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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20화 (320/473)

320화. 해일

생카트나를 꺼내고 몇 초가 흘렀을까.

온몸이 찬란한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백운 님. 날개가…!”

“날개요?”

샤를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오, 오우.

태생이 칠흑이라 연기 자체의 색이 변한 건 아니었다.

다만 생카트나의 빛과 섞인 칼데아의 연기는 검과 금이 섞여 오묘하면서도 다채로운 색감을 띠고 있었다.

개멋있네.

개를 안 붙이고는 표현할 수 없는 간지의 수준.

한껏 취한 뽕에 힘차게 연기를 폭발시켰다.

꼬옥.

이젠 적응한 건지 샤를의 떨림도 어느 정도 멈춰있었다.

“크라라라락!”

한 번 해볼까.

포효하는 구울 무리를 향해 연기를 폭발시켰다.

퍼서석!!

“!?”

순식간에 사라진 한 무리의 구울에 입을 벌렸다.

단순히 구울을 날려 보내기만 하던 아까와는 달랐다.

연기가 닿은 부분이 바로 잘리며 조각나버리는 구울 무리.

그것도 모자라 잘려나간 부위는 먼지가 되어 공중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다시는 놈들이 오뚜기처럼 일어나거나 재결합할 수 없도록 말이다.

어, 엄청난데.

새삼스레 발리아가 잔다르크의 빛을 경계했던, 정확히는 두려워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발리아의 업적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인 구울.

그런 구울을 불사가 아닌 존재로 만들어버리니 발리아에게 있어 잔다르크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음?

생카트나의 힘에 놀라고 있을 때.

시야로 매섭게 도약하는 두 명의 구울이 보였다.

발리아의 간부쯤 되는 건지 아래에 있는 놈들보단 월등히 멀쩡한 생김새였다.

“뭐 하는 놈이냐!!”

“당장 그 창을 내놓아라!”

놈들의 손으로 특유의 초록빛이 일렁였다.

뭔진 몰라도 저마다의 능력을 가진 놈 같았다.

“이거 내놓으라고?”

굳이 대답을 기다리진 않았다.

대신 연기를 터뜨려 순식간에 고도를 높인 후.

“!?”

닭 쫓던 개마냥 위를 바라보는 두 놈을 향해.

“가져가.”

빛과 날개의 연기를 응집시킨 생카트나를 빠르게 던져냈다.

쐐에에에에엑----!

“!?”

공중에서 쏘아지는 창에 속수무책으로 꿰뚫리는 두 구울.

놈들의 몸이 공중으로 흩어짐과 동시에 땅으로 꽂힌 창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응집되어 있던 연기와 빛의 폭발이었다.

“아….”

폭발에 닿은 건 다가오던 녀석들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멀뚱히 있다가 순식간에 지워진 일대의 구울에 샤를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샤를 님. 꽉 잡으세요.”

그런 샤를에게 꽉 잡으라 말하고 아래로 내려가 생카트나를 집았다.

그리고 연기를 최대한 일으켜 양옆으로 넓게 펼쳐 보였다.

최대한 넓은 범위에 연기가 닿도록 말이다.

빛의 위력도 확인했으니 이제부턴.

콰아아아아……!

빠르게 간다.

* * *

발리아가 점점 밀려나는 방어선을 응시했다.

생각보다 우수한 전력인지 잘 버티곤 있었으나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열심히 발버둥 쳐보거라.”

애초에 빛이 없는 저들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아무리 공격을 퍼붓고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러도 소용없었다.

제한된 빛에 죽는 구울은 극소수였으며 심지어 그 숫자는 적이 쓰러질수록 더욱더 늘어나고 있었다.

“꽤 탐나는 힘이군.”

발리아의 눈이 갑주를 두른 에밀리아에게 향했다.

단단한 갑주와 방패로 구울의 진격을 막아내는 에밀리아.

에밀리아가 위치한 부분은 수십 명이 모인 다른 곳보다 훨씬 더 견고한 방어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제 곧 사방이 뚫리면서 그마저도 소용없어질 테지만 말이다.

“큭.”

옮겨진 시야로 에밀리아를 서포트하는 이사벨이 보였다.

에밀리아에게 구울이 붙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파동을 쏴대는 이사벨.

둘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과거의 누군가가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한껏 발버둥치다 결국엔 슬픈 결말을 맞이한 한심한 존재들이었다.

“결국 마지막엔 내가 승리하는구나.”

발리아가 몸에 새겨진 깊은 흉터를 응시했다.

빛을 되찾은 잔다르크에게 입은 상처.

그 덕에 위업이 엄청나게 지연되어버리고 말았다.

“네 발버둥의 결말은 결국….!?”

순간 머리로 느껴지는 찌릿함에 발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해안가 성당으로 보냈던 부하 두 명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떻게…?’

발리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부하들이 범위를 벗어난 건 아니었다.

제한 거리는 충분했음에도 완전히 기운이 사라져버렸다.

마치 시야를 공유할 새도 없이 녹아버린 것처럼 말이다.

반짝.

‘…?’

찰나의 순간 반짝인 빛에 발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주 잠시지만 분명히 보였었다.

발리아가 가장 싫어했던, 이제는 잔다르크의 죽음으로 완전히 소실되었을 빛이었다.

드드드드…!

발리아의 눈동자가 커지기 시작했다.

아주 먼 해안가 쪽, 수많은 구울로 초록빛만이 가득했던 장소.

그곳에서 조금 전에 봤던 빛이 번지고 있었다.

‘뭐, 뭐냐…!?’

빛을 발견하고 몇 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발리아는 깨닫고 말았다.

빛은 단순히 번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찬란한 황금빛은 말도 안 되는 기세와 속도로 발리아의 빛을 집어삼키며 밀려오고 있었다.

마치 걷잡을 수 없는 해일처럼 말이다.

“바, 발리아 님!”

다급한 목소리로 부르는 부하들에 발리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부하들보다 먼저 발견하긴 했지만 당장은 무슨 지시를 내려야 하는지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빛의 해일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정성 들여 준비한 구울 군단을 한 줌의 재로 흩어버리고 있었다.

발리아의 정신이 구울의 죽음을 따라갈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빠르게 말이다.

“저건 잔다르크의…!”

“… 아니다.”

발리아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발리아 또한 방금까진 잔다르크의 빛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무언가 달랐다.

자신의 친구를 지키니 뭐니 하면서 빛을 되살려냈던 잔다르크.

당시 느꼈던 빛이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따스함이 깃든 빛이었다면.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밀려오는 건 지나는 길에 있는 모든 걸 쓸어버리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매서운 칼날 같은 빛이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함이 아닌, 철저히 분쇄해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기 위한 빛.

‘….’

밀려드는 빛에 발리아의 손으로 작은 떨림이 찾아왔다.

잔다르크를 처음 봤을 때도 느끼지 못한 감정이 발리아를 집어삼키는 중이었다.

“발리아 님!!!”

부하의 절박한 외침이 들려왔지만 발리아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시야가 닿는 곳보다 훨씬 넓은 범위를 뒤덮으며 밀려오는 빛의 해일.

딱히 순간이동 같은 걸 가지지 않은 그들에게 해일을 피할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발리아의 낭패 섞인 혼잣말과 함께.

순식간에 다가온 빛이 발리아와 부하들을 집어삼켰다.

* * *

이사벨과 에밀리아가 멍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봤다.

방어선에서 필사적으로 구울을 막던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하던 동작을 채 마무리 짓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있었다.

“다 어디…. 갔죠?”

이사벨이 멍한 얼굴로 물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 크라라라락!

전투가 시작되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걸까.

단 1초도 쉬지 않고 구울의 괴성이 들려왔었다.

그와 함께 구울 군단 역시 끊임없이 달려들었고 말이다.

- 크윽…!

고작 일 분 전까지만 해도 절망적이었던 상황.

에밀리아는 깨문 입술에 피가 맺힐 정도로 온 힘을 다해 구울을 막아냈지만, 대세는 발리아에게 기울어 가고 있었다.

방어선에서도 당하는 이들이 나타났고,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전까지 함께 싸웠던 동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었다.

- 스르륵.

설상가상으로 로테가 가지고 있던 빛 역시 바닥을 보였었다.

더 이상 빛이 보급되지 않자 에밀리아의 갑주와 방패에 서린 빛 역시 흐려졌고.

이에 한방에 나가떨어지던 구울도 이젠 몇 방을 쳐내야만 간신히 쓰러지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주륵.

이사벨이 멍한 얼굴로 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냈다.

점점 이사벨이 파동을 뿜어내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쌓여 갔던 구울 무리.

놈들을 보며 밀려드는 절망감에 이사벨은 이제 틀렸다고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었었다.

- 번쩍!

그리고 그 순간.

말도 안 되는 빛이 시야에 들어오더니 순식간에 구울과 방어선 전체를 뒤덮어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방금까지만 해도 미친 듯이 달려들던 구울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고 말이다.

“황금 새…?”

이사벨이 빛의 정체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빛이 지나간 찰나의 순간 이사벨은 정말 커다란 날개를 봤었다.

검은색과 금색이 오묘하게 섞인 화려한 날개였다.

“다시 온다.”

에밀리아의 말에 이사벨이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방어선을 훑고 지나갔던 빛은 주위를 한 바퀴 돌아 다시 근처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어째선지 방어선 뒤쪽에 잠시 착지했었고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여, 역시.”

방어선 가까운 곳으로 빛이 가까워지기 시작하고 날개의 주인이 이사벨과 에밀리아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슥슥.

입술의 피를 닦은 이사벨의 입가로 전투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영웅은 마지막에 등장하네요.”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 * *

아래로 착지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진짜로…?

보면서도 쉽사리 믿기지가 않았다.

의도하긴 했지만 이렇게 말끔히 사라져 버리다니.

연기의 소모가 엄청나긴 했지만 기대를 한참 뛰어넘는 결과였다.

하나도 안 보이네.

비행할 때까지만 해도 아래는 구울의 초록빛으로 가득했었다.

빛을 머금은 연기로 융단폭격을 날리자 싹 사라졌지만 말이다.

지금 당장은 시야가 닿는 그 어디에도 초록빛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발리안가 볼리안가 이 새끼는 어디 갔지.

태초의 구울이라 불리는 놈이었다.

쉽게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샤를을 뒤쪽에 내려 준 후 다시 돌아온 건데.

주변에선 딱히 이렇다 할 기척이나 기운이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설마 얘도 한방에 녹은 건가.

그랬으면 베스트겠지만 도망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몹시 찝찝했다.

어찌 됐든 태초의 구울인 놈을 잡아야만 끝나는 싸움이었다.

놈이 도망갔다면 다시 원점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뷁도 없는 놈이 도망…!?

놈을 찾아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을 때 발아래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아주 깊은 곳에서 시작된 진동은 여러 갈래로 퍼지며 점점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래구나.

진동이 거의 지면에 도달했을 때쯤.

연기를 터뜨리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장소로 솟아오르는 열댓 개의 손모가지.

곧이어 손목의 주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맨 처음에 녹였던 간부 정도로 보이는 구울들이었다.

“두더지 새끼들인가.”

생카트나를 치켜들어 아래를 겨눈 뒤.

“잘 가시고.”

창을 빠르게 던져냈다.

콰아악!

땅으로 꽂히며 다시 한번 빛을 방출하는 생카트나.

“시체 폭발.”

“!?”

꽂힌 창에서 빛이 뿌려짐과 동시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오고.

아래에서 시야를 가리는 눈부신 초록빛이 뿜어졌다.

스으으…!

“…?!”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롭게 나타난 기운에 고개를 들었다.

꽤 거리가 있는 공중.

그곳엔 잔다르크의 기억에서 봤던 발리아가 서 있었다.

“난 태초의 구울 발리아.”

곧이어 주문을 외우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태초의 힘을 받은 자로서 내게 주어진 단 한 번의 기적을 행하노니.”

발리아의 몸에서 초록빛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거대한 동공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동공이.

“나의 구울이 되어라.”

나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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