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다시 더블린으로
상황실 모니터에 띄워진 더블린 광장.
광장 사진 옆엔 수많은 점과 선이 그어진 지도가 함께 올라와 있었다.
“전달받은 배치도입니다. 역시 보안 총책임을 맡은 건 로컨입니다.”
더블린에서 연마다 열리며 각 단체의 의장과 대통령이 참가하는 큰 행사.
아이리는 이곳으로 들어가 대통령을 만날 생각이었다.
“당일 대통령의 동선입니다. 경우의 수 몇 가지를 생각해 다섯 가지 루트를 그려봤습니다.”
눈을 가늘게 뜬 아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여러 정보를 종합해 대통령과 만날 수 있는 루트를 그려 보곤 있으나.
‘로컨도 알고 있겠지.’
헌터청 청장인 로컨이 이를 모를 것 같진 않았다.
아이리가 이 행사에서 대통령을 만나려 한다는 걸 로컨 역시 알고 있을 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어떻게든 이를 막으려고 할 게 분명했다.
“괜찮을까요? 로컨이 대통령 옆에 달라붙어 있기라도 하면….”
말끝을 흐리며 우울한 표정을 짓는 이들에 아이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무리 로컨이 붙어 있으려고 해도 24시간 매순간 대통령과 함께 할 순 없어요. 분명 대통령이 혼자 있는 순간이 있을 겁니다.”
아이리가 몸을 숙이며 다시 한번 행사 계획표를 훑었다.
로컨이 따라갈 수 없는, 대통령이 혼자 있을만한 타이밍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나저나 왜 아무 소식이 안 들리는 걸까요? 이쯤이면 뭔가 발표되고도 남을 시간인데요.”
“그러게요.”
아이리가 슬픈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로컨은 영국 왕실 손님인 백운을 이용해 아이리에게 누명을 씌울 계획이었다.
이를 막으려 아이리가 갔지만 결국엔 로컨이 계획했던 대로 백운이 잡혀버렸고 말이다.
‘살려뒀을 리가 없을 텐데.’
백운이 죽길 바라는 건 아니었다.
자신이 그 손을 놓쳐버린 만큼 누구보다 백운이 살아있길 바랐지만 그 확률은 몹시 낮았다.
맥줏집에 퍼부어진 공격부터 얼음으로 만들어낸 병기까지 본 백운이었다.
아이리의 누명을 제쳐놓고라도 로컨이 백운을 죽일 이유는 충분했다.
휙휙.
아이리가 애써 그날 밤의 기억을 털어냈다.
지금은 슬픔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었다.
상관없는 일에 휘말려 죽은 백운을 위해서라도 로컨과 그 일당이 벌인 일을 널리 알려야만 했다.
“일단 계획을 다시 한번 리허설하죠.”
차분히 말하며 아이리가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제게 작은 틈만 만들어 주세요. 그럼.”
아이리의 두 눈으로 비장함이 깃들었다.
“제가 대통령을 만나겠습니다.”
* * *
“안녕하세요. 백운이라고 합니다.”
“…?”
예의 바르게 인사한 게 화근이었을까.
내게 쏟아지는 뜨거운 시선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역시 바이킹인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무수한 시선을 마주했다.
동굴에서 나와 니겔 할아버지의 집에서 하루 머무른 직후.
코뉴는 일어나기 무섭게 날 이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코뉴의 표현대로라면 옛날 바이킹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신기하네.
어떻게 살길래 코뉴가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건지 궁금했었다.
여기에 오자마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고 말이다.
기다란 수염에 뿔 투구, 거기다 털로 만든 갑옷까지 차고 있다니.
물론 털갑옷은 추위를 견뎌내기 위한 걸 수도 있으나 어쨌든.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과거 바이킹의 차림새를 하고 모닥불을 피운 채 둘러앉아 있었다.
“우리 집에 살고 있는 형아야. 착해.”
코뉴가 그렇게 노려보지 말라는 듯 재차 내 소개를 해주었다.
그러자 경계가 조금 풀리는 듯하더니 바이킹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약간 우락부락하게 생긴 아저씨였다.
“미안하지만 우린 전사가 아닌 자와는 대화하지 않는다네. 그랬다간 나약함이 묻어버리고 말 테니까!”
그럼 짜리몽땅한 코뉴랑은 왜 대화하는 건지 논리적으로 묻고 싶었지만.
코뉴가 나름 저들의 기준에선 전사일 수도 있으니 입을 다문 채 이어지는 아저씨의 말을 경청했다.
“흐음! 딱 보니 자네는 전사가 아니구만 그래! 몸이 이리 비실비실…!?”
손을 올려 내 팔뚝을 툭툭 친 아저씨가 말을 멈췄다.
눈동자에 놀라움이 가득한 걸로 보아 비실이가 아니란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흠흠!”
자신이 당황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아저씨가 헛기침과 함께 뒷짐을 지었다.
그리고 커다란 바위 옆으로 다가가는 아저씨.
“근육이 발달했다고 전부 전사라 할 순 없지! 무릇 전사란 적과 싸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니까!”
두 손을 바위 아래로 집어넣은 아저씨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끄으으으으!”
커다란 함성과 함께 얼굴이 시뻘개질 때까지 힘을 주는 아저씨.
저러다 나와선 안 되는 게 나오는 거 아닐까 싶은 순간 바위가 약간 들어 올려졌다.
쿵.
바위를 도로 내려놓은 아저씨가 뿌듯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허억! 허억! 이 정도는 들어야 전사의 최소 조건이라 할 수 있겠지!”
저렇게 힘드신 걸 보니 아저씨도 턱걸이 한 전사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바위 옆으로 다가갔다.
“아서게! 전사의 무게를 쉽게 봤다간 허리가….”
스윽.
“에?”
한 손으로 바위를 들어 올리자 아저씨가 벙찐 얼굴로 날 응시했다.
지금 자기가 뭘 보고 있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
잔뜩 거만한 자세로 앉아있던 다른 바이킹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자세를 고쳐 잡곤 공손한 자세로 날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바위를 내려놓고 조용히 다가가 옆에 앉았다.
“궁금한 게 있어서 왔는데요.”
“뭐, 뭐든 물어보게! 최강의 전사여!”
어느새 호칭까지 최강의 전사로 바꿔준 아저씨가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같은 전사에겐 한없이 따듯해지는 모양이었다.
“혹시 바이킹 중에 창을 사용한 전사도 있었나요?”
“갈!!”
깜짝이야.
뜬금없이 질러진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처음 봤을 때처럼 콧방귀를 뀌며 소리를 지른 아저씨.
아저씨가 앗 하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바이킹은 창 따위를 사용하지 않네! 오로지 묵직한 무게를 가진 도끼와 망치만을 사용하지!”
진짜인가 못 미더울 때쯤.
아저씨가 옆에 있던 그림 몇 장을 앞으로 펼쳐 보였다.
아주 먼 옛날 바이킹의 생활을 기록한 듯한 그림들이었다.
“여기서만 봐도 알 수 있지. 검도 얍실한 검은 사용하지 않았네. 아주 두껍고 무거운 녀석들만 사용했지! 난 지금까지 수많은 바이킹의 흔적을 탐사했지만 창을 사용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네!”
“그렇군요.”
바이킹이 아니었던 건가.
파편이 붙어 있던 건 아무리 봐도 창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지 못한 무기의 형태가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럼 혹시 갈라드란 바이킹은 아시나요?”
“갈라드!!”
나도 모르게 예의를 버리고 귀를 막을 뻔했다.
코뉴는 이미 아저씨의 목청을 알고 있던 건지 귀를 막고 있었다.
“바이킹 중에서도 아주 유명한 전사였지! 몸보다 큰 도끼를 휘두른다고 알려져 있었네.”
잠시 꾸러미를 뒤적이던 아저씨가 새로운 두루마기 몇 개를 꺼내 펼쳤다.
그곳엔 공명에서 봤던 갈라드와 비슷한 바이킹이 그려져 있었다.
도열한 바이킹들 사이에 커다란 도끼를 든 채 우뚝 서 있는 모습이었다.
꽤 신빙성 있는 그림이네.
나름 비슷한 걸 보니 아무렇게나 막 그린 건 아닌 듯했다.
“갈라드의 도끼는 한 방에 바위를 가르고 배를 부순다고 알려져 있네. 웬만한 무기는 도끼와 마주하는 순간 박살났기에 함부로 대적하지도 못했다고 알려져 있어.”
턱을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마지막엔 갈라드의 도끼와 부딪히며 창의 파편이 솟아오르긴 했었다.
“혹시 갈라드의 최후는 알려진 게 있나요?”
“으음.”
이것저것 두루마기를 펴보던 갈라드가 그림 한 장을 내밀었다.
“사실 그건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긴 한데 말이야. 가장 무게가 실리고 있는 이야기 중 하나가 이걸세.”
“…!”
그림엔 갈라드와 수많은 바이킹이 누군가에게 고개를 조아린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 앞엔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진 몸에 두 눈동자만이 서늘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서 있었고 말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게지. 물론 난 믿지 않아! 최고의 바이킹 중 한 명인 갈라드가 고개를 조아리다니! 분명 갈라드에게 당한 이가 원한을 품고 그린 거라 믿고 있지!”
“무게가 실리는 건 어째서인가요?”
한숨과 함께 입맛을 다신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이런 구도를 표현하는 기록이 꽤 많거든. 특히 더블린 기록소엔 아주 대문짝만하게 있다네. 도끼와 함께 말이야.”
“대문짝만하… 넵?”
뜻밖의 단어에 고개를 들었다.
분명 도끼라고 말했다.
“도끼 말이야. 갈라드가 사용하던 거대 도끼. 자네 최후의 동굴이라고 알고 있나?”
“내가 어제 데려다줬어!”
가만히 있던 코뉴의 대답에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에서 그 동굴로 탐사대를 보냈었거든. 그때 갈라드의 무기를 회수했고 지금은 더블린에 위치한 비공개 기록소에 보관 중이라네.”
더블린 한복판에 있었구나.
아일랜드가 가라앉은 후 바다에서 발견된 도끼.
가라앉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나 궁금했는데 대놓고 수도인 더블린에서 보관 중이었던 것이다.
코뉴가 말했던 탐사대란 건 정부 소속이었던 모양이고 말이다.
# 다음 뉴스입니다.
에?
뜬금없이 들려오는 뉴스 소리에 아저씨를 쳐다봤다.
소리는 아저씨의 품속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
새로운 문물을 거부하고 바이킹의 전통 방식으로 살아간다고 들었는데 뉴스라니.
빤히 바라보자 얼굴이 빨개진 아저씨가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계속 모닥불만 보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그, 그렇죠.”
스마트폰은 못 참지.
인정하며 흘러나오는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아일랜드에서 연마다 열리는 행사에 관한 뉴스였다.
대통령이 직접 참여해 행사를 축하하는 건 물론 연설도 계획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저거구나.
아이리가 대통령을 만날 기회라고 말했던 행사.
어디에 있는지 몰라 찾아가지 못했던 아이리는 분명 저곳으로 향할 터였다.
어차피 가야 하니까.
도끼가 내가 찾는 무기가 아닐지라도 확인은 해야 했다.
파편의 공명에서도 나온 만큼 창과 적지 않은 연관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전사 아저씨.”
꾸벅 인사를 건네며 몸을 일으켰다.
일단은 더블린으로 가볼 생각이었다.
“어어!”
얌전히 앉아있던 코뉴를 목마로 태운 후.
저벅.
니겔의 집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내일 아침 행사가 열릴 장소.
미리 장소를 살피기 위해 온 아이리가 주변을 둘러봤다.
더블린의 헌터들이 꽤 여럿 있었으나 일반인으로 위장한 아이리를 딱히 신경쓰거나 하고 있진 않았다.
눈치챈다 하더라도 로컨만 없다면 충분히 도망칠 자신이 있었고 말이다.
‘틈이 만들어져야 할 텐데.’
팀은 각 상황에 맞는 루트를 물색하는 중이었고 직접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리는 그 루트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었다.
‘응?’
길을 살피던 아이리가 걸음을 멈췄다.
멀지 않은 정면.
눈을 감은 아이가 조용히 아이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안녕.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