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85화 (385/473)

385화. 두 번째 집

“에?”

맥주를 따던 손을 멈추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이왕 밝혀질 거 시원하게 맥주나 들이붓자 하던 참이었다.

옆에서 팝콘을 뜯던 비광도 동작을 멈췄다.

조금 전 무기왕이 누군지 모른다고 대답한 송유빈.

세 사람의 예상을 한참 벗어난 대답이었다.

“저걸 숨겨준다고?”

“대단한데.”

기태랑과 비광도 혀를 내둘렀다.

모른다고 대답한 이후 송유빈에겐 질문 세례가 쏟아지고 있었다.

어떻게 함께 있었는데 모를 수 있냐는 질문부터 일부러 숨겨주는 거 아니냐는 질문까지.

다행이라면 아까 처음 등장했을 때와 달리 송유빈의 얼굴이 평온해졌다는 것이었다.

# 아 모른다니까요. 모르는데 어떻게 말해요.제 머리라도 열어서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의자로 등을 기댄 송유빈이 배 째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무슨 질문이 오든 별로 대미지를 받지 않는 모습이었다.

“대단한 사람이네.”

“그러게. 백운이랑 아는 사람은 하나같이 보통이 아니야.”

“그러게요. 이번엔 저도 놀랍네요.”

얼떨떨한 기분에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건 다행이었지만 워낙 예상 밖의 결말이었다.

“기다려봐. 내가 전화해야겠어. 이 자식 잠재적 도굴꾼이 될 확률을 줄일 수 있었는데.”

비광이 이대론 안 된다면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내심 송유빈이 정체를 밝혀 내 불순한 의도를 잠식시키길 바란 모양이었다.

“갸아악! 뭘 전화해요!”

진짜 핸드폰을 꺼낸 비광에게 호다닥 달려들었다.

모니터 너머의 기자회견은 서서히 정리되어 가는 분위기였다.

모두의 최대 관심사였던 내 정체에 관해 송유빈이 모르쇠로 일관하자 열기가 식은 모양이었다.

비광의 핸드폰을 빼앗아 거리를 벌리며 모니터를 바라봤다.

송유빈은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혼자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맛있는 거라도 사야겠다.

대산의 기둥이라고 구라쳤던 터라 다시 만나면 어색할 거 같긴 했지만.

이것과 별개로 한국을 떠나기 전에 인사를 하러 들려야 할 것 같았다.

이대로 휭 가는 것도 약간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고 말이다.

“아 맞다. 섬 부순 건 잘 정리된 건가요?”

핸드폰을 도로 가져간 비광이 어깨를 으쓱였다.

“잘 됐다고 해야 하나. 러시아에서 압박을 엄청 받긴 했나 봐. 러시아를 무시하냐는 거부터 섬에 도착한 옥시나 대사관에 대한 태도가 어쩌구 저쩌구.”

“옥시나인가 옥시크린인가 더럽게 싸가지 없던데요.”

“원래 유명해. 싸가지 없기로. 지들이 군사 강국이다 이거지.”

“강태황 장관님도 곤란하시겠네요.”

“아닐걸.”

“…?”

옆으로 다가온 기태랑이 말을 이었다.

“이번엔 대통령이란 탱커가 존재하거든. 거기다 이번엔 대통령도 숙이지 않고 있대. 한국은 데몬과 함께 국가를 멸망시키려 한 놈들을 사살했을 뿐이라고. 러시아도 명분이 없다 보니 지금보다 강하게는 못 나올 테고.”

“으음 그럼 다행이지만…. 뭐랄까. 뒤끝 오질 거 같았거든요. 그 옥시나란 대사관.”

“맞아. 이번엔 넘어가도 분명히 잊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복수하려 들겠지.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둘 중에 할 거라면 비공식적이었으면 좋겠네요.”

초면부터 겁나게 왈왈댔던 옥시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만약 기회가 온다면 다시는 한국에 발붙이기 싫게 해 줄 생각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너 집 구하러 간다면서.”

“내일 가려고요.”

“구하는 법 알아? 청라도 아주 대충 구한 거 같더만.”

“사기는 안 당했어요. 데몬이 부숴서 그렇지.”

“내가 아는 사람 소개해 줄까? 같이 가봐. 얘도 집 구한다니까 서로 도우면서 돌아다니면 좋을 거 같은데.”

의심 가득한 눈으로 비광을 노려봤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하는 게 오히려 더 불안했다.

“속고만 살았나. 분명 도움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내 어깨를 두드리는 비광이 못 미덥긴 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한 번 믿어볼 생각이었다.

* * *

실화냐고.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최대한 감추며 정면을 응시했다.

정확히는 정면보다 조금 아래를 바라봤다.

그곳엔 짧은 갈색 웨이브를 찰랑이는 1급 헌터 류희수가 서 있었다.

“안녕…요.”

마지막으로 봤을 때 반말을 했었나 기억이 정확하지가 않아 일단 요를 붙였다.

내가 생각해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인사에 류희수가 무심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안녕. 반말하기로 했잖아.”

“그랬었지.”

약간의 침묵이 찾아왔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찾아오는 어색함.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류희수와 마주하고 있었던 시간은 다 합쳐봐야 두 시간도 안 될 테니까.

“비광이 온다고 했는데 네가 왔네.”

“그렇게 된 거였군.”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류희수를 도와주기로 했으면서 내게 시원하게 던지기 한 것이었다.

왠지 아침 일찍부터 숙소를 도망치듯 나가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바쁜 것도 없는 사람이 말이다.

“너도 집 구하려고?”

“응. 청라에 있었는데 없어졌거든.”

류희수가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더 묻지 않고 몸을 돌렸다.

나도 어색한 걸음걸이로 류희수의 뒤를 따랐다.

이건 마치 그런 상황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귀갓길.

정말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차라리 혼자 가는 게 편하고 더 나은 그런 상황.

지금의 침묵이 고통스러워 먼저 입을 열었다.

“원래 한국에 안 살았나 보네.”

“응. 난 주로 해외 임무라 한국엔 없었거든. 이번에 맡은 임무가 다 끝나서 들어온 거고. 너도 한국에 잘 안 있잖아.”

“그렇지. 역마살을 타고 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녀.”

“이제 한국에 쭉 살려고?”

“아니. 좀 있다가 또 나갈 거야.”

그렇구나 하면서 류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도착한 장소에 눈을 가늘게 떴다.

당연히 부동산으로 향할 거라 생각했는데 류희수가 향한 곳은 모델 하우스였다.

딱 봐도 으리으리해서 더럽게 비싸 보이는 곳이었다.

일단 돌격하고 보는 스타일인가.

나이가 나이니만큼 어쩌면 나보다 더 세상 물정을 더 모를 수도 있었다.

어쨌든 도착한 류희수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관리자로 보이는 남자가 밝게 인사를 건네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경 너머의 눈은 빠르게 나와 류희수를 훑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여긴 너희가 올 만한 곳이 아니라는 표정.

“집 보러 왔는데요.”

“아… 네.”

류희수의 말에 남자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우린 이미 손님의 범주에서 탈락한 모양이었다.

류희수가 먼저 둘러보기 위해 앞으로 나서고.

실실 웃으며 나한테 다가온 남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분은 동생인가요? 선생님 직업이 혹시…?”

해외에서 주로 활동한 탓인지 류희수는 잘 알려지지 않은 듯했다.

어찌 됐든 일단 동생이 아니라고 말하려는 찰나.

둘러보던 류희수가 내게 와 보라며 손짓했다.

“여기 어때?”

“너무 좋은데.”

가볍게 묻는 류희수에 지체 없이 대답했다.

고민하고 말고 할 게 없었다.

내가 평소 상상하던 집보다 훨씬 좋았으니까.

“그럼 여기 살아.”

“응?”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어느새 근처로 다가온 남자도 얘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나 궁금한 표정이었다.

그런 둘을 무덤덤하게 쳐다보던 류희수가 품에서 카드 한 장을 꺼냈다.

검은색과 금색이 고급스럽게 칠해진 것이 연회비가 엄청날 것 같은 카드였다.

“제일 넓은 평형에 뷰 좋은 층으로 주세요. 일시불로 해주시고요.”

“예….? 예.”

남자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카드를 받아 들었다.

그러든가 말든가 계속해서 걸으며 구경을 이어가는 류희수.

뭐지? 지금 집 사준 거야?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남자를 바라봤다.

함께 어버버거리던 남자는 카드를 확인하곤 입과 눈이 커다랗게 벌어지고 있었다.

“커… 커억!”

“왜요? 뭔데요? 혼자 놀라지 마시고 좀.”

“리안나 그룹 지, 직계 카드…!”

리안나 그룹이라면 많이 들어본 그룹이었다.

명품 가방과 화장품으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재벌가였다.

어?

무슨 상관이냐고 되물으려는 찰나.

머리로 리안나 그룹의 회장 이름이 떠올랐다.

류재구.

“류재구와 류희수.”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나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눈이 커졌다.

왜 1급 헌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쯤이면 확실했다.

류희수는 리안나 그룹 회장의 손녀딸이었다.

턱.

여전히 벙쪄 있는 남자의 어깨로 손을 올렸다.

“아까 동생이냐고 물으셨죠? 그냥 동생은 아니고요.”

세상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친한 동생입니다. 아주 각별한 사이라고나 할까요.”

말을 건넨 후.

앞서가는 류희수에게 빠르게 걸어갔다.

* * *

앞에서 무심한 얼굴로 팥빙수를 먹는 류희수를 바라봤다.

더럽게 비싼 집을 무슨 편의점 과자 사주듯이 사준 류희수.

처음엔 유교의 나라인 만큼 세 번 정도 급구 사양했었다.

다행히 류희수는 이미 결제했으니 나중에 되팔던가 하라는 쿨한 반응을 보였고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받게 됐구만.

정말 너무 빨리 진행되어 어쩔 수 없이 받은 것이었다.

지난번 대산에 들렸을 때도 집을 사주겠다는 소피아의 권유를 급구 거절했었다.

아무리 그래도 집이란 건 호의나 선물로 받기엔 너무 비싼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 목숨값이야. 할아버지가 보답하고 싶다고 초청하라는 걸 내가 간신히 말렸거든. 알아서 한다고.”

팥빙수를 한 입 더 삼킨 류희수가 고개를 들었다.

“곤란하잖아. 안 그래도 정체 숨기고 다니는데.”

“뭔가 보답 받으려고 한 행동은 아니지만.”

마지막 말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잘 살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자 류희수가 됐다며 손을 내저었다.

여전히 실감은 안 나지만 돌아가면 비광에게 머리를 박을 예정이었다.

덕분에 집이 생겼다고 말이다.

“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약간 망설이는 듯하던 류희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항상 거침없었던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작은 한숨을 내쉰 류희수가 말을 이었다.

“인간이 아닌 존재에 관해 어떻게 생각해?”

“인간이 아닌 존재라 하면…. 데몬 말고?”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사람한테 해를 가하거나 하는 존재는 아니야.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왔고. 갑자기 이런 걸 물어보는 이유는 비광이 그랬거든. 너만큼 다양한 경험을 해본 사람은 또 없을 거라고.”

침공이 있기 전에 비광이 은근슬쩍 말한 적이 있었다.

날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이다.

지금 얘기를 들어보니 그게 류희수였던 모양이다.

“그냥 너의 생각이 궁금해. 인간이나 기존 우리가 알던 종류가 아니면 다 데몬이자 인류의 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

지체 없이 대답하자 류희수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유라기보단 난 몇 번 만나봤거든.”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를 그렸다.

“다른 세계의 존재지만 착한 녀석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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