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70화 (370/473)

370화. 병문안

뭘 좋아하려나.

병원 아래에 위치한 편의점.

진열대 앞에서 턱을 슥슥 문질렀다.

병문안으로 뭘 사가야 욕을 안 먹을까 고민 중이었다.

가봤어야 말이지.

병문안 간 적은 없어도 일본에서 사로카한테 줘터졌을 때 입원한 경험은 있으니.

그때의 경험을 최대한 살려 이것저것 집어보았다.

박하스와 비토 오백 등등 국민 병문안 아이템이라 불리는 것들이었다.

다다익선이지.

여러 박스를 집어 계산한 후 편의점을 나섰다.

생각했던 것보다 병원은 한산했다.

오기 전까지만 해도 부상자가 많아 미어터질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였다.

인명 피해가 크지 않다고 했었지.

강태황 장관은 아침에 대통령과 함께 기자회견을 가졌었다.

어제의 전반적인 상황 설명과 현재 피해 정도에 관한 것이었다.

솔직히 들으며 약간 놀랐었다.

건물이나 전투에 참여했던 헌터 쪽 부상자는 꽤 되지만 민간인 쪽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 지역에 배치된 헌터와 더불어 기업 및 기관에서 가용한 인원이 필사적으로 싸워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에 예상 밖의 지원도 꽤 많았다.

비칼 님이 왔었다니.

가장 의외의 인물이었다.

뉴스에선 비칼의 활약이 담긴 영상을 보도했었다.

이집트에서 봤던 대로 아주 그냥 모래로 데몬을 다 쓸어버리는 영상이었다.

# 다음은 이집트 1급 헌터 비칼의 전투 영상입니다.

또 나오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티비를 바라봤다.

아까 봤던 장면이 한차례 지나가고 비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무기왕에게 진 빚을 갚은 것뿐이다.

들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해지는 대목이었다.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비칼이 한국을 도와 싸운 활약이 내 덕인 것처럼 퍼져 나가고 있었다.

어쨌든 내가 생각하던 비칼이란 캐릭터와 많이 달랐던 터라 조금 놀랐다.

저벅.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으며 새로 산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일본에서도 쿄스케와 히메지 성의 전력, 그리고 료코가 가용한 인원을 끌고 부산에서부터 올라오며 데몬 처치를 지원했다.

그러다 제주도에서 온갖 방해를 뚫고 도착한 기태랑과 합류했고 말이다.

이들 역시 기자회견장에서 내게 받은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해 큰 논란이 됐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된 기분이야.

딱히 돌려받을 생각으로 건넨 게 아님에도 어쩌다 보니 되돌려 받아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와준 이들한텐 직접 찾아가거나 감사 전화라고 할 생각이었다.

비칼이랑은 어색한 사이라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17층이었나.

엘리베이터로 올라 구석에 섰다.

위에 달린 화면에선 CBC의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요즘 시청률이 아주 하늘을 찌른다고 들었다.

지금도 어떻게 찍은 건지 알 수 없는 동영상이 재생되는 중이었다.

내가 헤키리스와 싸우는 모습에 더해 망자가 쏟아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대단한 사람들이야.

CBC의 특징이 있다면 뉴스와 함께 해당 장면에 관한 네티즌의 실시간 반응을 보여 준다는 점이었다.

# 무기왕에서 망자의 왕으로 등극?!

# 데몬을 공격하는 거 봐선 같은 류는 아닌 거 같은데 대체 뭘까?

댓글엔 무수한 물음표가 달려있었다.

약간 멀리서 찍긴 했지만 나와 카사락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 있어서 더 그랬다.

# 무기왕이 키우는 댕댕이 아닐까요? 구도를 보면 무기왕이 명확한 갑으로 보이는데요.

# 어찌 됐든 무기왕이 불러들인 걸로 보입니다. 서울뿐만이 아니라 한국 전체를 구하기 위해서요.

# 무기왕이 저들을 부르지 않았다면 정말 위험했을 거예요. 사상자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겠죠.

댕댕이라니. 카사락이 보면 기절하겠군.

어깨를 으쓱이는 사이 도착한 엘리베이터.

내려서 문자로 받은 병실로 들어섰다.

그렇게 크진 않으나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1인실이었다.

“웬일이냐.”

누가 깎아주고 갔는지 배를 집어먹던 비광이 놀란 얼굴로 날 쳐다봤다.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혹시 제가 오면 안 되는 곳은 아니죠?”

“그건 아니지. 이렇게 빨리 병문안 오는 놈이었나 해서.”

“보여 줄 기회가 없었던 거지. 저 원래 이런 사람입니다.”

편의점에서 사온 음료들을 병실 한쪽에 올려두었다.

“뭐 살지 모르겠어서 보이는 거 다 집어왔구만.”

역시 눈치가 보통이 아니었다.

뜨끔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비광이 박스로 손을 뻗었다.

“목말랐는데 잘됐네.”

음료 하나를 내게 건네고 하나는 단숨에 들이켠 비광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좀 살… 으!”

한숨을 너무 세게 쉰 탓일까.

비광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와 다름없이 말하곤 있지만 비광의 부상은 보통이 아니었다.

몸 여기저기에 붕대를 안 감은 곳이 없었으며 약간이지만 피까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뭐지. 그 적응 안 되는 표정.”

“괜찮은 거죠?”

“으. 그러지마. 안 괜찮아질 거 같으니까.”

장난스럽게 인상을 찌푸린 비광이 손을 내저었다.

“여기저기 뚫리고 부러진 곳은 꽤 있는데 얌전히 누워있으면 금방 나을 거래.”

“다행이네요.”

“온 김에 배나 좀 더 깎아줘. 너도 좀 먹고. 난 손이 이래서.”

비광이 붕대를 칭칭 감은 두 손을 올려 보였다.

당장 움직일 수 있는 건 엄지와 집게손가락이 전부였다.

“뭔가 비광 님이 그러고 있으니까 안 어울려요. 얼른 퇴원하세요.”

“나도 그러고 싶네. 그런데 너.”

배를 건네받은 비광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과일 깎는 법 모르냐? 알맹이 반을 다 날렸네.”

옆통수로 땀 한줄기가 흘렀다.

아무래도 들킨 모양이었다.

매일 누가 깎아 준 거나 먹었지 과일 자체를 따로 사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칼 잘 쓰길래 잘 깎을 줄 알았더니.”

농담스럽게 말한 비광이 배를 반으로 쪼개 건네주었다.

오씨.

한입 물자마자 입안으로 달콤한 과즙이 터졌다.

어디서 사온 건지 묻고 싶어지는 훌륭한 배였다.

“그래서. 그 뉴스 댓글에서 말하는 댕댕이는 누구야?”

비광이 배를 우물거리며 물어왔다.

내심 등장했던 망자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댕댕이 아니에요. 그게 댕댕이면 이제 강아지 말고 킹냥이 파로 돌아설걸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하다.

핵심 부분만 찝어 망자의 세계에서 카사락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럼 계속 불러낼 순 없겠구만.”

“그렇죠. 제가 두 번 부를 인간이란 걸 안 건지 맹약을 호다닥 거둬가더라고요.”

“똑똑한 친구네. 두 번이 뭐야. 백 번도 더 부를 인간이지.”

서로 피식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그런 엄청난 놈들을 무릎 꿇리고 살려주는 대가로 맹약을 받았다니. 알면 알수록 멀어지는 기분이네.”

“하하…. 멀어지다뇨. 전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냥 백운인데요. 그나저나 장관님이 고생하시네요. 아까도 보니까 망자들에 관한 질문이 엄청 쏟아지던데요.”

“당연하지. 전 세계적으로 이슈니까. 지금은 무기왕보다 망자의 왕으로 더 많이 불릴걸.”

그렇게 실없는 농담을 몇 마디 더 주고받길 잠시.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이제 곧 면회 시간 종료입니다.”

“앗 넵!”

비광이 누워있는 곳은 집중 치료실.

면회 시간이 꽤 빡빡한 곳이었다.

“또 올게요.”

“어디 또 나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한동안은 여기에 있으려고요.”

타의에 의해 남으려는 건 아니었다.

어젯밤 현장을 정리하던 강태황도 내게 말했었다.

앞으로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하는 몫이니 원하면 바로 떠나도 좋다고 말이다.

1급 헌터가 될 때 약속했던 자유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다시 한번 알려 준 것이었다.

하지만 강태황의 말에 난 크게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었다.

당장 찾아야 하는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지금 내가 바로 떠났다간 강태황과 헌터청이 곤란해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적의 침략은 막아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언제 또 이런 적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이 불안이 진정될 때까지는 무기왕이 한국에 있다는 걸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게 여러모로 좋을 터였다.

실제로 어제 내게 허락을 구한 강태황은 기자회견장에서 무기왕이 한동안 머무를 거라고 발표했고 반응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뜨거웠었다.

“그럼 또 보면 되겠네.”

“내일도 올게요.”

“놉. 자주 오진 말고 가끔 와. 그래야 반갑지.”

여전히 장난스러운 비광에 고개를 끄덕이며 문쪽으로 몸을 돌렸다.

문을 열고 병실을 빠져나가기 전.

“백운아.”

비광이 평소와 달리 진지한 얼굴로 내 이름을 불렀다.

“고맙다. 살려줘서.”

얼굴을 긁적이며 말하는 비광에.

입가 한가득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별말씀을요!”

* * *

“네. 그럼 끊을게요! 푹 쉬세요!”

카랑카랑하게 외친 전수희가 전화를 끊었다.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온 백운.

대산 사람들과 학교에 다니고 있을 최유라가 무사한지 걱정되어 전화한 것이었다.

“백운 님도 다친 곳은 없다고 하네요.”

전수희가 건너편에 앉은 소피아에게 말을 건넸다.

걸려온 전화가 백운이란 걸 알자 편하게 받으라고 했던 소피아.

소피아가 내심 백운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걸 알았기에 전수희 역시 전화를 끊자마자 알려준 것이었다.

“다행이네요.”

소피아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무사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한참 퍼지는 동영상에서 백운이 딱히 다치거나 할 만한 위험은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조금 걱정됐었다.

주변의 누군가가 이번 사태에 휘말려 희생되거나 해서 의기소침하진 않을까 하고 말이다.

“전화는 평범한 사람 같구만.”

앉아있던 대산의 기둥 장판석이 웃음을 터뜨렸다.

몸 여기저기에 붕대를 감은 건 물론 한쪽 팔에 깁스까지 한 상태였다.

“판석 님도 쉬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굳이 오실 필요 없었는데요.”

“팔만 좀 불편한 거니까 됐어.”

장판석도 다른 헌터들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었다.

건물을 요새화하고 나머지 가용 인원은 전부 밖으로 보내 서울을 지원했었던 대산.

장판석 역시 헌터들을 돕기 위해 나갔고 그 과정에서 꽤 강력한 데몬들과 쉬지 않고 전투를 치렀었다.

“나중에 또 전화 오면 나 좀 바꿔줘. 고맙다고 하게.”

껄껄 웃으며 장판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둥인 장판석도 어제는 쉽지 않았었다.

쌓여 가는 부상에 더해 데몬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백운이 부른 망자들이 등장해 데몬들을 쓸어 준 것이었다.

“아. 수희 님. 혹시 백운 님께 집 관련된 건 알려주셨나요?”

“아…! 안부 묻느라고 깜빡했어요! 지금 다시 전화 드릴게요!”

“아니에요. 집 근처라고 하셨으니까 이제 보셨겠죠.”

소피아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백운 님이 앞으로.”

백운의 반응이 벌써부터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데몬을 더 미워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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