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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75화 (375/473)

375화. 습격

후룹.

천일 그룹사 앞에 위치한 카페.

뜨듯한 바닐라 라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내가 생각한 건 이게 아니었는데.

처음에 떠올린 건 영화 속에서 보던 형사들의 잠복이었지만 현실과는 약간 괴리가 있었다.

일단 천일 근처에 그렇게 숨어 있을만한 장소가 없었다.

뚜벅이다 보니 차 안에 들어가 있을 수도 없었고 말이다.

좀 무식했나.

김신에게 위협을 느끼게 하여 능력을 끌어낸다.

아주 그럴싸한 계획이지만 김신을 찾아내야 하는 단계가 좀 문제였다.

대산의 자료에도 김신의 거주지가 없던 터라 이렇게 주구장창 기다리는 방법 말곤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김신의 차 번호를 알고 있다는 점.

이건 강태황이 맡아주기로 했기에 만약 김신이 저 입구로 걸어 나오지 않고 차를 타더라도 잡아낼 수 있었다.

다른 사람 차면….

경우의 수를 생각하다 고개를 흔들었다.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김신을 찾는 건 답도 없이 힘들어졌다.

안 나오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다시 한번 굳게 다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다.

누구보다 시간이 많은 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응?

다시 한 모금 홀짝이던 중.

몇 자리 떨어진 곳으로 수상해 보이는 여자가 몸을 앉혔다.

내가 수상한 사람 감별사 같은 건 아니었으나 뭐랄까.

대포알만 한 선글라스에 입부터 코를 덮는 마스크와 벙거지 모자까지.

딱 봐도 나 수상한 사람이요! 하고 어필하는 차림새였다.

여자는 커피를 홀짝이며 기업 천일의 입구를 살피고 있었다.

나보다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같은 목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잠복에 있어선 나보다 한 수 아래인 듯한 여자.

그런데 보고 있다 보니 묘하게 낯익은 실루엣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너무 뚫어져라 쳐다본 탓일까.

시선을 느낀 여자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에 띄게 화들짝 놀라는 걸 보니 내 착각이 아닌 듯했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여자가 슬금슬금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아주 부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에 앉아 선글라스를 슬쩍 내렸다.

“!?”

CBC의 송유빈.

익숙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국민 리포터를 여기에서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백운 님…!?”

나만 놀란 게 아니었다.

잔뜩 목소리를 낮춘 송유빈이 눈이 잔뜩 커진 채로 물어왔다.

“안녕하세요. 유빈 님.”

덩달아 목소리를 낮추며 인사를 건넸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건네긴 했으나 약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절대 기억력을 가진 만큼 조금만 실수해도 내가 무기왕인 걸 들키기에 딱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난 지 일 분도 안 돼서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요.”

“네…?”

말할까 말까 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유빈 님. 엄청 수상해 보여요.”

“!!”

아무래도 본인은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얼굴이 워낙 많이 알려진 송유빈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거 같긴 했지만, 어쨌든.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커피 맛이 좋아서… 라고 하기엔 프랜차이즈고.”

“잠복 수사예요.”

“우연이네요. 저돈데.”

“…?”

약간 몸을 뒤로 뺀 송유빈이 위아래로 날 훑었다.

“집 앞 편의점 나가는 듯한 츄리닝 차림으로요?”

“원래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은 거예요. 그런데 혹시 수사 대상이 천일인가요?”

송유빈이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해신부터 목표물이 또 한 번 겹치는 순간이었다.

날 지긋이 바라보던 송유빈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백운 님은 대산의 기둥이잖아요. 대산에서 왜 천일을 조사하는 건가요?”

아. 나 기둥이란 설정이었지.

송유빈의 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이게 문제였다.

정작 내가 한 거짓말을 까먹고 떠오르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건요.”

소피아에게 들었던 말과 비슷하게 둘러댔다.

협력 관계 때문에 형식상 조사를 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렇군요.”

“유빈 님은요?”

“저는 이번 데몬 침공 때문에요.”

“침공요…?”

“네.”

송유빈이 가지고 있던 테블릿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데몬에 가담한 기업들과 총수들이 사라지며 최대 주주가 된 천일. 이번 침공의 최대 수혜 기업이죠. 저는 이게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한낮 한시에 총수가 사라진 것도 부자연스럽고요. 마치 믿을만한 누군가에 의해 소집 당한 것처럼 한 번에 사라졌으니까요.”

“유빈 님 혼자 파는 이유는요?”

“아무도 알아보려 하지 않으니까…요?”

송유빈이 어깨를 으쓱였다.

“CBC에선 비공식적으로 지침이 내려왔어요. 천일에 관련해선 언급하지 말라고요. 이유는 간단하죠. 맨 위에서 겁을 먹은 거예요. 천일은 대산에 이어 손에 꼽히는 대기업 중 하나로 정재계 이곳저곳에 많은 영향을 행사하고 있거든요. 정부 기관조차 몸을 사릴 정도로요.”

이건 소피아에게도 들었었다.

기업의 몸집 자체는 대산이 더 크지만 정재계에 영향력이 큰 건 천일일 거라고 말이다.

“연차 쓰고 오신 거예요?”

“네. 이런 건 서로가 쉬쉬하다 보면 조용히 묻히기 마련이니까요. 전 그렇게 두고 싶지 않아요. 무기왕이 다시 한번 나라를 구하긴 했지만, 만약 무기왕이 없었다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대학살이 벌어졌을 거예요. 미약하지만 제힘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알아보고 헌터청이든 어디든 정보를 제공할 생각이에요.”

회사에서 지침이 내려왔는데도 연차까지 쓰며 잠복 수사라니.

뭔가 송유빈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놈들을 봤을 땐 무척 위험해 보이기도 했고 말이다.

지이이잉.

송유빈의 테블릿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화면엔 조영천 팀장님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한참 팔짱을 끼고 있던 송유빈이 전화를 받자.

# 야아아아아아아아!!!

전화기 밖으로 거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미리 귀를 떼고 있었던 송유빈.

질러졌던 소리가 잦아들자 송유빈이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는 얼어 죽을! 어디야!?

“저 오늘 연차입니다.”

# 결제 승인도 안 났는데 무슨 연차야!

조심스레 송유빈을 바라봤다.

아무도 허락해주지 않은 연차를 그냥 냅다 던지고 온 모양이었다.

# 너 이번엔 하지 마. 진짜.

“제가 뭘 하는데요?”

# 천일! 못하게 한 다음 날에 바로 연차 쓴 거 보면 뻔하지. 하지 말라면 좀 제발 하지 마 좀! 좀! 좀!

“팀장님도 제가 한다는 거 못하게 좀 하지 마세요. 좀!”

엄청난 신경전이었다.

건너편에 있는 조영천도 꽤나 고생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제가 특종 물어 갈게요. 진짜 분명 뭔가 있다니까요.”

# 특종이고 나발이고 당장 와! 이거 연차 결제 절대 안 해줄 거야. 너 무단결근이라고!

강경한 조영천에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송유빈이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 뭐?

뜻밖의 순순한 대답이어서일까.

조영천이 멈칫하는 사이 송유빈이 다음 말을 이었다.

“열심히 하라고 하시니 내일도 연차 쓰겠습니다. 무언가 잡을 때까진 돌아가지 않을게요! 그럼 이만!”

# 야! 미….

통화를 종료한 송유빈이 호다닥 테블릿 전원을 껐다.

천하의 송유빈도 강수를 둔 건지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내 부하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마음속으로 되뇌는 찰나 송유빈이 아무렇지 않은 척 종이 몇 장을 꺼냈다.

“전 오늘은 여기에 있다가 내일부턴 이 장소들을 중점으로 돌아볼 생각이에요. 천일 주요 간부들의 집이에요.”

“…!?”

뜻밖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대외협력본부장 김신.

문서엔 대산도 구하지 못한 김신의 집 주소가 적혀 있었다.

“이걸 어떻게…?”

송유빈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미소를 그렸다.

“연예계 친구들의 정보력이 은근 강력하거든요. 단순 가십거리나 잘못된 정보도 많지만 이 주소들은 다 믿을만한 친구들이 알려줬어요.”

“오!”

감탄하며 눈에 김신의 집 주소를 담았다.

아무래도 회사 앞 잠복 수사를 계속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 * *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늘은 생각을 정리할 겸 차에서 일찍 내린 김신이 길을 거닐었다.

‘대산에서 나오지 않았다라.

퇴근 직전 대산 앞에서 대기 중이던 부하들에게 연락이 왔었다.

부딪힌 여자는 찾았지만 남자는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주차장과 사람이 드나드는 모든 입구를 살폈음에도 말이다.

‘늦은 건가.’

김신의 부하들이 그리 늦게 도착한 것도 아니었다.

김신과 유지열이 대산을 떠나고 두 시간이 안 된 시점이었다.

‘일찍 나왔거나 아직 건물에 남아있거나 둘 중 하나일 거 같은데.’

김신이 혀를 차며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 너무 오버하는 건가.’

어찌 보면 별거 아닌 일이었다.

김신이 천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신체 보유자긴 하지만 그렇다고 관련된 능력을 개방한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타고난 재능과 단련으로 도달할 수 있는 범위.

만약 엘리베이터의 남자가 신체 강화 개방자라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답지 않군.’

김신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무뎌진 것이었다.

쉴 새 없이 실전 임무 수행을 해왔지만 제대로 싸워본 건 언젠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잘못은 아니지.’

김신에겐 하나같이 쉬운 임무들이었다.

아주 약간의 위협조차 느껴지지 않는 임무.

날고 긴다는 놈을 제거하러 갈 때는 조금 기대했던 적도 있지만, 막상 도착해보면 하품이 나올 정도로 약했었다.

오 분.

대상을 죽이는데까지 걸린 최대 시간이었다.

김신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 시간을 넘겨본 적이 없었다.

이렇다 보니 감각이 무뎌졌고 별 거 아닌 놈한테 필요 이상의 신경을 써버리고 말았다.

실제로 맞붙으면 마찬가지로 오 분도 못 넘길 녀석한테 말이다.

‘음?’

집으로 가기 위해 어두운 골목길로 들어선 순간.

희미하게 보이는 실루엣에 김신이 눈살을 찌푸렸다.

수명이 다한 건지 깜빡이는 가로등 아래에 누군가 서 있었다.

깜빡일 때마다 보이는 건 하체뿐이었다.

그 위로는 그림자에 삼켜진 상태.

김신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할 일 없는 인간이군. 이 시간에.’

별 인간이 다 있구나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고, 깜빡거리던 가로등이 꺼졌다 켜진 찰나의 순간.

“!?”

아래에 있던 누군가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김신이 걸음을 멈추고 자세를 낮춘 사이 가로등이 다시 한번 꺼지고.

“!!!”

빛이 들어온 순간 눈앞으로 날카로운 검이 날아들었다.

몸을 젖히며 간신히 피해낸 김신이 몸을 돌리며 손을 뻗었다.

“뭐 하는 놈이냐!”

잡았다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잡아야 했다.

상대가 인간이라면 절대 피할 수 없는 위치와 자세였기 때문이다.

스악!

하지만 상대의 몸은 기이할 정도로 꺾이며 김신의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확실하게 잡았다고 생각했기에 생긴 약간의 틈.

그 틈을 정확히 찔러오는 공격에 김신이 더 생각할 새도 없이 품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선명한 방울 소리가 밤공기를 가르며 골목길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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