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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43화 (343/473)

343화. 철권의 로컨

아이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솔직히 궁금했었다.

아일랜드에서 무적이라 불려지는 로컨은 얼마나 강할지 말이다.

그리고 지금 궁금했던 바를 몸으로 직접 느끼는 중이었다.

쐐에에에엑!

로컨의 주먹이 귓불을 스치며 지나갔다.

등 뒤에선 조금 전 스쳐 지나간 주먹의 후폭풍이 몰아쳤다.

아찔하네.

면도칼을 꺼낸 상태임에도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는 수준의 주먹.

속도만 놓고 봤을 땐 그리스에서 만난 우카론보다도 우위에 있었다.

그 괴물보다 빠르다니.

몸에서 피어나는 저 수증기가 뭔가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수증기는 늘어났고 그에 비례해 로컨의 스피드도 올라갔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증기의 효과는 한 가지 더 있는 듯했다.

촤자자작!

몸을 숙이고 로컨을 지나치며 면도칼을 빠르게 그어냈다.

“쯧.”

혀를 차며 뒤를 돌아봤다.

아까와 다를 것 없는 결과였다.

“또 간지러운 공격이냐?”

로컨이 몸을 털어내며 몸을 돌렸다.

아예 통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내가 그은 대로 로컨의 피는 확실히 흩날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어떻게 생겨 먹은 몸뚱인지 약간의 생채기를 제외하곤 효과적인 상처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안 들어가네.

피부엔 확실히 닿았지만 생각했던 것의 1/5조차 날이 들어가지 않았다.

몸을 둘러싸고 있는 저 수증기가 날의 진행을 막는 기분이었다.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도망치기만 할 거냐.”

목을 풀며 로컨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저렇게 말하고 있지만 로컨도 조바심이 나고 있는 듯했다.

전투가 시작되고 아직까지 날 한 대도 때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쥐새끼라도 불러도 되겠어? 아마 평생 한 대도 못 때릴 텐데. 네 살 깎아 먹는 거지.”

“허.”

헛웃음을 터뜨린 로컨이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미천한 데몬과 다를 게 전혀 없구나.”

무슨 말인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사이.

로컨의 몸이 붉게 변하는가 싶더니 방금까지완 비교가 되지 않는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수증기는 뿜어진 뒤 공기로 흩어지는 게 아닌, 조금씩 퍼지며 주변을 잠식해나가는 중이었다.

“놈들은 날 마주해도 항상 덤비더군. 상대와의 격차조차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채 말이야. 그건 뭐랄까. 횃불로 뛰어드는 불나방을 보는 기분이었어.”

불나방까지 간다고.

쥐새끼부터 불나방까지 동물농장이라도 한편 찍을 기세였다.

“대충 네 무기에 뭐가 있는지는 알고 있다. 그중 검 종류의 공격은 나한테 안 먹힌다는 걸 알고 있을 테고… 남은 건 푸른색 비늘 정도인가?”

생각보다 세심한 새끼였다.

그런 걸 보고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다니.

무기 중 아주 일부분이긴 했으나 칭찬해줄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거 어쩌지? 나의 몸엔 타격기 역시 먹히지 않을 텐데. 이제 어떤 공격을 할 테냐? 아니면 검은 연기의 날개를 꺼내 도망이라도 칠 게냐?”

낮이라서 꺼내고 싶어도 못 꺼내 이 새끼야.

어느새 홀을 가득 채운 수증기를 둘러봤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게 마치 자욱하게 낀 안개 같았다.

“넌 이 수증기가 다 채워지기 전에 도망쳤어야 했다. 네가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어.”

덩치부터해서 처음엔 호탕한 느낌이었는데.

생각보다 치사한 새끼였다.

홀에 수증기가 세팅될 때까지 말을 걸다니.

“그럼 죽어라.”

로컨의 목소리가 완전히 흩어지기 직전.

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로컨의 주먹이 눈앞으로 가까워져 왔다.

허세는 아닌지 확실히 빨라진 스피드.

“열심히 피해 보거라!!”

귀를 얼얼하게 만드는 파열음과 함께 로컨의 주먹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그때마다 얼굴로 뜨거운 증기의 온도가 느껴졌다.

아주 제대로 달궈진 느낌이었다.

“왜 아까처럼 공격하지 않는 거냐! 커터칼 같은 무기라도 휘둘러야 하지 않겠나!”

계속 느끼지만 말이 참 더럽게 많은 인간이었다.

말을 안 하면 힘을 낼 수 없는 건가 의심이 될 정도로 말이다.

“사실 생각하고 있었거든.”

“어리석긴! 생각한다고 없는 방법이 생겨나더냐! 넌 무슨 수를 써도 날 이길 수 없다!”

파아앙!

뒤로 도약하며 뻗어오는 주먹을 피해냈다.

“아니 그거 말고. 널 어떻게 박살내야 그 자존감을 산산조각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었어.”

“입 닥쳐라! 주둥이만 살아선!”

다시 한번 쏘아지려는 로컨을 보며 결정을 내렸다.

타격기로는 자신을 절대 상처 낼 수 없을 거라 확신한 로컨.

그런 건방진 소리를 들으니 뭐랄까.

골고루 두루 쳐서 묵사발을 내는 방식으로 끝내주고 싶었다.

“체력이 다하기라도 한 거냐! 그렇다면 으깨져 죽어라!!”

이마로 쏘아지는 주먹을 응시했다.

수증기를 제대로 머금은 건지 주먹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까 날 한 대도 못 때릴 거란 말 취소.”

[유탈라스 - 동기화]

[전신 의태 - 갑주]

쩌어어엉!!

이마로 충격이 가해짐과 동시에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후폭풍으로 주변에 있던 수증기가 넓게 흩어진 건 물론이었다.

드드드득!

주먹을 버텨내며 고개를 들었다.

“!!”

놀란 듯 커지는 로컨의 눈동자.

자주 봐온 눈동자라 로컨이 무언가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의문 가득한 눈동자였다.

“빠른 건 인정.”

“뭐…?”

“그런데 타격이 안 먹힐 거라 자부한 그 몸뚱아리는.”

스아아아아…!

남은 비늘과 수리검으로 끌어올려진 힘을 모두 오른손으로 집중시켰다.

“인정 못 하겠네.”

로컨은 우카론이 아니었다.

상처 입어도 대미지를 흡수하고 다시 회복해버리는 능력따윈 없었다.

“헛소리!!”

“헛소린지 아닌지는.”

로컨이 다시 무언가를 하기 전.

뒤로 쭉 젖혔던 주먹을 로컨의 상체로 힘껏 뻗어냈다.

“맞아보면 알겠지.”

콰아아아아앙---!!

* * *

벽을 몇 개나 뚫고 날아온 걸까.

간신히 멈추며 기대어진 몸에 로컨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든 몸을 추스르려고 했지만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푸하… 쿨럭!”

오만상을 찌푸리며 간신히 숨을 쉰 결과.

몸에서 끌어올려진 피가 입 밖으로 쏟아져 내렸다.

“크하아악!”

끊임없이 쏟아지는 피에 로컨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온몸의 근육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이 무슨…!’

간신히 멈춘 피를 닦아내며 로컨이 입술을 깨물었다.

한 대.

백운에게 제대로 맞은 건 단 한 대뿐이었다.

그럼에도 몸이 이 지경까지 부서진 것이었다.

- 촤자자작!

백운이 이리저리 피하며 면도칼을 그어댈 때까지만 해도 로컨은 여유로웠었다.

속도와 반응속도, 몸의 유연함은 확실히 놀랄 정도였지만 그뿐이었다.

최악의 상성.

백운의 강점은 엄청난 강도를 가진 로컨의 신체 앞에선 무용지물했다.

그렇기에 빠르게 움직이는 백운은 언젠가 지칠 테고, 그때가 되면 천천히 갖고 놀다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 쩌어어어엉!

잘못됨을 느낀 건 백운이 이마로 로컨의 주먹을 버텨냈을 때였다.

주먹이 닿는 순간 로컨은 확신했었다.

이걸로 싸움은 끝났다고 말이다.

수증기를 풀 차징한 주먹이었고 강철까지 한 방에 뚫어버리는 주먹이었기에 든 확신이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예상을 깨고 백운은 조금의 밀림도 없이 이마로 공격을 버텨내 버렸다.

“말도… 안 된다.”

로컨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눈동자론 붉은 핏줄이 올라오고 있었다.

“말이 안 된단 말이다!!”

로컨이 거칠게 소리 지르며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백운이 그렇게 버텨냈다는 건 여러 가지를 의미했다.

스피드와 힘, 그리고 강도까지.

모든 면에서 백운이 로컨을 상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덜 맞았나. 뭐가 말이 안 돼.”

벽이 무너지며 생긴 먼지구름 사이로.

백운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 홀에 등장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유 넘치는 걸음이었다.

빠드드득!

세게 다물어진 로컨의 이에서 불협화음이 들려왔다.

‘이건 대체 무슨 기분이냐…!’

다가오는 백운을 보고 있자니 뭐랄까.

몹시 혼란스러웠다.

지금 몸으로 느껴지는 이 감각과 기분이 대체 뭔지 알 길이 없었다.

- 사, 살려줘!

데몬이든 인간이든 항상 위에서 짓밟아온 로컨이었다.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목숨을 구걸해 본 적이 없으며, 단 한 번도 올려다본 적 역시 없었다.

겁에 질려 공포에 떠는 건 언제나 상대였으며 여유 넘치는 얼굴로 적을 내려다보는 건 언제나 로컨의 역할이었다.

덜덜.

’!?’

낯선 감각에 로컨이 고개를 내렸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양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내가… 떤다고?’

입가로 헛웃음이 나왔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꿈에서도 안 나올 만큼 현실성이란 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꽈아아악!

자신이 떨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할 수 없었기에.

로컨이 주먹을 움켜쥐며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온 백운을 바라봤다.

지금 당장 백운을 박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움직이지 마.”

백운의 말에 로컨의 입가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안쪽이 엉망이 되어버렸으니 움직이면 위험하다는 것쯤은 로컨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감히 저따위 놈이 그런 걱정을 해주다니.

어이가 없다 못해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난 철권의 로컨이다! 건방 떨…!?”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

로컨이 말을 끝마치려는 순간.

푸른 비늘을 두른 주먹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로컨은 방금 한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백운은 걱정 따윌 해준 게 아니었다.

애초에 눈앞의 무기왕이란 인간은.

“때리기 힘드니까.”

자신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 * *

벽에 처박혀 축 늘어진 로컨을 바라봤다.

뭐 하는 놈이지.

이마에 정확히 꽂으려고 움직이지 말라고 한 건데 갑자기 지 이름을 외친 것도 모자라 건방 떨지 말라고 말한 로컨.

앞뒤 말의 맥락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녀석이었다.

뭐 정신없으면 그럴 수도 있지.

어깨를 으쓱이며 빙글 몸을 돌렸다.

어쨌든 목표했던 대로 로컨을 슥삭했으니 거치적거렸던 장애물은 사라진 셈이었다.

그나저나 이 인간 거품이 심했네.

강하다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한국의 장관 강태황과 비교될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회귀 전에 강태황의 힘을 봤었기에 잘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어디 보자.

품에서 챙겨놨던 지도를 꺼냈다.

아이리가 떠나려는 내게 챙겨준 것이었다.

싸움이 끝나면 이 루트를 통해 나오라고 말이다.

대충 하수구를 통해 나가면 되는구만.

길을 확인하고 아까 처음 들어왔던 홀로 걸음을 옮겼다.

가기 전에 벗어놨던 우리 코뉴의 가면을 챙길 생각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쓰고 나가야… 에?

주륵.

이마로 땀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나름 소중히 벗어놨었는데.

가면은 날아온 벽돌에 박혀 처참히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저벅.

잠시 가면을 바라보다 머리를 긁적이며 몸을 돌렸다.

“미, 미안. 코뉴.”

닿지 않을 사과를 건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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