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바이킹의 동굴
“어어어!”
코뉴가 조막만 한 손바닥을 쭉 뻗었다.
조심하라고 말해줬음에도 기어코 바다로 뛰어내린 백운.
바닷속으로 모습을 감춘 백운에 코뉴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 낚시란 게 뭔지 보여 줄 테니까.
“안돼…!”
코뉴가 두 손을 들어 머리를 움켜쥐었다.
낚시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도발한 게 화근이 된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정신 멀쩡한 사람이 저런 괴물에게 뛰어든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코뉴! 꽉 잡아라!”
“응!”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 걸까.
할아버지인 니겔이 전속력으로 배를 몰기 시작했다.
“형아… 안녕.”
코뉴가 백운이 사라진 바다 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만난 건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좋은 형아였다.
그렇게 코뉴가 등을 돌리려는 순간.
콰앙!!
바다 전체가 진동하며 커다란 물살이 일었다.
크게 출렁이며 배 위에 서 있던 코뉴를 덮친 바닷물.
“커억…!!”
바닷물에 몸이 폭삭 젖은 코뉴가 입을 쩍 벌렸다.
아끼는 옷이 소금물에 절여졌으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것보단 지금 바닷속에서 튀어나온 괴물 청새치가 우선이었다.
쩌저저적!
청새치가 자의로 점프를 뛴 건 아니었다.
몸 가운데가 한껏 휜 걸 보니 저곳으로 엄청난 힘이 가해진 것이었다.
“형아!?”
그리고 그곳엔 오른손으로 물색 비늘을 두른 백운이 있었다.
아직 완전히 뻗어지지 않은 주먹은 청새치의 배 쪽에 얹힌 상태였다.
“이것이.”
드드드드드!
백운이 잠시 배 쪽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낚시란 것이다!”
주먹에 힘을 주며 하늘로 힘껏 뻗어냈다.
콰아아아아!
뛰어올랐던 높이에서 훨씬 더 위로 날아 가버리는 청새치.
그와 함께 청새치의 몸에 둘렸던 검은 얼음이 하늘로 흩뿌려졌다.
“와아아…!”
코뉴가 입을 더 크게 벌리며 눈을 반짝였다.
검은 얼음 조각들이 햇빛을 반사하며 장관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풍덩!
얼마 지나지 않아 솟아올랐던 청새치가 바다로 떨어지고.
헤엄쳐 그런 청새치의 몸으로 올라간 백운이 배를 향해 따봉을 들어 보였다.
* * *
하늘에서 눈처럼 떨어지는 얼음 조각들을 바라봤다.
진짜 안 녹네.
햇빛이 강한 만큼 이 정도로 조각났으면 녹을만도 한데.
바닷물로 떨어진 얼음 조각은 다시 서로 합쳐지며 커다란 얼음덩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응?
죽은 청새치의 머리 부분.
똑같은 얼음이지만 묘하게 다른 조각이 박혀 있었다.
작은 별 모양을 한 조각에선 영롱한 푸른색 빛이 뿜어지는 중이었다.
뭐냐 이건.
얼음 조각을 집어 들자 저릿한 한기가 느껴졌다.
차갑네 라는 느낌을 주는 다른 조각과는 확실히 달랐다.
이게 청새치를 이렇게 만든 건가.
데몬화 되었다고 말하는 게 맞을진 의문이었으나.
어쨌든 이 특이하게 생긴 얼음 조각이 청새치를 데몬처럼 만들고 공격성을 띠도록 바꾼 것 같았다.
던도크로 오기 전에 잡았던 것보다 훨씬 단단하네.
청새치와 부딪혔던 오른손을 바라봤다.
단순한 강도 자체도 강했지만 그에 비례하는 한기가 더 문제였다.
유탈라스의 비늘이 둘러싸고 있었음에도 손을 저릿하게 만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쩌적.
“…!”
살펴보고 있기를 잠시.
머금고 있던 빛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조각이 갈라지며 부서져 내렸다.
바다로 흩어지며 다른 얼음들에 흡수되어버린 건 물론이었다.
버리는 건가.
이제 쓸모가 없어졌다 판단한 듯했다.
동시에 검은 얼음이 청새치에게서 떨어져 나와 바다로 돌아갔다.
덩그러니 남겨진 청새치는 그야말로 기괴한 생김새로 최후를 맞이했고 말이다.
기분 나쁘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검은 얼음.
조금 전의 한기도 그렇고 갈수록 재수 없어지는 녀석이었다.
“형아!”
배를 멈추고 날 기다리는 니겔과 코뉴.
일단 생각을 미루고 둘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정박을 마친 니겔호.
배에서 내려 걷고 있자 코뉴가 입을 열었다.
“형아 청새치 왜 안 가져왔어? 맛있는데.”
얼음이 빠져나간 청새치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돈을 준대도 먹기 싫은 생김새였다.
애초에 데몬 고기를 먹어본 적도 없었다.
“그거 못 먹어. 지지야.”
으 하는 얼굴로 고개를 휙휙 젓자.
옆에 있던 니겔이 커다란 통 하나를 들어 보였다.
“고기는 많으니 먹을 게 부족하진 않을 걸세.”
이제 곧 먹게 될 물고기 구이를 기대하며 니겔을 쳐다봤다.
조금 전 내가 청새치 잡는 모습을 본 니겔이었다.
분명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을 텐데도 니겔은 단 한 마디의 질문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바다 사람에겐 언제나 사연이 많은 법이지.”
그런 내 마음을 읽은 건지 니겔이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바이킹의 후예는 다른 이의 사연을 캐묻지 않아.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니겔에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엄청난 범죄자라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상세히 설명하자면 쉽지 않기에 나로선 감사할 따름이었다.
저벅.
아일랜드와 바이킹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길 잠시.
“저기 보이는군.”
니겔이 손을 들어 바닷가 한 부근을 가리켰다.
거대한 바위가 솟아있는 절벽 지대였다.
“아까 말했던 바이킹의 동굴이네.”
“오오.”
“아니야. 할아버지. 바이킹 최후의 동굴이야.”
“허허. 그래. 그랬었지.”
니겔이 말한 이름을 정정해주는 코뉴.
코뉴가 조막만한 입을 오물거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진짜야. 동굴 안엔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어. 그리고 들어오는 발자국만 엄청 많았고 나간 발자국은 하나도 없거든!”
“오호… 많은 이가 들어왔으나 나간 사람은 없다?”
“맞아! 형아 똑똑하다!”
날 얼마나 개멍청이로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이런 거에도 감동하며 눈을 반짝이는 코뉴에 멋쩍은 미소를 그려 보였다.
어쨌든 그럴싸한 이야기네.
흔적이란 게 언제 남은 건지는 몰라도 어쨌든 비슷한 시기의 발자국만이 찍혔을 가능성이 높을 테니.
최후의 장소란 이름이 마냥 허황된 것 같진 않았다.
“날씨도 좋으니 동굴 아래서 구워 먹도록 하자고.”
“넵!”
짐 한 뭉치와 코뉴를 들고 호다닥 아래로 내려갔다.
“와아아.”
니겔이 도착하기 전 미리 준비할 게 있으면 세팅해놓을 생각이었다.
오늘 이래저래 놀랄 일이 많았음에도 날 주워 준 건 물론 생선까지 구워 주려는 니겔을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서였다.
“여기야!”
어느새 도착한 동굴에 목마를 탄 코뉴가 소리 질렀다.
엄청 크네. 색도 희한하고.
절벽 지대의 바위와는 확연히 다른 색을 띤 동굴이었다.
어둑어둑한 바다색이라고 해야 할까.
막 아름답다고 할만한 색은 아니었으나 왠지 모르게 영롱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들어가 봐!”
“으, 응.”
움켜쥔 머리로 날 조종하는 코뉴에 동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을 때마다 메아리치는 것이 꽤 깊은 동굴인 듯했다.
“아래에 발자국!”
코뉴의 말에 고개를 내렸다.
확실히 바닥엔 여러 가지 크기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이게 사람 발자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거대한 것도 존재했다.
정말 나간 흔적은 없네.
눈을 가늘게 뜨며 자세히 살폈지만 안쪽으로 향하는 발자국뿐이었다.
겁나게 싸웠던 거 같고.
손을 올려 동굴 벽을 슥슥 문질렀다.
어두운 바다색의 암석은 무척이나 단단했다.
그럼에도 흔적이 새겨진 걸 보니 강력한 참격이 오간 듯했다.
“비밀 동굴 같네. 안으로 들어가면 보물 있을 거 같고.”
“응. 그런데 끝까진 못 들어가. 가다 보면 바다로 떨어지는 절벽이 있어.”
“보물은 원래 그런 곳에 있는 법이야.”
눈을 반짝이자 코뉴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얼굴로 날 올려다봤다.
“탐사대가 한 번 왔다 갔어! 절벽 아래 바다까지! 보물 다 가져갔을걸!”
“으, 응. 그렇겠다.”
하긴 이런 동굴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정부 차원이든 기업 차원이든 모험심 있는 사람이 이미 백 번은 다녀갔을 터.
무언가 남아있는 게 더 부자연스러울 듯했다.
“돌멩이 몇 개 주워가자. 이걸로 모닥불 만들어야 해.”
“그러자.”
조금 있으면 니겔이 내려올 때가 됐기에.
혼자 있을 때 다시 와봐야지.
라고 마음먹으며 코뉴가 가리키는 돌맹이를 주워 동굴 밖으로 향했다.
* * *
노릇노릇 잘 구워진 물고기를 여러 마리 해치운 후.
“꺼어억!”
시원하게 트림을 갈기며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혼자 한 번 둘러보고 오게나. 여기에 있을 테니.
내가 동굴을 더 둘러보고 싶다는 걸 눈치챈 건지 니겔은 코뉴를 끌어안으며 말했었다.
뒷정리도 할 겸 코뉴와 기다리고 있을 테니 천천히 돌아보고 나오란 것이었다.
딸칵.
어느새 해가 진 시간이라 어두운 동굴.
니겔에게 받아온 플래시를 켰다.
플래시 성능 훌륭하고.
동굴 여기저기를 비추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우우우우우우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건지 무서운 비명을 내지르는 바이킹의 동굴.
오싹한 기분에 어깨를 으스스 떨어댔다.
코뉴 데려올 걸 그랬나.
물고기를 먹고 졸길래 호다닥 혼자 온 건데.
억지로라도 목마 태워서 데려올 걸 했나 라는 후회가 들었다.
“귀신 거기에 있는 거 다 안다! 나오지 마!”
혼자 집으로 들어갈 때 소리 지르면서 가듯이 우렁차게 외치며 계속 전진했다.
진짜 나타나면 리볼버로 갈겨버릴 생각이었다.
여기가 낭떠러진가.
깊숙이 파인 곳으로 플래시를 비춰보았다.
플래시가 강한데도 빛이 닿지 않는 걸로 보아 꽤 깊은 모양이었다.
어차피 밤이니까.
여차하면 날개로 탈출해야지 생각하며 아래쪽으로 몸을 날렸다.
코뉴의 말대로라면 곧 바닷물이 날 반겨 줄 터였다.
그렇게 어두운 터널을 한참 지나.
퐁당.
차가운 바닷물이 내 발을 반겨주었다.
몸이 푹 잠길 거란 예상과는 달리 물은 발목만 잠기고 끝나는 정도로 차올라 있었다.
“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무슨 원리인지는 몰라도 동굴 안은 은은한 분홍빛으로 차 있었다.
아주 밝진 않으나 플래시를 꺼도 어느 정도 주변이 구분될 정도였다.
어디서 흘러나오는 빛이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동굴을 거닐었다.
위에서보다 더 치열하게 싸운 건지 훨씬 많고, 깊은 흔적이 사방을 뒤덮고 있었다.
바이킹끼리 싸운 건가.
애초에 왜 시원시원하게 뚫린 곳에서 안 싸웠을까는 의문이었으나.
어찌 됐든 이런 깊은 곳까지 와 싸워댔다면 최후의 동굴이란 이름이 나름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도 흔적 말곤 별게 없네.
입맛을 다시며 혀를 찼다.
탐사대가 와서 쓸어 갔을 테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뭐라도 하나 떨어뜨리고 갔으면 얼마나 좋…?
“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을 비볐다.
열심히 걸어 도착한 동굴의 구석탱이.
걸어오는 내내 대체 이 은은한 분홍빛은 어디서 흘러나오는 걸까 의아했었는데.
빛의 발원지가 눈앞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은은한 분홍빛이라고 생각했던 빛은 가까이서 보니.
꿀꺽.
아주 친숙한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