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화. 센 놈
묵직한데.
괜히 헌터 청장이 아닌 듯했다.
팔목에 얹힌 로컨의 주먹.
단순히 크기만 큰 게 아니라 파워가 엄청났다.
이거 무지막지한 새끼네.
파워나 스피드를 보니 위협용으로 휘두른 게 아니었다.
뒤에 있는 두 사람을 확실히 죽이기 위해 휘두른 것이었다.
“허?”
먼저 입을 연 건 로컨이었다.
헛웃음을 터뜨리며 날 이리저리 뜯어보는 로컨.
“네놈이구나. 오늘 숨어든 날파리가.”
“날파리가 이렇게 큰 거 봤어? 그리고 너 간 크구나.”
오는 와중에 잘못 봤나 싶었지만, 확실했다.
뒤에 아이리와 함께 서 있는 건 아일랜드의 대통령 다닐로였다.
“보통 헌터 청장이면 대통령 반대편으로 주먹질해야 하는 거 아니야?”
“대통령답지 못한 겁쟁이라면 얘기는 다르지.”
“헌터청 청장답지 못한 새끼가 말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미소 지은 로컨이 반대쪽 주먹을 치켜들었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기까지 기어들어 왔으니 죽어라.”
다시 한번 정면으로 주먹이 날아들었다.
내가 와서인지 조금 전에 막은 것보다 훨씬 강력한 힘이 실려있었다.
일단.
[비전]
다닐로와 아이리를 데리고 홀 밖에 놓아둔 수리검으로 몸을 옮겼다.
“허억…!”
죽음 직전의 상황에서 간신히 벗어난 탓일까.
아이리와 다닐로가 참고 있던 숨을 토해냈다.
하긴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그렇게 몇 번인가 거칠게 호흡한 아이리가 날 정면으로 바라봤다.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백운 님. 어떻게…?”
목소리를 듣고 알아본 건지 묻는 아이리에.
호다닥 가면을 벗으며 멋쩍은 미소를 그렸다.
“지금은 설명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살아 있습니다. 하하.”
앗.
그제야 옆에서 벙찐 얼굴로 바라보는 다닐로가 생각나 호다닥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백운이라고 합니다. 저는 음.”
뭐라고 소개할까 잠시 고뇌하다.
아이리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본 뒤 말을 이었다.
“아이리 님 친구예요.”
“아…! 아일랜드의 대통령 다닐로라고 합니다. 로컨 청장이 저렇게 멀리까지 나가 있을 줄은…. 꼼짝없이 죽을 뻔했는데 고맙습니다.”
친구라고 했는데 아이리 님의 표정이 썩지 않는 걸 확인한 후.
등에 메고 있던 장난감 보따리를 건넸다.
“이거 받으세요. 저번에 쫓아오던 로보트 잔해예요.”
“…!”
보따리 안을 본 아이리와 다닐로의 눈이 커졌다.
아이리가 수집한 자료와 합쳐졌을 때 이보다 명확한 증거는 없을 터였다.
“그나저나.”
로컨이 있던 홀 쪽을 바라봤다.
아마 행사장 안에 추적 준비를 해놨을 테니 조만간 쫓아올 터였다.
“헌터청 청장이 반역을 일으킨 건데 대책이 있을까요?”
품에서 핸드폰을 꺼낸 다닐로가 고개를 젓자.
“연락할 수 없도록 끊어 놓은 모양입니다.”
이에 아이리가 작은 지도 하나를 꺼내 펼쳐 보였다.
오늘을 준비하며 미리 작성해 놓은 것 같았다.
“탈출로로 봐둔 곳이 있어요. 밖에선 절 돕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고요.”
“좋네요. 그런데 반역도 서슴지 않는 걸 보니 로컨이란 작자는 무슨 짓이든 가리지 않고 할 거 같은데. 두 분이 정보를 퍼뜨린다고 해서 통할까요?”
이번 질문엔 다닐로와 아이리가 모두 고개를 숙였다.
“저한테 했던 것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으로 몰아가려 하겠죠. 진실을 거짓으로, 거짓을 진실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요.”
정재계 유력 인사들은 대통령이 공격받았단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로컨의 편을 들 거라고 아이리가 덧붙였다.
그만큼 로컨이 가진 힘이 절대적이고 두렵다는 증거였다.
“로컨이 박살나면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묻자 두 사람이 벙찐 얼굴로 날 바라봤다.
마치 신을 한 번 죽여보면 어떨까요? 라고 말한 사람을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전세는 한 번에 뒤집힐 겁니다. 지금 저들에게 있어서 로컨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핵심 인물이니까요.”
“그렇군요.”
밝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을 위해 로컨을 때려잡겠다고 말하는 건 아니었다.
겁나 귀찮게 굴겠지.
현재 내 머릿속은 동굴에서 봤던 파편의 공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거 신경 쓸 필요 없이 무기만 찾고 싶은데 로컨이란 막강 세력이 호시탐탐 날 찾아 죽이려 하고 있으니.
뭘 할 때마다 신경을 안 쓰는 게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청소하고 가자.
다시 마스크를 쓰며 빙글 몸을 돌리자.
“백운 님. 잠깐만요!”
아이리가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넵?”
“같이 나가요. 그때 타룬을 다 처치한 것도, 행사장의 헌터들의 시선을 끌고 숫자를 줄여준 것도 백운 님이란 거 알고 있어요. 그만큼 강하실 테고요. 하지만 로컨이랑 싸우는 건 무모해요. 일단 여기서 나가요. 각하가 같이 계시니 제가 다른 국가로 도움을 요청하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볼게요.”
간곡한 표정을 지은 아이리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자.
안 되겠다 싶었는지 아이리가 로컨의 강함에 관한 이야기를 더 해주었다.
지금까지 수천 마리의 데몬을 압도적인 무력으로 잡아냈으며 개방의 시대 이후 문제를 일으켰던 범죄자들 역시 맨주먹으로 때려잡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이었다.
“오…!”
슬쩍 손을 들어 아이리가 손을 놓게 한 후.
“말씀을 듣고 보니.”
밝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제가 이길 거 같네요.”
“…!?”
홀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왜냐하면 전 아이리 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마지막 말을 마쳤다.
“훨씬 센 놈이거든요.”
* * *
# 범위가 좁혀지고 있습니다. 1분이면 됩니다!
행사장을 스캔 중인 부하의 목소리를 들으며.
로컨이 조금 전 가면 남자와 부딪혔던 주먹을 내려다봤다.
‘….’
솔직히 남자가 앞에 나타났을 땐 정말 놀랐었다.
아무리 자신이 다닐로와 아이리에게 신경을 쏟고 있었다곤 하나 남자가 바로 앞에 올 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 콰앙!
주먹이 막혔을 때도 솔직히 감탄사가 나올 뻔했다.
덩치만 봤을 땐 그다지 힘이 셀 것 같아 보이지 않았던 남자.
남자는 정면으로 자신의 주먹을 받아냈었다.
뒤로 조금도 밀려나지 않고 말이다.
가볍게 휘두른 주먹이었다곤 하나 능력을 개방한 이후 처음으로 겪어보는 상황이었다.
‘신체강화형 S급 데몬도 내 주먹을 그렇게 받아내진 못했거늘.’
주먹을 통해 느껴진 감각도 이상했다.
사람 몸을 때린 느낌이 아닌, 거대하고 단단한 강철 덩어리를 두들긴 느낌이었다.
# 찾았습니다!
들려오는 음성에 로컨이 귀로 손을 올렸다.
“어디냐?”
# 현재는 하나의 신호만 감지됩니다! 그 신호는… 어?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 로, 로컨 님이 계신 곳으로 접근 중입니다! 뒤쪽입니다!
“!?”
뜻밖의 말에 로컨이 뒤로 고개를 돌렸다.
홀의 벽이 가로막고 있는 방향이었다.
드드… 쾅!
바라보고 있기를 잠시.
벽이 무너지며 아까 봤던 가면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셔도 괜찮죠? 어차피 그쪽이 한쪽 먼저 부셔놨잖아. 나중에 알아서 다 고쳐.”
“하…!”
태연한 남자의 음성에 로컨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이런 인간이 있었을까?
누가 됐든 자신을 만나면 도망치기 바빴는데 오히려 제 발로 찾아오다니.
그것도 자신의 주먹을 한 번 겪어보고서도 말이다.
‘이길 수 있다는 거냐…!!’
눈을 부릅뜬 로컨이 멀리서 다가오는 남자를 살폈다.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아주 여유로운 걸음걸이였다.
싸우러 오는 게 아닌, 저녁 시간 공원을 거니는 듯한 걸음.
마치 싸움의 결말이 이미 자신의 승리로 확정되어 있다는 듯한 건방지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 팟!
로컨이 조금 전 아이리와 다닐로를 데리고 사라졌던 남자를 떠올렸다.
말도 안 되는 움직임만 봤을 땐 신체강화형 개방자라 생각했지만, 그 순간이동을 보며 확신이 들었었다.
걸어오고 있는 남자가 누군지 말이다.
‘다양한 능력을 개방한 것 같은 한국인 능력자. 내가 알고 있는 건 한 명뿐이다.’
다가오던 남자를 바라보던 로컨이.
“네놈.”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무기왕이냐?”
* * *
뜨끔.
가면을 쓰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적어도 당황한 얼굴은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예리한데.
사실 아까 비전하며 이쯤이면 들켰겠다 예상은 했었다.
아무리 한국 헌터청에서 7급이라도 해줬더라도 직접 눈으로 본 것까지 조합하면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한 부분이었다.
“인간이 개방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뿐이다. 그런데도 네놈은 말도 안 되는 속도와 완력, 거기다 순간이동까지 사용했었지.”
굳이 설명까지 해주는 로컨에.
보답하는 의미로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 구석으로 살포시 던져놨다.
몰래 코뉴의 콜렉션에서 뽀려온 거다 보니 멀쩡한 상태로 돌려주어야 했다.
“생각도 못 했군. 런던에 눌러앉아 있다가 구울 사태에 개입했을 줄은.”
“정확하십니다. 눌러앉아 있던 건 아니지만요. 아닌가? 맞나?”
어깨를 으쓱이자 로컨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졌다.
“1급으로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래도 되는 건가?”
“뭐가요?”
“난 헌터청의 청장이다. 일개 1급 나부랭이가 타국의 청장과 대적하고도 뒷감당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가만 보니 눈치만 빠르지 양심이나 그런 건 전혀 없는 자식이었다.
“얌전히 입국한 사람 먼저 죽이려고 했던 놈이 할 말은 아니잖아.”
나이가 꽤 있어 보여 해줬던 반존댓말도 거두어냈다.
그럴 가치가 없는 놈인 듯했다.
“거기다 넌 자국 대통령까지 죽이려 한 반역자 놈인데 내가 무슨 뒷감당을 해. 반역자 뚝딱 해치운 착한 조력자 입장이지.”
“그건 이제 곧 사라질 이야기지.”
“오…?”
웃으며 로컨을 바라봤다.
자신의 강함에 엄청난 자신감을 가졌기에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음?
로컨의 주먹에서 정체불명의 수증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치 주먹이 급속도로 달궈지는 모양새였다.
“무기왕이라…. 워낙 유명 인사라 네놈이 나왔던 동영상을 전부 봤었지.”
수증기를 흩뿌리며 로컨이 걸어오기 시작했다.
입꼬리는 양쪽의 귀까지 길게 찢어진 채였다.
“그럼에도 내가 왜 물러서지 않는지 궁금하지 않나?”
“별로 안 궁금한데.”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나도 멈췄던 걸음을 옮겼다.
“왜냐하면 나랑 똑같은 생각일 거 같거든.”
“…?”
의아한 표정을 짓는 로컨에 말을 이어갔다.
“동영상을 보고도 지금 싸우러 온다는 건 날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해서잖아. 안 그래?”
어느 정도 서로 간의 거리가 좁혀진 시점, 마주 오는 로컨을 향해.
“나도 그래. 아무리 생각해봐도 머릿속에서 너한테 지는 그림이.”
밝은 미소를 그려주었다.
“전혀 그려지지가 않거든.”
“건방지구나!”
땅을 박차며 달려오는 로컨.
나 역시 속도를 올리며 주먹을 치켜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