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화. 밤하늘을 가른 불꽃
“이상 CBC의 송유빈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송유빈이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 수고했다. 송유빈!
@ 역시 CBC가 제일 재밌네.
@ 송유빈 징계 먹는 거 아닌가? 생방송에서 저 난리를 피웠는데.
@ 누가 징계를 먹여요. 지금 CBC 시청률 미쳤구만.
고개를 든 송유빈이 조심스럽게 채팅창과 너머에 있는 팀장 조영천을 번갈아 봤다.
조영천의 얼굴은 명이 줄어든 것처럼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아마 내려가는 순간 한 소리를 넘어 두 소리, 세 소리까지는 들을 터였다.
“방송 종료됐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외침이 사라지기도 직전.
조영천이 무서운 얼굴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꼴깍!
마른침을 삼킨 송유빈이 조영천에게 걸어갔다.
평소에도 말 안 듣기로 유명하고 무기왕만 나왔다 하면 생방송에서 난리 치기로 소문이 난 송유빈이지만.
이번엔 무기왕이 위기에 처한 듯한 모습에 유독 더 흥분을 해버렸었다.
“수고하셨습니다! 팀장님!”
조영천이 뭐라 하기 전에 송유빈이 먼저 우렁찬 인사를 건넸다.
욕이라도 한 마디 덜 먹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일부러 그러는 거지.”
인사를 받아주긴커녕 조영천이 질렸다는 듯 말을 건넸다.
“일부러 내 수명 줄일려고 그러는 거지. 소리 꽥꽥 지르는 것도 모자라서 이젠 전재산에 퇴사 공약까지 걸어? 생방송에서?”
송유빈이 눈을 질끈 감았다.
자기가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무기왕만 나왔다 하면 제정신이 아니게 되는데.
자제하자 마음먹는다고 해서 쉽게 되는 게 아니었다.
“저 목소리 다 쉰 거 봐. 내일 출근 안 할 작정인 거지? 내일도 쉬어. 내일 모레도 쉬고. 그 모레 모레도 쉬고. 그냥 나가. 네가 나가야 내가 살겠다.”
여기까지 속사포처럼 쏟아낸 조영천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마음은 이런데. 진짜 그렇게는 하지 말고. 그랬다간 내가 국장님한테 박살 날 테니까.”
조영천이 송유빈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 63%.
“어?”
나름 방송계 고인물인 송유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 현실감이 없는 숫자였다.
“CBC 역대 최고 시청률. 국장님 입이 귀에 걸리셨다네. 게시판에서 반응도 아주 좋대. 송유빈 아니면 무기왕 방송 보는 재미가 없다고.”
“오…!”
“오는 확.”
그제야 조영천의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띠어졌다.
방송 중엔 정말 심장이 쪼그라들고 수명이 팍팍 줄어드는 기분이었지만.
눈앞에 있는 송유빈은 팀과 방송국의 보물이었다.
무기왕을 진심으로 사랑해야만 나올 수 있는 진정한 광기와 텐션.
송유빈이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것이었다.
“국장님이 보자고 하시니까 좀 쉬다가 나와.”
“네!”
우렁차게 대답한 송유빈이 다다다 휴게실로 걸음을 옮겼다.
끼익… 탁.
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철푸덕!
그대로 주저앉아 벽에 머리를 기댔다.
다리에 힘이 풀린 지는 이미 한참 됐었다.
나름 CBC에선 못 말리는 센 캐릭 이미지다 보니 최대한 버텨낸 것이었다.
‘알거지에 백수까지 될 뻔했다.’
송유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으로 몸을 눕혔다.
열심히 응원하고 걱정하고 소리 지르느라 온몸의 진이 다 빠져버린 탓이었다.
‘아 걱정은 내가 사서 한 거였지.’
힘겹게 손을 올려 이마를 가볍게 두들겼다.
의심할 게 없어 무기왕을 의심하다니.
무폭도 자격 박탈감이었다.
- 푸화아아아악!
현장과 거리가 멀었지만 선명히 보였었다.
아일랜드의 밤하늘과 얼음을 집어삼키는 무기왕의 불꽃이 말이다.
‘미쳤어.’
핏빛 검격이 휘둘러질 때마다 그 길을 따라가는 새빨간 불꽃.
밤하늘을 빠짐없이 수놓았던 불꽃이 아직까지 눈앞에 아른거렸다.
‘마지막은 더 미쳤고.’
무기왕이 휘두른 게 창인지 검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단지 마지막에 보인 건 반원형의 검격이 아닌, 일자로 길게 뻗은 하나의 선이었다.
그 길을 따라 파도처럼 밀려간 눈부신 화염.
화염이 하늘을 삼킨 순간엔 꽥꽥 소리 지르던 송유빈도 말을 잃은 채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하아.”
머리로 무기왕 전투 복기를 마친 송유빈.
“무기왕 진짜 어떡하지.”
송유빈이 차가운 바닥 위에서 다리를 당겨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그렇게 무릎에 입을 파묻은 송유빈의 입가로 헤벌쭉 커다란 미소가 그려졌다.
어디에서도 절대 지은 적 없는, 기쁨과 진심이 가득 담긴 시원한 미소였다.
“너무 좋아!!!”
* * *
와구와구와구!
앞에 놓인 빵을 입으로 가득 쑤셔 넣었다.
개맛있다…!
헬기에 건져지며 간절히 기도했었다.
부디 헬기 안에 물 말고 먹을 게 있기를! 하고 말이다.
그리고 신은 처음으로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천천히 드세요. 아직 많아요.”
아이리가 잔뜩 쌓인 빵을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날 데리러 온 헬기는 구조용이었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환자를 위한 빵이나 간편식 등이 잔뜩 놓여 있었다.
“어… 어 왼팔은!”
치료 후 붕대를 감아주던 대원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앗. 죄송합니다.”
다시 얌전히 팔을 내리며 남은 손으로 다음 빵을 집었다.
은근히 상처가 좀 있네.
싸울 땐 전혀 몰랐었다.
온몸에 긁힌 상처가 이렇게 많을 줄은 말이다.
아마 얼음을 깨고 지나치는 과정에서 이래저래 많이 닿은 모양이었다.
“일단 헬기엔 조종사 두 분과 치유 대원 한 분뿐이에요. 세 분 모두 다닐로 대통령 직속으로 계신 분들이고요. 백운 님 이름이 세어나갈 일은 없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먹으면서 고개를 꾸벅였다.
내가 무기왕이란 게 알려지지 않도록 세심한 부분까지 먼저 조치를 해 준 것이었다.
“그리고 백운 님. 정말 죄송합니다.”
“에?”
다시 빵으로 돌진하려는 찰나.
예상치 못한 아이리의 사과가 들려왔다.
“저뿐만이 아닐 거예요. 많은 사람이 백운 님께 감사하면서도 죄송해하고 있어요.”
“어째서…?”
입에 든 빵을 야금야금 깨물며 묻자 아이리가 죄책감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백운 님이 싸우시는 동안 저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니까요. 지독한 한기에 접근조차 못 하고 있었죠. 할 수 있는 거라곤 백운 님을 응원하고 걱정하는 것뿐이었고요.”
“맞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덩달아 옆에서 사과를 거드는 대원에 목이 막혀왔다.
이런 어색한 불편함은 백 번 사절이었다.
“아니에요. 딱히 도움을 받아야 할 만한 상대도 아니었어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제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건.”
치료를 끝낸 왼손으로 생크림이 가득한 빵을 들어 올렸다.
“이건데 가져다 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치료까지 해주시고. 사과 더 하시면 체할 거 같으니까 그만해주세요.”
대원을 향해 따봉까지 날려준 후 지체 없이 크림빵을 입으로 집어넣었다.
“하하….”
빵을 먹던 중 들리는 웃음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놀란 얼굴로 날 빤히 바라보던 아이리가 입을 가린 채 웃고 있었다.
“죄송해요. 기록실에서 헤어지기 전의 백운 님이랑 너무 똑같아서요.”
“제가 아까도 지금처럼 추하게 쳐먹었었나요…?”
“아뇨. 그런 게 아니라요. 뭐랄까.”
한차례 얼굴을 긁적인 아이리가 말을 이었다.
“헬기로 오면서 정말 긴장했었거든요. 많이 다치신 건 아닐지, 홀로 싸우게 둔 저희를 원망하시진 않을지 등등 걱정이 많아서요. 그러다가 지금 빵 드시는 모습을 보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놓여버렸네요.”
“일관된 사람이란 말을 자주 듣곤 합니다.”
“그런가요?”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린 아이리가 묘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분이 계시다니. 한국이 정말… 부러워지네요.”
머쓱한 기분에 빵만 쳐다보는 사이.
“아 참.”
아이리가 내 시야로 핸드폰을 내밀었다.
핸드폰엔 멀리서 촬영된 듯한 내 전투 영상이 띄워져 있었다.
“에?”
“다행히 멀어서 백운 님의 얼굴이 잡히거나 하진 않았는데요.”
아이리가 다음으로 넘긴 화면은 한국의 뉴스 탭이었다.
홀리.
오물거리던 입을 멈춘 채 탭을 천천히 훑었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모조리 무기왕에 관한 기사였다.
“한국에도 생방송으로 중계가 된 거 같아요.”
“오…!”
작은 탄성과 함께 머리로 방송을 봤을 강태황과 기태랑, 비광이 떠올랐다.
꿀꺽!
잘못한 건 전혀 없지만 뭐랄까.
갑자기 틀어진 생방송을 보며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 약간 긴장이 됐다.
음… 뭐.
잠시 생각하다 어깨를 으쓱이며.
벌써 방송 나갔는데 어쩌겠어.
빵 흡입을 이어나갔다.
* * *
비광이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놨다.
잔에 담긴 지는 오래됐으나 커피의 양은 한 모금도 줄어들지 않은 상태였다.
“안 마셔도 되겠어. 잠이 확 깨네.”
달그락.
뒤이어 기태랑도 잔을 내려놨다.
“나도.”
CBC의 생방송은 잔을 들고 첫 모금을 마시려는 순간 시작됐었다.
너무 조용하면 이상하니 습관처럼 틀어놨던 TV인데.
그곳에서 익숙한 이름이 들려온 것이었다.
“왜 저기에 있냐. 아일랜드 엄청 멀지 않나?”
“설마 내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본 건 아니지?”
서로를 멍한 얼굴로 쳐다보던 비광과 기태랑이 어깨를 으쓱였다.
하도 많이 놀라서 이젠 놀라지 않을 때가 된 것 같다고 두 사람은 생각했었다.
- 이젠 뭐가 나오든 안 놀랄 거 같아.
라고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다짐한 게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물론 다짐한 것과 달리 방송을 본 순간 두 사람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백운의 전투가 끝나고 커피가 싸늘하게 식는 그 순간까지 말이다.
“일부러 맨날 예상치를 뛰어넘는 건가.”
“그것도 능력이네.”
두 사람이 비어있는 가운데 자리를 바라봤다.
강태황 역시 함께 굳어 있었지만 불이 난 핸드폰 때문에 계속 그러고 있을 순 없었다.
“청와대도 그렇게 다급히 호출한 걸 보면 깜짝 놀랐나 봐.”
“놀라지. 우리도 놀라는데.”
다리를 꼰 비광이 잠시 손가락을 두드리다 입을 열었다.
“백운 그놈은 알고 있을까. 자신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놀라고 있는지.”
“모를 거 같은데. 그냥 싸움 끝났으니 빵이나 집어먹고 있지 않을까.”
“에이 설마.”
설마라고 말한 비광이 돌산에서 백운과 지내던 나날을 떠올렸다.
끝도 없이 놀라게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몹시 무덤덤했던 백운.
백운은 자기가 놀랄만한 짓을 했다는 걸 인지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
다시 기태랑에게 동조하며 비광이 쇼파로 몸을 파묻었다.
아직도 머릿속엔 마지막 순간 백운이 보여줬던 엄청난 불꽃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1급 헌터인 비광이 대적불가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정도로 압도적인 힘이었다.
스윽.
“어디 가게?”
갑자기 몸을 일으키는 비광에 기태랑이 묻자.
“가서 팔굽혀펴기라도 하게.”
“나도 가야겠네.”
비광이 능청스럽게 대답하자 기태랑도 덩달아 몸을 일으켰다.
같은 걸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았기에 서로 이유 같은 건 묻지 않기로 했다.
“거참 사람 가만히 못 앉아있게 할 정도로.”
나란히 장관실을 나서며 비광이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더럽게 강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