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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50화 (350/473)

350화. 코즈믹 호러

공명에서 빠져나오자 멈췄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아.”

피부로 느껴지는 아일랜드의 찬바람.

한숨을 내뱉자 하얀 입김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남은 이야기라.

마지막 순간 쿠훌린은 말했었다.

남은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하자고 말이다.

뭔가 더 남아있을 거 같긴 해.

공명이 끝나긴 했지만 쿠훌린의 전부를 알게 된 건 아니었다.

내가 공명으로 본 건 쿠훌린이 아일랜드 땅에서 쿨란을 만나 칼마를 상대하기까지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쿠훌린이 어떻게 이런 강함을 가질 수 있었는지, 게이볼그란 무기는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지금까지 공명과는 약간 형태가 다르긴 하지만… 뭐.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알고 싶다고 해서 당장 알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쿠훌린이 얘기한 대로 흘러가다 보면 알게 될 기회가 생길 것 같았다.

지금은 현재에 집중해볼까.

“크라아아아!”

시선을 올려 얼음에 뒤덮인 데몬들을 바라봤다.

공명으로 들어가기 직전부터 허공에 떠 있던 놈들이었다.

“다시 보니까 색다르네.”

놈들의 몸을 뒤덮고 있는 검은 얼음.

원래도 꼴 보기 싫었지만 얼어붙은 쿨란 앞에서 쿠훌린이 지었던 표정을 보고 나니 뭐랄까.

아주 그냥 가능한 산산조각 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얼음쟁이 친구. 만약 보고 있으면 잘 들어.”

쿨타임으로 들어가기 직전인 라의 문양으로 힘을 주기 시작했다.

“원래는 무기만 찾고 갈 계획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너.”

일렁이는 불꽃을 몸 밖으로 밀어내며 입가로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조건 죽이고 간다.”

푸화아아아악!

* * *

“…!”

칼마가 섬찟한 기운에 두 눈을 떴다.

조금 전 잠들려는 칼마의 귓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었다.

쏟아지는 잠을 단번에 달아나게 하는 목소리였다.

‘다 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산을 지키라고 보냈던 데몬들의 기운이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한 가지.

데몬은 물론 자신이 직접 떼어낸 얼음 조각까지 완전히 소멸해버린 것이었다.

‘내 얼음을 없앴다고…?’

얼음 속에서 칼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명확히 느껴졌지만 있을 수 없는, 정확히는 생겨선 안 되는 일이었다.

절대 소멸하지 않는 자신의 얼음이 사라지다니.

태초의 존재인 칼마가 처음으로 겪어본 상황이었다.

- 심장을 꿰뚫는 창.

쿠훌린의 게이볼그를 떠올린 칼마가 고개를 숙여 휑하니 뚫린 심장 부근을 바라봤다.

지금처럼 얼음이 완전히 소멸한 건 아니지만 칼마를 당황하게 했던 또 다른 기억이었다.

‘전혀 치유되지 않았구나.’

쿠훌린을 죽인 후 칼마는 곧장 세계에서 모습을 감췄었다.

혼란스러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자신의 몸이 알 수 없는 법칙에 막혀 재생되지 않는 것은 물론 한낱 인간과의 싸움으로 이렇게 많은 힘이 소진되다니.

거기다 붉은 창이 심장을 향해 뻗어 오는 순간 죽음을 떠올리게 했던 정체불명의 감각.

그 감각이 대체 무엇인지 칼마는 도통 납득할 수가 없었다.

‘감히.’

그렇기에 창을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봉인한 것이었다.

찾아도 절대 꺼낼 수 없도록 끝없이 거대해지는 얼음으로 둘러놨었고 말이다.

으득.

칼마가 입술을 깨물었다.

거슬리는 기운을 가졌지만 아주 미약하고 보잘것없는 단 한 명의 인간이었다.

직접 나서지 않은 채 크게 신경쓰지 않은 이유였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검은 얼음을 소멸시킨 것도 모자라 자신에게 알 수 없는 감각을 선사해 준 창까지 꺼내다니.

더 이상 가만히 놔둘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아주 조금은 더 살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의 얼음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인간들을 떠올렸다.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얼음에 다 집어삼켜져 가라앉았을 테지만, 그 남아있던 약간의 시간마저 이젠 사라진 셈.

‘원망하려거든.’

칼마가 웅크리고 있던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고.

바다 아래 조용히 자리 잡고 있던 엄청난 양의 얼음이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날 잠에서 깨게 만든 그 인간을 원망하거라.’

혹한의 재앙 칼마.

오랜 잠에서 깨어난 칼마가 바다 위 아일랜드를 노려보았다.

‘집어삼켜주마.’

* * *

‘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송유빈이 모니터를 응시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달콤한 휴일.

아무런 계획도 없이 뒹굴거리며 볼 거 없나 스트리밍 채널을 뒤지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시청자 수가 급증한 채널이 송유빈의 눈에 들어왔었다.

무려 무기왕 등장!? 이라는 얼탱이 없는 낚시 제목을 가진 채널이었다.

- 감히 무기왕 이름을 팔아? 혼쭐을 내줘야겠구만!

무기왕의 찐팬 송송으로서 거짓말이면 아주 박살을 내줘야겠다 생각하며 채널에 입장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일랜드 로스 캐슬 인근이라고 간략하게 적힌 채널이 비추고 있는 건 커다란 산뿐이었다.

무기왕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제목을 저딴 식으로 짓다니.

화력을 뿜어내기 위해 손을 푼 후 키보드 위로 손을 올렸었다.

그리고 현란한 욕을 뿜어내기 직전.

- 콰앙!

엄청난 굉음이 울리며 황량하기 그지없었던 산이 무너져 내렸다.

뒤이어 말도 안 되는 불꽃이 뿜어지기도 했다.

# 보셨죠? 거짓말 아니라니까요!

다급한 채널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유빈이 아니더라도 채팅은 국가 영웅의 이름으로 낚시하냐고 쌍욕이 도배되던 중이었다.

# 제가 방송을 그냥 켰겠어요? 검은 연기의 날개가 저 산으로 내려앉는 걸 봤다니까요!

채널 주인은 요즘 급유명해진 검은 얼음을 보기 위해 아일랜드로 간 스트리머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무기왕을 발견한 것이었고 말이다.

‘저 불꽃은 분명…!’

등장했던 영상을 수십 번 돌려보며 무기왕의 특징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가장 큰 관심 순위는 단연코 무기왕이 사용하는 무기들이었는데.

저 불꽃 역시 리스트의 애매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이었다.

- 무기왕의 무기일까?

뒤에 물음표가 붙은 이유는 간단했다.

무기왕이 직접 불꽃을 사용하는 건 영상에 담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 서울 한복판에서 불꽃이 뿜어졌다느니 하는 목격담뿐이었다.

@ 역시 불꽃도 무기왕의 무기였군요!

@ 우리가 맞을 거라고 했잖아요!

@ 뭘 맞을 거라고 해. 뒤에 물음표 붙여 놓고선.

말만 했다 하면 싸우는 채팅창을 뒤로하고.

얼굴이 시뻘게진 송유빈이 콧김을 내뿜기 시작했다.

‘저기서 뭐 하는 거지.’

심심하다고 아일랜드까지 가 산을 때려 부수며 태운 건 아닐 터였다.

# 그런데 아까 들린 건 데몬의 울음소리 아니었나요? 잘못 들었나?

@ 데몬 울음소리면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 그러게. 스트리머 죽는 거 아님?

# 그런 재수없는 소리하면 강퇴합니다.

송유빈도 무언가 소리를 듣긴 했었다.

다만 촬영 중인 곳과 거리가 멀어 제대로 들리진 않았었다.

‘이걸 어떡한담.’

송유빈이 빠르게 공중파 채널을 돌려보았다.

아직 관련된 방송이 나오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방송국에 알려야 돼. 말아야 돼.’

알리기엔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달콤한 하루였다.

조금 전 스트리밍으로 나온 게 전부라면 굳이 알릴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고민된…?’

이마를 짚은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송유빈.

무언가를 발견한 송유빈이 모니터로 몸을 숙였다.

# 어… 어! 아일랜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갑자기 모니터의 영상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 콰아아아아아아----!

“커억…!”

해안가에서 거대한 파도가 일며 정체불명의 얼음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너무 거대해 코즈믹 호러를 연상케 하는 광경.

입을 벌리고 있다 정신차린 송유빈이 호다닥 옷을 챙겨 입었다.

지금은 방송할까요, 말까요를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빨리…!’

방송국으로 전화를 건 송유빈이 빠르게 집을 빠져나갔다.

* * *

“시팔…?”

영상 매체가 발달한 만큼 최대한 욕을 줄이자고 다짐했었다.

언제 어디서 쌍욕 박는 게 박제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콰아아아아아----!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표현할 단어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발생한 지진에 혹시 방금 산을 때려 부숴서 그런 건가 걱정했었는데.

그게 원인이 아니었다.

뭐야 저게.

엄청난 양의 검은 얼음이 바다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덕분에 성난 바다는 태풍이라도 온 것처럼 미친 듯이 요동치는 중이었다.

바람 한 점 없이 달빛만이 존재하던 평화로운 밤에 저런 파도와 얼음이라니.

보고 있으면서도 현실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역시 바다 밑이었나.

청새치를 시작으로 타룬과 아까의 데몬들까지.

계속 바다에서 등장하는 데몬들에 아일랜드 아래를 살펴봐 달라고 요청할 생각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등장에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만 말이다.

드드드드득!

끝도 없이 솟아오르는 검은 얼음은 일반적인 모양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방이 뿔처럼 솟은 건 기본으로 가지각색의 흉측함을 지닌 채 아일랜드를 감싸듯 올라오는 중이었다.

[이카로스 - 칼데아 윙]

하늘로 올라와 시야를 넓혔다.

얼음이 올라오는 건 로스 캐슬이 있던 해안가뿐만이 아니었다.

검은 얼음은 주변 모든 바다에서 등장 중이었다.

“허어.”

공명에서 봤던 얼음은 일부분이라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로 적은 양이었다.

아마 칼마가 있는 곳까지 쿠훌린이 비집고 들어간 후의 기억이었던 것 같았다.

이걸 다 뚫고 들어간 건가.

지금 나타난 얼음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일랜드란 한 나라보다 거대한 크기.

얼음 괴수 정도로는 한참 부족했다.

멈췄다…?

모습을 다 드러내서일까.

솟아오른 검은 얼음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달빛을 받으며 서늘한 흑빛을 반사하고 있는 검은 얼음.

공중에 머무른 채 조용히 검은 얼음을 응시했다.

크기가 말도 안 되는 만큼 당장 먼저 움직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드드드드…!

다시 한번 요동치는가 싶더니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얼음.

아주 잘게 쪼개어지던 얼음이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촤아아아아아악!

작은 조각이 되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달빛이 비쳐 마치 빛의 비가 내리는 듯한 광경.

사방에서 내리는 얼음 조각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샹.”

지금까지 봐온 게 있기에 저게 무엇을 위한 행동인지 짐작이 갔다.

얼음에 잠식되어 데몬으로 변했던 청새치와 타룬 부대.

지금 뿌려져 내려앉고 있는 얼음 조각도 같은 목적일 터였다.

“이렇게 끌어내렸던 거구나.”

칼마 때문이란 건 알았지만 그 방법은 몰랐었는데.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이 바로 회귀 전 아일랜드가 멸망한 날의 모습일 것 같았다.

다 막을 순 없다.

조각이 뿌려진 건 아일랜드 전체였다.

내가 바쁘게 돌아다닌다고 막을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칼마는 나한테 올 거다.

해안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더블린에 비하면 주변이 텅텅 빈 해안가.

저곳으로 칼마를 불러낼 생각이었다.

[앤 보니 & 메리 리드 - 리볼버]

날개를 집어넣고 리볼버를 꺼내며.

“키아아악!!”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 데몬들을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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