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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77화 (377/473)

377화. 납치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대로변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옥상부터 골목길까지 자리 잡고 있는 수상한 놈들.

놈들이 찾는 게 부디 나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날 좀 봐줘!

잘 보라고 얼굴도 이리저리 돌려주었다.

혹시나 못 볼까 싶어 인파가 몰린 곳은 요리조리 피해가기까지 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못 본다면 진짜 눈이 장식이거나 아니면 날 찾으려고 대기 중인 게 아니었다.

어느 정도 걷고 있자니 괜히 혼자 착각하고 있는 건가 의구심이 들었다.

사실 저 녀석들과 내 인연이라 할 만한 건 엘리베이터에서 잠깐 시비 붙은 게 전부였다.

아무리 호로 자식들이라 해도 나름 대기업인데 그거 가지고 이 정도로 인원을 투자한다는 건 좀 비정상이긴 했다.

… 내 희망 회로였던 걸로.

약간 시무룩해지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날 찾고 있는 거면 혹시나 어딘가로 잡아가 주지 않을까 싶었던 건데 너무 날로 먹으려 했던 모양이다.

이쯤이면 날 보고도 남았을 녀석들.

아무런 반응도 없는 녀석들에 슬금슬금 대산 쪽으로 방향을 틀려는 찰나.

각 건물에 서 있던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 내가 걷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된다고?

마지막 확인을 위해 건너편 으슥한 골목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때다 싶었는지 빠르게 다가오는 걸 보니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느 선에서 시킨 건지는 모르겠으나 천일이란 기업은 생각보다 더 미친놈들이었다.

그때 한 번 그런 일이 있었다고 따로 사람까지 보내다니.

관상은 과학이라고 역시 졸렬하고 얍삽한 뱀상을 가진 놈을 회장으로 둔 기업다웠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거리를 뒀던 놈들이 가까이 붙어왔다.

부디 몇 대 두들기려는 게 아니라 날 잡아가 주길 바랄 뿐이었다.

“어이.”

날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전혀 몰랐다는 듯 세상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은 건 물론이었다.

“나 기억나지?”

어제 엘리베이터에서 봤던 녀석이 앞으로 나섰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아주 시건방진 자세로 서 있는 녀석.

감시하러 온 자식이 이두석이란 이름 석자가 적힌 명찰까지 당당히 차고 있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자 이두석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대산 내부에서 만난 걸 다행으로 여기라고 했었잖아. 너 그때 뭐라고 했지?”

이두석이 기억 안 난다는 듯 옆에 있는 부하 녀석을 쳐다보자.

어제의 날 따라 하려는 건지 한껏 표정을 구긴 부하가 입을 열었다.

“언제 한 번 밖에서 만나보고 싶눼에! 그럼 누가 다행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 큽… 하하하하!”

부하 놈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두석이란 놈은 뭘 잘못 먹은 건지 배까지 움켜쥐며 폭소하고 있었다.

이 새끼들 뒤끝 미쳤네.

등 뒤로 땀 한줄기가 흘렀다.

물론 명령받아서 온 거겠지만 세상 이렇게 졸렬한 놈들은 처음이었다.

“하…. 여자친구 앞이라 센 척한 건 이해하는데 말이야. 이거 참…. 주제 파악이 안돼도 너무 안됐다. 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이두석이 말을 이었다.

“상대가 안 좋았어. 몇 대 맞고 끝날 일로 뒤지게 생겼으니.”

이런 걸로 사람을 죽인다고?

라고 생각했지만 어제 엘리베이터에선 나도 놈들을 반 죽이고 싶었으니 할 말은 없었다.

“원망하려거든 주제 파악 못 하는 네놈의 그 센 척을 원망해라.”

뒤에서 다가오는 녀석이 느껴졌다.

손에 아무것도 안 든 걸 보니 여기서 죽이려고 하는 거 같진 않았다.

이미 개막장이긴 해도 번화가 근처 골목길에서 살인을 할 만큼 바보는 아닌 모양이었다.

“회장님까지 화나게 했으니 편하게 죽진 못할 거다.”

이두석이 어깨를 으쓱이고.

뒤에서 다가오던 놈이 내 목으로 손을 날려왔다.

정확히 당수 위치로 꽂히는 손날.

타이밍에 맞춰 끅 소리와 함께 앞으로 풀썩 고꾸라졌다.

스윽.

실눈을 뜨고 곁눈질로 내 목을 친 녀석의 얼굴을 쳐다봤다.

손이 아픈지 은근슬쩍 어루만지고 있는 녀석.

저거 맞고 정신 잃을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안 아픈 건 아니었기에 잊지 않고 기억해 둘 생각이었다.

나 역시 저놈들 못지않게 뒤끝 오지는 인간이니까.

“데려가.”

이두석의 말에 놈들이 커다란 가방으로 날 구겨 넣었다.

잠시 후엔 돌돌 보쌈되어 어딘가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당해보는 납치였다.

* * *

‘뭔가 구린 냄새가 나는데.’

송유빈이 어제 카페에서 찍은 사진들을 둘러보았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잠입치곤 은근 건진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냄새가 나는 사진이 몇 장 있었으니.

백운이 떠난 뒤에 천일로 들어갔던 두어 명의 남자였다.

차에 타고 있었던 터라 창문이 내려가는 찰나의 순간 얼굴을 보고 찍은 게 전부지만 송유빈에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청와대 요원들이잖아.’

송유빈은 CBC에서 무기왕을 메인으로 담당하긴 했지만, 무기왕 일이 없다고 해서 딩가딩가 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이슈가 생길 때마다 바쁘게 오가다 보니 청와대에 갈 일도 꽤 있었던 송유빈.

저들은 그때 본 사람들이었다.

당시엔 사복을 입은 아까와 달리 말끔한 정장과 청와대 배지를 찬 상태였다.

‘청와대 요원들이 왜 천일에…?’

기업과 국회 사이에 커넥션이 많다는 건 송유빈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데몬 침공이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예민해져 있는 시점이었다.

그런 시점에 청와대 요원이 옷까지 갈아입어 가며 천일에 가야 할 만한 명분이 뭐가 있을지 궁금했다.

‘백운 님은 수확이 좀 있으신가.’

백운은 어제 김신의 집으로 간다며 몸을 일으켰었다.

아주 천하의 샹놈에 위험하기까지 하니 절대 가까이 가지 말라는 말과 함께였다.

그래서 잠복 지역 중에 김신의 저택은 제외했었다.

천일의 민낯을 샅샅이 까발리고 싶긴 했지만 그렇다고 무모한 짓까진 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얘는 언제 오는 거야.”

송유빈이 투덜대며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 4시까지 광화문 앞으로.

한참 사진을 찍어대던 중 CBC 방송국 동기인 유미리에게 연락이 왔었다.

천일과 관련해 말해 줄 게 있다는 것이었다.

전화로 말하는 건 불안해 직접 알려주겠다 말했던 유미리.

처음엔 조영천이 송유빈을 잡기 위해 덫을 놓은 건가 싶었지만 조영천과 유미리는 딱히 그럴 정도로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이런 점까지 노려서 낚시한 거면 조영천 팀장님 진짜 인정이다.’

거기다 나름 중간보고까지 하고 있어서인지 조영천은 어제처럼 노발대발하진 않았다.

이젠 정말 내려놔 버린 건지 아니면 퇴사시키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잠시 후 송유빈 앞으로 멈춰선 차 한 대가 창문을 내렸다.

“송…!”

은밀히 부르는 유미리에 송유빈이 잰걸음으로 다가갔다.

천일로부터 많은 광고를 받는 CBC였던 만큼 조심스러운 게 당연했다.

“일단 타. 타서 말하자.”

고갯짓하는 유미리에 잠시 고민하던 송유빈이 조수석으로 올라탔다.

동기긴 해도 딱히 가깝게 지내진 않았던 유미리.

이런 유미리가 무언가 알려주기로 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았다.

“방송국은 별일 없지?”

“응. 조영천 팀장님만 완전 난리지. 너 어디에 있냐고 나한테도 물어봤었어.”

“하하….”

송유빈이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방송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초콜렛이라도 사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나저나 말해준다는 게 뭐야? 갑자기 연락해서 깜짝 놀랐어.”

“그게….”

약간 뜸을 들이던 유미리가 입을 열었다.

“천일과 국회 사이의 커넥션에 관한 이야기야.”

“…!”

송유빈의 눈이 커졌다.

안 그래도 조금 전까지 똑같은 것에 관해 고민하고 있었다.

몇몇 국회의원의 이름을 언급한 유미리가 말을 이었다.

이들이 국회의원이 될 때 천일로부터 적지 않은 선거 자금을 지원받은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데몬의 침공에도 천일의 조사를 쉬쉬하는 중이었고 말이다.

“너도 알고 있었구나.”

물어오는 유미리에 송유빈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아는 걸 말해 준 유미리였기에.

송유빈이 아까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청와대 요원들이 탔던 차의 번호판이었다.

“역시 CBC 에이스 송유빈답네.”

유미리가 묘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너라면 이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어.”

“…?”

의미심장한 말에 송유빈이 고개를 들었다.

왠지 모르게 유미리의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누가 들을까 안절부절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지금은 마치 역시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라는 듯한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 어디로 가는 거야?”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묻자 한참 달리던 유미리가 차를 멈춰 세웠다.

“날 너무 원망하지는 마. 유빈아. 아무리 아무한테나 짖는 치와와여도 상대는 봐가면서 짖었어야지.”

“뭐…?”

여기까지 말한 유미리가 차에서 내리고.

곧이어 운전석과 뒷좌석으로 사복 차림의 남자들이 올라탔다.

“!!!”

천일에 드나들었던 청와대 소속 요원들이었다.

“평소 팬이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돼서 유감입니다. 송유빈 리포터님.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드리겠습니다. 가는 동안 부디 난리치지 말아주세요.”

요원 중 한 명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거칠게 대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 * *

아오 뒤지겠네.

어딜 달리고 있는 건지 더럽게 덜컹거리는 차에 입술을 깨물었다.

보쌈 당해있는 어깨부터 허리, 무릎까지 뻐근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차라리 아까 당수에 기절했으면 훨씬 편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이 새끼들 더럽게 예의 없네. 뒷좌석에라도 태워야지.

납치당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생각하는 사이.

차가 멈춰 서며 트렁크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딘진 몰라도 날 슥삭할 장소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아까 넣어질 때처럼 날 들어 올린 녀석들이 어딘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녹슨 문 열리는 소리를 몇 개 지나 낡은 계단을 밟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딘진 몰라도 한참 지하까지 들어가는 듯했다.

잠시 후 마지막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날 패대기 치는 인간들.

끄억…!

덕분에 트렁크 안에서 잔뜩 굳어졌던 몸이 시멘트 바닥과 만나며 비명을 질러댔다.

마음 같아선 당장 일어나 이 고통을 공유해주고 싶었는데.

여기까지 이왕 납치당한 거 조금만 참아야 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지옥을 보게 해줄 테니까.”

“기대해도 좋아. 하루를 넘긴 놈이 없거든.”

낄낄거리던 놈들이 밖으로 나가며 문이 닫혔다.

응? 뭐야.

여전히 방에 남은 한 명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들어올 때부터 있긴 했는데 감시 인원인지 뭔지가 알기 힘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괜찮아요?”

귓가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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