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화. 새로운 종족
킹냥이 페샨 족부터 영국에서 만난 슈니아 호수의 정령들까지.
이들을 만났던 일을 간략히 류희수에게 말해주었다.
데몬 같은 거랑은 비교할 수 없이 착하고 순수하다는 말과 함께였다.
“와….”
어느 순간부터 류희수는 놀란 얼굴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괜찮아?”
“어, 어. 경험이 많은 만큼 어느 정도 열린 시선일 거라곤 생각했는데…. 직접 두 번이나 만났을 줄은 몰랐거든.”
“나도 만나려고 만난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만나게 됐어. 킹냥이 페샨은 정말 귀여웠지.”
일본에서 만났던 녀석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생각해도 볼따구가 오동통한 것이 밤새도록 만지작거리고 싶었다.
“이번에 봤던 망자들도 어찌 보면 비슷한 부류라 봐도 되겠지. 킹냥 족에 비하면 한참 무섭게 생기긴 했지만.”
아이작을 끌고 들어온 게 괘씸해 신나게 썰어 대긴 했었으나.
망자 자체를 데몬처럼 나쁜놈이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찌 됐든 평소엔 지들 동네에서 규율을 지키며 조용히 살아가는 녀석들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거야? 처음 받아보는 질문이네.”
당연한 이야기긴 했다.
애초에 데몬 외의 종족이 존재한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았다.
물어보고 잠시 후 팥빙수 숟가락을 만지작거리던 류희수가 입을 열었다.
“사실 나도 알고 지낸 아이들이 있어.”
“귀여워?”
“응! 엄청 귀… 아니, 그걸 말하려는 게 아니고.”
순간 무장해제 되고 얼굴이 환해지려던 류희수가 헛기침을 했다.
“나도 너처럼 우연히 만나게 된 아이들이야. 처음 만난 건 몽골 초원이었어. 몽골 헌터청에 협력해 A급 데몬 몇 마리를 처리한 후였지.”
현장 정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찰나였다고 한다.
강아지 생김새를 한 녀석들이 류희수 앞에 우르르 모습을 드러낸 건 말이다.
“처음엔 그냥 어디서 키우는 강아지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자세히 보니 생김새가 좀 특이하더라고. 쫑긋거리는 귀가 유난히 컸고 목엔 신기한 문양이 적힌 방울 목걸이가 채워져 있었어. 그 아이들이 움직일 때마다 맑은 풍경종 소리가 났고.”
“뭔가 생김새만 들었을 땐 잘 감이 안 오네. 어쨌든 갓댕이를 닮았다 치고.”
“내 주변을 둘러싸고 빙글빙글 돌아댔는데 마치 나보고 따라오라는 것 같았어. 다른 사람들은 그 아이들을 보지 못하는 듯했고.”
류희수가 핸드폰 앨범을 켜 내게 건넸다.
아무것도 없는 몽골 초원이었지만 원래 이곳엔 댕댕이 몇 마리가 서 있었다고 했다.
“솔직히 좀 망설여졌어. 그때까지만 해도 난 기존 지구에 있던 존재가 아니면 다 데몬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결국 공격 안 했잖아. 걔네도 그럴 거라고 판단해서 너한테 다가간 거 같은데.”
“응. 나도 뭔가 본능적으로 느껴지더라고. 내게 해를 입히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나도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애들을 따라갔어. 초원을 한참 지나 도착한 곳은 어느 절벽 지대였는데, 원래라면 발을 딛는 순간 떨어져야 하는 곳인데도 막상 발을 뻗으니 시야가 한순간에 바뀌더라고.”
류희수가 당시 보았던 장소를 설명해주었다.
설명만 들었을 땐 뭔가 아기자기한 것이 핑크빛 가득한 장소였을 것 같았다.
“천천히 둘러보고 있으니 또 한 가지 느껴지는 게 있었어. 공간이 병 들어가고 있다는 거.”
“병 들어가고 있다…?”
“응. 공간을 밝히던 빛이 점점 줄어들고 사방이 황폐해지는 느낌이었어. 실제로 눈에 보이는 몇 군데는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어. 우리한테 익숙한 놈들이 나타났거든.”
역시 데몬은 백해무익한 놈들이었다.
단순히 인류의 적인 걸 넘어 모든 종족에게 피해를 끼치는 존재.
류희수가 말하는 갓댕이 종족도 마찬가지였다.
데몬에게 점점 침범당하며 살던 장소를 빼앗기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무언가 하기 전에 어디선가 나타난 성체들이 데몬을 쫓아냈어. 하지만 버거워 보였지. 싸움을 끝낸 그들은 내게 간략한 메시지를 전했어. 우리의 세상은 무너지고 있다고. 도와줄 수 없겠냐고.”
그때부터 류희수는 그 공간에 머물며 그들을 도왔다고 했다.
데몬이 나타나면 함께 싸웠고 동시에 그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할 방법을 모색한 것이었다.
결론적으론 방법을 찾지 못하고 떠나야 했지만 말이다.
“같이 싸워주는 걸론 한계가 분명했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데몬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런 거에 관해 잘 알 만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더라고. 애시당초 인류는 인류 외의 존재를 극도로 두려워하고 배척하니까.”
그러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비광에게 들은 것이었다.
대체 뭘 하고 다니는지 모를 정도로 별걸 다 하고 다니는 놈이니 한 번 물어보기라도 하라고.
그런 류희수에게 슈니아 호수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데몬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서히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단 이야기였다.
“사실 나도 너랑 비슷한 처지긴 해. 몇 번 더 만나봤다 뿐이지 이종족 전문가 같은 건 아니니까. 그런데 데몬이 계속 공격하는 건 방금 말한 거랑 대충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싶네.”
“그렇구나.”
류희수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많은 얼굴이었다.
“아니면 같이 한 번 가볼까? 간다고 해서 뚜렷한 방법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
뜻밖의 제안이었던 건지 류희수의 눈이 커졌다.
어디 저 먼 곳이라면 문제가 있겠지만 몽골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한국에 무슨 일이 생겨도 곧장 달려올 수 있는 거리였다.
거기다 우연이 겹치지 않으면 가기 힘든 공간이란 것도 솔깃했다.
통상 이런 엄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무기의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그래 줄 수 있어?”
하마터면 당연하지! 라고 크게 대답할 뻔했다.
불과 한 시간 전에 내게 집을 하사해 준 류희수였다.
본인은 목숨 값이라고 말했지만 받은 사람 입장에선 여전히 어안이 벙벙할 정도의 엄청난 선물.
가줄래? 가 아니라 가! 라고 명령해도 갔다 올 법한 상황이었다.
“응. 지금 당장은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앞에 놓인 파르페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에 바로 가보자고!”
약간 놀란 얼굴이던 류희수가 희미한 미소를 그렸다.
만난 이래로 가장 밟은 얼굴이었다.
뜻밖의 몽골행.
킹냥이에 이어 갓댕이를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 * *
집으로 돌아온 송유빈이 침대로 몸을 눕혔다.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팔다리를 쭉 뻗자 사방에서 뚜두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죽겠다.”
농담이 아니라 가능하다면 진짜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기자회견도 피곤했지만 그 이후가 더 문제였다.
정말 누가 같은 업종 아니랄까봐 끝까지 포기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카메라가 다 꺼진 뒤에도 송유빈에게 몰려와 진짜 못 봤냐고 닦달한 건 물론 자기한테만 알려달라며 좋은 소스와의 교환을 제안한 이도 적지 않았다.
“뭘 자기한테만 알려줘. 말하는 순간 대대적으로 방송할 거면서.”
콧방귀를 낀 송유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냉정을 유지하던 국장도 아주 그냥 노발대발했었다.
CBC 최고의 기회를 날려 먹었다고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송유빈을 자르거나 하진 않았다.
어찌 됐든 송유빈이 CBC 최고의 스타이자 높은 시청률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수고했어. 내일까진 푹 쉬어.
송유빈이 도착한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팀장 조영천.
조금 의외였다.
평소 침을 튀기며 털어대는 조영천이다 보니 이번에도 장난 아니게 깨질 줄 알았는데.
국장이 나가자 조영천은 피식 웃으며 송유빈의 어깨를 두드려 준 후 몸을 돌렸었다.
뜻밖의 휴가까지 하루 허락해주고 말이다.
“다행이다. 영원히 쉬라고 안 해서.”
풍파가 좀 있긴 했지만 어쨌든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며 송유빈이 눈을 감았다.
띠링.
그때 다시 한번 울리는 핸드폰에 송유빈이 핸드폰을 들었다.
조영천이 또 덕담의 한마디를 날려 준 건가 싶었다.
“오늘따라 따듯하시…!!!”
송유빈이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조영천이 보낸 게 아니었다.
대한민국 1급 헌터이자 무기왕인 백운.
지금 잠깐 만날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오 신이시여.”
눈을 비비며 몇 번인가 메시지를 확인한 송유빈이 조심스럽게 자판을 눌렀다.
최대한 신난 기색이 보이지 않게끔 조심하며 가능하다고 적어 넣었다.
마음 같아선 쌉가능이죠! 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너무 없어 보일 것 같았다.
똑똑.
“!?”
문자를 보내고 몇 초나 지났을까.
베란다 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송유빈이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주춤주춤 걸어가 베란다 문을 열자.
“…!”
한밤중의 서늘한 달빛과 함께 베란다 앞에 고요히 떠 있는 백운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 연기의 날개와 함께였다.
여전히 찌릿한 감각의 날개긴 했지만, 이전에도 느껴봐서인지 그리 낯설진 않았다.
‘멋있네.’
라고 송유빈은 자기도 모르게 생각했다.
검은 연기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비롭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안녕하세요. 무기왕 님.”
크게 심호흡하고 먼저 인사를 건넨 송유빈이 말을 이었다.
“오늘은 가면 안 쓰셨네요.”
덤덤하게 말을 건네는 송유빈에 백운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건넸다.
“이제 유빈 님 앞에선 쓸 필요가 없으니까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조금 전 들은 말이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가면 안 쓰고 이렇게 보니까 훨씬 좋네요.”
송유빈의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 * *
“평소엔 이렇게 앉지 마시고요.”
“당연하죠. 떨어져 죽을 일 있나요.”
송유빈 집의 베란다 난간.
나란히 걸터앉은 채 오는 길에 사온 붕어빵을 오물거렸다.
만나자마자 이 거짓말쟁이쉨! 하고 욕하면 어쩌나 했는데.
송유빈은 생각보다 별말 없이 인사를 건네왔었다.
“그런데 왜 베란다로 온 거예요? 그냥 벨 누르고 현관문으로 와도 되잖아요.”
날카로운 질문에 마른침을 삼켰다.
약간 극적인 등장을 위해 오긴 했는데 저렇게 물으니 할 말이 없었다.
“달빛 버프로 엄청 멋있긴 했으니까 뭐.”
혼자 자문자답하던 송유빈이 손에 들린 붕어빵을 내려다봤다.
“붕어빵은 좀 의외긴 한데.”
“죄송합니다. 오다 보니 연 곳이 없길래.”
“아니에요. 맛있어요. 추울 땐 붕어빵만 한 게 없죠.”
하나 더 꺼내먹으며 송유빈이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 또 가시나 보네요. 한밤중에 찾아오신 거 보면.”
“정확하십니다. 먼 데는 아닌데 가기 전에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고맙긴요. 제 목숨 구해 주신 게 몇 번인데요. 그런데 대산의 기둥은 아니신 거죠?”
“예, 옙. 친밀한 사이일 뿐입니다.”
“그렇구나.”
환한 달을 보며 깊은 숨을 내뱉는 송유빈.
뱉은 만큼 다시 크게 숨을 들이마신 송유빈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음에는 낮에 만나서 맛있는 거 먹어요.”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송유빈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민 손을 붙잡았다.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