빛… 이다.’

* * *

“아….”

주저앉은 잔다르크가 낮은 탄성과 함께 정면을 바라봤다.

눈앞엔 루크 왕의 책사인 발리아가 서 있었다.

“자… 잔…!”

발리아는 깊은 상처를 입은 메이를 한 손에 든 채였다.

“발리아아아!!”

크게 소리 질렀지만 그것 말고 잔다르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진행된 전투로 온몸이 만신창이였기 때문이다.

“성녀라고 부르기엔 부끄러울 정도로 미약한 빛이구나.”

주저앉은 잔다르크를 보며 발리아가 미소를 머금었다.

“처음에 널 봤을 땐 정말 두려웠었다. 그 빛에 내가 지워져 버릴 것 같았거든.”

발리아가 그날을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찔한 기억이 아닐 수 없었다.

앞에 서 있을 뿐임에도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이 느껴졌었다.

“그 순간 날 깨달았었다. 너의 빛을 꺼뜨리지 않으면 내가 흩어질 거란 걸.”

발리아는 오랜 시간 프랑스와 영국 간에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했었다.

두 국가의 힘이 다했을 때 손쉽게 잡아먹고 자신의 왕국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던 중 잔다르크란 존재가 나타난 것이었다.

마치 자신을 막으라고 하늘이 보낸 것처럼 말이다.

“전쟁에 구울을 섞어 넣기 시작했다. 영국이 구울을 만든 것처럼 여론을 조성하고 그것들을 이용해 국민을 죽여나갔지.”

“어째서 그런 짓을…!”

“그래야만 빛의 성녀인 네가 참전할 명분이 생길 테니까.”

숨이 끊어진 메이를 던져버린 발리아가 옆에 널브러진 영국 군인을 발로 툭툭 찼다.

“즉 네가 성전이니 뭐니 하면서 죽인 놈들은 전부 죄 없는 불쌍한 놈들이란 거지.”

“…!!”

잔다르크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어가고.

반대로 발리아의 입가엔 미소가 그려졌다.

‘성녀의 빛이… 흐려진다!’

성녀의 손에 수많은 피를 묻혀 빛을 흐리게 만드는 게 발리아의 계획이었고.

계획은 상상 이상으로 성공적이었다.

주변을 뒤덮을 정도로 찬란했던 잔다르크의 빛은 어느새 줄어들어 지금은 꺼질락 말락 한 수준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친구도 네 손으로 죽인 거다. 있지도 않은 성전 덕분이지.”

초점을 잃은 잔다르크의 눈이 메이를 향했다.

잔다르크는 전쟁을 의심하는 메이를 몇 번이나 다독였었다.

이것은 성전이며 우리는 옳은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완전히 무너졌군.’

모습을 감춘 빛에 발리아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제야 위업에 유일한 변수였던 잔다르크를 죽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스윽.

발리아가 옆에 떨어진 잔다르크의 창으로 손을 뻗었다.

기분 나쁜 깃발과 합쳐져 있는 황금색 날의 창.

빛이 사라진 창으로 잔다르크를 끝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발리아의 손이 창에 닿은 순간.

파직!!

“끄아악!”

강한 빛이 뿜어지며 발리아의 몸을 튕겨냈다.

“다 꺼져가는 주제에 발악을…!”

두두두두두두두!

“잔다르크다! 잡아라!”

몸을 일으킨 발리아가 다시 공격하려는 찰나.

이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영국군이 매서운 기세로 몰려왔다.

“… 나쁘지 않은 결말이군.”

잔다르크에게 걸어가려던 발리아가 발걸음을 돌렸다.

잔다르크는 이미 영국 교단에서 마녀라고 낙인찍힌 상태였으니 잡히는 순간 마녀재판과 함께 화형당하게 될 터였다.

“속죄하며 불타 죽도록 하거라. 자신을 성녀라고 착각한.”

발리아의 입꼬리가 늘어지며 소름 돋는 미소가 그려졌다.

“피의 마녀여.”

* * *

끼이익… 탁.

문이 닫히는 소리에 잔다르크가 고개를 들었다.

‘여긴…?’

잔다르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국군에게 잡혀 왔으니 당연히 감옥일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한 곳은 아늑한 분위기마저 느껴지는 어느 고성이었다.

‘무슨.’

손과 발 역시 자유로웠다.

기본적인 구속구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구속구가 없더라도 움직일 힘 자체가 없긴 했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 처사였다.

똑똑.

잠시 후 두어 번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죄수가 있는 방에 노크라니 놀라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들어갈게요.”

쾌활하고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익.

문이 열리며 들어온 화사한 금발의 소녀.

드레스를 잡고 고개를 꾸벅인 소녀가 잔다르크의 건너편으로 와 앉았다.

잔다르크와 비슷한 나이 또래 같았다.

“안녕하세요. 발리아의 꼭두각시가 된 성녀, 잔다르크 님.”

소녀의 인사에 잔다르크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대꾸할 말은 없었다.

“전 발리아의 꼭두각시로 제대로 놀아난 왕국의 공주.”

“…!”

소녀의 소개에 잔다르크가 고개를 들었다.

“페리아 라고 해요.”

이름을 말하며 손을 뻗는 페리아.

“우리 같은 처지의 꼭두각시끼리.”

페리아의 입가로 밝은 미소가 그려졌다.

“악수 한 번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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