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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41화 (341/473)

341화. 반역

휴.

손을 털며 널브러진 더블린 헌터들을 둘러봤다.

나름 조용하고 잽싸게 처리한다고 하긴 했는데.

“저쪽이다!”

추가로 우르르 몰려오는 걸 보니 실패한 모양이었다.

잠입엔 소질이 없나.

어깨를 으쓱이며 멀리서 몰려오는 헌터들을 쳐다봤다.

몰려오는 방향이 행사장이다 보니 저곳으로 가는 게 아이리를 만날 확률이 가장 높긴 하겠으나.

굳이 오는 족족 다 때려눕힐 필요는 없었다.

이 정도면 나름 도움이 됐을 테니까.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적지 않은 수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을 터.

나름의 루트로 침투 중일 아이리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 듯했다.

그나저나 괜찮은 건가.

아이리 측에 얼만큼의 전력이 있는지는 몰라도 위험도가 꽤 높았다.

이곳에 배치된 헌터들과 아까 클로다의 무전을 봤을 때 로컨은 이미 아이리가 올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없어도 될만한 위치에도 헌터들이 대기 중이었던 것이고 말이다.

쉽지 않을 거 같은데.

로컨이 돌머리가 아니라면 아이리가 대통령을 만나려 한다는 사실도 이미 파악했을 테니.

대통령 주변에는 아마 내가 만난 헌터들보다 더 강력한 전력이 대기 중일 게 분명했다.

걱정이 많은 타입이라면 본인이 직접 대기하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뭐 잘하시겠지. 순간이동도 있으니.

한 번 더 어깨를 으쓱이며 골목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시선도 끌었으니 이제부턴 최대한 충돌을 피하며 행사장으로 나아갈 예정이었다.

“탐지했습니다! 반대편 골목 쪽입니다!”

얼레.

로컨 아래에 있는 헌터들을 너무 무시했던 걸까.

쓰러져 있는 동료들 주변으로 오더니 순식간에 내 위치를 탐지해내는 헌터들.

일제히 골목길로 쏠린 눈동자에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진짜 난처한 건 아니었지만 예상외로 빠릿빠릿해 조금 놀랐다.

[잭 더 리퍼 - 면도칼]

[도윤 - 비전 수리검]

면도칼을 입에 물고 한쪽 손엔 수리검을 든 채로.

저벅.

골목 그림자에서 한 발자국 앞으로 움직였다.

“저놈이다!”

“저기에 있다!”

몸의 반 정도가 그림자를 벗어나 보이자 헌터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기저기서 주고받는 무전 역시 더욱 바빠졌다.

본의 아니게 어그로를 더 끌게 됐네.

“뭐 하는 놈이냐!”

“아이리 측 소속인가?!”

대답은 하지 않고 조용히 놈들을 바라보다 천천히 그림자 속으로 몸을 감추어나갔다.

“거기 서라!”

세상에 서란다고 서는 놈이 진짜 있을까라는 의문을 떠올리며.

더블린 헌터들과의 숨바꼭질을 시작했다.

* * *

“무슨 일입니까? 로컨 청장.”

대통령 다닐로의 물음에 로컨이 밝은 미소를 그려 보였다.

“신경쓰실 필요 없습니다. 각하. 날파리 한 마리가 숨어든 모양이니까요.”

“날파리요?”

“예. 어디에나 있는 부류죠. 그저 이런 큰 행사에서 한 번이라도 관심을 받아 보고자 하는 녀석들입니다.”

로컨의 설명에 다닐로의 눈가로 희미한 인상이 찌푸려졌다.

오늘은 대통령인 자신이 참가하는 행사였다.

그만큼 평소엔 가볍게 처벌받을 일도 저지른 방식에 따라 더 큰 죄를 묻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관심이나 받자고 소란을 피운다고…?’

로컨은 인이어로 조용히 여기저기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소란이 일어난 곳으로 직접 나가볼 법도 한데 어째선지 로컨은 다닐로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다닐로를 절대 혼자 두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하하하! 로컨 청장이 저렇게 말하니 안심하시고 행사 리허설이나 한 번 더 진행하시죠!”

“맞습니다! 각하께서 신경쓰지 않으셔도 로컨 청장이 알아서 다 할 겁니다!”

기다렸다는 듯 다른 장관들이 다닐로에게 걸어왔다.

모두 국가가 아닌 로컨을 두려워해 따르는 자들이었다.

‘알아서 한다라….’

조금 전 장관들이 한 말을 곱씹으며 다닐로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문제였다.

다닐로는 귀가 막힌 게 아니었다.

아이리 차관과 검은 얼음에 관련된 이슈들을 전해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떠한 이유로 그런 결정이 내려졌는지의 내막은 알지 못했다.

무언가를 알아보려 할 때마다 길목에 버티고 있는 로컨에게 무산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이 지경이 된 거지.’

아득한 기분에 다닐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스스로가 너무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방의 시대를 맞으며 강력해진 로컨의 힘을 견제했어야 하는데.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수많은 이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상태였다.

‘증거가 필요하다.’

다닐로는 전 환경부 차관 아이리를 알고 있었다.

없는 소리를 지어내며 괜히 국가를 혼란에 빠뜨릴 사람이 아니었다.

로컨에게 꼭 숨겨야 하는 치명적인 비밀이 있는 게 분명했다.

아이리는 그걸 파헤치려다 정리당한 것이고 말이다.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로컨이라고 아일랜드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순 없었기에.

하루라도 빨리 아일랜드가 진실을 알게 만들어야 했다.

‘…!?’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이 없는 고민에 잠겨있을 때.

스탭 모자를 쓴 직원 한 명이 다닐로의 눈에 들어왔다.

다른 직원과 다를 바 없는 차림새였지만 뭐랄까.

왠지 모르게 틈이 날 때마다 다닐로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설마.’

만약의 가능성을 떠올린 다닐로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입으로는 행사 대본을 읽으며 리허설을 진행하는 척했다.

스윽.

곁눈질로 반대편에 서 있는 로컨을 살폈다.

로컨은 여전히 인이어를 통해 바쁘게 대화를 주고 받는 중이었다.

“뭐….? 지금 나랑 장난치는 거야?”

로컨이 목소리를 낮추며 분노를 표했다.

아이리 세력 중 한 명일 게 분명해 금방 정리될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금방 정리된 건 반대편인 로컨 측이었다.

# 죄, 죄송합니다. 마치 귀신을 상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 앞에서 달려가는 걸 봤는데 어느새 처음 지점으로 이동해 있고. 움직임은 어찌나 빠른지 2,3급 헌터들도 도무지 따라잡질 못하고 있습니다.

로컨의 미간으로 깊은 인상이 그려졌다.

상급 헌터가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빠르다니.

‘….’

로컨이 아는 한 아이리 측에 헌터들을 이 정도로 따돌릴만한 전력은 없었다.

지금 당장 머리로 떠오르는 인물은 단 한 명.

‘타룬을 부순 놈이구나.’

중급 이상 헌터급 전투력을 가진 타룬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정체불명의 인물.

영국 왕실의 귀빈 백운을 돕는다고 추정되는 인간이었다.

‘괜히 건드린 건가.’

로컨이 짜증 섞인 얼굴로 혀를 찼다.

아이리를 잡겠다고 괜한 걸 건드린 것 같았다.

‘… 상관없다.’

눈을 감고 심호흡한 로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약간 성가실지언정 행사가 끝나고 직접 나서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당장은 만약을 대비해 다닐로 대통령 곁을 떠날 수 없지만 말이다.

‘어차피 아이리는 대통령을 만날 수 없다.’

자신이 함께 있는 걸 안 이상 아이리는 절대 이곳으로 침입하지 않을 터였다.

아무리 단거리 순간이동이 있더라도 로컨에게 들키는 순간 죽는다는 걸 아이리 본인이 가장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옆에 붙어 있어야…?’

현장과 연락을 마치고 고개를 든 로컨.

로컨이 의아한 눈으로 걸어가는 다닐로를 바라봤다.

눈은 대본을 향하고 있지만 어째선지 다닐로는 무대 끝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저곳으로 갈 필요가 없을 텐데.’

그리고 로컨의 눈에도 들어왔다.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다닐로에게 향하는 직원이 말이다.

“!!!”

찰나의 순간.

로컨과 눈이 마주친 직원이 다닐로에게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리!!!”

모자 사이로 새어 나온 긴 머리에 로컨이 소리 지르며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쏘아지며 아이리에게 다가간 로컨.

로컨이 있는 힘껏 아이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늦었어.”

그런 로컨을 향한 아이리의 짤막한 한 마디와 함께.

팟!

로컨의 시야에서 다닐로와 아이리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약 오르지.

호다닥 행사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미친 듯이 쫓아오던 헌터들은 더 이상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 호다닥! 비전. 호다닥! 비전.

놈들이 지쳐 나가 떨어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잡힐듯 말듯 거리를 조절하며 달리다 오는 길에 두고 온 수리검으로 비전하는 걸 몇 번 반복했고, 이에 놈들은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듯하더니 알아서 주저앉기 시작했었다.

평화적인 방법이었어.

꽤 많은 인원이 쫓아온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행사장 쪽은 텅텅 비어 있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인원도 현장 쪽으로 가야 하는 건지 대기해야 하는 건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고 말이다.

지시를 못 받고 있나?

그런 헌터들의 모습에 약간 의문이 들었다.

아까 날 쫓아왔던 놈들 중에 아쉽게도 로컨은 없었다.

그 말인 즉슨 로컨은 행사장 안에서 지시를 내리고 있다는 걸 텐데 왜 인원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굴고 있는 걸까.

쾅!!

“!?”

한쪽에서 울리는 굉음에 고개를 돌렸다.

행사장 한복판에서 하얀 먼지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기다.

소란을 찾아가면 아이리가 있을 거란 무대뽀 작전.

작전이 통하는 건가 생각하며 먼지구름 쪽으로 속도를 올렸다.

* * *

다닐로와 함께 두어 번 순간이동 해 도착한 장소.

한 널찍한 홀 안에서 아이리가 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후우…!”

부서진 벽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청장 로컨.

로컨이 화를 꾹꾹 누르며 아이리를 노려봤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었던 모양이군. 여기까지 기어들어 온 걸 보니.”

로컨이 이를 갈았다.

행사장 안을 담당한 이 중 누군가가 아이리를 도운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여기까지 도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로컨 청장. 거기까지 하세요.”

대통령 다닐로가 아이리와 로컨 사이에 섰다.

로컨이 오기 전까지 아이리가 겪은 일과 모은 조사 자료 등을 모두 듣고 본 상태였다.

“저딴 정신병자가 한 말은 들으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로컨의 말에 다닐로가 고개를 내저었다.

“방금 아이리 전 차관이 해준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조사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전까진 대기하세요.”

“….”

인상을 쓴 로컨이 다닐로와 그의 뒤에 선 아이리를 바라봤다.

약간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못 그러겠는데?”

“지금 뭐라고…!”

“못 그러겠다고.”

로컨의 반응에 다닐로와 아이리의 눈이 커졌다.

아무리 막강한 세력을 가진 로컨이라도 상대는 대통령이었다.

“하아. 이 겁쟁이 새끼.”

한숨을 내쉰 로컨이 두 사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라를 강하게 만들어 준다는데도… 한심하기 짝이 없군.”

“로컨 청장. 당신 지금…!”

“전 차관 아이리가 납치한 대통령, 살해당한 채로 발견. 범인은 국가에 반발감을 가진 아이리와 그 세력으로 추정됨.”

“!!!”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는 듯.

로컨이 커다란 주먹을 들어 올렸다.

“겁쟁이들의 시대는 여기까지다.”

쐐에에에에에엑----!

힘이 실린 주먹이 반응하기 힘든 속도로 다닐로와 아이리에게 날아들었다.

로컨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반응을 보일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아…!’

조금 전의 연속 사용으로 순간이동이 불가능한 상황.

망연자실한 채로 다가오는 주먹을 바라보고 있을 때.

사악!

아이리의 시야로 정체불명의 보따리와 가면을 쓴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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