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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74화 (374/473)

374화. 조사

대산의 회장실.

“잘 어울리네요.”

소피아가 날 바라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전수희를 데려다준 뒤 들렀던 샤워실.

뜨신 물로 샤워한 거까진 좋았는데 전수희가 말했던 여분의 옷이란 게 좀 특이했다.

“대산을 사칭하거나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입은 활동복엔 커다랗게 대산이란 글자가 적혀 있었다.

워크샵이나 기업 체육대회 때 입는 대산의 활동복이었다.

다행히 칙칙한 회색으로 내가 평소에 즐겨 입는 색이었다.

“이참에 대산에 들어오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제 옆자리로요.”

“감사한 말씀이네요.”

감사하지만 진심이라면 무조건 거절이었다.

회장님 옆이라니 마음대로 인터넷 서핑도 못 할 터였다.

똑똑… 끼익.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전수희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잘 치료 받은 건지 아까보다 한결 편안한 얼굴이었다.

“하하… 몸이 너무 약한가 봐요.”

쑥스러운 표정을 지은 전수희가 머리를 긁적이며 걸어왔다.

한쪽 팔엔 깁스를 한 상태였다.

슬쩍 곁눈질로 소피아의 표정을 살폈다.

소피아에겐 엘리베이터에서 있었던 일을 미리 말해줬었다.

대산을 곤란하게 해서 죄송하단 사과와 함께였다.

소피아는 내가 죄송할 게 뭐가 있냐며 손을 내저었었고 말이다.

회장님 화나셨네.

그랬던 소피아의 얼굴이 약간 굳어 있었다.

전수희가 날아갔다는 건 말해줬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 생각은 못 한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조심성 없이 덤벙대다가 곤란한 상황이 만들어졌어요.”

꾸벅 고개를 숙이는 전수희에 소피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팔은 괜찮은 건가요?”

“금이 가긴 했는데 집중 치료를 받아서 금방 나을 거예요.”

활기차게 말한 전수희가 내 옆으로 와 몸을 앉혔다.

“최리아 실장한텐 제가 나중에 말할게요. 출장 가 있는 동안 분통을 터뜨릴 테니까요.”

충분히 그럴 사람이지.

과거 히메지 성에서 봐 알고 있었다.

최리아가 전수희를 얼마나 끔찍이 아끼는지 말이다.

아마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면 당장 천일인가 뭔가 하는 곳으로 가 한바탕 할지도 몰랐다.

“천일은 오늘 인사 차원에서 대산에 들렸어요.”

차를 한 잔 홀짝인 소피아가 입을 열었다.

“이번 침공에 관련된 기업 중 대산과 협력하던 곳이 꽤 있었거든요. 모두 총수가 사라지며 공석이 되어버린 기업이기도 하고요.”

총수와 임원들이 모조리 실종되긴 했지만 기업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었기에.

기업들의 2대 주주인 천일이 운영을 맡기로 했다는 것이다.

가장 큰 협력 기업인 대산에게 그 사실을 알림과 동시에 인사하려고 오늘 들렸고 말이다.

천일이라… 분명 리스트에도 있었지.

강태황이 가장 먼저 의심한 곳도 천일이었다.

기업들의 1대 주주인 총수가 사라지며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백운 님도 침공에 가담한 기업을 조사 중이라고 하셨죠?”

“네. 아직 관련된 곳이 꽤 있을 거 같아서요.”

소피아가 빙긋 미소를 그렸다.

“대산은 의심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번에 계좌와 각종 자료를 제일 먼저 헌터청으로 보냈으니까요.”

나도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청의 리스트에선 이미 혐의없음으로 결정된 대산이었다.

“소피아 님이 보시기에 천일은 어떤가요?”

“천일요….”

작은 한숨을 내쉰 소피아가 의자로 몸을 기댔다.

“많은 힘을 가진 기업이에요. 대대로 쌓아온 부도 엄청나고 이번 일로 덩치도 훨씬 커졌죠. 각종 정계 인사와도 거미줄처럼 연관되어 있고요. 그리고 이번 일과 관련이 있는지는… 사실 저도 확답 드리긴 힘들어요. 아직 눈에 띄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거든요.”

한 손으로 낑낑대던 전수희가 서류 뭉치 하나를 내밀었다.

“사실 대산에서도 천일에 관한 조사를 진행 중이었어요.”

기업 간의 조사가 특별한 건 아니라며 소피아가 덧붙였다.

기존에도 협력이나 협악 전에 서로를 조사하는 건 관례에 가깝다는 이야기.

소피아와 대산은 이 관례에 가까운 조사에 더해 침공과 관련된 혐의점을 찾는 중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천일이 침공의 가장 큰 수혜자라는 건 대산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지열 회장을 개인적으로 봤을 땐.”

소피아가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지금 하늘 같은 먹색을 가진 사람이라서요.”

“그렇군요.”

공과 사 측면에서 설명해주는 소피아에 고개를 끄덕였다.

회색이라고 다 나쁜 새끼는 아닐 테지만 소피아는 남다른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주 제대로 보셨어.

아까 하는 꼬라지만 봐도 절대 멀쩡한 새끼는 아니었다.

착한 척 처웃기는 하지만 분명 뒤가 구린 새끼일 터였다.

“아 백운 님이 미리 전화로 알려 주신 거요.”

전수희가 턱을 문지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앞엔 여러 장의 인물 정보가 펼쳐져 있었다.

“알려 주신 걸 토대로 알아보긴 했는데 딱히 특정되는 인물은 없었어요. 앞에 있는 건 각 기업에서 힘 좀 쓴다고 알려진 사람들이에요.”

문서엔 주로 사용하는 무기와 개방한 능력 등이 적혀 있었다.

그중에 피아노 줄이나 현 같은 걸 사용하는 사람은 없는 상태.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봐야 하나 싶은 순간 전수희가 문서 한 장을 가리켰다.

“어? 이 새… 아니, 이 사람은 아까 그 엘리베이터네요.”

“네! 맞아요.”

천일의 대외협력본부 본부장 김신.

다른 인물에 비해 김신의 문서는 수집된 정보가 현저히 적었다.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진 건 몇 번 확인된 터라 관련된 능력을 개방했을 거라 추측 중인 상태.

“꽤 오래전부터 천일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걸로 알려진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정보가 없어요. 김신이 싸우는 걸 직접 목격한 사람도 없고요.”

목격한 사람이 없다니.

약간 묘한 말이었다.

“만났던 사람은 전부 다 죽었다거나 그런 건가.”

머리로 떠오른 걸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소피아와 전수희가 약간 놀란 눈으로 날 바라봤다.

무서운 말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한 듯했다.

“하하…. 제가 숭한 소리를 너무 막 했네요.”

“아니에요.”

“넵?”

곧바로 아니라 말하는 소피아를 바라봤다.

무언가를 떠올리는가 싶더니 말을 잇는 소피아.

“아주 진한 피 색깔이었거든요.”

“…!”

“제가 본 것만으로 김신이 사람을 많이 죽였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요.”

“가능성은 있는 거군요.”

고개를 내려 다시 한번 김신의 문서를 살폈다.

내가 찾던 무기와 관련된 정보는 없었지만, 어쨌든 기업의 인물 중 대산이 유일하게 정보를 수집하지 못한 인간이었다.

눈깔이 맛이 가 있긴 했어.

확실히 사람을 바라보는 눈깔은 아니었다.

언제든 밟아 죽여도 되는 존재를 바라보는 듯한 눈.

지금까지 만났던 놈들 중 비슷한 부류가 많았던 터라 낯설지 않은 눈깔이었다.

“이건 다른 이름으로 소유됐지만 천일의 것으로 추정되는 부동산 정보에요.”

강원도 산골짜기부터 남산 구석탱이까지.

하나 같이 인적이 드문 것이 약간 구린내가 풍기는 장소였다.

“서로의 조사는 암묵적으로 허락되긴 하지만 어느 정도 선이란 게 있긴 해서요. 아직 함부로 들춰보지 못하고 있는 곳들이에요.”

전수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일단 찾아볼 만한 대상과 장소는 특정할 수 있었다.

“항상 신세 많이 지네요.”

자료를 챙겨 넣은 뒤 소피아와 전수희에게 꾸벅였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 * *

“본부장님.”

천일의 대외협력부.

테이블에 다리를 올린 김신이 고개를 들었다.

“아까 말씀하신 놈 말인데요.”

고개를 갸웃거린 부하가 김신에게 테블릿을 건넸다.

테블릿엔 대산에서 프라이빗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사원들의 얼굴이 나와 있었다.

회장 소피아를 포함해 각 실의 실장과 팀장급 인원들이었다.

“대산에 소속된 놈이 아닌 거 같습니다. 일치되는 얼굴이 없습니다.”

“뭐?”

김신이 미간을 찌푸렸다.

다시 떠올려보니 남자의 목엔 사원증이 걸려있지 않았었다.

“부딪힌 여자는 전수희라고 대산 홍보실 팀장입니다.”

“그건 됐어. 대산 쪽에 더 알아볼 루트는 없나?”

“예. 다른 기업이랑 다르게 대산은 워낙 보안이 철저해서요. 시도는 해볼 수 있겠지만 잘못하면 대산의 귀에 들어갈 겁니다.”

김신이 혀를 차며 의자로 몸을 기댔다.

유지열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신경 쓰이는 인간이었다.

방심했다고 하더라도 순간 느꼈던 감각은 깔끔하게 잊기 힘든 것이었다.

“죽여버리고 싶은데….”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던 김신이 대기 중인 부하들을 돌아봤다.

“조용히 그 새끼 찾아. 그리고.”

몸을 일으킨 김신이 입꼬리를 올렸다.

“남산으로 데려와.”

* * *

보자 보자. 어쩌면 좋을꼬.

길을 걸으며 턱을 슥슥 문질렀다.

대산의 활동복을 입고 나온 탓에 시선이 집중됐지만 일단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 해야 이 자식의 능력을 좀 볼 수 있으려나.

일단 꽂힌 건 천일의 대외협력본부장 김신이었다.

관상은 과학이라고 분명 뒤가 구린 자식이었다.

그 새끼였으면 좋겠다.

아직 알아낸 건 없지만 내 간절한 바람이었다.

김신이 현을 사용하는 놈이기를, 그놈이 속한 천일이 침공에 가담한 곳이기를 말이다.

그래야만 아주 제대로 짓밟아 가루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좋은 방법 없나.

대산의 조사에도 능력이 드러나지 않는 녀석이었다.

그만큼 조심성이 많은 놈이란 증거.

웬만한 방법으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능력을 사용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얼른 좋은 방법을 떠올려!

머리를 움켜쥔 채 몸을 숙였다.

이걸로 시간을 질질 끌고 싶진 않았다.

단번에 팍! 하고 김신이 사용하는 능력을 알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두뇌 풀회전 하기를 한참.

오 시발. 유레카.

머리를 스치는 묘책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지금까지 고민한 게 약간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었다.

아무리 조심성이 많은 놈이라도 능력을 꺼낼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상황을 만들어주면 김신은 알아서 능력을 꺼낼 터였다.

우매했군.

대산처럼 몰래 정보를 캐내고 할 자신은 없었지만, 김신에게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건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자 그럼 옷부터 갈아입고.

대산의 활동복을 입고 갈 순 없는 노릇이기에 가까운 옷 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식량도 좀 필요하겠군.

다음으로 들릴 곳을 떠올리며 입가로 미소를 그렸다.

오랜만에 잠복근무를 진행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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