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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81화 (381/473)

381화. 섬으로

한 시간 전 대통령에 의한 긴급 소집령이 떨어진 국회의사당 내부.

한자리에 모인 국회의원들이 의아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랍니까?”

“낸들 알겠습니까. 모이라니까 모인 거지.”

대부분 국회의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데몬 침공에 의한 피해로 각 지역구가 바쁜 상황이었다.

웬만해선 아무리 급해도 이런 소집령이 떨어지지 않을 텐데 대체 얼마나 중대한 사안인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설마… 아니겠죠?”

“아닐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천일입니다. 무슨 일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중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는 몇몇 국회의원이 은밀히 말을 주고받았다.

이번 데몬 침공 때 천일에게 정보를 흘리고 도움을 준 국회의원들.

서로에게 아니라고 안심시키면서도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캥기는 구석이 있다 보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유 회장이 전화를 안 받습니다. 그 아래 비서 실장도 마찬가지고요. 이거 진짜 무슨 일 난 거 아닙니까?”

“송유빈 처리를 위해 아까 남산으로 갔던 요원들도 안 돌아왔습니다. 두 시간 전엔 남산에서 커다란 굉음이 울렸었고요. 지금이라도 자리를 떠야 하는 거 아닐까요?”

“괜찮습니다. 여차하면 뚫고 나가면 됩니다. 만약을 대비해 인원도 준비해놨으니까요.”

국회의사당 지하 주차장엔 명령을 기다리는 수십의 요원이 있었다.

천일에서 줄을 대 요원으로 고용한 이들.

모두 한 가닥 하는 용병들이라 국회의사당의 경호원들 정도는 가볍게 처리할 수 있을 터였다.

쿵!

침공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이 마음 졸이며 수군거리고 있을 때.

커다란 소리와 함께 국회의사당의 문이 열렸다.

그곳으로 들어오는 헌터청 장관 강태황.

“…!!”

강태황을 본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볼 때마다 혀가 내둘러지는 거대한 덩치 때문만은 아니었다.

강태황의 온몸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얀색이었던 정장이 원래 붉은색이었던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가, 강태황 장관. 괜찮습니까?”

“병원이라도…!”

“괜찮습니다. 제 피가 아니니까요.”

씨익 웃어 보인 강태황은 자신의 자리로 가지 않았다.

대신 의장 자리로 걸어가 마이크 앞에 섰다.

강태황이 피에 젖은 종이를 펼치고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하고, 조금 전까지 수군거리던 이들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방금 불린 이름은 모두 침공 때 천일을 도운 사람들이었다.

“지금 이름 불린 분들.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왜 그래야 합니까?! 당신이 나오란다고….”

“좋은 말로 할 때 나오지. 이미 많이 참고 있으니까. 5초 후엔 끌려 나오게 될 거다.”

“!!”

선명한 강태황의 분노에 국회의사당으로 정적이 깔렸다.

잠시 이들을 응시하던 강태황이 말을 이었다.

“청와대에서 보고를 마친 사항입니다. 대통령께서도 데몬 침공에 관여한 국회의원을 잡아내라고 전권 일임하셨고요.”

일순간 모든 이의 시선이 식은땀을 흘리는 의원들에게 집중됐다.

강태황의 경고에도 꿈쩍하지 않는 그들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봐야 소용없을 겁니다. 이 피, 누구 피라고 생각하십니까?”

“!?”

요원들을 호출하고 기다리던 의원들이 몸을 들썩였다.

모르는 사이 마지막 믿고 있던 카드까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시간 지났습니다.”

의장 자리를 박차고 도약한 강태황이 의원들 앞으로 올라섰다.

그대로 두어 명의 멱살을 잡고 끌어올린 강태황이 입을 열었다.

“끌려나가는 길에 최대한 많이 숨 쉬는 게 좋을 거다.”

강태황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다시는 바깥 공기를 쐬지 못하게 해줄 거니까.”

* * *

“뭐야.”

“넵?”

“넌 안 가도 되는데 뭘 또 나왔어.”

“아까부터 여기 있었는데 뭘 새삼스럽게.”

비광이 장난이라며 어깨를 두들겼다.

헌터청 옥상에 위치한 헬기장.

나와 비광, 그리고 2급 헌터들이 줄지어 내려오는 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천일이 숨은 섬까지 데려다 줄 헬기였다.

“사실 영감님이 가능하면 너도 데려오라고 했거든. 이번엔 속도가 중요하니까.”

“하루 안에 끝내야 하는 거죠?”

“그렇지. 러시아 측 병력이랑 마주치면 그때부턴 정말 곤란해지거든.”

“지금 건드는 건 괜찮은 건가요? 손대지 말라고 으름장 놨다면서요.”

“그래봐야 으름장이지. 24시간 내 작전은 대통령이 직접 승인도 했다니까 상관없어. 이후에 러시아랑 직접적으로 부딪히지만 않으면 돼.”

고개를 끄덕이며 손목을 풀었다.

유지열을 박살 낼 생각에 벌써부터 몸이 근질거리고 있었다.

“어차피 안 데려가 줘도 따라가려고 했어요. 유지열 회장 이 새끼 뺨따구 한 대 때려야 하거든요. 아주 싸가지 없어.”

“대산에서 만났다고 했었지.”

“그때 그냥 머리채 잡고 올 걸 그랬어요. 딱 봐도 범죄자 관상이었는데.”

“큰일 날 소리 하네. 관상쟁이야 뭐야.”

말을 주고받는 사이.

옥상 문이 열리며 강태황과 류희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광과 마찬가지로 류희수도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비광 님. 그런데 희수 님은 몇 살이에요?”

“몇 살 같은데?”

“음… 20살?”

“솔직하게.”

“사실 중학생인 줄 알았어요.”

“희수한테 솔직하게 말하지마. 아마 죽이려고 할걸. 대학생이야.”

가까이 다가온 강태황과 류희수에 입을 꾹 다물었다.

류희수와는 병원에서 가볍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대화라기보단 고마워라는 짤막한 감사 인사와 응 이라는 어색한 답례가 전부였지만 말이다.

잠시 후엔 문을 통해 기태랑까지 합류하며 섬으로 향할 인원이 전부 모이게 됐다.

“영감님 옷이 엄청나네요.”

비광의 말에 강태황이 웃으며 옷을 툭툭 털어냈다.

처음엔 피의 축제를 위해 붉은색 정장을 입은 건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하얀 정장이 피로 물든 것이었다.

“갈아입을 시간이 없어서 말이야. 바로 출발하자고.”

커다란 군용 헬기에 오르며 강태황이 말을 이었다.

“대충 들었겠지만 대통령이 내린 명령은 섬의 무력화 및 유지열의 생포야. 24시간… 이젠 21시간 남았군. 이 안에 끝내야 하고. 러시아와의 교전은 절대 금지야. 지금 작전만 해도 러시아 측 반발이 엄청날 텐데 싸움까지 벌어지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거거든.”

“섬도 꽤 크다고 하던데 일일이 찾으려면 고생 좀 하겠는데요.”

“그러게. 그놈들이라고 이미 절벽까지 내몰린 마당에 가만히 있진 않을 테고. 더럽게 반항할 텐데.”

기태랑과 비광의 말을 들은 강태황이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비공식적으로 작전 내용을 좀 수정할까 한다.”

“…?”

쏠린 시선을 느끼며 강태황이 테블릿에 뜬 유지열의 사진을 가리켰다.

“작전이 오래 걸릴 거라 생각되는 이유는 이놈을 생포해야 하기 때문이지. 어디 있을 줄 모르니까 함부로 갈겨댈 수도 없고. 하지만 이놈을 생포하지 않아도 된다면.”

강태황이 사진을 저 멀리로 날려버렸다.

“일단 퍼붓고 시작해도 되겠지.”

“괜찮은 건가요? 영감님 나중에 호되게 혼나는 거 아니에요?”

“상관없어. 이건 단순히 작전 편하게 가자고 내린 결정은 아니니까.”

몸을 뒤로 기댄 강태황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돌아가는 꼬라지를 봤을 때 유지열은 어떻게든 풀려날 거야. 당장 러시아만 해도 유지열 하나 구하자고 저 먼 땅에서 달려오는 중이니까.”

“살려뒀다간 닭 쫓던 개 입장이 되겠군요.”

“그렇지. 난 그놈이 풀려나는 꼴은 못 볼 거 같거든. 어쨌든 결론은 이렇다. 유지열 생포에서 유지열을 포함한 천일 잔당 섬멸로 변경. 책임은 내가 진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주 좋았다.

유지열 새끼를 살려둬야 한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데 섬멸전이라니.

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분야였다.

“좋네.”

비광도 미소를 그렸다.

누워있느라 답답했는데 원 없이 퍼부어도 돼서 좋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헬기 밖 하늘을 바라봤다.

때마침 해가 지며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섬멸전 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 * *

헬기를 타고 얼마나 날아왔을까.

저 멀리로 환하게 밝혀진 섬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큰 죄를 짓고 뒤지기 직전인 놈들치곤 허술해 보이는 곳이었다.

“방어 시스템이 엄청날 겁니다. 작정하고 만든 건지 바다 아래에도 포대가 배치됐다고 합니다.”

2급 헌터 중 한 명이 뒤로 걸어왔다.

테블릿에 섬의 지도를 띄워 파악된 방어 포인트를 알려주는 헌터.

오징어 배처럼 일부러 우리를 유인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생각 없이 접근하면 벌집으로 만들려고 말이다.

“하나씩 부수면 오래 걸리니까 안에 들어가서 쓸어버리면 되겠는데요. 폭탄 드랍하듯이.”

무심코 건넨 말에 테블릿을 보며 신중하게 논의 중이던 이들이 날 쳐다봤다.

뭔가 무모한 거 같은데 나쁘지 않군 이란 표정이었다.

“백운은 날개 있으니까 알아서 들어가면 되고. 우리 쪽에서 갈 수 있는 건.”

이번엔 사람들의 눈이 기태랑에게 쏠렸다.

섬으로 냅다 떨어져도, 바깥에서 공세를 퍼부어도 안 죽는 게 가능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내가 가지. 마음껏 퍼부으라고. 맞아도 원망은 안 할 테니까.”

“백운 너도 상관없지? 알아서 다 피하고 막을 수 있잖아.”

“그렇죠.”

고개를 끄덕인 강태황이 손짓하자 헬기가 최대 고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격추 위험 때문에 더 접근하진 못해도 최대한 투하되기 편한 각도를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헬기의 출구가 열리며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기태랑에게 같이 가자고 말을 건네려는 순간.

강태황이 기태랑에게 고갯짓했다.

예전에 하던 게 있는지 한숨을 내쉰 기태랑이 가리켜진 자리로 걸어갔다.

“투포환이야.”

의아해하는 내게 비광이 실실 웃으며 말해줬다.

“옛날엔 많이 했었거든. 단단한 방어를 가진 놈한테 잘 먹힌 전술이었지.”

“전술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주변으로 생겨난 거대한 기운이 기태랑의 몸을 움켜쥐었다.

아마 강태황이 개방한 능력인 것 같았다.

그렇게 기태랑을 쥔 채로 출구 끝까지 걸어간 강태황.

“준비됐지?”

“사실 별로 안 내키긴 하는데. 준비는 됐어요.”

“좋아.”

짧게 대답한 강태황이 야구공을 던지듯 오른팔을 뒤로 쭉 뺐다.

설마?

그리고 최대로 힘을 모은 강태황이 지체 없이 기태랑을 집어 던졌다.

섬에 내리꽂았다는 표현이 더 옳을 듯했다.

사람을 이렇게 던진다고?

순식간에 작은 점으로 변하며 사라져 버린 기태랑에 잠시 멍 때리고 있다가.

“그럼 저, 저도 가겠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출구로 달려 몸을 날렸다.

[이카로스 - 칼데아 윙]

날개를 펼치며 섬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 날아간 기태랑이 도착한 건지 굉음과 함께 먼지가 피어오르는 섬.

먼지를 신호탄으로 천일을 대상으로 한 섬멸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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