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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57화 (357/473)

357화. 비석

인천 송도 앞바다.

해가 진 어두운 바다에서 파열음이 들려왔다.

“이 새끼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거친 외침과 함께 수천 발의 탄환이 바다를 휩쓸었다.

“모르겠습니다! 어째선지 레이더도 먹통입니다!”

“바다 아래에서 끝도 없… 으아아!”

“!!”

바다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순식간에 부대원을 물고 사라졌다.

부대원이 모습을 감춘 바다에선 검붉은 피가 올라왔고 말이다.

“젠장!”

손 쓸 틈도 없이 쏟아지는 데몬에 3급 헌터 유명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겨울 바닷바람에 빨리 근무를 끝내고 들어가고 싶단 마음뿐이었는데.

약간의 전조도 없이 공격이 시작되었다.

“크라아아!”

달려드는 데몬에게 몸을 돌린 유명준.

유명준이 가지고 있던 수류탄 두 개를 데몬의 입에 물리고 내동댕이쳤다.

바다로 빠지기 무섭게 산산조각이나 흩어지는 데몬의 사체.

“지원은 아직이야?! 어떻게 된 거야!”

쉴 새 없이 탄을 뿌리며 유명준이 소리 질렀다.

공격이 시작된 지 이미 두 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지원이 도착했어도 벌써 왔어야 하는데 아주 희미한 불빛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서, 선배!”

연락을 취하던 헌터들이 유명준에게 다가와 고개를 저었다.

“개인 핸드폰도, 무전도 전부 먹통이에요.”

“그럼 비상 SOS 신호라도…!”

배 위를 바라보는 유명준의 눈으로 박살 난 구조 라이트가 들어왔다.

일부러 한 건지 아닌지는 몰라도 데몬이 나타나자마자 제일 먼저 부순 게 저 라이트였다.

“수리 3호는 어떻게….”

함께 순찰을 돌던 3호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유명준이 고개를 돌렸다.

“뭐, 뭐야.”

활활 타오르며 침몰하고 있는 수리 3호.

생존자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배의 상황에 얼굴로 경악이 물들었다.

저곳엔 자신과 비슷하거나 강한 헌터가 더 많이 타고 있었다.

그런데도 전멸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데몬의 수가 많다곤 하나 이렇게 빨리 당할 만큼의 수준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동료였나 봅니다.”

“!?”

그때 들리는 목소리에 유명준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 사이에…?’

부서진 라이트 위로 정장 차림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방금 자다 일어난 것처럼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남자.

남자는 정말 졸린 건지 지금의 난리통을 보면서도 연신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누구냐! 소속을 밝혀라!”

“소속 말입니까?”

총구를 겨누는 유명준에 남자가 늘어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시 바라보다 하품을 한 차례 더 한 건 물론이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소속!”

“기업 천일의 대외협력본부 본부장 김신.”

“천일…?”

유명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천일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대기업 중 하나였다.

그런 사기업의 인원이 어째서 이 난리통의 한가운데에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힘들어 보이는데 도와드릴까요? 사실 그러려고 온 겁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기에.

경계하던 유명준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협조를 부탁합니다!”

지금은 데몬의 압도적인 병력으로 수세에 몰린 상황.

한 사람 한 사람의 전력이 아쉬웠기에 천일이 왜 여기에 있는지, 저 사람의 정체가 뭔지는 지금 당장 중요하지 않았다.

“키아아아아!”

“더럽게 많네. 정말!”

덮쳐오는 데몬에게 유명준이 총구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유명준의 시야로 여러 가닥의 반짝이는 실이 나타났다.

피아노 줄처럼 날카로운 실엔 희미하지만 붉은 피가 맺혀 있었다.

“어…?”

위에 있던 김신은 어느새 유명준 앞으로 몸을 옮긴 뒤였다.

“삶은 고통입니다.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할수록 고통만 커질 뿐이죠. 그래서 제가 고통을 빨리 끝낼 수 있도록.”

의미를 알 수 없는 김신의 말에 무언가 대꾸하려는 사이.

몸과 함께 유명준의 시야가 무너져 내렸다.

“도와드렸습니다.”

아득해지는 시야로 유명준의 머리로 든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어째서… 데몬과 인간이…?’

방금 배로 올라온 열댓 마리의 데몬 무리.

마치 서로 아는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데몬들은 김신을 자연스럽게 지나치고 있었다.

* * *

“으…. 오늘 산 셔츤데 피 다 튀었네.”

말끔한 정장 차림에 머리를 길게 묶은 여자.

여자가 인상을 찌푸린 채 옷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오랜만에 쇼핑을 나가 장만한 건데 시뻘겋게 물들어버리고 말았다.

“어, 어째서…?”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이 중 한 명이 여자를 올려다봤다.

여자를 중심으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수십의 인원.

강원도 설악산에서 데몬이 나타났다는 신고를 받고 달려온 헌터들이었다.

한참 데몬과 싸우던 중 갑자기 나타난 여자에 의해 전멸당해버렸고 말이다.

“뭐가 어째서야? 이거 피 왜 털고 있냐고? 비싼 거니까 털고 있지. 꼭 그걸 말해야 아나.”

“왜 데몬 편에서… 싸우는 거냐?”

“아 그거 물어본 거였어?”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 헌터에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름은 신윤이고 기업 우상 소속이야. 우리 우상이 데몬을 돕기로 했거든. 그래서 너네 죽인 거야. 됐지?”

빠르게 설명한 신윤에 헌터가 입을 벌렸다.

두 귀로 똑똑히 들었음에도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대체 무슨 상황에 처해야 데몬을 도와 자신들을 죽일 수 있는 걸까.

“그래도 너는 덜 억울하게 죽겠다야. 이유라도 알고 가니까. 그럼 이만 죽을래? 나 가서 옷 갈아입게.”

신윤이 등에 걸치고 있던 도끼를 치켜들었다.

다들 서울에서 가까운 곳으로 갔는데 자기만 강원도 행이라니.

회사로 돌아가면 아주 제대로 따질 생각이었다.

“으…!”

“안녕.”

신윤의 나지막한 인사와 함께 머리 위로 들었던 도끼가 휘둘러졌다.

“어?”

정확히는 휘둘러지려는 찰나였다.

어째선지 도끼를 휘두르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신윤.

“뭐야? 왜 이래 이거.”

신윤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온 힘을 다해 찍어 누르는데도 도끼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우상 소속이라고.”

잠시 후 신윤의 귓가로 얇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갓 사춘기를 지난 건지 어릿함이 남아있는 목소리였다.

“뭐야? 네가 이런 거야?”

신윤이 손을 부들부들 떨어대며 모습을 드러낸 여자를 응시했다.

작은 키와 단아한 웨이브를 넣은 갈색 머리, 새하얀 피부와 커다랗고 맑은 갈색 눈동자까지.

한밤중임에도 눈에 확 띄는 생김새에 신윤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어둡기도 했고 여자의 머리가 얼굴 대부분을 가린 상태였다.

처음 본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한데 어디서 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우상이 데몬을 돕기로 했나 보네.”

“어라? 들었어? 그거 알면 안 되는 건데. 비밀이거든. 얘는 곧 죽을 애라 알려줬던 거야. 가는 길 선물로.”

“뭘 돕기로 한 거야? 얼른 말해 줄래? 추우니까.”

나긋하면서도 고압적인 말투에 신윤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린 년이 말끝마다 반말이네. 키도 작은 게!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겠구나.”

“어떻게 고쳐주게? 넌 묶여있으면서.”

“내가 말했지. 난 혼자가 아니라고. 덮쳐!!”

신윤이 소리 지름과 동시에 사방에서 데몬이 쏟아져 내렸다.

대충 세봐도 백 마리는 가볍게 넘는 숫자였다.

“혼자랑 별반 다를 거 없네.”

여자가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고, 숲속으로 작은 정적이 찾아왔다.

허공에 떠오른 상태 그대로 멈춰버린 데몬들.

데몬들의 몸 주변으론 희미한 보랏빛이 감돌고 있었다.

“어…!”

그 빛을 본 신윤이 입을 벌렸다.

이제야 눈앞에 있는 여자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1, 1급 헌터 류희수….!!!”

“딩동댕.”

“잠깐 잠깐 잠깐! 이건 반칙이지. 잠깐만 기….”

무언가 더 말하려는 신윤을 바라보며 류희수가 들어 올렸던 손을 움켜쥐었다.

떠 있던 데몬들과 함께 그대로 찌부러져 목숨이 끊어진 신윤.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게 걸어온 류희수가 쓰러져 있는 헌터를 일으켜 세웠다.

“가,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네는 헌터를 뒤로하고 류희수가 고개를 들었다.

산 정상 부근에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비석.

‘이게 뭐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류희수는 확신했다.

신윤과 데몬들은 이 비석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싸운 것이라고 말이다.

* * *

어두운 회의실 안.

과거 연수정이 앉았던 자리로 연창환이 몸을 앉혔다.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당장엔 별 잡음 없이 진행되고 있네. 딱히 눈치챈 곳도 없는 듯하고.”

“제주도도 마찬가지야. 데몬 놈들이 요란스럽게 일을 벌이긴 했는데 우리가 제주도에서 나오는 모든 통신과 연락편을 끊어놨어. 아마 서울 쪽에선 아직 모르고 있을 거야.”

곳곳에서 들리는 보고에 연창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헤키리스를 만나고 떠나려는 찰나.

포이카라는 데몬이 연창환을 붙잡았었다.

헤키리스와 본대가 한국으로 넘어오기 위해 필요한 작업에 협조하란 것이었다.

“연 이사. 이거 정말 괜찮은 건가? 한국이 쑥대밭으로 변할 거야.”

“한 배를 탄 자네가 하는 말이니 믿고 따르는 거지만. 나도 같은 생각일세.”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걱정에 연창환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와 함께 걱정만 늘어난 건지 하루가 멀다하고 노인네들은 의미 없고 똑같은 말을 해대고 있었다.

‘역겹군.’

거기다 저들이 한국을 걱정해서 저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데몬이 휩쓸고 지나간 땅에 자신들이 먹을 게 남아 있을지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습니다. 절대 되돌릴 수 없죠. 그리고 걱정하시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우린 간단하게 말해서 노아의 방주입니다. 데몬의 힘으로 모조리 박살이 난 나라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기업들. 남은 사람들이 과연 힘을 잃어버린 정부를 믿을까요? 아니면 막대한 재력으로 구호품과 식량을 나눠주는 우리를 믿을까요? 인간은 궁지에 몰리면 본능을 따르게 되어있습니다.”

테이블로 손을 올린 연창환이 말을 이었다.

“우린 새로운 국가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이건 지금까지 얻었던 그 무엇보다도 막대한 이익과 권력을 가져다줄 거고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그럼 무기왕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지금 한국이 아니라 아일랜드에 있지 않은가? 헤키리슨가 뭔가 하는 데몬 놈이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그리고 좀 걱정되는군. 무기왕이 와서 전세를 뒤집을까봐.”

“놈들은 뉴스가 뭔지도 모르는 데몬입니다. 그냥 구석에 박혀서 아직 나타나지 않은 거라 생각하겠죠. 그리고 무기왕은 제때 도착하지 못할 겁니다.”

“제때 도착하지 못하다니? 손이라도 쓴 겐가? 뭐하러 그런 짓을 한 거야! 조금이라도 빨리 데몬의 손에 넘겨버리는 게 낫지!”

연창환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변수를 최대한 없애고 싶으니까요.”

광분하며 무기왕을 데려오라고 말한 헤키리스.

하지만 포이카란 데몬은 생각이 달랐다.

- 그놈이 도착하는 걸 최대한 지연시켜야 한다.

한국의 전력이 씨가 마를 때까지 무기왕이 도착하지 못하게 해 힘을 합칠 수 없게 만들란 지시였다.

‘주 이동 수단인 날개는 밤이 될 때까지 쓸 수 없다.’

검은 연기 외에도 비행기 등 다양한 이동수단이 존재했지만.

백운이 그걸 이용해 돌아오는 상황은 생기지 않을 터였다.

‘네놈이 도착했을 때… 네가 알고 있던 한국은 더 이상.’

연창환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존재하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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