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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31화 (330/473)

331화. 아일랜드

왕실 전세기가 미끄러지듯 활주로에 착륙했다.

착륙 스킬 뭐야 이거.

이제 흔들리겠지 하고 마음의 준비 중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깃털 같은 착륙에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역시 왕실 클라스인가.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내다봤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의 공항이 눈에 들어왔다.

출세했네. 출세했어.

유물관 골방에서 왕실 전세기에 더블린이라니.

이젠 잊고 안 떠올릴 때도 된 거 같은데 이런 순간이 오면 종종 생각나곤 하는 시절이었다.

우우우우웅.

전세기가 천천히 멈춰 서고 비행기를 운전한 기장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레차도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영국 신사 할아버지.

내게 고개를 가볍게 숙인 할아버지가 여유로운 움직임으로 비행기 문을 열어젖혔다.

“더블린에 도착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비행이 되셨는지 모르겠군요.”

허허허 웃는 할아버지에 호다닥 손을 내저었다.

“비행기 문턱 밟은 순간부터 만족스러웠습니다!”

과장된 표현은 아니었다.

비행기에 오르기 무섭게 서빙되기 시작한 각종 코스 요리와 고급술.

입에서 살살 녹는 음식과 술을 정신없이 먹은 뒤 쉬고, 자고 하다 보니 어느새 더블린에 도착해 있었다.

마지막 착륙까지도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였고 말이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짐은…? 아 안 가져오셨었죠.”

내 정신 좀 보라며 할아버지가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여기서 사 입으려고요.”

너무 근본 없이 다니나 하는 생각에 나도 덩달아 머리를 긁적였다.

다음부턴 빈 캐리어라도 끌고 다녀야 하나 싶었다.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백운 님이 가시는 여정에 항상 행운만이 가득하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 할아버지보다 40도 더 깊은 예각 인사를 건넨 후 비행기에서 내렸다.

저벅.

그렇게 한참을 뚜벅뚜벅 걸어가다 비행기에서 어느 정도 멀어졌다 싶은 시점에.

“끄어어어!”

우렁차게 기지개를 켜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으음! 더블린!”

사실 내리자마자부터 하고 싶었는데 왠지 모르게 기장님의 시선이 느껴져 인내하고 있었다.

“여기가 바이킹의 나라구만.”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봤다.

왜 이렇게 좋아.

예상과는 다른 광경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바이킹의 나라임과 동시에 외딴 바다 위에 동떨어져 있는 아일랜드.

다른 곳과는 달리 유니크한 바다 소울이 느껴질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방금 출발했던 런던 공항보다 시설과 건물이 더 최신식이었다.

나무로 지어져 있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뒤틀린 편견인 걸 알면서도 고개를 흔들며 공항으로 향했다.

어쨌든 비행기 타고 들어왔으니 출입국 심사는 받아야 했다.

이게 좀 귀찮단 말이지.

날개로 밀입국하면 이런 절차가 없어 참으로 편했는데 아쉬울 따름이었다.

여기로 가면 되나.

나도 모르게 버벅이며 건물을 휙휙 둘러봤다.

다 같이 타고 오는 비행기는 앞사람 쫓아가면 그만인데 전세기는 그럴 수가 없으니.

나도 모르는 사이 침입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안녕하세요.”

잠시 길을 잃은 티를 내서일까.

정장 유니폼을 입은 사람 몇 명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중 맨 앞에서 인사를 건네는 보라색 머리의 여자.

여자의 가슴팍엔 클로다 라는 이름이 적힌 명찰이 달려 있었다.

“더블린 헌터청에서 나온 클로다 라고 합니다.“

“!?“

비행기에서 내린 후 지금까지의 행적을 되짚어 보았다.

뭔가 딱히 잘못한 건 없는 거 같은데 벌써 국가직 헌터가 찾아오다니.

“저 뭐 잘못했나요…?“

쭈굴거리는 목소리로 묻자 클로다가 손을 내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에요. 영국 왕실 전세기가 착륙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라서요. 정확히는 제가 헌터가 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네요. 일단 이쪽으로.“

날 공항 쪽으로 안내하며 클로다가 말을 이었다.

“보통 이 정도 VIP 전세기가 착륙 스케줄을 요청하면 정부까지 공유되거든요. 정부에선 영국에서 오시는 귀빈을 공항에서 시내까지 잘 에스코트하라고 절 보낸 거고요.”

“오…. 그렇군요.”

부담스러워!

챙겨주려 한다니 고마운 일이긴 했으나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처음에 이름 봤을 때도 긴가민가했었는데 역시 영국인이 아니셨군요.”

“네. 한국인이에요.”

한국인이라 말하자 클로다의 얼굴로 짙은 호기심의 빛이 드리워졌다.

어째서 한국인이 영국 왕실 전세기를…? 이란 질문이 노골적으로 쓰여있는 얼굴이었다.

“어쩌다 보니 은혜를 입어서 타게 된 거니 오해는 하지 마세요. 전 왕족이나 그런 건 절대 아니거든요. 하하…!”

“아 죄송합니다. 너무 신기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자신의 얼굴에 마음이 드러난 걸 알아차린 클로다가 고개를 꾸벅였다.

“아니에요. 타고 온 저도 여전히 신기한데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사람이 정말 많네요.”

어느새 도착한 입국 심사대에 혀를 내둘렀다.

원래 관광 대국인 건지 심사 대기 줄이 라면에 든 나루토 어묵처럼 빙글빙글 잔뜩 쌓여 있었다.

“원래는 이렇지 않았는데 요근래 이상 기후로 지형이 많이 변했거든요.”

“이상 기후요?”

“네. 섬 주변의 바다나 숲속의 호수 등에 정체불명의 검은색 얼음이 생겨났어요. 워낙 신기한 현상이기도 하고 햇빛이나 달달빛을 받으면 정말 아름답게 빛나다 보니 그걸 보려고 아일랜드를 찾기 시작한 거죠.”

“오호. 검은색 얼음이라.”

턱을 슥슥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대답한 것처럼 마냥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이상 기후에 검은 얼음.

막상 확인해 보면 아무 관련이 없을 수도 있으나.

아일랜드가 사라지는 시기와 맞물리며 나타난 현상이니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아일랜드를 구하러 온 건 아니지만.

목적은 어디까지나 도끼 찾기임을 되뇌며.

직원에게 명찰을 보여 주는 클로다를 응시했다.

쿡쿡.

“형아.”

“…?”

그때 다리로 느껴지는 촉감에 고개를 내렸다.

곰돌이 인형을 든 꼬맹이가 헤에 하는 얼굴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꼬맹이인 거 같았다.

“형아 왜 잡혀가?”

유니폼을 입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가서인지 잡혀가는 걸로 보인 모양이었다.

“형은 잡혀가는 게 아니야.”

“거짓말. 딱 봐도 나쁜 짓 해서 잡혀가는 건데.”

꼬맹이의 머리를 슥슥 문지르며 몸을 수그렸다.

“나쁜 짓 한 건 맞아. 형아는 슈퍼 유명한 악당이거든.”

“허억…!”

헛숨을 들이마시는 꼬맹이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난 지금 잡혀가는 게 아니라 잡혀가는 척을 하는 중이야. 이렇게 더블린의 중심으로 들어가서.”

입가로 한껏 썩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일랜드를 정복할 거거든!”

툭!

너무 엄청난 사실을 알아서인지 곰돌이 인형을 떨어뜨리는 꼬맹이.

“백운 님. 이쪽으로 가시죠. 패스트트랙으로 갈 거예요.”

“넵!”

그런 꼬맹이의 어깨를 두어번 톡톡 두드려 준 후.

클로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 * *

더블린에 위치한 아일랜드의 중앙 헌터청.

상석에 앉은 거구의 남자가 테이블로 다리를 올렸다.

흰색 스포츠 머리에 온몸이 근육으로 뒤덮인 남자.

남자의 유니폼 가슴 부분엔 헌터청 청장 로컨이란 이름이 쓰여 있었다.

“어떻게 됐어?”

로컨의 물음에 앉아 있는 이들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헌터들의 에스코트 하에 공항을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지금은 더블린 시내를 보여 주는 중이고요.”

“그래서 뭐 하는 놈인지는 확인됐고?”

대답했던 이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름 말곤 딱히 알아낸 게 없다고 합니다. 백운이란 남자는 그저 운이 좋아 왕가의 은혜를 입었고 왕실 전세기까지 얻어 탄 거라고 대답했고요.”

“허!”

로컨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제대로 바보 취급을 당한 기분이었다.

“운이 좋아 왕실 전세기를 탔다? 왕족 중에서도 유일하게 여왕이 직접 움직일 때만 떴던 전세기를?”

로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답변이었다.

“점점 냄새가 나는군. 대체 뭐 하는 인간이지. 영국에는 좀 알아봤어?”

“예. 그런데 딱히 나오는 게 없습니다. 이번에 일어났던 구울 사태 때문에 정신이 없기도 하고요.”

“한국인이라 했었나? 특정할만한 인간도 없었어?”

“그렇습니다. 굳이 영국과 밀접한 인물을 찾자면 정체불명의 헌터 무기왕이 있긴 합니다.”

로컨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기왕은 머나먼 아일랜드 땅에서도 유명한 인물이었다.

로컨 역시 무기왕의 압도적인 무용을 동영상으로 직접 봤었고 말이다.

“무기왕은 저번 사신 사건 때 런던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번에도 영국에 있었거나 구울 사태에 관련되었다는 정황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왕실과는 딱히 큰 관련이 없기도 하고요.”

부하의 말에 로컨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넘겨짚지 말자고. 그런 괴물 같은 놈이 맨날 남의 나라에 온종일 죽치고 있을 리도 없을 테니까. 거기다 사신 사건으로 영국을 구했다곤 해도 왕실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진 않았어. 그것만으로 왕실 전세기에 타는 건 불가능하단 거지. 정부 전세기면 몰라도.”

“맞습니다. 그럼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하고….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하면 될까요?”

잠시 눈을 감고 턱을 만지작거리던 로컨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고. 괜히 쫄아서 흘려보내기엔 너무 좋은 기회잖아. 안 그래?”

“맞습니다.”

끼이익.

자세를 고쳐 잡으며 로컨이 깍지 낀 손 위로 턱을 얹었다.

“영국 왕실이 챙기는 VIP. 정부에 반발하는 세력에 의해 목숨을 잃다. 이로써 아일랜드와 영국 간의 불화가 예상된다. 이에 아일랜드 정부는 국가 간의 갈등을 유발한 세력을 엄히 토벌할 예정이다.”

로컨의 입가로 해맑은 미소가 그려졌다.

“아주 그럴싸하지 않아? 하하하하하!”

* * *

클로다를 따라 도착한 더블린의 맥주집.

최첨단 시설이던 공항과는 달리 더블린 시내는 아일랜드 특유의 감성이 뿜뿜 뿜어지고 있었다.

그 감성에 취해 나도 모르게 미친 듯이 맥주를 흡입해버렸고 말이다.

“휴.”

끼익.

가게에서 조금 떨어진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진짜 쌀 뻔했네.”

조금 전엔 뜻밖의 위기가 찾아왔었다.

흡입한 맥주 탓에 화장실이 몹시 급했는데 가는 곳마다 모조리 풀방이었던 것이다.

“이 나이 먹고 타국에서 오줌싸개가 될 뻔했어.”

간신히 달리고 달려 조금 떨어진 이곳을 찾아냈고.

그 덕에 난 간신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낼 수 있었다.

“화장실 감사하고.”

어느덧 해가 진 시간.

화장실을 향해 슬쩍 고개를 숙인 후 클로다와 헌터들이 기다리는 맥주집으로 걸음을 옮….

“오빠.”

“갸아아아아아악!”

발을 내디디려는 순간.

어두운 그림자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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