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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58화 (358/473)

358화. 습격

다소곳하게 않아 두 손으로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 띠리리리.

통화 연결음을 듣고 있자니 뭐랄까.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잘못한 건 전혀 없는데도 이상한 일이었다.

# 여보세요.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비광 님.”

# 이게 누구야. 아일랜드 비리 청장을 박살 내고 말도 안 되게 센 데몬을 잡아낸 영웅 백운이잖아!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랜만에 통화하는데도 여전한 비광이었다.

# 몸은 좀 어때? 목소리 보니까 완전 멀쩡한 거 같긴 한데. 설마 아마추어처럼 다치거나 한 건 아니겠지?

“에이 그럼요. 전 아마추어가 아닌 걸요.”

# 이제 한국에 안 돌아온다는 소문이 있던데? 아일랜드에서 대통령 관저 줄 거라고.

“그럼 안 갈 수도 있겠네요. 하루 있어 보니까 엄청 좋더라고요. 밥도 맛있고.”

비광과 실없는 농담을 몇 마디 더 주고받던 중.

전화기 너머로 시끄러운 차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헌터청에 안 계신가 보네요.”

# 누굴 맨날 장관실에서 커피나 마시는 날백수로 보나. 1급 헌터가 주구장창 거기서 죽치고 있으면 되겠어?

내 기억으론 맨날 죽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괜히 말했다 돌아올 말들이 예상되어 꾹 삼켜냈다.

# 너 한국 오면 소개시켜 줄 녀석이긴 한데. 오랜만에 오면서 폭탄 하나를 들고 왔거든. 그래서 좀 알아보려고 나가는 중이야.

“폭탄… 요?”

그 사람이 누군지도 궁금했지만 우선은 일이었다.

1급 헌터인 비광이 직접 간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란 이야기였다.

# 지금 상황이 좀 복잡한데. 간단하게 말하면 기업 중 하나가 데몬에 붙어먹었다.

“…!”

처음 보는 일은 아니었다.

훗카이도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봤었으니까.

하지만 그땐 료헤이란 미친놈을 필두로 한 사이비 종교 단체였었다.

놈들은 정신이 나갔었다 치더라도 한국의 대기업이라니 의외의 상황이었다.

# 어쨌든 우리가 제일 먼저 들은 사항이라 직접 가보는 중이야. 기태랑도 바쁠 거야. 이거 말고도 이상한 점이 몇 가지 있어서.

잠시 뜸을 들인 비광이 말을 이어나갔다.

제주도와 송도 등 적지 않은 지역의 기관과 연락이 끊겼다는 것이었다.

따로 들어온 보고는 없지만 한 번도 이랬던 적이 없어 기태랑과 상급 헌터들이 직접 나선 상태고 말이다.

# 마지막으로 비석.

비석…?

# 폭탄 배달 온 녀석이 설악산에 이상한 게 있다고 하더군. 데몬이랑 기업 놈들이 그걸 지키고 있었고.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 건지는 알아보는 중이야.

데몬에 붙어먹은 인간, 그리고 비석.

이 두 가지를 듣고 나니 머리로 스치는 게 있었다.

료헤이가 종교로 모은 힘을 담아두었던 훗카이도의 구조물이었다.

설마.

당시 구조물은 헤키리스라 불린 놈의 손을 소환하는데 사용됐었다.

그 손모가지 하나 때문에 훗카이도는 홀라당 날아갈 뻔했었고 말이다.

“비광 님. 이건 제 기우일 수도 있는데요.”

훗카이도에서 겪었던 일을 최대한 상세하게 비광에게 알려주었다.

구조물과 비석은 엄연히 달랐으나 혹시라도 연관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 그런 게 있었어? 알겠다. 조사팀에도 전달할게.

전달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수화기 너머에서 도착했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 이제 도착했으니까 끊는다.

“어…. 네! 고생하십쇼!”

# 고생은.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오고.

# 오면 같이 국밥이나 먹으러 가자.

국밥 먹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비광의 전화가 끊어졌다.

“형아. 뭐해? 전화 끊어졌잖아.”

귀에서 내린 전화기에서 뚜뚜 소리가 나자 앉아있던 코뉴가 다가왔다.

“어, 응. 그렇네.”

코뉴에게 니겔의 핸드폰을 건네며 조금 전 전화를 떠올렸다.

비광과 기태랑 같은 1급 헌터와 각 기관 및 기업의 괴물들이 즐비한 곳이 한국이었다.

하지만 비석이란 대목에서 헤키리스 놈을 떠올리자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놈한텐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망자들과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악귀참도가 아니면 대미지를 줄 수 없었다.

“형아. 이제 낚시 가자.”

내 팔을 끄는 코뉴를 잠시 바라보다.

동글동글한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 주었다.

“코뉴. 형아 낚시 못 갈 거 같아.”

날 빤히 올려다보던 코뉴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아 또 나라 지키러 가는구나. 영웅이라서.”

말이 끝나기 무섭게 코뉴가 얼른 가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약간의 망설임이나 서운함이 없는 코뉴에 한편으론 내가 낚시를 못해서 같이 안 가고 싶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설마 아나겠지 하며 싱긋 미소를 그렸다.

“응. 갔다 올게. 그 전에.”

코뉴에게 스윽 손을 뻗었다.

“전화 한 통화만 더 쓰자.”

* * *

아일랜드 근처의 상공, 여러 대의 모니터와 장비가 갖추어진 비행기 안.

헤드폰을 끼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찾았습니다.”

“허?”

지루한 얼굴로 시간을 때우던 이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그중에서 책임자로 보이는 회색 머리의 남자가 모니터 앞으로 다가왔다.

“누구랑 통화한 거야?”

“1급 헌터 비광입니다.”

“그렇지!”

명찰에 이도영이란 이름이 적힌 회색 머리의 남자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무기왕의 위치를 찾아내기 위해 가깝다고 알려진 비광과 기태랑 등 몇몇 신호를 낚아채던 중이었다.

보기 좋게 예상이 적중했고 말이다.

“어디에 있어?”

“아직 아일랜드에 있습니다. 그 후로 통화를 한 번 더 했는데 그건 내용까지 감청했습니다.”

“틀어봐.”

모니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일랜드 측 장관과의 통화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준비해 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다.

너머에선 당연히 가능하다는 답변이 들려왔고 말이다.

‘연 이사 말대로군.’

무기왕은 밤이 아니면 이동할 수 없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공항까지 셧다운 된 상황에서 따로 비행기를 준비해달라고 말하진 않았을 터였다.

‘뭔가 알아낸 건가.’

비광과 통화한 후 바로 급하게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좀 께름칙했다.

“대장. 어떻게 할 거야? 계속 대기해야 해?”

비행기엔 특수한 갑주를 걸친 부대원 50명이 함께 하고 있었다.

이번 일에 참여한 기업 중 군사와 무기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기업, 청풍.

청풍에서도 내로라하는 정예들이 모조리 이번 작전에 투입된 것이었다.

“지루해 죽겠다고.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감청이나 하고 있어야 해.”

“맞아. 우린 싸우러 온 거지 남의 얘기나 엿들으러 온 게 아니라고.”

한숨을 내쉰 이도영이 싸움에 굶주린 부대원들을 응시했다.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거 아니냐? 상대는 무기왕이다. 그 유명한 무기왕. 동영상은 다 봤을 텐데?”

“동영상은 봤지.”

“말도 안 되게 강하긴 하더라.”

일반적인 반응이 나오는가 싶더니.

“그런데 그게 뭐?”

“동영상은 동영상일 뿐 직접 싸워봐야 아는 거지.”

예상하던 반응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장은 우리가 질 거 같아?”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이도영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입이 벌어졌다.

“그럴리가.”

그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 부대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부대원 앞이라고 허세를 부린 건 아니었다.

이도영은 자신들의 부대가 정말 무기왕한테 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지옥 같은 전장들에서 수십 번이나 살아 돌아온 자신들이었다.

정확히는 모조리 때려죽이고 짓밟으며 생존을 쟁취해냈었다.

‘질 리가 없다.’

이도영이 시선을 내려 자신의 갑주를 응시했다.

이건 군사 기업 청풍 그 자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역작이었다.

수십 년간 개발해 온 군사 기술이 모조리 때려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각자가 개방한 능력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무적 그 자체.

실제로 비행기에 오르기 전 3급 헌터들을 기스 하나 없이 압살해버리고 온 그들이었다.

“다만 마지막에 본 불꽃은 조심해라. 그건 위험하다.”

“그건 나도 동감. 갑주가 못 버틸 거야.”

무기왕의 전력을 마냥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지금까지 등장했던 각 무기에 관한 대비책을 들고 있었기에 마냥 두렵진 않았다.

“런던에서 나왔던 게 또 튀어나오진 않겠지?”

“불가능하다. 그건 한두 명의 피로는 안 될 테니까.”

사신을 쓸어버렸던 피의 악마.

무기왕이 매번 그 능력을 못 꺼내는 이유가 있었다.

날개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양의 피라는 조건이 필요한 것이었다.

“불꽃도 지속시간이 길진 않다. 아일랜드에서도 산을 녹인 뒤 다음 사용까지 시간이 꽤 걸린 점으로 보아 쿨타임도 존재하는 모양이고.”

“첫 번째 불은 누가 맞긴 맞아야겠네. 킬킬킬! 뭉쳐있지 말자고! 두어 명만 구워지면 될 테니까!”

강력한 무기엔 몇 명인가 희생당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뿐이었다.

치밀한 소모전으로 밀어붙인다면 결국 무기가 떨어진 무기왕은 바닥을 드러낸 채 얌전히 목을 내밀게 될 터였다.

‘보여주도록 하지. 싸움은 힘만으로 하는 게 아니란 걸.’

자신만만한 얼굴로 안경을 치켜올린 이도영.

이도영이 조종사 쪽으로 무전을 보냈다.

“더블린 공항으로 간다.”

# 알겠습니다.

드디어 내려진 명령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그런 부대원들을 보며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사냥을 시작한다.”

* * *

# 이륙하겠습니다.

“네, 넵!”

들려오는 방송에 호다닥 몸을 숙였다.

저쪽에선 날 보지도 못하겠지만 어쨌든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전혀 안 편해져!

사실 고개를 숙였음에도 마음은 전혀 편해지지 않았다.

비행기가 묵직하면서도 조용하게 떠오르자 오히려 더 불편해지고 있었다.

대통령 전용 비행기라니. 거기다 탑승객이 나 한 명이라니.

공식적으론 셧다운 되어 운영이 중단된 더블린 공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세워진 비행기를 보곤 등 뒤로 땀이 흘렀었다.

아주 큼지막하고 튼튼해 보이는 대통령 전용기가 떡하니 활주로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조종사도 이번에 바다에서 날 건져준 분들이었다.

내 정체를 최대한 숨겨주고자 한 다닐로와 아이리의 배려였다.

몹시 부담스럽군.

여러 전세기는 타본 만큼 적응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말도 안 되게 커다란 대통령 전용기를 혼자 타니 다리가 달달 떨리고 있었다.

쇼파가 미쳤긴 하네.

몸을 최대한 깊숙이 파묻어 보았다.

움직이는 대로 몸을 포옥 감싸주는 푹신함.

쇼파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건 무조건 SSS급이었다.

안 마시고 안 먹으면 예의가 아니겠지.

옆으로 준비된 수많은 음식과 술을 바라봤다.

먹으라고 넣어준 건데 가만히 둘 순 없었다.

그렇게 첫 잔을 따라 마시려는 순간.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비행기가 크게 흔들렸다.

뭐, 뭐야.

단순히 흔들린 게 아니었다.

비행기는 서서히 기울어 가고 있었다.

가봐야겠네.

최대한 빨리 달려 조종실로 들어갔다.

“무슨… 허?”

무슨 일이냐고 물을 필요는 없었다.

정면으로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란스러운 무기로 이쪽을 겨누고 있는 정체불명의 비행기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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