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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78화 (378/473)

378화. 트로이의 목마

영락없는 송유빈의 목소리에 약간 말문이 막혔다.

이분은 왜 여기에 있는가란 의문과 함께였다.

어깨로 날 툭툭 건드리는 송유빈의 손길이 느껴졌지만 곧바로 대답하진 못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의 등장.

약간 나의 트로이 목마 작전에 변수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어떡하지.

정신 좀 차려 보라며 점점 거칠게 흔드는 송유빈에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지금 고민해봐야 딱히 돌파구가 없기도 했다.

힘들게 납치까지 당해 왔는데 얌전히 일어나서 걸어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는 마음으로 꿈틀거리며 입을 열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날 깨우기 위해 발로 찰 기세였다.

“일어나 보….”

“유빈 님.”

“!?”

망태기 너머로 깜짝 놀란 기색이 느껴졌다.

당장은 안 보이지만 아마 송유빈도 지금 자기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어리둥절 해하고 있을 터였다.

송유빈이라고 제 발로 오진 않았을 텐데 이런 곳에서 알고 있는 목소리라니.

“백운…님?”

“넵. 맞습니다. 또 뵙네요. 반가워요.”

대답이 안 들려오는 걸 보니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어쩌다가 카페에서 여기까지 오셨나요? 아 내가 할 말은 아닌가. 그런데 유빈 님.”

“아… 네!”

“혹시 괜찮으시면 이거 좀 뜯어주실래요? 숨이 잘 안 쉬어져서.”

“네!”

송유빈이 낑낑거리길 한참.

머리 부분의 망태기가 뜯어지며 시원한 공기가 들어왔다.

여전히 팔과 다리는 묶여 꽁꽁 싸매져 있지만 바깥 공기를 마시니 조금이나마 답답함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진짜 백운 님이네요.”

“그, 그렇죠.”

눈을 크게 뜬 송유빈이 내 얼굴 여기저기를 살폈다.

이게 진짜 그 인간이 맞나 의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유빈 님은 여기 어쩐 일로?”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이는 송유빈.

물어보기 무섭게 송유빈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이를 갈았다.

“방송국 동기가 절 팔아먹었어요.”

“오… 오우.”

송유빈이 아까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동기가 자신을 불러낸 것부터 이곳으로 도착하기까지.

왜 바로 안 죽이고 살려둔 건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청와대 요원이라고요?”

이야기가 끝나고 되묻자 송유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아마 제가 잡혀 온 이유일 거예요.”

손을 든 송유빈이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제가 천일을 조사한다는 걸 알곤 놈들이 제 동기를 통해 테스트해본 거예요. 제가 평소에 보고 기억해둔 무언가로 천일과 국회의 커넥션에 접근한 게 있나 하고요.”

송유빈이 어깨를 으쓱였다.

“전 거기에 보기 좋게 걸려든 거고요. 요원들한테 너네 얼굴 다 봤다고 순순히 고백한 꼴이 됐어요.”

송유빈이 말하는 녀석들과 헌터청에서 내가 본 놈들이 동일 인물일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도와주기보단 감시하려고 했던 놈들을 떠올리니 가능성이 아예 없을 거 같진 않았다.

“그런데 백운 님은 어쩌다가…?”

송유빈의 시선이 꽁꽁 묶여 있는 내 몸을 훑었다.

여러모로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전에 한 번 시비 붙은 적이 있었거든요. 뒤끝이 더럽게 센지 그거 때문에 절 잡으러 왔더라고요.”

“어….”

뭔가 시원하지 않은 표정에 곧장 말을 이었다.

“물론 일부러 잡혀 온 거예요.”

“그렇죠?”

그제야 송유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산의 기둥도 잡혀 올 정도의 놈들인가 싶었어요. 그런데… 풀어 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완벽한 트로이의 목마를 위해선 아직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해서요. 어쨌든 그 김신이든 유지열이든 뭐라도 하나 얼굴을 들이밀어야 확실해지니까요.”

“오… 트로이 목마요.”

내가 떠올리고도 좀 멋있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내 상황에 잘 어울리는 듯해 마음에 쏙 들기도 했다.

그렇게 뿌듯함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너머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일단 서로 모르는 척할까요.”

“그러시죠.”

문이 열리고 날 잡아왔던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 이두석은 딱 봐도 무섭게 생긴 가방을 들고 있었다.

날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이두석.

그 미소 안에 담긴 뜻은 명확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아주 울며불며 매달리게 해주겠다는 무서운 미소.

“이게 누구야.”

뒤를 이어 기다리고 있던 인물이 나타났다.

이 새끼 머리 안 감나.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김신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입가엔 싱글벙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저번에 만났을 때랑 좀 많이 달라졌네.”

김신이 날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 정도가 딱 좋은 거 같아. 주제에 맞는 눈높이는 말이야.”

김신이 고갯짓하자 부하들이 날 일으켜 의자로 앉혔다.

그 옆으로 책상 하나를 끌고 온 뒤 가져온 가방을 올려놓는 이두석.

가방을 열자 휘황찬란한 고문 기구들이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와우.

처음 보는 것들에 놀라고 있자 다가온 김신이 도구에 관해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이걸로 날 어떻게 할 거고 그럼 넌 어떤 식으로 아플 거다 라는 등의 설명이었다.

“본부장님. 송유빈은 어떻게 할까요?”

“이놈 묻을 때 같이 묻어. 청와대 쪽 얼굴을 봤다면서.”

“알겠습니다.”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놈들.

다행히 송유빈은 내가 있어서인지 딱히 겁먹거나 하진 않고 있었다.

그저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 원망하진 말라고 송유빈 씨. 보면 안 되는 걸 본 이상 살려 드릴 수가 없어서 말이야.”

아마 김신은 싸이코패스임이 분명했다.

묻으라고 할 땐 언제고 저런 다정한 말투라니 쭈뼛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역시 천일은 데몬 침공에 연관이 있었군요.”

“직업 정신이 정말 투철한 분이네. 죽는 순간까지 그게 궁금하다니. 뭐 노잣돈 챙겨준다 생각하고 조금 말해주지.”

입꼬리를 올린 김신이 송유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누가 멍청한 데몬 새끼 아니랄까봐 결국 실패하긴 했지만. 덕분에 우린 많은 걸 얻었다. 비용을 들인 것 이상으로…. 아니, 보다 천문학적인 이익을 봤지. 나도 심심해서 인천 앞바다로 놀러 갔다 왔었고.”

역시 듀린이의 말대로였다.

군인을 몰살하고 군함을 침몰시킨 건 김신이었다.

이쯤이면 충분한 것 같았다.

천일도 죗값을 받아야 한다는 건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손을 뻗은 김신이 내 어깨를 두들겼다.

“덕분에 천일은 지금보다 훨씬 커지고 강해지겠지. 너희 같은 날파리들이 아무리 앵앵대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자 그럼.”

김신이 몇 발자국 물러나자 팔을 걷어붙였던 이두석이 다가왔다.

“원래는 내가 직접 해주려고 했는데 네놈한테 흥미가 좀 떨어져서 말이야. 고문하기도 귀찮아졌어. 그런데 이 친구도 꽤 하니까 아마 살려달라고 애원하게 될 거다.”

“이 자식 손발 의자에 묶어.”

이두석의 지시에 망태기와 함께 손발이 풀려났다.

뻐근한 손목을 풀기도 전에 다시 채가 의자 손잡이에 묶는 녀석들.

여기까지 본 김신이 잘 해보라고 손을 흔들며 문 쪽으로 걸어갔다.

“딸랑… 딸랑.”

그런 김신의 뒤통수에 대고 입으로 방울 소리를 내주었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는가 싶더니.

“진짜 미친놈이군.”

피식 웃은 김신이 방을 나서고.

메스를 닮은 도구와 함께 다가오는 이두석을 바라봤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이두석의 입가에선 싱글벙글 웃음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즐거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거든. 안 즐거울 수가 있나.”

“그럼 즐거운 김에 마지막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

약간 멈칫거리는 이두석에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 날 납치할 때 당수 친 녀석이었다.

“나 저 친구한테 한마디만 하고 싶어서. 귓속말로.”

“뭐…?”

이 미친놈 뭐지란 얼굴로 내려다보는 이두석.

어깨를 으쓱인 이두석이 부하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들어나 보자.”

피식거리며 다가온 놈이 내 앞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얼른 말해봐.”

바로 앞까지 다가온 귀에 대고 입을 열었다.

“당수 그렇게 치는 거 아니야.”

“뭐라고?”

“당수란 건 말이야.”

묶여 있던 밧줄을 뜯어내며 손날을 들어 올렸다.

“이렇게 목이 부서지도록 세게 내려치는 거다.”

쩌억!!!

* * *

방을 나선 김신이 휘파람을 불며 걸음을 옮겼다.

“끄아아아아아악!!”

방음이 훌륭한 방인데도 새어 나오는 비명에 김신이 웃음을 터뜨렸다.

폼 잡는 것만 봤을 땐 앓는 소리 한 번 안 낼 것 같았는데 저런 비명이라니.

역시 뭐가 됐든 직접 데려와 손 봐주는 게 가장 확실했다.

“한 놈은 됐고.”

김신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골목에서 가면 자식을 만나며 저놈에 대한 흥미가 사라지긴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자기 주제도 모르고 기어올랐던 인간.

그런 인간이 끔찍한 고통과 함께 비명 질러대는 건 참으로 듣기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그 골목….”

느긋하게 걸어가던 김신이 우뚝 멈춰 섰다.

순간이지만 머리가 쭈뼛 서며 소름이 돋았다.

무언가 놓치고 있었다.

- 딸랑… 딸랑.

방을 나설 때 남자가 중얼거렸던 말을 떠올렸다.

그냥 미친놈의 마지막 발악이겠거니 하며 귀담아듣지 않고 빠져나왔었는데.

골목에 나타났던 가면을 떠올리니 뜬금없이 그 소리가 귓가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여기에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했다.

엘리베이터의 남자도 어찌 됐든 김신의 팔에 자국을 남길 만큼의 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유지열 옆으로 정확히 동전을 꽂아 넣은 건 물론이었다.

‘데려온 놈들이 이렇게 멀쩡하다고?’

이두석을 포함해 남자를 잡아왔던 부하들의 상태가 멀쩡해도 너무 멀쩡했다.

나름 강한 인원들이긴 했어도 어디 한군데 작은 상처 하나 없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스치기만 했어도 한 명쯤은 바닥을 기었어야 했다.

말도 안 되게 순탄히 진행된 납치였다.

‘순순히 잡혀왔다…. 아니, 일부러 잡혀왔다?’

어째서란 의문이 머리를 가득 채웠지만 지금은 이 의문들에 하나하나 풀이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불길함을 확인하기 위해 김신이 곧장 몸을 돌렸다.

땅을 박차며 아까 나섰던 방으로 순식간에 도달한 김신.

안에선 여전히 찢어져라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부디 자신의 기우이길 바라며 김신이 문을 열어젖혔다.

“!!!”

김신이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방 안은 아까 나올 때완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한 명은 목이 부러진 건지 바닥에 널브러진 상태였고, 나머지도 벽에 얼굴이 나란히 처박힌 채 축 늘어져 있었다.

단 한 명, 남자를 고문하기로 한 이두석이 남자의 손에 붙들린 채 피떡이 되어 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왔어?”

태연히 말을 건네는 백운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김신의 얼굴로 광기 어린 미소가 지어졌다.

“너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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