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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83화 (383/473)

383화. 러시아 대사

안내를 받아 도착한 지하 통로.

절벽 아래에 은밀히 숨겨졌던 터라 멍청한 유지열이 아니었다면 쉽게 찾지 못할 뻔했다.

여기도 돈 더럽게 발랐겠네.

어떻게 만든 건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땅굴을 파 각종 첨단 시설로 가득 채워놓은 통로.

누가 보면 비밀 로봇을 만드는 장소로 착각할 것 같았다.

어쨌든지 몸 숨길 곳이라고 제일 공을 들여 만든 듯했다.

“잡아! 고작 한 명이다!”

“밖에서 무기는 거의 다 사용했다! 지금은 별거 없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참 학습 능력이 없는 놈들이었다.

[잭 더 리퍼 - 면도칼]

면도칼을 들고 자세를 낮췄다.

좁은 통로니 집중해서 때려 부으면 어찌저찌 될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스아아악…!

한 발도 안 맞으면 그만이었다.

옆 벽을 달리고 천장에 붙었다 내려오며 공격을 모두 피해냈다.

순식간에 접근하자 얼굴이 사색으로 변하는 녀석들.

“내가 아무리 무기를 다 썼다 한들 너네한테.”

사방으로 면도칼을 그어내며 빠르게 놈들을 베고 지나갔다.

“지겠냐.”

그어진 선을 따라 갈라지며 놈들이 허공으로 피를 뿌려냈다.

그 뒤도 다를 건 없었다.

나름 전력은 갖춰 놓은 듯 했지만 터무니 없이 약한 놈들 뿐이었다.

남산에서 만난 김신이 천일의 최대 전력이 아니었나 싶었다.

쉴 새 없이 베며 달리자 두꺼운 문 하나가 보였다.

아마도 저 너머에 있을 것 같았다.

시작부터 끝까지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유지열이 말이다.

“지금이다!”

“한 번에 덮쳐!”

나름 함정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한 걸까.

거대한 렌스를 치켜든 놈들이 사방에서 덮쳐왔다.

[사사키 코지로 - 스이카]

끼아아아아아아악----!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발도가 뿜어지고.

후두둑 떨어지는 놈들을 끝으로 침묵이 찾아왔다.

이제 나와 유지열 사이를 가로막는 건 앞에 놓인 문뿐이었다.

“꽤 단단해 보이는데.”

[유탈라스 - 1단계 의테]

오른손으로 비늘을 두르고.

[도윤 - 비전 수리검]

다른 손엔 수리검을 움켜쥐었다.

강철이 얼마나 두껍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두들겨서 부숴내면 그만이었다.

문을 향해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콰앙!!

공간을 가득 채우는 굉음이 들려왔다.

움푹 구겨졌지만 아직 뚫리지 않은 문.

역시 돈을 많이 처바른 만큼 더럽게 단단했다.

계속해서 문을 두들겨 나갔다.

조금 무섭겠네.

쾅쾅거리며 문을 두들기고 있자니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반대 입장이었으면 조금 무서울 거 같긴 했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공간이 사실은 통조림인 상황이었다.

밖에선 곰 한 마리가 내용물을 꺼내 먹으려 열심히 통조림을 까는 중이었고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입가로 히죽 미소가 걸렸다.

변태인가 싶기도 했지만 약간 기대되고 있었다.

대산 엘리베이터에서 그렇게 건방진 표정을 지었던 유지열이 지금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말이다.

마지막.

오른손을 최대한 뒤로 젖히며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최대한 힘을 실은 채 시원하게 뻗어냈다.

돈의 힘으로 잘 버텨냈으나 여기까지였다.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통조림의 뚜껑이 깔끔하게 오픈됐다.

쐐에에에엑!

기다렸다는 듯이 쏘아지는 무언가를 몸을 젖혀 피해냈다.

“어떡하냐. 싸악 피해버렸는데.”

이죽거리며 몸을 원상복구 시키자 유지열과 그 앞을 가로막은 몇 명의 인원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심정이 어떠냐고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저들의 표정에서 감당하기 힘든 공포가 여지없이 묻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열아 딱 그 표정이야. 너한테 어울리는 표정은.”

한 발자국 다가가자 유지열이 눈에 띄게 놀라며 주춤거렸다.

이전에 봤던 여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모습이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앞을 가로막은 놈들을 바라봤다.

엘리베이터에서 낄낄거리던 놈들도 몇 섞여 있었다.

“너네 설마 계속하려고? 아무리 학습 능력이 없어도 그놈 지키자고 끝까지 싸울 필요는 없잖아.”

“…!”

솔깃한 말이었던 걸까.

경호원으로 보이는 놈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고민의 시간이 그리 길진 않았다.

유지열에 대한 놈들의 충성심이 얼마나 얄팍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야 이 새끼들아! 뭐 하는 짓이야!”

주춤주춤 멀어지는 인원들에 유지열이 소리 질렀지만 지금 그들에겐 전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조금 멀어지자 속도를 올려 너나 할 것 없이 입구로 달려오는 녀석들.

“물론.”

다가오는 놈들을 향해 부드럽게 면도칼을 그어냈다.

“살려준다고는 안 했어.”

“이 개…!?”

놈들의 욕은 끝까지 완성되지 못했다.

그대로 피를 흩뿌리며 경호원들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원래 이렇게 막 죽이진 않아. 그런데 이번엔 예외야. 섬에 있는 놈들은 내 기준에서 사람 새끼가 아니거든. 물론 너 포함.”

하얗게 질린 유지열에게 걸어갔다.

제대로 겁을 집어먹은 탓인지 놈은 사시나무 떨듯 벌벌거리고 있었다.

“날 죽이면 안 될 텐데? 청와대에서 생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거다!”

유지열이 애써 미소를 그렸다.

강태황이 국회의원들을 색출했음에도 저런 정보를 알고 있다니.

여전히 유지열의 입김이 닿는 줄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작전이란 건 언제나 변수가 따르는 법이거든. 너네 저항이 워낙 거셌잖아. 그건 저기 영상만 확보해도 알 수 있는 거고. 거센 저항을 이겨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죽였다면 충분하지. 뭐 어쩔 거야. 이미 죽어버렸는데.”

“지금 대통령의 명령을 어기겠다는 거냐!”

“어겼다는 거 너밖에 모르잖아. 넌 곧 죽을 거고.”

“!!”

미간을 찌푸린 유지열이 눈을 가늘게 떴다.

열심히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죽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나? 한국은 아주 작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나라다! 러시아와 전쟁이 날 거란 말이다!”

회장이라고 다 머리가 좋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머리를 열심히 굴려 나온 말이 고작 저거라니.

“전쟁이 나면.”

손을 들어 모니터를 가리켰다.

모니터는 순식간에 쑥대밭이 된 섬을 비추고 있었다.

“질 거라고 생각해?”

“…!!”

미소와 함께 고개를 흔들었다.

“난 아닐 거 같은데.”

괜히 센 척하는 건 아니었다.

상대가 러시아든 뭐든 딱히 질 거란 생각이 안 들었다.

저벅.

한 발자국 더 다가가자 깜짝 놀란 유지열이 무릎을 꿇었다.

조금 전 전략으로는 말이 통하지 않자 안 되겠다 판단한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날 살려만 줘! 모든 걸 주겠다! 아니지, 나와 함께 하자! 무기왕! 네 무력과 내 재력이 합쳐지면 세계를 손에 넣는 것도 일이 아닐 거다!”

“뭐하러 그런 걸 손에 넣어. 피곤하게.”

“모든 걸 할 수 있는 돈이다! 천문학적인 액수란 말이다!”

이건 사실 솔깃했다.

당장 집도 날아간 마당에 수십억짜리 한강뷰 아파트 장만이 가능하단 소리였으니까.

“오. 너 전 재산 얼만데?”

“10조가 넘는다!”

10조라니 감이 안 오는 숫자였다.

어쨌든 옆에 떨어진 종이에 계좌번호를 적어 건넸다.

“여기로 지금 10조 입금해. 그럼 살려 줄게.”

“뭐?”

놈이 벙찐 얼굴로 날 올려다봤다.

이 새끼 지금 무슨 소리 하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10조에서 1원이라도 부족하면 바로 죽인다. 열 센다.”

“자, 잠깐! 현금이 10조가 있는 게 아니….”

“열.”

푸확!

가로로 길게 유지열의 목을 그어냈다.

“이 개… 끄윽!”

목을 움켜쥔 유지열이 분노한 눈으로 날 노려봤다.

그리고 난 그런 유지열을 향해 미소를 그려주었다.

유지열이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분노하고 겁에 질려있길 원했다.

그래야만 데몬에 붙어 신나게 학살을 벌인 죗값을 조금이라도 더 받는 것일 테니까.

눈이 시뻘겋게 충혈될 때까지 날 노려본 유지열이 천천히 쓰러졌다.

풀썩 소리와 함께 완전히 숨이 끊어진 천일의 회장 유지열.

“끝난 건가.”

뚫어 놓은 입구로 기태랑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깥쪽도 대부분 정리됐다고 하네.”

귀로 손을 올린 기태랑이 공식 라인으로 채널을 맞췄다.

“1급 헌터 기태랑입니다. 천일 회장 유지열은 사망한 채로 발견됐습니다. 끝으로 몰리자 내분이 일어난 모양입니다.”

# 강태황이다. 알겠다. 작전 종료하지. 피해 사항 파악하고 전원 철수한다.

무전을 마친 기태랑이 벙커 안을 둘러보았다.

바깥에서 폭발이 일어나서인지 서서히 불꽃이 번져오고 있었다.

“나가자. 어차피 알아서 태워질 거 같으니까.”

어느새 가득 찬 피 웅덩이 위에 널브러진 유지열.

유지열을 잠시 바라보다 기태랑을 따라 벙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인간의 최후였다.

* * *

기태랑과 섬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는 헬기가 보였다.

헬기 앞으로 서 있는 강태황과 비광, 류희수.

비광은 왠지 모르게 아주 후련한 얼굴이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쌓인 분노를 제대로 쏟아낸 모양이었다.

“러시아 병력 도착까지 18시간. 여유롭게 끝났군.”

날 바라보던 비광이 씨익 웃어 보였다.

“안에서 핵 터뜨리고 시작했으니 여유로울 수밖에요. 그나저나 VIP는 뭐라고 해요? 유지열 죽었다니까.”

“아무 말 없이 수고했다고 하시더군. 보는 눈이 많아 공식적으로 생포를 명령하긴 했지만 아마 VIP도 이 결말을 원했을 거야. 숨어든 천일의 줄을 샅샅이 파헤치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렇겠죠. 줄이 뻗어 나온 천일이 박살나면 프락치들도 조용히 사라질 테니까요. 그놈들도 솎아내서 못 조지는 게 아쉬울 뿐이지.”

비슷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

멀리서 헬기 한 대가 다가왔다.

“러시아 대사관이다. 조금 전 청와대에서 귀띔해주더군. 이쪽으로 출발한다고.”

어디서 가져온 거지 강태황이 가면 하나를 건넸다.

“이거 쓰고 있자고. 굳이 누군지 보여 줄 필요는 없으니까.”

“옙.”

넉넉한 크기의 여우 가면을 쓰고 기다리길 잠시.

헬기가 착륙하더니 그 안에서 긴 금발을 가진 러시아 여자가 모습을 나타냈다.

“!!!”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불타는 섬을 바라보는 여자.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여자가 우리 쪽으로 고개를 휙 돌리며 소리 질렀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분명 건들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어서 오시죠. 옥시나 대사관. 작전 이야기라면 청와대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책임을 떠넘기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강태황이 사람 좋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저희는 그냥 움직이지 않습니다. 명령을 받고 움직이죠. 대사관에게 드릴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입니다.”

말은 안 했지만 울긋불긋한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옥시나란 여자가 얼마나 빡쳤는지 말이다.

“당신이 무기왕이군요. 그 가면 벗으시죠.”

갑자기?

“전 러시아를 대신해 이곳에 와있습니다. 정체를 밝히는 게 당연한 예의 아닌가요?”

이건 또 뭐 하는 새로운 광년인가 싶을 때.

“옥시나 대사관.”

옆에서 강태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써 미소 지으며 인자하게 내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웃음기가 싹 사라진 얼굴과 목소리.

“예의를 논하려거든 그쪽부터 한 나라의 장관에 대한….”

약간 흠칫한 옥시나에 강태황이 말을 이었다.

“예의를 갖추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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