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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61화 (361/473)

361화. 개문

우상을 빠져나온 비광이 고개를 들었다.

“…!”

김철훈이 불었던 비석의 위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서울 하늘로 쏘아지고 있는 수십 개의 빛줄기.

빛줄기는 모이며 커다란 소용돌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엄마. 저게 뭐야?”

“글쎄.”

걸어 다니던 수많은 시민이 걸음을 멈춘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건지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

“장관님. 보고 있어요? 지금 하늘.”

# 보고 있다.

“많이 늦은 거 같은데요.”

비광이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상한 상황을 포착한 건 불과 하루 전의 일이었다.

‘이렇게 빠르다니.’

단순히 우상 하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데몬이 이런 규모로 준비하면서도 들키지 않은 걸 보면 분명 적지 않은 인력과 도움이 필요했을 터.

이게 가능하려면 우상 같은 기업이 최소 네다섯 개는 더 있어야 했다.

‘대체 어디까지 붙어먹은 거냐.’

강태황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때.

평화롭던 서울로 날카로운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 긴급 상황입니다. 대규모의 데몬이 출현했으니 시민분들은 즉시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훈련이 아닌 실제 상황입니다.

뒤이어 각 기관에서 나온 인원들이 도로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상황실에 있던 강태황이 발 빠르게 대처한 것이었다.

“기태랑이랑 희수는요?”

# 태랑이는 제주도에서 데몬과 전투 중이야. 희수는 문이 열리고 있는 곳으로 갔고. 곧 지원 부대가 도착할 거다.

“저도 그쪽으로….”

콰앙!

비광이 류희수가 향한 곳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뒤쪽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데, 데몬!!”

“모두 피하세요!”

“전투 인원….!? 저쪽에서도 온다!”

고개를 돌린 비광이 미간을 찌푸렸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십에 가까운 데몬이 사방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외관만 봤을 땐 낮은 등급의 데몬도 아니었다.

최소 B이상은 되는 녀석들이었다.

‘아직 문은 열리지도 않았는데…!’

김철훈은 얘기했었다.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당해낼 수 없는 존재들이 튀어나올 거라고.

그렇다는 건 문이 열리는 하늘이 메인 부대란 건데 벌써부터 이런 놈들이 튀어나오다니.

대체 문에선 뭐가 나올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1월과 3월.”

패를 꺼내며 비광이 데몬 쪽으로 몸을 날렸다.

당장 해야 하는 일은 명확했다.

# 1급 헌터들은 자유롭게 판단해서 싸워라.

강태황의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으며.

앞에 나타난 데몬의 목을 날렸다.

“크륵…!?”

공중으로 피가 솟구치자 비광에게 고개를 돌리는 데몬들.

그런 데몬을 바라보며 패를 고르던 비광이 곁눈질로 하늘을 살폈다.

‘뭐가 튀어나오려는 거냐.’

* * *

제주도 한라산.

비석을 부순 기태랑이 주변을 둘러봤다.

‘많군.’

눈이 쌓여 새하얗던 한라산은 데몬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림잡아도 이 백 마리 이상의 데몬.

데몬들은 필사적으로 비석을 지키기 위해 기태랑에게 달려들었었다.

‘늦은 건가.’

조금 전 비석은 부서지며 뿜어내던 빛줄기가 사라졌지만.

이건 수많은 비석 중 하나에 불과했다.

통신 너머에서도 난리가 난 상태였고 말이다.

# 기태랑. 조금 있으면 헬기 도착할 테니까 바로 서울로 와.

“네. 지금 상황이 어때요?”

# 부산, 강원도, 전라도 가리지 않고 각지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데몬이 나타나고 있어. 서울 하늘에선 정체불명의 소용돌이가 점점 커지는 중이고. 아마 격전지는 서울일 거다.

기태랑이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만난 데몬들이 각지에서 나타나고 있다면 심각했다.

가장 강한 병력이 서울에 나올 걸 알면서도 다른 지역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부족하다.’

현재 서울엔 비광과 류희수가 있었다.

헌터청 최대 전력 중 두 명이 서울에 있지만 데몬이 출몰하는 범위를 봤을 때 이걸로 충분하진 않을 터였다.

# 헬기 보여?

기태랑이 시야로 들어온 헬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보이…!!”

퍼엉!!

어디서 날아든 걸까.

한라산 아래에서 쏘아진 미사일이 다가오던 헬기를 격추시켰다.

# 지금 무슨 소리야?

“격추당했어요.”

# 뭐…!?

무언가를 더 말하기 전.

뒤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기태랑이 몸을 돌렸다.

“안녕하십니까. 1급 헌터 기태랑 님.”

설산에 어울리지 않는 정장과 무기를 갖춘 인원이 기태랑 앞으로 늘어섰다.

“도와주러 온 거 같진 않은데.”

기태랑이 말을 건네자 가장 앞에 선 남자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여기서 떠날 수 없습니다.”

말을 마치며 전투 준비를 하는 인원들에.

“장관님 아무래도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기태랑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몸을 돌렸다.

“데몬 뿐만이 아닌 거 같습니다.”

* * *

“후우…!”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정면을 바라봤다.

“이 새끼들이 진짜.”

자기들이 끝이 아닐 거란 이도영의 말은 허풍아 아니었다.

놈들과 처음 마주쳤던 장소에서 얼마 나아가지 못한 시점.

거대한 함선이 나타나며 내 앞을 가로막았었다.

그걸 박살낸 뒤엔 10분도 채 되지 않아 또 지금의 놈들이 나타났고 말이다.

“너네 대체 뭐 하는 새끼들이야.”

함선에서 나온 놈들을 응시했다.

어딘가로 무전을 보내고 있는 녀석들.

각기 다른 조직이지만 서로 내 위치를 공유하며 쫓는 듯했다.

“우린 무국적 용병단이다. 돈에 의해 움직이지. 만나서 영광이다. 무기왕.”

이 미친놈들이…!

단순히 기업 놈들만 끼어든 게 아닌 모양이었다.

무국적 용병단이 내가 무기왕이란 걸 알면서도 막는다는 건 그만큼 막대한 자금을 받았다는 얘기였다.

“네 손님은 우리만 있는 게 아닌 거 같군.”

남자의 말에 고개를 들자 열 몇 대의 헬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론 또 다른 함선들이 줄을 지어 몰려오고 있었다.

“용병만 산 게 아닐 거다. 엄청난 돈을 가지고 있더군. 아마 돈이 급한 국가나 기관들도 네놈 앞을 막아설 거다.”

“할말 다 했냐.”

몰려드는 놈들을 응시했다.

다 죽여야 한다면 한 번에 쓸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원한은 없다. 무기왕.”

“난 방금 생겼으니까.”

[이순신 - 쌍룡궁]

어느 정도 모인 적들에 물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빨리 죽여줄게.”

몰려드는 놈들에게 활을 겨누며.

해야 제발 좀.

아직 높게 떠올라 있는 태양을 바라봤다.

빨리 져라…!

[용의 포효]

* * *

런던의 총리실.

보고를 받던 총리 리튼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무기왕이라고요?”

“예. 영국과 인접한 아일랜드 영해에서 전투 중입니다.”

“상대는요?”

“무국적 용병들입니다. 왜 무기왕을 가로막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전투 중인 집단을 제외하고도 여러 대의 함선과 헬기들이 그쪽으로 향하는 중입니다. 이들은 오늘 전까진 모두 공식적으로 허가받은 기업이나 기관입니다.”

리튼이 미간을 찌푸렸다.

‘난리가 난 한국과.’

현재 한국의 대략적인 상황은 대사관을 통해 보고받았었다.

일본에 나타났던 문이 한국에도 열리고 있으며 곳곳에 데몬이 들끓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으로 가려는 무기왕, 그리고 그 앞을 가로막는 세력이라.’

고민하고 있던 찰나.

리튼의 개인 핸드폰이 울렸다.

“리튼입니다.”

왕실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전화 상대는 무려 새로운 여왕이 된 샤를 엘리자베스였고 말이다.

“예. 안 그래도 보고를 받는 중이었습니다.”

조용히 샤를의 말을 듣던 리튼이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몇 마디 더 주고받다 전화를 끊은 리튼이 대기 중인 육공해 참모총장들을 바라봤다.

“해군과 공군은 곧장 군을 소집, 영해와 영공으로 보내 지금 무기왕에게 가고 있는 세력들에게 경고해주세요. 영국 영해에서 영국 전체를 상대하려는 게 아니면 물러나라고요.”

“알겠습니다.”

“육군은 무기왕이 이동하려는 직선 경로상으로 이동수단 및 병력 준비 부탁하고, 각 기관은 길목에 위치한 국가들에 연락해서 협조 구해주세요.”

리튼이 모니터로 떠오른 지도로 손을 뻗었다.

한국까지의 직선 경로.

무기왕이 이동할 거라 예상되는 길이었다.

“이곳을 지나는 동안엔 그 누구도 무기왕을 건드릴 수 없도록.”

리튼이 확고한 얼굴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길을 열 겁니다.”

* * *

한남동에 위치한 이집트 대사관 근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쏟아지는 데몬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이런 젠장! 지원은 언제 오는 거야?!”

데몬의 공격을 받아내며 대사관 수비 담당인 이수환이 뒤를 돌아봤다.

전투가 시작되고 한 시간이 넘었는데도 별다른 지원이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키아아아악!”

“!!”

설상가상이라고 했던가.

지반이 들리는가 싶더니 새로운 데몬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티, 팀장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팀원들의 외침에 이수환의 얼굴로 낭패감이 번졌다.

자신들이 후퇴할 장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바로 뒤에 있는 대사관엔 이집트 인원뿐만이 아니라 근처에 있던 시민들도 대피해 있었기 때문이다.

“후퇴는 안 된다! 어떻게든…!?”

이수환이 각오를 다지며 외치려는 순간.

정체불명의 세단 한 대가 대사관 앞으로 거칠게 멈춰 섰다.

잠시 후 앞좌석에서 내리는 묘한 분위기의 남자.

짧은 회색 머리와 머리 색깔만큼이나 무미건조한 회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였다.

“크라라라라!”

몰려드는 데몬을 바라보던 남자가 천천히 손을 올렸다.

드드드…!

지반이 울리는가 싶더니 하늘로 솟구치는 엄청난 양의 모래.

순식간에 모래로 데몬을 감싼 남자가 손을 아래로 향하게 하자.

콰드득!

달려들던 데몬 무리가 무기력하게 짓뭉개지며 모습을 감추었다.

“비, 비칼! 자네 왜 내리는 거야! 빨리 타지 않고!”

세단의 뒷좌석에선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행사 참여를 위해 이집트에서 방문한 장관이었다.

“장관님 모시고 먼저 들어가라.”

비칼이 운전석에 말을 건네자 뒤에서 노발대발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야! 자네는 날 지키려고 함께 온 건데! 내 옆에 있어야지!”

“….”

여전히 무미건조한 눈으로 뒷좌석을 바라보던 비칼이 입을 열었다.

“그럼 내려서 제 옆으로 오시죠.”

“무, 무슨 소리야! 지금 데몬이 지천에 깔렸는데!”

“그게 무서우면 안으로 들어가시고.”

“자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막 나가면 공식으로 항의할 걸세!”

“그러든가.”

“뭐, 뭐라 그랬….”

장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문을 쾅 닫아버린 비칼이 운전석으로 신호를 보냈다.

장관이 뭐라고 하든 말든 비칼의 명령에 따라 대사관 안으로 들어가는 세단.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이수환이 비칼에게 다가왔다.

“당신은…!”

비칼이 누군지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이집트의 수호신이자 최종 병기 비칼.

모르기가 더 힘든 인물이 어째서 장관의 말까지 귓등으로 흘리며 자신들을 돕는 건지 의문이었다.

“정의심으로 도와주는 건 아니다.”

비칼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무기왕한테 빚이 있다.”

“…!!”

뜻밖의 이름에 이수환과 헌터들이 놀라는 사이.

엄청난 양의 모래를 일으킨 비칼이 다가오는 데몬 무리에게 걸어갔다.

“그걸 갚으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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