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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66화 (366/473)

366화. 분노를 담아

‘안돼. 안돼…!!’

류희수가 힘겨운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배에서 쏟아지던 피는 염력으로 어떻게든 지혈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 매화로 적의 시야를 가렸던 비광.

찰나의 순간 비광은 류희수를 쳐다보며 장난스럽게 말했었다.

- 제사는 안 지내줘도 된다.

그걸 마지막으로 류희수의 몸은 무언가 반응할 새도 없이 날려졌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까 있던 곳에서 한참 떨어진 위치였고 말이다.

‘어째서 그런 패를…!’

류희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도 비광에겐 아직 패가 더 남아있었다.

비광은 그 패 대신 류희수를 살리는 패를 선택한 것이었다.

몸을 일으키고 얼마나 걸었을까.

눈앞이 핑 돌더니 몸이 무너졌다.

‘나약한 몸뚱이야 제발 좀!’

마음이 너무 급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애초에 류희수가 개방한 능력은 염력.

신체는 일반인과 다를 게 없었고 지금까지 흘려댄 피만 해도 상당했기에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렇게 멀었었나.’

간신히 몸을 일으켰지만 가야 할 길이 너무 아득했다.

최선을 다해 걷는다고 해도 오늘 안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다시 걸으려는 찰나.

누군가에 의해 몸이 들어 올려졌다.

류희수를 든 이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괜찮나?”

“아저씨…!”

“오랜만이네 그렇게 부른 건.”

대답하면서도 강태황은 멈추지 않은 채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류희수는 알 수 있었다.

강태황은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 이미 벌어져 있을까 초조해하고 있었다.

쿠웅!

다가오는 데몬들에 강태황이 지면을 박차며 높게 도약했다.

지금 저놈들을 상대하고 있을 시간 따윈 없었다.

‘빨리.’

쿵!

‘빨리.’

마음속에선 빨리라는 말만 되풀이되고 있었다.

스스로 조치를 해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듯 했지만 류희수는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어째선지 문과 거리가 먼 이곳에서 홀로 걸어가는 중이었고 말이다.

그리고 비광은 이곳에 없었다.

“장관님!”

옆에서 모습을 드러낸 부대에게 강태황이 류희수를 맡겼다.

비광이 류희수를 날려보냈다는 건 그만큼 그곳이 위험하단 이야기였기에.

부상당한 류희수를 다시 끌고 들어갈 순 없었다.

“…!”

그런 강태황을 올려다보며 류희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평소라면 함께 가겠다고 고집부렸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저 늦기 전에 강태황이 도착하길 바랄 뿐이었다.

“데려오마.”

짧은 말을 남기고 강태황이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머릿속으론 최악의 상황이 떠올랐지만 애써 무시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강태황조차도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 잃을 순 없다.’

서로의 등을 맞대며 싸워왔던 수많은 동료.

그중 많은 이가 이미 떠나가 버렸기에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았다.

‘…!’

저 멀리로 파란색을 띤 거구의 데몬, 헤키리스가 보였다.

그 앞엔 비틀거리는 비광이 서 있었고.

들어 올려진 헤키리스의 거대한 대검이 비광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

온 힘을 다해 땅을 박찬 강태황이 두 눈을 부릅떴다.

분명 엄청난 속도로 쏘아지고 있었고 평소라면 단숨에 도착했을 이 거리가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스아아아아!

시간이 느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비광에게 떨어지는 대검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여졌다.

비광을 향해 뻗어지는 강태황의 손도 느릿느릿하게 올라갔다.

‘안돼.’

거의 도달한 검에 강태황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강태황의 손은 제때 비광에게 닿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아….”

강태황의 나지막한 탄성과 함께.

시야로 피가 솟아올랐다.

* * *

투두둑.

눈을 감은 비광의 얼굴 위로 피가 쏟아졌다.

마지막 순간이 두려워 눈을 감은 건 아니었다.

그저 마지막인 만큼 더럽게 못 생긴 데몬보단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주마등이란 놈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감은 것이었다.

“이 상황에 잠이 와요?”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익숙보단 더럽게 반가운 목소리였다.

류희수의 상체가 뚫리고, 공격이 닿지 않는 헤키리스가 등장했을 때 비광은 어금니를 깨물었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절망이란 늪에 집어삼켜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안 떠올렸다면 거짓말이겠지.’

대한민국의 1급 헌터 비광.

1인 군단이라고 불리는 만큼 혼자서 많은 걸 해나가야 하는 자리였다.

그렇기에 평소에도 누군가에게 의지할 생각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떤 상황이든 혼자서 해결할 자신이 있었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전엔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간절히 바라고 말았었다.

돌산에서 고기가 구워지기도 전에 다 흡입해버리던 자식이 거짓말처럼 등장하길 말이다.

스륵.

비광이 감았던 눈을 떴다.

원래라면 자신의 몸을 갈랐어야 할 대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파란색 피.’

얼굴에 쏟아진 피 역시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피를 뿜어내고 있는 건 자신이 아닌, 조금 전까지 앞에 서 있던 헤키리스였다.

“크아아아아아아아!!”

헤키리스는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전에 베였던 만큼 깔끔하게 날아간 건지 헤키르스의 몸엔 더 이상 붉은 부분이 없었다.

잠시 솟아오르는 피를 응시하던 비광이 고개를 내렸다.

“….”

그곳에 무기왕 백운이 서 있었다.

한쪽 손엔 칠흑의 성해포로 감싸진 검을, 등에선 검은 연기를 무섭게 일렁이면서 말이다.

“너도 이 나이 돼 봐. 싸우다가도 잠이 오지. 뭐 어쨌든.”

비광의 입가로 미소가 그려졌다.

“여기서 보니까 반갑네.”

“제가 원래 만나면 반가운 상이잖아요.”

몇 마디 안 나눴을 뿐인데 뭐랄까.

잃어버렸던 여유가 되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얼레.’

갑자기 몸으로 엄청난 나른함이 쏟아졌다.

재수없는 데몬에게 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필사적으로 버텨내던 정신이 약간 풀어진 탓이었다.

“야 백운아. 미안한데 조금만 자고 일어날게. 더럽게 졸려서 참을 수가 없다.”

“푹 주무셔도 돼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이 감기는 사이.

절망으로 차가워졌던 비광의 몸으로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비광은 이 뜨거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달라진 건 단 한 명의 사람이 도착했다는 것뿐이었지만, 충분했다.

‘이 싸움….’

천천히 뒤로 넘어가며 비광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겼다.’

* * *

고개를 돌려 비광을 받아낸 강태황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봐왔던 강태황은 항상 여유가 넘쳤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쓰러진 비광을 살피고 있는 강태황.

“자는 거 맞죠?”

안도의 한숨을 내쉰 강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찍 죽을 팔자는 아닌가 보군.”

“하아아아아아!!”

나 역시 소리 내어 큰 한숨을 내뱉었다.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려진 안도의 한숨이었다.

강태황만 여유가 사라진 게 아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을 올려 가슴에 가져다 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친 듯이 요동치던 심장이 조금씩 얌전해지고 있었다.

진짜 위험했다.

헤키리스의 대검이 떨어지기 시작했을 땐 나도 모르게 호흡을 멈췄었다.

그리고 믿는 종교가 없음에도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었다.

늦지 않기를, 저 검이 닿기 전에 도착하기를, 내가 먼저 베어낼 수 있기를.

악귀참도를 휘두르는 그 순간까지도 기도했고.

다행히도 내 검은 대검이 비광에게 닿기 직전에 헤키리스의 팔을 날려낼 수 있었다.

땀 범벅이네.

단순히 급하게 날아와서는 아니었다.

지금 온몸을 적신 땀의 90%는 조금 전에 난 것이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회귀 전의 감각이었다.

곁을 지켜줬던 친구가 한 명씩 떠나갈 때마다 느꼈던 끔찍한 감각.

그 감각을 또 눈앞에서 느끼게 될까 봐 마음이 급해졌었다.

다행이야.

긴장했던 근육이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아직 싸움은 시작되지 않았으나 이 정도는 풀어져야 했다.

너무 과도하게 조여졌으니까.

“금방 다시 오도록 하지.”

“아니에요. 장관님. 어차피 이놈은 이 검으로만 상처 입힐 수 있거든요.”

애둘러 내가 맡겠다고 말하자 강태황이 조용히 날 응시했다.

강태황의 얼굴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가장 강한 상대를 맡겨야 한다는 미안함과 고마움 등등이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공격만 통하면 얘 별거 아니거든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 강태황이 비광을 들쳐 엎고 몸을 날렸다.

어느 정도 멀어진 두 사람을 확인한 후.

시선을 옮겨 헤키리스를 응시했다.

헤키리스는 잘려나간 팔을 움켜쥔 채 죽일 듯이 날 노려보고 있었다.

“감히!!!! 두 번이나!!”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헤키리스가 거칠게 울부짖으며 눈에 핏대를 세웠다.

얼굴은 잔뜩 일그러진 상태였다.

참 더럽게 생겼네.

훗카이도에서 팔을 봤을 때부터 예상했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한술 더 뜨고 있었다.

“….”

비광에 대한 걱정이 사라져서일까.

걱정에 가려져 있던 엄청난 분노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감히 한낱 인간 따위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놈을 향해 입을 열었다.

“감히 너 따위가.”

헤키리스의 말을 따라 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할 뿐이었다.

“감히 한낱 데몬 새끼가.”

나도 모르게 어금니가 깨물어졌다.

이렇게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살의가 차올랐다.

“실성이라도 한 거냐!!”

헤키리스의 입에서 투명한 에너지가 쏘아졌다.

서걱!

“!?”

악귀참도를 휘둘러 에너지를 베어냈다.

훗카이도 때와 마찬가지였다.

헤키리스가 사용하는 모든 에너지는 악귀참도의 먹이였다.

“겨우 이 정도냐?”

“건방진 소리를!!”

이번엔 쩍 벌어진 헤키리스의 입에서 푸른 광선이 쏘아졌다.

훗카이도에서 쏘아졌던 힘의 축소판이었다.

다시 한 번 그 힘을 악귀참도로 먹어치운 뒤 검을 휘둘렀다.

방금 먹은 에너지가 반월 형태의 참격으로 바뀌며 헤키리스의 옆을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하!! 어디다 휘두르는 것이냐?”

“일부러 빗나가게 한 거다.”

허세 같은 걸 부리는 게 아니었다.

혹시라도 검격에 저놈이 죽기라도 할까 봐 일부러 빗겨 휘둘렀다.

“헛소리를!!”

더 이상 대화를 주고 받고 싶진 않았기에.

나지막한 한숨을 내뱉은 뒤 걸음을 옮겼다.

“겨우 이 정도인 새끼가 감히.”

걸음을 내디디며 악귀참도를 들어 올렸다.

분노로 끓어오르는 몸과 달리 차가워지는 머리.

이제 머릿속에 남은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각오해라.”

말을 건네며 연기를 터뜨렸다.

“그냥은 안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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