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52화 (352/473)

352화. 혹한의 재앙

칼마가 정면에 선 인간을 바라봤다.

정말이지 작고 가냘프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가벼운 손 휘두름 한 번만으로도 죽어버릴 것 같은 크기.

그럼에도 인간은 칼마의 심장을 뚫으러 왔노라 말하고 있었다.

‘용기는 가상하군.’

조소를 머금은 칼마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이름은?”

누군가에게 이름을 물어본 건 과거 칼마의 심장을 노렸던 쿠훌린 이후 처음이었다.

“백운.”

짤막하게 들려오는 이름에 칼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하겠지만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

그런데 어째서일까.

백운한테 묘하게 낯익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거슬리는 기운이 느껴지는 건.

칼마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길이 없었다.

오랫동안 존재하며 너무 많은 걸 봐왔고 지난 기억은 퇴색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내 한기를 견뎌내다니. 과거 창잡이 이후로 처음이구나.”

이름을 물어본 이유였다.

재앙의 본체인 칼마의 주변은 혹한 그 자체였다.

어떤 생명체든 들어오기 무섭게 한기에 집어 삼켜져 온몸이 꽁꽁 얼고 말 텐데.

백운은 그런 한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내고 있었다.

‘창은 어디로 간 거지?’

칼마가 백운의 주변을 살폈지만 자신의 심장을 노렸던 붉은 창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산을 녹여내며 손에 넣었을 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영영 사라져버린 건가.’

최소 백운이나 근처에 창이 없는 건 확실해 보였다.

“야 겁쟁이 새끼.”

“…?”

다짜고짜 날아오는 욕에 칼마가 백운을 응시했다.

“날 부른 건가?”

“그럼 여기 너밖에 더 있어?”

뻔뻔한 대답에 칼마가 눈살을 찌푸렸다.

작디작은 존재가 자신의 한기를 이겨내 쓸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머리는 돌아버린 것 같았다.

감당할 수 없는 존재를 앞에 두고서도 저딴 소리를 하는 걸 보면 말이다.

“혹한의 재앙이니 뭐니 끝판왕 향기는 풀풀 풍기면서 언제까지 숨어 있을 건데?”

“숨어있다? 나한테 하는 말인가?”

“지금 너 보면서 말하잖아. 이 얼음덩이가 네 본체가 아니란 건 알고 있거든. 어디에 숨어있는 거냐?”

칼마가 작게 호흡하며 백운을 살폈다.

분명 처음 만나는데 마치 자신의 본체를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하아.”

칼마가 생각하는 걸 멈추기로 하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오랜만에 깨어나 감상에 젖은 모양이었다.

저런 아무것도 아닌 존재와 질문을 주고받고 있다니.

생각보다 너무 많은 아량을 베푼 것 같았다.

“한기는 버틸지언정 주제를 모르는 인간아.”

칼마가 조금씩 얼음을 일으켰다.

칼마의 힘은 한기뿐만이 아니었다.

한기로 수천 년간 벼려진 검은 얼음 역시 강력한 무기였기에.

한기가 통하지 않는다면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누르면 그만이었다.

“방금 내 앞에서 저지른 오만함은.”

콰아아아아아아---!

수백 갈래의 얼음 줄기가.

“죽음으로 사죄하라.”

해안가에 서 있는 백운에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 * *

[잭 더 리퍼 - 면도칼]

날아드는 줄기를 피해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비교가 안 되긴 하네.

입에서 새하얀 입김이 뿜어졌다.

칼마의 등장과 함께 주변을 가득 채운 한기.

이전 데몬들이 나타났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

공명으로 미리 봐놔서 다행이야.

미리 봤기에 한기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고 그 덕에 몸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물론 적응한 것과는 별개로 움직임에 약간의 제약이 생기긴 했지만 말이다.

조금 어색하네. 움직이는 게.

“쥐새끼 같은 게 주제에 잘 어울리는 움직임이구나.”

쐐에에에에엑!

[도윤 - 비전 수리검]

한 다발로 몰아치는 줄기를 비전으로 피해냈다.

“얼음 뒤에 숨어있는 새끼가 말은 더럽게 많네.”

말을 건네며 날아드는 줄기를 수리검으로 부숴나갔다.

“소용없다.”

아니나 다를까 순식간에 얼음을 모아 줄기를 재생시키는 칼마.

확실히 토 나오는 재생력이긴 했다.

조금만 더.

피하고 부수고를 반복하며 시간을 끌었다.

이제 곧 라의 불꽃이 쿨타임을 끝내고 사용 가능 상태가 되기에.

이때를 기다리며 칼마를 살피는 중이었다.

이거 원 더럽게 커서.

[비전]

다시 한번 위치를 바꾸며 고개를 들었다.

너무 거대해서 구름 위까지 솟아있는 얼음덩이.

눈으로 여기저기 둘러보긴 했으나 본체가 있을 만한 장소가 짐작 가지 않았다.

바쁘게 움직이면서 보다 보니 여기가 아까 봤던 곳인지 아닌지도 헷갈렸고 말이다.

- 심장을 꿰뚫는 창, 게이볼그.

게이볼그를 꺼내면 보다 쉽게 찾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과거 얼음을 끝까지 뚫어내지 못한 채 창은 심장 부근에서 멈춰버리고 말았었다.

라의 불꽃과 같이 써야 된다.

유일하게 검은 얼음을 완전 소멸시킬 수 있는 불꽃.

라의 불꽃과 함께라면 분명 칼마의 심장에 닿을 수 있을 터였다.

“넌 나와 마주할 자격이 없다. 정확히는 가치가 없는 거겠지.”

“어디 출신이길래 겁 많다는 걸 그렇게 돌려 말해? 꽁꽁 싸매고 나오지도 않는 새끼가.”

일단 좀 부숴볼까.

[유탈라스 - 1단계 의태]

먼저 쿨타임에서 돌아온 비늘을 두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너무 거대해서 찾기 힘드니 일단 마디마디를 끊어낼 생각이었다.

게이볼그를 꺼내기 전에 작은 특이점이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행운이란 생각이었다.

콰앙! 콰앙! 콰앙!

날아드는 공격은 비늘로 막아내며 거대한 얼음 괴수를 큼지막하게 부숴나갔다.

가장 먼저 팔다리를 부수고 그 다음은 어깨, 다음으론 목과 허리를 끊어냈다.

콰아아아아!

산산조각 난 얼음덩이들이 바다로 떨어져 내렸다.

완전히 없앨 순 없어도 박살내는 건 유탈라스로도 충분했다.

“소용없다고 말했을 텐데.”

좁혀진 범위에서 다시 한번 두들기려는 찰나.

사락.

한기가 몰아치는가 싶더니 떨어졌던 얼음덩이들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부서지기 전의 몸으로 복구된 칼마.

퍼져 있던 얼음까지 모인 건지 아까보다 몸은 더 거대해져 있었다.

“쯧.”

약간 거리를 벌리며 혀를 찼다.

정말 재생력 하나만큼은 지금까지 본 놈들 중 최고였다.

“작은 존재여. 이제 뭘 더 보여 줄 생각이지?”

“아까부터 작다 그러네. 평균 키보다 크구만.”

어깨와 목을 풀며 얼음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섰다.

“너 일단 너무 크니까.”

[아이작 뉴턴 - 데모닉]

“좀 내려와 봐.”

[그라비티 디바이스]

* * *

“커어어어억…!”

송유빈이 말을 잇지 못한 채 입을 쩍 벌렸다.

생방송 중이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 고오오오오…!

보기만 해도 코즈믹 호러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얼음 데몬.

데몬은 크기만 엄청난 게 아니었다.

뿌려대는 공격이나 움직임 하나하나가 치명적이고 위협적이었다.

@ 저건 대체 무슨 급 데몬이죠…?

@ 그런 급수는 없지만, SSS급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건 진짜 재앙 수준인데요.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재앙이라 부를만큼 엄청난 데몬인데.

# 콰가가가가가가가----!

“데, 데몬이 쓰러지고 있습니다아아악!”

그런 데몬이 현재 속수무책으로 땅에 처박히고 있었다.

런던에서 무기왕이 사신들을 떨어뜨렸던 그 힘이었다.

“엄청납니다!! 단 한 명의 사람이 재앙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송유빈의 외침과 함께 데몬에게 압도되었던 채팅창도 다시 불타기 시작했다.

@ 진짜 무기왕 미쳤다.

@ 저번엔 섬 떨어뜨리더니 이번엔 구름보다 거대한 놈까지 무너뜨리네.

@ 저게 바로 대한민국 1급 헌터입니다! 여러분!

완전히 바닥에 짓눌린 데몬을 보며 송유빈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른침이 넘어가고 긴장이 안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저런 재앙 수준의 데몬을 상대하고 있는 게 단 한 명뿐이라니.

보고 있으면서도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장면이었다.

@ 그런데… 이길 수 있는 건가?

눈에 띄는 한 줄의 채팅에 송유빈이 헛숨을 들이켰다.

온라인상의 송송이었다면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달려들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거기다.

# 쿠르르르…!

마냥 근거 없이 나온 걱정이 아니었다.

무기왕이 데몬에게 행한 공격은 한 방 한 방이 압도적이었다.

강도가 높아 보이는 얼음이 산산조각이 나 바닥으로 처박힌 게 그 증거였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데몬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대미지들을 순식간에 회복해내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런 대미지도 받지 않았다는 듯이 말이다.

@ 어어…!

@ 저것 봐. 또 일어난다.

‘…!’

송유빈이 모니터로 눈을 옮겼다.

방금 채팅창에서 말했던 것처럼 데몬이 일어서고 있었다.

무기왕이 사용한 중력이 다한 모양이었다.

@ 그런데 아일랜드는 왜 아무런 지원도 안 해주나요? 다른 국가 헌터가 저렇게 혼자 싸우고 있는데.

@ 안 통하더라도 미사일이라도 같이 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면 지원형 헌터라도 투입해서 무기왕 돕게 하던지.

송유빈도 이 점이 내심 궁금했었다.

전투가 시작되고 한참이 지났음에도 무기왕을 위한 지원이 아무것도 없었다.

@ 방금 속보 떴어요. 링크 들어가 봐요.

송유빈이 링크가 띄워진 다른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짤막한 기사였기에 내용은 금방 눈에 들어왔다.

‘한기 때문에 접근이 불가능하다니.’

아일랜드에서도 가만히만 있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든 무기왕을 도우려는 것 같긴 한데 상급 헌터조차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 근처로 가면 걸음을 떼지 못할 정도로 한기에 잠식당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미사일 같은 것들은 가는 도중에 떨어져 버리고 말 터였다.

‘그렇다는 건. 지금 저 데몬과 마주 보고 싸울 수 있는 건.’

입술을 깨문 송유빈이 간절한 눈으로 영상 너머의 무기왕을 바라봤다.

‘무기왕 뿐.’

재앙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에.

두 눈을 질끈 감은 송유빈이 두 손을 모아 잡았다.

* * *

다시 몸을 일으키는 칼마를 바라봤다.

“소용없다.”

땅에 처박혀 산산조각이 났던 걸 다시 되돌리고 있는 칼마.

다시 한번 귓가로 소용없다는 칼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아. 새끼야. 소용없는 거.”

[이카로스 - 칼데아 윙]

대답함과 동시에 아직 완전히 일어나지 못한 칼마에게 몸을 날렸다.

지금까진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시간 끌기를 위한 공격이었다면.

이제부턴 잘 먹히는 공격이었다.

“기다려. 금방 갈 테니까.”

[라 - 불꽃의 문양]

칼데아를 집어넣으며 몸으로 불꽃의 문양을 그려 넣었다.

현재 칼마의 얼음을 소멸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몸에 불꽃을 두르며 칼마를 향해 도약했다.

이대로 뚫어 주마.

가로막는 모든 얼음을 녹이며 단숨에 도달할 생각이었다.

그럼 심장을….

“그 불꽃을.”

쿠훌린의 게이볼그를 꺼내려는 순간.

조소가 담긴 칼마의 목소리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얼음이 시야를 덮쳐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