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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30화 (329/473)

330화. 런던 안녕

온몸을 찍어 누르는 듯한 중압감이 느껴졌다.

제대로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바들바들 몸을 떨어대는 나머지 이사들.

유일하게 연창환만이 간신히 중압감을 이겨내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

시야에 들어온 거대한 존재에 연창환이 마른침을 삼켰다.

못해도 10미터가 넘을 듯한 거구와 파란색 바탕의 몸.

그리고 머리 위로 달린 두 개의 뿔까지.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임에도 숨이 턱 막히는 생김새였다.

“굳이 여럿일 필요는 없겠지.”

“그게 무….”

퍼석!

연창환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

옆에 있던 다른 이사들의 몸이 뭉개지며 피가 뿜어졌다.

“그 전에 왔던 놈도 홀로 남았으니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얼굴을 보니 그런 사이도 아닌 거 같고.”

의자에 앉아있던 헤키리스가 연창환에게 몸을 기울이고.

연창환이 사라진 헤키리스의 한쪽 팔을 응시했다.

‘제대로 찾아왔다.’

목숨을 건 도박이었으나 목표했던 장소엔 제대로 도착한 모양이었다.

홋카이도에서 무기왕에게 팔이 날아간 헤키리스.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인간과 협력까지 한 이력이 있는 데몬이었다.

‘정보가 틀리지 않았군.’

연창환이 천천히 숨을 골랐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였다.

데려온 이사들이 죽긴 했으나 어쨌든 대화의 기회를 얻은 셈이었다.

“여길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냐?”

“일본에서 건네받은 데이터로 이 근방을 샅샅이 수색했습니다. 관련 능력자의 도움도 받았고요.”

질문에 대답을 망설이진 않았다.

한눈에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헤키리스는 여느 데몬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 정도로 여기며 조금만 수틀리면 자신 또한 방금 터진 이사들과 같은 신세가 될 거란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복수하고 싶습니다.”

복수란 단어에 헤키리스가 미간을 찡그리며 입술을 씰룩거렸다.

“크… 크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린 헤키리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굴엔 약간의 분노가 차올라 있었다.

“시간 낭비했군. 아까 같이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헤키리스가 연창환을 향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난 인간의 알량한 복수 따위를 해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그런 헤키리스에 연창환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알고 계시는 놈입니다.”

“뭐…?”

아는 놈이란 말에 헤키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으드드드득!

헤키리스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입술을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피가 흘러내렸다.

“홋카이도의 그놈이냐…!!!”

공간이 무섭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낄낄대던 데몬들도 모두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탄생 이후 헤키리스의 무결성을 처음으로 깨뜨린 건 물론 팔까지 날려버린 남자.

헤키리스는 단 하루도 그날을 잊어버린 적이 없었다.

- 크아아아아!

어떻게든 잊으려 해도 잘려나간 팔엔 그날의 통증이 고스란히 남아있었기에.

아마 평생을 살아도 잊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

그놈을 죽이지 않는 한은 말이다.

- 그놈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몸을 회복한 후 헤키리스는 필사적으로 남자의 흔적을 찾았었다.

하지만 일본에선 남자의 흔적을 찾지 못했었다.

애초에 힘든 일이었다.

협력하던 료헤이는 이미 죽었고 이제 와서 새로운 인간과 관계를 맺는 것도 힘든 일.

최대한 많은 데몬을 풀어 막무가내로 뒤진다고 해서 남자가 튀어나올 일은 없었다.

“그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애써 진정한 헤키리스가 묻자 연창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놈의 이름은 저 또한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무기왕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아는 건가?”

“당장은 힘들겠지만 놈을 끌어드릴 방법이 있습니다.”

침착하게 말을 이으며 연창환이 죽은 연수정을 떠올렸다.

공식적으론 사고사 처리됐으나 연창환은 추후 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당시 무기왕이 그리스에 있었단 사실을 말이다.

- 무기왕이다.

그리고 그리스를 떠나던 연수정을 죽인 것 또한 무기왕의 소행임을 확신했었다.

쿵!

자리에서 일어난 헤키리스가 연창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덩치로 아득히 높은 곳에서 연창환을 내려다보는 헤키리스.

헤키리스는 무기왕이란 존재를 인식한 순간부터 이미 눈이 뒤집혀 있었다.

“방법을 말해라.”

“한국입니다.”

“한국…!”

헤키리스가 한국이란 이름을 곱씹었다.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일본을 완벽하게 침몰시킨 뒤 다음 타겟으로 잡고 있었던 나라였다.

홋카이도에서 팔이 잘리며 모든 게 무산되었지만 말이다.

- 어쩌면 한국일지도 모릅니다.

책사 포이카는 말했었다.

일본에 없다면 헤키리스의 팔을 자른 남자는 한국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사로카의 갑주가 깨어졌으며 일본과 근접해 있는 나리였기에 건넨 말이었다.

- 한국으로 간다.

연창환이 찾아오지 않았더라도 헤키리스는 그곳부터 한바탕 뒤집으며 남자를 찾을 생각이었었다.

지금의 헤키리스에게 팔에 대한 복수 외의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을 박살 내다보면.”

그리고 오늘 찾아온 연창환이 헤키리스와 같은 생각을 읊고 있었다.

“놈은 반드시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헤키리스의 눈엔 흥미로움이.

연창환의 눈으론 걷잡을 수 없는 광기가 어렸다.

* * *

시끌벅적한 파티가 끝난 후.

고요해진 방을 둘러봤다.

침대를 빼앗겼군.

내 꿀침대엔 웬일인지 과음을 한 샤를이 뻗어있었고.

옆과 문 앞의 쇼파엔 에밀리아와 이사벨이 잠꼬대를 하며 널브러져 있었다.

-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요?

평소와 달리 쉬지 않고 술을 들이켜길래 말렸으나.

샤를은 위와 같이 말하며 또 한 번 잔을 가득 채웠었다.

하긴. 내일부터 엄청 바쁠 테니까.

샤를은 내일부터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한다고 말했었다.

결제해야 할 서류가 벌써부터 산더미라 아마 일주일간은 방안에 처박혀 있어야 할 거란 것이었다.

그 밖에도 영국 정부와의 회담이 준비되어 있었고 말이다.

여왕이라.

새근새근 잠든 샤를을 바라봤다.

이렇게 보면 가까운 또래 친구 같은데 영국의 여왕이라니.

알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 부러워요.

술에 취한 샤를이 턱을 괸 채 날 보며 한 말이었다.

- 언제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자유로움. 그리고 누굴 만나든 지지 않을 수 있는 강함까지. 정말 이상적이네요.

자세히는 몰라도 조금은 이해될 것 같았다.

공주란 직책을 짊어지고 태어난 샤를.

아마도 그에 맞는 행동과 말을 해왔을 테고 주변의 수많은 기대를 충족시켜야 했을 것이다.

떠나고 싶다고 휙 떠날 수도 없고 말이다.

- 그런 눈으로 보실 필요는 없어요. 이상적인 삶이 부럽긴 하지만, 전 제 삶을 사랑하니까요.

이렇게 말하며 샤를은 잔을 내밀었었다.

- 백운 님을 보며 대리만족할 테니까.

잔을 부딪치며 샤를은 해맑은 미소를 그렸었다.

- 나의 이상님. 화이팅.

좀처럼 쓰지 않는 화이팅이란 단어까지 쓰면서 말이다.

“… 여왕님도 화이팅.”

낮게 읊조리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뭐가 화이팅이야.”

갸아아아아아아악!

하도 놀라서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상체를 일으키고 있는 이사벨.

“커피 어떻게 알았냐고오오….”

풀썩.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며 다시 잠이 든 이사벨을 바라봤다.

“때, 때릴 뻔했네.”

하도 놀라서 자기 보호를 위해 반사적으로 손을 뻗을 뻔했다.

저벅.

안도의 한숨을 쉬며 까치발로 걸어 책상에 몸을 앉힌 뒤 노트북을 켰다.

내일 아침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살펴볼 예정이었다.

역시 가까운 곳부터 가야겠지.

세계지도에서 내 눈은 아일랜드에 머물러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동떨어져 있는 섬.

이유는 가까운 것 말고도 한 가지 더 있었다.

- 이것이 고대 바이킹족이 사용했다는 도끼입니다.

유물관에서 한창 일할 때 본 뉴스 한편.

바다 아래에서 아주 큼지막한 도끼를 발견했다는 뉴스였었다.

꽤 오랫동안 바다에 있었을 텐데도 녹 하나 슬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었던 도끼.

분명 보통 도끼가 아닐 거야.

그게 아니라면 오랜 시간 동안 녹슬지 않은 게 말이 안 되었다.

날로 흐르는 서늘한 빛도 예사롭지 않았었고 말이다.

“흐음.”

톡톡톡 책상을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땐 바다 밑에서 발견했지만 지금이라면 아직 육지에 있을 터였다.

“아직 안 가라앉았으니까.”

도끼가 바다에서 꺼내어진 이유.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으나 얼추 1년 뒤 아일랜드는 바다로 가라앉게 된다.

- 아, 아일랜드가…!

아직도 그날의 뉴스가 기억에 생생했다.

멀쩡하던 아일랜드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사건이었다.

근처에 있던 영국에선 위험한 데몬이 나타났다 생각해 비상이 걸렸었고 말이다.

멀쩡했는지 아닌지는 간 김에 한 번 봐야겠다.

만약 무언가라도 발견하게 된다면 아일랜드에 알려 줄 생각이었다.

다짜고짜 이제 곧 섬이 가라앉으니 빨리 버려요!! 라고 외쳐봐야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 테니까.

어쨌든.

끼이익.

의자로 몸을 깊숙이 파묻으며 다리를 쭉 뻗었다.

“가보자. 바이킹의 나라로.”

* * *

스윽!

차에 올라타며 푹신한 의자에 몸을 맡겼다.

아침이 밝자마자 날 공항까지 데려다주기 위해 도착한 차였다.

“죄송합니다. 백운 님.”

옆자리엔 샤를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자기 때문에 바닥에 널브러져 자고 있는 날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잘 주무신 거 같으니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너무 신경 써 주신 거 아닌가요? 왕실 전세기라니.”

짧은 아침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일랜드로 갈 거라고 하니 샤를은 곧장 왕실 전세기를 준비 해줬었다.

“아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네요.”

샤를이 이제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건 제가 신경 썼다기보다 기사왕의 자리에 오른 백운 님의 권한이에요. 원하실 때 언제 어디서든 왕실 전세기를 부르실 수 있어요.”

“홀리…!”

턱 막히는 말문을 대신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항상 전세기를 부를 수 있다니.

기, 기사왕 최고!

조용히 나이스를 외치는 사이.

“출발하겠습니다.”

자진해서 운전을 맡은 레차도가 차를 끌고 문으로 향했다.

차가 다가오자 열리기 시작한 저택의 문.

“…!”

서서히 문이 열림과 동시에.

와아아아아아아---!

엄청난 환호성이 들려왔다.

저택의 문부터 차가 지나갈 자리를 남기고 쭉 도열해 있는 말도 안 되게 많은 인파.

입을 쩍 벌리고 있자 옆에서 샤를이 입을 열었다.

“저희가 준비한 건 아니에요.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오늘 무기왕이 떠난다는 걸 들은 사람들이 스스로 나온 거죠. 이것 때문에 더더욱 더 모셔다드리겠다 한 거고요.”

인파 사이로 천천히 차가 미끄러지고.

“저희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런던의 영웅 무기왕!”

사방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중간마다 낯익은 제복도 섞여 있는 걸 보니 런던청 헌터들도 있는 것 같았다.

“행렬은 공항 직전까지 이어져 있어요. 런던뿐만이 아니라 영국 각지에서 오신 모양이거든요.”

“하하….”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배웅이었다.

“전에 말씀드렸었죠. 백운 님의 존재만으로도 상처 입은 사람들에겐 큰 힘과 위로가 될 거라고요. 저한테도 마찬가지였어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곧이어 두 손으로 내 손을 맞잡으며 이마를 가져다 대는 샤를.

“백운 님이 걸어가는 길에 항상.”

샤를의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행운과 행복이 가득하길.”

나 역시 그런 샤를과 주변의 인파를 바라보며.

소리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안녕,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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