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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49화 (349/473)

349화. 쿨란의 번견

“좋아요.”

귓가로 들려오는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에 쿠훌린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한 거지.’

조금 전 쿠훌린은 뒤에 널브러진 장군을 대신해 당신을 지켜주겠노라고 말했었다.

물론 말하면서도 크게 기대하진 않았었다.

쿠훌린의 현재 신분은 이름 없는 몰락 가문의 아들일 뿐이었다.

국가의 대장군을 죽여놓고 대신 지켜준다고 말해봐야 씨알도 안 먹힐 게 뻔했기 때문이다.

‘살려주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좋아요 라고?’

의문 섞인 얼굴로 보고 있자 쿨란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런 얼굴로 쳐다보죠? 이 대답을 원한 게 아니었나요?”

“아뇨. 맞습니다.”

쿠훌린은 현재 상황이 약간 의아했다.

공주야 나이가 어려 치기에 저런 말을 했다 치더라도 주변 신하들조차 전혀 말리지 않다니.

자기가 죽인 게 나라의 대장군인지 골칫덩이 반란군이지 헷갈릴 정도였다.

저벅.

의자에서 일어난 쿨란이 쿠훌린에게 걸어갔다.

오늘 전까진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쿨란은 알 수 있었다.

저 남자라면 대장군과 달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악행을 일삼지 않는 건 물론 대장군보다 자신을 훨씬 잘 지켜 줄 거란 사실을 말이다.

사아아아…!

쿨란은 그런 눈을 가지고 있었고 왕을 포함한 신하들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토 달지 않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대장군은 나라에 있어서도 고삐 풀린 폭군 같은 존재였던 터라 더더욱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인 게 아니에요.”

“…?”

더 의아해진 얼굴의 쿠훌린에 바로 앞까지 다가간 쿨란이 말을 이었다.

“이건 벌이에요. 당신이 죽인 건 한 나라의 대장군. 그 죄는 결코 가볍지 않기에 절 지킴으로써 속죄하라는 거죠.”

“알겠습니다.”

막힘없는 대답에 쿨란이 미소를 머금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나 쿨란과 병사들 앞에서 전혀 움츠러든 기색이 없는 얼굴.

여기에 저런 대장군보다 더 잘 지켜주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뻔뻔함까지.

쿨란은 처음부터 이런 쿠훌린이 싫지 않았었다.

“그래서.”

쿨란이 다른 신하들이 듣지 못하도록 최대한 몸을 낮췄다.

“절 언제까지 지켜 줄 생각인가요? 이건 당신이 선택하세요. 전 권력을 이용해서 평생 누군가를 억지로 잡아둘 생각은 없거든요.”

질문하고 가만히 쳐다보는 쿨란.

그런 쿨란을 조용히 올려다보며 쿠훌린이 입을 열었다.

“제가 죽는 순간까지 지켜 드리겠습니다. 제가 지키는 이상 공주님이 저보다 먼저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요.”

시원하게 뻗어 오는 쿠훌린의 대답에 쿨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죽는 순간까지라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라 약간 벙찌고 만 것이었다.

싱긋.

말을 잃은 쿨란을 보며 쿠훌린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쿨란과 마찬가지였다.

쿠훌린 역시 쿨란이 싫지 않았다.

그리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쿨란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 * *

두 사람의 첫 만남 이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평화로웠던 나라엔 이상한 현상이 생겨나고 있었다.

영롱한 빛을 가진 검은 얼음과 함께 바이킹이 날뛰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늘도 해안가 마을이 습격당했어요.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고요.”

슬픈 표정을 지은 쿨란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던 바이킹이 어째서 적으로 돌변한 것인지 말이다.

“병사들도 많이 죽고 있어요. 살아 돌아온 이의 말로는 이번 바이킹 역시 한 명 한 명의 힘이 엄청났다고 해요. 인간을 넘어서는… 아. 쿠훌린도 만났었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쿠훌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행사 참여를 위해 쿨란과 나갔을 때 바이킹과 맞닥뜨린 것이었다.

당시 쿨란은 행사에 참여 중이었기에 바이킹을 못 봤지만, 쿠훌린은 수십의 바이킹과 전투를 벌였었다.

“그놈들도 가슴 부분에 검은 얼음을 두르고 있었나요?”

“엄청난 한기를 가진 얼음이었어. 조금만 오래 붙어있어도 오한이 올 정도였고.”

쿠훌린이 당시에 본 바이킹의 모습을 조용히 읊조렸다.

오랜 시간 함께하며 친구보다 가까워진 둘의 사이.

둘만 있을 땐 편하게 대해달라고 쿨란은 부탁했었다.

“얼음이 바이킹을 조종하는 걸까요?”

“그렇다고 하기엔 정신이 너무 멀쩡했어. 바이킹의 긍지니 뭐니 떠들어대기도 했었고. 뭔가 있다면 조종보단 협력 관계가 더 어울릴 거 같은데.”

쿨란이 옆에 놓여 있던 지도를 펼쳤다.

어느 해안가에 붉은 점이 찍혀진 지도였다.

“병사들이 바이킹의 출몰 지점을 중심으로 추적한 위치에요. 멀쩡했던 바이킹도 저곳에 다녀오면 괴물처럼 변한다는 목격담도 있었고요.”

“며칠 전에 군대가 파견된 곳이네.”

추적한 해안가에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 있다고 판단한 왕은 커다란 규모의 군사를 파병했었다.

뭐가 있든 단숨에 끝장을 내버리겠다는 심산이었다.

“… 어제부터 군대와 연락이 끊겼어요. 다른 해안가로 병사들 몇 명의 시체가 떠내려왔고요. 온몸이 꽁꽁 얼어있었어요.”

표정이 굳어버린 쿨란을 보며 쿠훌린이 생각에 잠겼다.

꽤 크게 일으킨 군사였음에도 이 지경이라면 앞으로 추가로 병력을 보내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성 밖으로 나갈 일 없지?”

“네. 한동안 행사는 전부 취소됐으니까요.”

“그럼 성 안에만 있어. 어디 나가지 말고.”

여기까지 말하고 몸을 일으키는 쿠훌린에 쿨란의 눈이 커졌다.

“쿠훌린 설마…!”

“별수 없잖아. 계속 사지로 병사들을 몰아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지만….”

쿨란이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라를 통틀어도 쿠훌린의 강함에 근접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강함으로 나라와 공주 쿨란을 지켜내며 최강이라 불리고 있는 쿠훌린.

누군가에게 질 리 없다는 건 알지만 미지의 위험이 도사리는 곳으로 홀로 보낸다는 게 마음이 불편했다.

“알잖아. 난 안 지는 거. 금방 갔다 올 테니까.”

걱정말라고 웃어 보인 쿠훌린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숨 푹 자면서 성에 꼭 붙어있으라고.”

* * *

“….”

쿠훌린이 멍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했다.

성을 떠났다 돌아온 지 이틀이 지난 시점이었다.

- 바이킹을 우습게 보지 마라! 우린 신의 힘을 받았다!

도착한 해안가에는 예상했던 대로 엄청난 수의 바이킹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검은 얼음에 잠식된 건 물론이었다.

- 콰득…!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존재했기에 놈들을 박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단지 전투가 끝난 후 쿠훌린은 이상함을 느꼈었다.

처음부터 자신이 올 걸 알고 있었던 바이킹과 바이킹들이 신이라 부른 녀석의 모습이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번견이여.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바이킹이 쿠훌린을 불렀다.

- 네 패배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한걸음에 성까지 달려온 쿠훌린.

숨을 헐떡이는 쿠훌린 앞엔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투둑.

쿠훌린은 들어오면서 고개를 갸웃거렸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지내온 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은 산산조각이나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사방이 검은 얼음으로 잠식된 상태였다.

검은 얼음의 주인이 직접 이곳에 온 것이었다.

그리고.

“내… 잘못이다.”

지금 눈앞의 검은 얼음 속엔 숨이 끊어진 공주 쿨란이 갇혀 있었다.

초점 잃은 두 눈동자를 희미하게 뜬 채였다.

“갔으면 안 됐는데.”

얼굴을 일그러뜨린 쿠훌린이 얼음으로 손을 뻗었다.

닿자마자 미칠 듯한 한기가 손을 타고 흘러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그런 걸 느끼기엔 심장을 시작으로 온몸이 타들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지키지 못했구나.”

두 번째 겪는 상실감과 후회의 고통에 쿠훌린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고 있기를 잠시.

스윽.

고개를 돌린 쿠훌린이 바닥에 남은 얼음의 흔적을 바라봤다.

흔적은 하나의 얇은 길 모양을 하고 있었다.

마치 쿠훌린에게 잘 보고 따라오라는 듯이 말이다.

“가주지.”

몸을 돌린 쿠훌린이 붉은 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죽음으로 향하는 길일 확률이 높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패배한 번견이 도달한 장소는 죽음뿐이었다.

“길동무로 삼아주마.”

* * *

“결국 길동무로 삼는 것조차 실패했지.”

쿠훌린의 이야기를 들으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는 내가 갈라드의 도끼에서 본 것들이었다.

수많은 바이킹이 기다리고 있는 최후의 동굴로 향한 쿠훌린.

마지막 전투를 치른 후 쿠훌린은 결국 칼마의 얼음에 꿰뚫리고 말았었다.

“내 창은 심장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곳으로 쏘아지지. 애초에 심장이 없는 놈이라면 소용없겠지만 말이야.”

“칼마는 심장이 있었죠.”

“맞아. 그놈은 심장이 존재했지. 하지만 심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곳까지 도달하는 건 또 다른 문제더군.”

칼마라고 해서 상처를 안 입는 건 아니었다.

분명 공명에서 칼마는 심장 쪽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었다.

“심장으로 가까워질수록 검은 얼음의 강도는 더 강력해진다. 힘이 부족했던 내 창은 그걸 뚫지 못하고 중간에 멈춰버렸고 말이야. 마지막 남은 걸 다 털어 넣었던 상태라 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도 없었고.”

말을 들으며 턱을 문질렀다.

공명 때부터 약간 의아한 점이 하나 있었다.

방금 쿠훌린이 말했던 대로 칼마의 검은 얼음은 말도 안 되는 재생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공명에서 본 심장 부근의 얼음은 재생되지 않았었다.

“공명으로 봤을 때 녀석의 심장 근처는 재생되지 않았었어요. 쿠훌린 님은 혹시 이유를 알고 계신가요?”

칼마를 박살내는데 중요한 정보였다.

쫄따구들을 잠식하는 능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놈의 본체에서 가장 까다로운 건 둘러진 얼음과 그 얼음의 무한한 재생력일 테니까.

“이유는 간단해.”

쿠훌린이 대답 대신 등에 메고 있던 창을 꺼내 들었다.

“심장을 꿰뚫는 가시의 창, 게이볼그. 심장을 찾아내는 것 말고도 내가 사용자가 되며 생긴 힘이 하나 더 있다.”

조용히 쳐다보고 있자 쿠훌린이 말을 이었다.

“상처 입힌 건 치유되지 않는다. 그 대상이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회복하지 못했던 거군.

칼마가 S급을 넘어서는 데몬이든 뭐든 그런 건 게이볼그 앞에선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자 그럼…. 남은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하기로 하고.”

쿠훌린이 내 쪽으로 게이볼그를 건네왔다.

“가지러 온 걸 가져가라.”

세상 쿨하게 건네주는 쿠훌린을 멍하니 바라보다 아까 해주고 싶었던 말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쿠훌린 님은 아무것도 못 지킨 게 아니에요.”

“…?”

“오랜 세월이 지나고 쿨란 님의 국가가 있던 땅엔 아일랜드라는 나라가 세워졌어요. 아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죠. 지금도 위기에 처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무사하고요.”

손을 들어 내 심장 쪽을 가리켰다.

“아일랜드가 지금까지 무사할 수 있었던 건 쿠훌린 님이 칼마에게 입힌 상처 덕분이었어요. 그게 아니었다면 아일랜드는 진작 검은 얼음에 잠식됐겠죠.”

“….”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는 쿠훌린.

“그리고 약속할게요. 그 얍삽한 얼음쟁이 새끼의 심장.”

건네어진 게이볼그를 움켜쥐었다.

“완전히 뚫어버릴게요.”

사아아…!

공간이 흩어지기 시작하고.

“제대로.”

날 바라보는 쿠훌린의 입가로 시원한 미소가 그려졌다.

“먹여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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