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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88화 (388/473)

388화. 댕댕이 족

대굴대굴 굴러다니는 이반을 내려다봤다.

다른 사람 팔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부수는 놈이 지 팔 부서진 거엔 아주 막사가 떠나가라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나와 이반을 번갈아 보던 덩치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 개자식이!”

아무래도 약속을 지킬 생각은 없어 보였다.

머리를 박긴커녕 흥분하며 당장에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저, 저 새끼 죽여버려!”

비명은 충분히 다 지른 모양이었다.

팔을 부여잡고 일어나며 소리 지르는 이반.

끝까지 양심이 없는 자식이었다.

“얼른 와서 쳐.”

얼굴을 내밀고 뺨을 톡톡 두드렸다.

“니네가 먼저 치는 거다.”

어서 와서 쳐줬으면 했다.

그래야 저 돼지들을 마음껏 두루칠 수 있을 테니까.

“이 새끼가!”

이성이 마비된 돼지들이 달려들겠구나 싶은 순간.

짝짝짝!

박수 소리가 들리더니 갈색 눈을 가진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색 머리를 무릎 아래까지 길게 늘어뜨린 여자.

여자가 등장하자 돼지들이 바짝 쪼는 걸 보니 러시아 측 사람인 듯 했다.

“아주 재밌는 광경이네요!”

생글생글 미소를 지은 여자가 나와 돼지 사이로 끼어들었다.

러시아산 돼지들은 순식간에 일렬로 도열한 것도 모자라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팔이 박살난 이반도 입술을 깨물며 버티는 걸 보니 한참 상관인 모양이었다.

“기업 츠크라의 이사 샤샤에요.”

먼저 이름을 밝히며 악수를 청하는 샤샤에 나도 손을 뻗었다.

이반과 마찬가지로 악수를 가장한 힘겨루기인가 싶었지만 다행히 그런 건 아니었다.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인 샤샤가 고개를 돌려 이반과 돼지들을 쳐다봤다.

“저희 직원들이 폐를 끼쳤네요. 딱 봐도 먼저 시비 걸었을 거 같은데 이렇게 박살나기까지 하다니.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해지네요.”

안 그래도 고통 때문에 하얗게 질린 이반이었는데.

샤샤의 눈길이 닿으니 이젠 핏기가 완전히 소멸되고 있었다.

“게를레 님. 말썽 피워서 정말 죄송해요. 밤도 늦었으니 이만 물러갈게요. 그나저나 이쪽 분은 얼굴 가린 걸 보니 이름 물어보는 게 실례일 거 같네요. 그렇죠?”

묻는 말에 굳이 대답하진 않았다.

갑자기 등장해서 세상 착한 척하고 있으나 얘라고 별다를 건 없었다.

이반이 난동부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음에도 지금까지 묵인하고 있었을 테니까.

“과묵하신 분이네요. 이름은 다음에 듣도록 하죠.”

샤샤가 빙글 몸을 돌려 걸어가자 이반과 돼지들도 호다닥 그 뒤를 따라나섰다.

아마 꼬라지를 봤을 땐 끌려가서 신나게 조터질 것 같았다.

샘통이고.

뿌듯한 얼굴로 나도 몸을 돌렸다.

예상치 못한 소란이긴 했으나 마음에 드는 결말이었다.

“어….”

나와 류희수만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게를레를 포함한 주변 몽골 인원들이 입을 벌린 채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있길 잠시.

한참 지켜보고 있던 인원 몇 명이 술과 음식 몇 가지를 내게 가져다줬다.

“멋있었습니다…!”

“정말 통쾌했어요!”

몇몇은 깁스를 하고 있는 걸로 보아 이반에게 팔이 부러진 인원들 같았다.

“잘 먹겠습니다. 어휴 감사합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주는대로 넙죽넙죽 인사하며 받자 순식간에 먹을 게 한가득해졌다.

마침 밤에 먹은 게 붕어빵뿐이라 배고팠는데 잘됐다 싶었다.

류희수도 딱히 별 반응은 없지만 재밌다는 듯 틈틈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음식 증정 행렬이 끝나자 앞장서는 게를레.

류희수와 함께 게를레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 * *

막사에 들어와 받아온 음식을 펼쳤다.

싫어할 수 없는 염소 고기부터 다양한 과일과 요리까지.

펼치기 무섭게 손을 뻗어 흡입을 시작했다.

대충 짐을 푼 류희수도 건너편에 앉아 과일과 야채를 주로 집어먹고 있었다.

“방금 능력을 사용한 거야?”

“아니. 아무것도 안 썼는데.”

넌지시 물어오는 류희수에 양고기를 우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안 써도 그 정도구나.”

류희수가 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한 건지 놀라운 건지 약간 구분이 안 되는 표정이었다.

내가 술과 고기를 들이켜는 동안 금세 식사를 마친 류희수는 작은 가방에 음식을 챙기기 시작했다.

“애들이 인간 음식을 은근히 좋아하거든. 먹을 기회가 좀처럼 없어서 못 먹지만.”

큼지막한 고기는 잘게 쪼개는 정성까지.

처음에 봤을 땐 엄청 냉랭한 느낌이었는데 보면 볼수록 다른 면모를 많이 가진 류희수였다.

“그런데 걔네는 이름이 뭐야? 종족 이름이라고 해야 하나. 계속 댕댕이라고 부르느라 물어보는 걸 깜빡했네.”

“치쿠.”

“오 알고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뭔가 댕댕이스러운 이름이네.”

음식을 마저 챙긴 류희수가 희미하게 미소를 그렸다.

치쿠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웃는 류희수.

류희수가 치쿠를 상당히 귀여워한다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거기론 언제 갈 거야? 날이 밝으면 가야 하나.”

“언제 가도 상관은 없는데….”

류희수가 내 손에 들린 술잔을 응시했다.

앞엔 이미 깔끔하게 비워진 술병 세 개가 놓여있었다.

“아 이거 상관없어. 이 정도는 가볍거든. 음료수 한 잔 걸친 정도랄까.”

마지막 술잔을 입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왕 갈 거라면 보는 눈이 적은 밤이 좋을 것 같았다.

멍하니 날 쳐다보는 류희수에 엄지를 치켜들었다.

“가자. 댕댕이들 보러.”

* * *

러시아 기업 츠크라의 막사.

가장 널찍한 천막 안에서 거친 타격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건 조금 전 팔이 부러진 이반이었고.

주변에 함께 있었던 덩치들이 그런 이반을 쉴 새 없이 두들기고 있었다.

“끄윽…! 커억!”

주먹과 발길질이 쏟아질 때마다 이반이 신음을 쏟아냈다.

한참 더 맞던 이반이 절절한 눈으로 샤샤를 올려다봤다.

“샤, 샤샤 님. 잘못했습니다. 부디 용서를…!”

아까 백운 앞에서 으름장을 놓을 때와는 180도 달라진 얼굴이었다.

얼굴에 담긴 건 선명한 공포와 비굴함.

매일 맞으며 자란 투견이 주인을 올려다보는 느낌이었다.

조용히 이반을 내려다보던 샤샤가 고개를 들며 눈을 반짝였다.

“으…!”

“아…!”

동시에 잠시 멈췄던 덩치들의 구타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들은 모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그럼에도 손과 발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의로 움직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정신이 나갈 정도의 끔찍한 구타.

구타는 샤샤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자 비로소 끝이 났다.

“끄륵….”

정신이 반쯤 나간 이반을 바라보며 샤샤가 입을 열었다.

“제대로 물지 못할 거면 짖지도 말라고 누누이 말했었죠? 나약해 빠진 당신 때문에 우리 츠크라가 일면식도 없는 인간한테 이런 굴욕을 당해야 하나요?”

“좌… 죄송합니다.”

샤샤가 입술을 깨물며 아까 악수했던 터번의 남자를 떠올렸다.

건방지게 자신의 앞에서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인간.

순간 자신의 능력을 알아채고 이름을 안 말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럴 확률은 희박했다.

그저 샤샤를 무시하며 이름을 밝힐 필요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건방진 새끼.’

이곳이 몽골 측 막사여서 참은 건 아니었다.

옆에 대한민국 1급 헌터 류희수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상대가 누구든 진짜 이름만 알고 있다면 샤샤의 상대가 되진 못했다.

그럼에도 그냥 넘어간 건 지금 샤샤에게 주어진 츠크라의 임무 때문이었다.

최대한 정체를 숨기고 조용히 수행해야 하는 임무.

몽골은 상관없지만 정보전에 익숙한 대한민국 측 기관과 부딪히는 건 피해야 했다.

‘이름만 알면 무릎 꿇고 내 발이나 핥을 새끼가.’

샤샤가 심호흡하며 화를 삭였다.

지금 당장은 아무리 화를 내봐야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 1급 헌터 계집애부터 터번 쓴 새끼까지. 왜 이 타이밍에 온 건지 알아내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행선지나 동선도 파악해둬요.”

이반과 덩치들이 샤샤를 올려다봤다.

“임무가 끝나면 제일 먼저 박살 내버릴 거니까.”

대상이 아닌 이들마저 떨게 만드는 선명한 증오.

이반이 고개를 숙이며 마른침을 삼켰다.

기업 츠크라의 샤샤를 화나게 한 이상 아까 그 남자를 기다리는 건 끔찍한 죽음뿐이었다.

* * *

류희수를 따라 초원을 걷길 한참.

도착한 곳은 어느 절벽 앞이었다.

지난번 류희수가 말했던 그 장소 같았다.

하늘 미쳤네.

절벽 앞에서 류희수가 무언가를 하는 사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구경했다.

서울에 살아서인지 언젠가부터 별이 안 보이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었는데.

지금은 눈이 닿는 모든 곳에 별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은하수 비스무리한 것까지 여기저기 보이는 밤하늘.

뜻하지 않게 눈이 제대로 호강하고 있었다.

스아아…!

눈을 돌리며 열심히 별구경을 하고 있을 때.

눈동자로 파란색 기운이 아른거렸다.

고개를 내리자 류희수 주변으로 모여든 작은 존재들이 보였다.

각자의 알록달록한 빛을 가진 채 류희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아대는 녀석들.

미리 들었던 대로 댕댕이를 닮은 모습이었다.

페샨의 눈이 발동된 걸 봐선 일반 사람의 눈엔 안 보이는 게 기본인 듯했다.

“그게 킹냥… 아니, 페샨의 눈이구나.”

“응. 보이지 않는 걸 보게 해주는 눈이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치쿠 족 몇 명이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걸을 때마다 청명한 방울 소리가 울려 퍼지는 걸 보니 어디 멀리에 있어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발 주변에서 코로 킁킁거리며 빙글빙글 돌아대는 것까지 댕댕이와 비슷한 점이 많은 치쿠 족이었다.

나쁜 인간이 아니란 걸 파악한 건지 주위에 있던 치쿠 족이 절벽 쪽으로 뛰어갔다.

“가자.”

절벽을 넘어 뒤를 돌아보는 치쿠 족에 류희수가 먼저 발을 내딛고.

나도 그 뒤를 따라 절벽 너머로 발을 뻗었다.

혹시나 떨어질까 칼데아를 꺼낼 준비를 했는데 다행히 사용할 일은 없었다.

자세히 보니 반투명한 막이 절벽 너머로 깔려있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수면을 밟은 것처럼 물결이 일었다.

아름답게 퍼지는 물결을 구경하며 류희수의 뒤를 따랐다.

치쿠 족은 절벽에서 하늘 방향으로 한참을 더 달려가는 중이었다.

밝은 달빛 아래 무수히 많은 별을 향해 걷고 있다니.

뜬금없지만 크리스마스 때 하늘을 달리는 루돌프와 산타 할아버지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다 왔어.”

다 왔다고 말한 류희수의 모습이 먼저 사라지고.

그 뒤를 따라 몇 걸음 더 내딛자 주변을 감싸고 있던 공기가 달라졌다.

공기의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는 정확히 설명하기 힘들었다.

단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란 것을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어둠에 익숙해졌던 눈으로 밝은 빛이 뿜어졌다.

화아아악…!

다양한 빛이 뒤섞이는가 싶더니 서서히 형체를 갖춰 가는 모습.

조금 더 기다리니 생각보다 밝은 세계가 눈앞으로 펼쳐졌다.

댕댕이 치쿠 족의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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