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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32화 (331/473)

332화. 빛을 잃은 아이

슥슥.

손을 올려 조심스럽게 심장을 마사지했다.

살면서 이렇게 놀랐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놀랐다.

진지하게 심장이 걱정될 정도로 말이다.

뭐, 뭐야.

문 뒤에 쭈그려 앉아 있는 건 작은 아이였다.

어깨까지 오는 짧은 단발과 가녀린 체구를 가진 아이는 어째서인지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왜 넘어져 있어.”

내가 발라당 자빠진 게 웃긴지 아이가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가 지금 사람 한 명을 심장마비로 보낼 뻔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

“너 때문에 넘어졌지. 놀라서.”

“당연히 내가 여기 있는 걸 알 줄 알았어.”

“….”

은근슬쩍 할 말 없게 만드는 아이였다.

조금이라도 신경 썼다면 당연히 기척을 느꼈겠지만.

딱히 날 노리거나 하는 대상이 아니라면 헤벌레하고 다니는 와중엔 미리 알아차리는 게 쉽지 않았다.

“어쨌든, 안녕.”

“으, 응. 안녕.”

여전히 쪼그려 앉아 있는 아이와 발라당 자빠져 있는 나.

좁은 거리에서 손을 흔들며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툭툭.

머쓱하게 일어나며 궁뎅이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화장실 다녀온 후에 만나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었으면 넘어짐과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마저 함께 잃을 뻔했다.

“너 여기서 뭐 해? 집에 가야지.”

주변을 휙휙 둘러봤다.

나도 이 나이 때는 혼자 잘 돌아디니긴 했지만.

어쨌든 어린 애가 뛰어놀기엔 늦은 시간이었다.

“따듯해서 찾아왔어.”

“응…?”

뭐랄까.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아이였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일반 꼬맹이와는 사뭇 달랐다.

어떻게 보면 몹시 어른스럽게 느껴지기도 했고 말이다.

“여기가 따듯해?”

“응.”

개추운데.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온도를 반대로 느끼는 것 같았다.

난 긴팔에 두툼한 잠바까지 입었는데도 이렇게 추운데.

무릎까지 오는 원피스에 얇은 점퍼만을 걸친 아이가 따듯할 리가 없는 날씨였다.

“….”

찾아온 정적에 아이를 잠시 바라보다.

입고 있던 두툼 잠바를 벗어 아이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양팔을 아이의 앞으로 가져와 히어로 망토처럼 매듭지어준 건 물론이었다.

“따듯해.”

따, 따듯하겠지 그럼.

잠바에 얼굴을 파묻는 아이를 쳐다봤다.

장만하지 얼마 안 되어 겁나게 빵빵한 구스다운 잠바였으니 따듯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나는 파밀라야. 오빠는?”

“난 백운. 여기 살아?”

“응.”

파밀라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길 잃어버린 거야? 부모님은 어디 계셔?”

“안 잃어버렸어. 내가 찾아왔으니까. 그리고 엄마가 곧 데리러 올 거야.”

“그렇구나.”

자기가 찾아왔다는 둥 여전히 이해가 잘 안 가는 말이었으나.

어쨌든 파밀라 옆에 자리를 잡고 몸을 앉혔다.

파밀라의 어머니가 데리러 올 때까지 함께 있어 줄 생각이었다.

절대 추워서 구스다운 잠바에 바싹 붙은 게 아니고 말이다.

“여기는 너무 추워.”

“그러니까 좀 따듯하게 입고 오지 그랬어.”

파밀라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야. 이곳은 계속해서 추워지고 있어. 처음 피부로 시린 냉기가 느껴진 후로 계속… 계속.”

“시린 냉기?”

다른 아이었다면 그냥 춥나보다 했을 텐데.

묘한 분위기를 풍겨서인지 나도 모르게 파밀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주 어둡고 차가운 냉기야. 그 무엇으로도 물리칠 수 없는 냉기. 사람들은 모르고 있어. 그 냉기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걸 집어삼키고 말 거란 사실을. 왜냐하면 냉기는 아주 조금씩, 조금씩 퍼지고 있거든.”

- 검은색 얼음이 생겨났어요.

오늘 클로다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갑자기 생겨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중인 검은색 얼음.

색이야 어쨌든 얼음이다 보니 냉기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사이였다.

“아일랜드에 생겨난 검은색 얼음 이야기야?”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나는 잘 몰라.”

파밀라가 작은 손을 올려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나 눈이 안 보이거든.”

쿵!

나도 모르게 실수를 한 건가 싶어 심장이 철렁였다.

“미, 미안해.”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잘 모르니까.”

전혀 몰랐었다.

보통 눈이 안 보이는 어린아이가 이 밤중에 혼자 다니는 건 상상하기 힘든 게 당연했다.

“난 보이지 않다 보니 그냥 느낄 수만 있어. 그건 아주 깊고 어두운, 그 무엇으로도 떨쳐낼 수 없는 냉기야. 그런데.”

파밀라가 고개를 들어 날 응시했다.

“오늘 갑자기 따듯함이 느껴졌어. 음.”

약간 고개를 갸웃거린 파밀라가 입술을 오물거렸다.

원하는 표현에 가까운 단어를 찾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아주 뜨거운 무언가를 감싸고 있는 듯한 따듯함 같은 거야.”

“그 따듯함이란 건….”

아리송한 이야기에 무언가를 더 물으려는 사이.

“파밀라!”

반대편에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분이 내 쪽으로 달려왔다.

다급한 표정으로 보아 파밀라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말도 없이 어디 가지 말라니까! 정말.”

“미안. 엄마.”

파밀라가 엄마라 부른 여자에게 미소를 그려 보였다.

“오빠가 엄마 올 때까지 같이 있어줬어.”

“정말 감사합니다! 전 파밀라의 엄마인 카런이에요.”

연신 고개를 꾸벅이는 카런에 손을 휘휘 내저었다.

“괜찮아요. 그냥 잠깐 같이 앉아 있어 준 것뿐인데요.”

“얘가 가끔 말도 없이 사라질 때가 있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저도 어렸을 땐 이유 없이 호다닥 달려나가곤 했었습니다!”

그렇게 카런과 몇 마디를 주고받은 후.

떠나려는 카런에 파밀라를 향해 손을 휘휘 흔들어 보였다.

“그럼 잘 가. 파밀라.”

마음 같아선 아까 들었던 이야기에 관해 조금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추운 길바닥에 모녀를 잡아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

말없이 날 지그시 바라보던 파밀라가 입가로 묘한 미소를 그리며.

“안녕. 오빠.”

나와 마찬가지로 작은 손을 휘휘 흔들어 보였다.

저벅.

다시 한번 고개를 꾸벅이고 파밀라와 함께 멀어져 가는 카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기한 애네.

처음 만남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신비로움을 팍팍 뿜어내고 떠난 파밀라였다.

“에취!”

에?

갑자기 으슬으슬한 느낌에 몸을 내려다본 후.

파밀라가 걸어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내….”

두 사람의 뒷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구스다운!!”

* * *

더블린 시내의 건물.

어두운 조명 아래로 모자를 눌러 쓴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진행됐어요?”

조심스러운 물음에 눈앞의 스크린으로 지도가 띄워졌다.

아일랜드 지도를 확대해 각 바다와 숲 등이 표시되도록 한 지도였다.

삑.

한 번 더 클릭하자 지도의 각 부분으로 검은색이 칠해졌다.

“정확히 기록해놓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아주 느리지만, 분명히 퍼지고 있어요.”

스크린 앞에 선 남자가 긴 막대를 들고 지난번 기록과 현재의 차이를 설명해주었다.

분명 바다의 먼 곳에 있던 흑색이 천천히 아일랜드 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얼음이 발생하는 건 섬 내부뿐만이 아니에요.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조여들고 있죠.”

깊은 한숨을 내쉰 남자가 조용히 듣고 있는 여자를 바라봤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리 차관님.”

“뒤에 차관님은 빼라니까요. 쫓겨난 지가 언젠데.”

쓰고 있던 모자를 벗자 아이리의 긴 흑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리까지 오는 흑발을 고무줄로 대충 묶어 놓은 아이리.

팔짱을 낀 아이리가 푸른색 눈동자를 천천히 깜빡이며 생각에 잠겼다.

“관광객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죠?”

“네. 끝도 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더더욱 외면하고 또 파묻으려 할 테고.”

“맞습니다.”

전 아일랜드 환경부 차관 아이리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돈에 눈이 멀어 닥쳐온 위험을 외면하고 있는 인간들이 우스워서였다.

“각하께 보냈던 인원들은 어떻게 됐어요?”

이번 질문에 남자는 침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남자의 반응에 아이리가 침통한 표정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번에도 실패했으며 동시에 아까운 생명의 불이 꺼진 것이었다.

“로컨인가.”

입술을 깨문 아이리가 로컨의 이름을 되뇌었다.

현재 앞장서 아이리의 사람을 잡아 죽이고 있는 자였다.

헌터청 청장이란 높은 자리에 있음과 동시에 그에 걸맞게 강력한 힘을 가진 자라 함부로 어찌할 방법도 없었다.

“오늘 더블린에서 수상쩍은 움직임이 있었다고 합니다.”

“…?”

의아해하는 아이리에 남자가 스크린으로 새로운 화면을 띄웠다.

누군가 먼 거리에서 더블린 공항을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엔 더블린의 헌터들과 처음 보는 남자가 함께 걷고 있는 게 찍혀있었다.

“누구야 저건?”

“오늘 더블린 항공에 도착한 남자입니다.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영국의 왕실 전세기를 타고 왔다고 합니다.”

“뭐…? 왕실 전세기?”

아이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단순히 왕실 전세기가 왔다는 사실보단 왜 로컨이 사람들을 보내 거기서 내린 남자를 데려간 건지가 의문이었다.

“로컨이 어째서.”

자연스럽지 않은 행동이었다.

더군다나 자신들과 대립하고 있는 이 타이밍이라면 더더욱 더 말이다.

“설마.”

머리를 스친 불길한 생각에.

아이리가 벗었던 모자를 도로 눌러썼다.

“아이리 님!”

“나갔다 올게.”

방을 나선 아이리가 속도를 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로컨 이 미친 작자가…!’

* * *

꿀꺽꿀꺽!

구스다운을 잃어버린 슬픔에 다시금 맥주를 들이켰다.

오늘 처음 개시한 건데 잃어버리다니.

그나마 추위에 오돌오돌 떨던 아이에게 줬다고 생각하니 조금이나마 마음이 따듯해지는 느낌이었다.

설마 도둑…!?

이라고 의심도 해봤었다.

눈이 안 보이는 아이가 한밤중에 돌아다니는 것도 그렇고.

엄마라고 하기엔 언니쯤으로 보였던 카런도 그렇고 말이다.

하지만.

아니야. 분위기가 도둑은 아니었어.

재차 파밀라의 신비로웠던 분위기를 떠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당한 것보단 스스로 건네줬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도 훨씬 평온했다.

“백운 님. 전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아 넵!”

옆에 앉아 있던 클로다가 몸을 일으켰다.

모두 떠난 다른 헌터와 달리 클로다는 아직까지 집에 안 간 채 나와 어울려주고 있었다.

담당 에스코트라는 이유에서였다.

주륵.

실은 내가 엄청난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게 아닐까.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미 어두워진 김에 도끼 탐색은 내일부터 하려던 참이었다.

오늘은 늦게까지 맥주나 들이켜다 호텔로 갈 생각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런 내 결정 때문에 클로다가 퇴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오면 가자고 해야겠다.

민폐를 끝마쳐야겠다 다짐하는 사이.

드륵.

클로다가 앉았던 자리로 모자를 눌러쓴 여자가 몸을 앉혔다.

“안녕하세요. 죄송한데 여기 일행 자리라서요.”

“살고 싶으면.”

“넵?”

비키라니까 안 일어나고 갑자기 협박인가 생각하는 순간.

고개를 돌린 여자가 말을 끝마쳤다.

“도망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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