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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76화 (376/473)

376화. 수상한 놈들

김신이 골목길 한쪽을 응시했다.

방금 전까지 정체불명의 가면이 서 있었던 장소.

‘오늘 무슨 날인가.’

김신이 미간을 찌푸렸다.

낮에 만난 엘리베이터의 남자부터 조금 전 정체불명의 가면까지.

몇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상황을 연달아 만나고 있었다.

‘묘하군.’

본능적으로 방울을 꺼내 들긴 했지만, 현을 뿌려내거나 하진 않았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눈치챘었기 때문이다.

적의 공격이 자신에게 닿지 않을 거란 사실을 말이다.

상대가 거리를 잘못 가늠해 모자라게 찌른 건 아니었다.

정확한 계산하에 뻗어진 검인 만큼 자신을 죽이는 것 외의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 증거로 김신이 동작을 멈추자 상대도 무언가를 눈치채곤 곧장 몸을 뒤로 빼 골목길을 빠져나갔었고 말이다.

‘어디에 속한 놈이냐.’

김신은 굳이 가면의 남자를 쫓지 않았었다.

속도를 봤을 때 뒤늦게 쫓아간다고 따라잡을 만한 움직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신이 남자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했다.

이 정도로 자신의 허를 찌른 적은 오랜만이었다.

인식할 수 없는 속도로 접근한 것도 모자라 가면의 남자는 김신이 보인 약간의 틈을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왔었다.

어중이떠중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주 오랜 시간 훈련을 받았거나 수많은 실전으로 싸움에 도가 튼 놈임이 확실했다.

순간적인 판단력과 실행력, 여기에 방향을 선택하는 전투 센스까지.

아마도 자신과 비슷한 류일 거라고 김신은 생각했다.

싸움에 있어 재능을 타고난 인간.

‘감질나는군.’

몸이 근질거리는 걸 느끼며 김신이 입맛을 다셨다.

마음 같아선 당장 현을 뿌려내며 날뛰고 싶었지만 리스크가 컸다.

기업 천일은 조용히 시간을 죽여야 하는 시기였고 골목이 위치한 장소도 좋지 않았다.

소란이 일어났을 때 보는 눈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여러모로 드는 생각에 김신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황만 보면 회사와 직책이란 건 참으로 피곤한 것이었다.

옛날 같았으면 대충 현으로 썰어버리고 데몬의 소행이라고 둘러대면 그만이었을 텐데 말이다.

‘어쨌든… 이쪽이 진짜군.’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놈 따위는 이미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그놈은 불확실성이 가득했지만 방금 나타난 놈은 아니었다.

제대로 싸웠을 때 김신을 몸풀기 이상으로 즐겁게 해줄 게 분명했다.

“큭.”

웃음을 터뜨린 김신이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재밌구만.”

* * *

면도칼을 해제하며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었다.

아직도 귓가에 남아있었다.

밤공기를 가르던 선명한 방울 소리가 말이다.

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소리를 재생시켰다.

녹음에도 제대로 담았으니 원하던 바는 달성했다.

다만 조금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김신이 무기를 휘둘렀다면 더욱더 확실해졌을 텐데.

어째선지 김신은 중간에 동작을 멈췄었다.

마치 내가 끝까지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아는 것 같았다.

감이 좋은 건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하기엔 김신의 결정엔 강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목으로 칼이 날아드는데도 방어를 멈출 수 있는 확신.

이건 감 같은 걸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마도 개방한 능력과 관련이 있을 듯했다.

개방 능력이야 워낙 다양하니 한 번 칼을 맞댄 걸로 추정할 순 없겠으나.

방금 김신이 한 행동을 봤을 땐 순간 예지 혹은 예지에 가까운 경로 계산이 아닐까 싶었다.

그냥 모른 척 푹 찔러버릴 걸 그랬나.

대산에서 전수희에게 한 짓과 데몬에 가담한 것까지.

백 번은 더 쑤셔도 모자랐지만 아직 잡아야 할 대어가 남아있었기에 최대한 인내하며 목적 달성에만 초점을 뒀었다.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하는 꼬라지를 보니 김신은 거의 유지열의 오른팔 느낌이었다.

필요할 때 제일 먼저 움직이는 행동 대장 느낌.

그런 놈이 아무런 지시도 받지 않고 혼자 움직였을 리가 없었다.

조금만 참자. 이 새끼는 미끼야.

끝까지 후비지 않은 스스로를 칭찬하며 걸음을 옮겼다.

방금 들은 소리로도 심적 확신은 들었지만, 더 확실히 하기 위해 듀린이에게 들려줘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듀린이가 들었던 소리와 녹음된 소리가 일치한다면 천일인지 만일인지를 제대로 표적 수사해 파 줄 생각이었다.

데몬에 빌붙은 거에 개인적인 원한까지 더하여 아주 제대로 말이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머리로 오만했던 유지열과 김신의 면상을 떠올렸다.

친구들.

* * *

다음날 오후.

헌터청 엘리베이터로 몸을 실었다.

강태황을 만나 지금까지의 상황을 말해준 후 다음 행동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아침 일찍 듀린이를 만나 어제 녹음한 것도 들려줬었다.

이거야!! 라고 외치며 고개를 끄덕였던 듀린이.

긴가민가한 기색조차 없이 녀석은 강하게 확신했었다.

- 어떻게 한 거야!

듀린이는 반짝이는 눈으로 날 올려다봤었다.

알려준 지 하루 만에 어떻게 알아올 수 있냐는 것이었다.

물론 이에 대해 답변해주진 않았었다.

듀린이들의 형님 위치에 있는 만큼 어느 정도의 신비주의는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계속 예의 주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정장 차림의 남자 대여섯 명이 보였다.

안에 내가 타고 있다는 걸 알자 말을 멈추는 남자들.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남자들은 경계의 눈초리를 잔뜩 보내고 있었다.

그런 남자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꾸벅이고 지나쳐 강태황의 방으로 걸어갔다.

스치며 보니 가슴팍엔 금색 배지가 있었다.

국회의원이나 할 법한 느낌의 배지였다.

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가자 강태황이 손을 들어 보였다.

테이블에 여러 잔의 컵이 있는 걸로 보아 조금 전 나간 남자들은 강태황에게 볼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전화로 하거나 대충 문자 하나 던져주지 그랬나. 뭘 힘들게 여기까지.”

“어휴. 아닙니다. 와서 말씀드려야죠.”

손사래를 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솔직히 상황이 이렇고 저 이제 이럴 겁니다! 하고 문자로 통보했어도 되지만.

난 엄연한 사회인 중 한 명이었다.

아무리 친하다 한들 어디 감히 한 기관의 수장에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나중에 차관이라도 시켜주시지 않을까.

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잠깐 해보며.

지금까지 알아낸 것들을 상세히 이야기해주었다.

“흐음.”

이야기가 어느 정도 끝나자 앓는 소리를 내는 강태황.

“천일이라…. 괜히 이번 일의 최대 수혜자가 아니었군.”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그 유지열이란 회장도 애가 좀 비정상이더라고요. 충분히 그런 짓 하고도 남을 놈이라 해야 하나.”

“방울 소리를 들은 아이까지 있으니 심증은 확실하겠군.”

“네. 이제 물증을 잡아보려고요. 아직 방법은 생각해둔 게 없지만요.”

날 쳐다보던 강태황이 묘한 웃음을 터뜨렸다.

“매번 하는 소리지만 참 면목이 없군. 장관이 돼서 제대로 도와주지는 못하고 다른 일에 휘둘려 다니고 있으니.”

“다른 일요?”

강태황의 시선이 놓여 있는 커피잔들로 향했다.

아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남자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청와대에서 지원해준다고 보낸 요원들이야. 모두 청와대 직속들이지. 그런데 이게 뭐랄까. 도와주러 온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들더군.”

몸을 앞으로 기울인 강태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원하러 왔으니 정보 공유를 요청하는 것까진 이상할 게 없지만. 뭔가 도우려 한다기보단 감시하러 온 느낌이더군.”

“오… 엄청 건방진데요.”

문장 전체를 들은 건 아니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 예의주시란 말을 확실히 들었었다.

그땐 뭔 소린가 했었는데 강태황의 말과 합쳐보니 그럴싸하게 그림이 그려졌다.

“저번에 말씀하셨던 기업과 국가의 협업 관계 때문이겠죠?”

“맞아. 국가 경쟁력과 기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긴 하니까. 대통령은 그런 거 상관없이 강력하게 수사해달라고 지시했지만, 정작 그 지시를 받은 국회의원들은 미적지근해. 오히려 조사를 안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더군. 이러니 국회의원들이 보내온 요원들도 저러는 거고.”

정치에 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대충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았다.

종종 들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어도 꽤 많은 수의 국회의원이 누군가의 지원을 받아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이라고 말이다.

즉 자신을 밀어주던 기업이 날아가면 국회의원 입장에선 그날로 든든한 줄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슬쩍 고개를 들어 강태황의 표정을 살폈다.

가장 궁금한 건 이런 상황에 대해 강태황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였다.

만약 국회의원들의 무언의 압박을 조금이라도 신경 써 내게도 비슷한 걸 주문한다면 애매해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조금 애매하다 뿐이지 해야 하는 걸 안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단지 열 대 패서 죽일 걸 다섯 대 패서 조금 깔끔하게 죽이는 것 정도의 차이였다.

“아주 괘씸한 새끼들이야.”

“넵?”

갑자기 터져 나오는 욕에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사건이 터졌을 땐 제일 먼저 벙커로 대피하더니 이젠 따신 곳에 앉아서 이딴 압박이나 주다니. 마음 같아선 다 때려죽이고 싶군.”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았다.

혀를 끌끌 차며 무덤덤하게 말하는 강태황.

여기까지 말한 강태황이 옆에 있던 봉투 하나를 건네왔다.

“이건 임명장이라네. 보통 1급이 되자마자 다 주는데 이제야 주는 구만.”

종이를 펼치자 간략하게 적힌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대한민국 내에서 난 강태황 장관의 권한을 대리한다는 내용이었다.

상대는 누가 됐든 날 장관에 버금가도록 대우해야 했고 말이다.

홀리…!

“원래도 그랬겠지만 다른 생각 할 필요는 없어. 뭘 하든, 결과가 어떻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만약 국회의원이 상대라면.”

강태황의 입가로 미소가 그려졌다.

“내가 먼저 묵사발 내도록 하지.”

“하하….”

왠지 모르게 등 뒤가 든든해지는 기분.

애매하거나 불편한 마음 없이 시작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럼 가서 잡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강태황에게 엄지를 치켜세운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장관실을 나섰다.

난 다른 거 신경 쓸 것 없이 내가 할 일만 잘하면 될 것 같았다.

* * *

일단 대산이 알려줬던 천일 소유의 부동산으로 가볼 생각이었다.

딱 봐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 잠입인데 밤에 가야겠지.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직 해가 지려면 두어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가기 전에 잠시 대산에 들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천일에 관해 추가로 조사한 게 있으니 보내주겠다는 전수희에 직접 가겠다고 한 것이었다.

팔을 다쳤던 전수희가 괜찮나도 볼 겸 해서 말이다.

응?

걸음을 멈추고 대산 주변을 둘러봤다.

정확히는 그늘진 골목길과 건물의 옥상들이었다.

저마다 나름 숨어있는 모양이긴 한데 적지 않은 인원이 대산을 주시하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골목길부터 조심스레 접근해 숨어있는 놈들을 살폈다.

들켜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딱 봐도 수상할 정도로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이 새끼들 천일이네.

낯익은 얼굴이 하나 있었다.

어제 유지열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었던 놈이다.

잠시 벽에 기대어 머리를 굴렸다.

과연 저놈들이 감시하려는 건 무엇인지, 누구를 찾고 있는 건 아닐 지란 생각.

그리고 생각이 어느 정도 다다랐을 때쯤 작고 소박한 바람 하나가 생겼다.

“나 찾고 있는 거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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