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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90화 (390/473)

390화. 은밀하게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누르며 몸을 일으켰다.

몽골 막사에서 맞이한 첫 아침.

공기가 맑아서 좋았지만 초원 한가운데라 그런지 벌레가 더럽게 많다는 게 단점이었다.

류희수는 온몸에 염력을 두르고 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지만 말이다.

나까지 해줬으면 안 됐던 건가.

아직 이런 거까지 물어보기엔 약간 어색한 사이였으므로.

이유가 있었겠지 되뇌며 세면대로 걸어갔다.

대충 물을 묻혀 고양이 세수를 하고 터번을 두른 뒤 막사를 나섰다.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본부의 사람들은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다.

데몬의 출현에 대비해 무기를 정비하는 이도 적지 않게 보였다.

어디 있으려나.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구석으로 걸으며 츠크라 녀석들을 찾아보았다.

내 합리적 의심으론 분명 구린 짓을 하고 있을 놈들이었다.

어제 잠에 들기 전 게를레도 묘한 이야기를 해줬었다.

샤샤와 츠크라가 이 막사로 온 건 처음이지만, 다른 몽골 기지론 츠크라 외에 다른 러시아 민간 업체들이 전부터 꾸준히 들어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두 러시아 정부가 신원을 보증해 줬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쪽으로 날라! 천천히!”

“떨어뜨리지 말라고!”

여기저기 거닐고 있을 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이반과 함께 있었던 덩치들이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옮기는지 꽤나 분주해 보였다.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보려고 걷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역시 뒤가 구린 놈들다웠다.

대놓고 경비를 서거나 한 건 아니지만 러시아 막사 근처로 무장한 러시아 인원이 여럿 서 있었다.

강제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은근 다른 이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위압감을 형성하는 모습이었다.

“다 실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확인 끝났으면 올라타도록.”

경비들 사이로 어제 팔씨름을 했던 이반이 보였다.

못 본 사이에 꼴이 아주 엉망이 되어 있었다.

어제 내가 부숴 깁스를 한 팔 외에도 흠씬 두들겨 맞았는지 여기저기가 멍 투성이었다.

역시 묘하게 성질이 더러워 보이던 샤샤가 밤새도록 이반을 줘팬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저런 깊은 멍 자국이라니.

겉보기엔 얄상해서 힘이 그렇게 셀 것 같진 않았는데.

샤샤는 신체 관련 능력이라도 개방한 것 같았다.

“출발! 출발!”

이반의 외침과 함께 무언가를 잔뜩 실은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험한 지형을 달릴 예정인지 전부 튼튼해 보이는 산악 차량들이었다.

차량 무리가 어느 정도 멀어진 걸 확인하고 나도 막사에서 발을 내디뎠다.

[잭 더 리퍼 - 면도칼]

면도칼을 입에 물고 열심히 발을 움직였다.

밤이었으면 하늘에서 감시하는 게 가능했을 텐데.

말이나 오토바이를 타고 따라가기엔 들킬 위험이 큰 만큼 아쉬운 대로 뛰어서라도 가야 했다.

용감하네.

차를 따라가고 있자니 대담하단 생각이 들었다.

보통 캥기는 일을 한다면 보는 눈이 적은 시간에 움직이는 게 보통인데 놈들은 대놓고 낮에 움직이고 있었다.

의외로 합법적인 일을 하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몽골에 몰래 기어들어 온 꼬락서니를 보면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한참 초원을 달리던 차량이 사막으로 접어들고.

확 트인 시야에 사방에서 달리는 여러 대의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새겨진 회사 마크는 달랐지만 모두 이반이 탄 차량과 비슷한 생김새였다.

이거 봐. 이거. 구린 새끼들이라니까.

차량들은 사막 한 방향으로 일제히 모여들고 있었다.

몸을 숨길만 한 곳이 없는 만큼 나도 조금 더 거리를 벌리며 쫓아갔다.

어느새 사막 한가운데에 둥글게 모여 선 차량들.

뭘 하고 있는 건지 사람도 내리지 않고 차량들은 가만히 멈춰 서 있었다.

나도 몸을 바짝 낮추고 놈들을 주시했다.

그러고 있길 잠시.

차량들이 모인 곳으로 모래 소용돌이가 치는가 싶더니.

“시발?”

소용돌이가 그쳤을 땐 나란히 모여있던 차량들이 사라져 있었다.

몇 초 안 되는 짤막한 순간에 사라지다니.

벌떡 일어나 눈을 비비며 둘러봤지만 허사였다.

딱히 눈에 띄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곧장 수리검을 꺼내 차량이 사라진 곳으로 집어 던졌다.

“으음.”

몸을 옮기고 여기저기 손을 쑤욱 넣어봤지만 평범한 모래였다.

리볼버를 꺼내 꽤 아래까지 갈겨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아래쪽은 모두 평범한 모래뿐이었다.

놈들을 찾을만한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고 있을 때.

“…!”

발아래로 진동이 시작되었다.

어제 치플린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주변 일대의 모래를 뒤흔드는 진동.

이번엔 묘한 굉음까지 들리는 걸로 보아 모래 밑에서 커다란 폭발이라도 일어난 것 같았다.

폭발이 어느 정도 진정될 때까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단순히 울리고 끝인지 아니면 또 다른 현상이 생길지 궁금했다.

“하.”

궁금증이 해소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모래가 꿀렁이는가 싶더니 익숙한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네 왜 거기서 나오냐.”

“크르…!?”

치플린에 나타났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

몇 초 지나지 않았는데도 모래를 박차고 솟아난 데몬 무리.

요즘 몽골에 많이 나타난다는 게 이놈들 탓이 아닐까 싶었다.

“반갑진 않은데…. 묘하게 반가운 거 같기도 하고.”

면도칼을 손에 쥔 채 놈들을 향해 걸어갔다.

놈들도 날 발견한 건지 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마 내가 아니었다면 이곳에서 사방으로 퍼져 나갔을 터.

몽골 각지에서 데몬 출몰 빈도가 늘어났다고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 생각 좀 하게 일단 좀 죽어라.”

자세를 낮춘 채 모래를 박차며 데몬 무리 속으로 달려들었다.

* * *

게를레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막에서 데몬이 나왔다니.”

처음 안 사실인 것 같았다.

“여기까진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어.”

류희수의 말에 게를레가 테블릿 하나를 꺼내 보였다.

이상 현상이 나타나면 감지되는 장비에도 딱히 이렇다 할 만한 신호가 잡히지 않은 것이었다.

“말씀하신 사막이랑 거리가 가까운 기지들이 있습니다. 거기서도 느끼지 못한 건 좀 이상하군요.”

게를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 사막에서 몇 번의 진동이 울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보고가 올라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혹시 놈들이 옮긴 게 뭔지는 알 수 없나요?”

“창피한 이야기지만 러시아 측의 짐을 살필 권한이 저희에겐 없습니다. 몽골은 여러모로 인접한 러시아의 눈치를 많이 보고 있어서요.”

“그렇군요. 모여든 차량이 한두 대가 아닌 걸 봐선 한 번 확인해봐야 할 거 같은데.”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평범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한 번 보여달라고 하면 놈들이 아마 개거품을 물게 분명했다.

괜한 경계심을 더 심어 줄 테고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놈들은 그다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주의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대놓고 대낮에 이동하는 것부터가 그 증거였다.

“난 치플린에 갔다 올게. 어느 정도 빈도로 진동이 울리는지 체크도 할 겸.”

먼저 일어난 류희수가 내게 가까이와 말하고 빙글 몸을 돌렸다.

확실히 양쪽에서 맞춰 볼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사막에서 울린 진동과 치플린의 데몬 출현 사이에 연관이 있는지 보려면 말이다.

게를레에겐 다르게 둘러댄 뒤 막사를 빠져나가는 류희수.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 하던 게를레가 입을 열었다.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러시아 인원들이 언제 공항에서 물류를 받아오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오? 언제죠?”

“공항에서 막사까지의 이동은 자정쯤에 이루어졌습니다. 말씀하셨던 트럭이 줄을 지어 드나들었습니다.”

“경로를 알려 주실 수 있나요?”

고개를 끄덕이는 게를레에 미소를 그렸다.

조용히 뒤를 밟는 건 오늘로 충분했다.

의심스러운 점도 확인했으니 직구로 가볼 생각이었다.

“러시아가 사용하는 루트입니다.”

“고맙습니다!”

엄지를 치켜세우며 몸을 일으켰다.

24시간 내로 러시아놈들의 민낯을 깔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어둠이 내리깔린 몽골 공항.

게를레의 말대로 거대한 수송선 세 대가 차례로 착륙했다.

고개를 내려 게를레가 건넨 미니 지도를 켜봤다.

점이 정확히 일치하는 걸 보니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었다.

수송선에서 싣고 온 짐을 내리는 사이.

낮에 봤던 트럭들이 사방에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송선에서 짐을 내리고 무언가 말을 주고받고 있는 러시아 인원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짐 근처로 다가갔다.

누가 침투할 거라곤 생각 못했는지 놈들은 수다 삼매경이었다.

뭐가 들었으려나.

구석에 놓인 것 중 가장 커다란 철제 박스를 열어보았다.

뭔가 미사일스럽게 생긴 게 여러 개 담겨 있었다.

“진짜 미사일인가.”

이런 쪽으로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약간 의아했다.

TV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거 같으면서도 묘하게 다르기도 한 생김새.

손가락으로 상자를 두들기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의심스러운 건 찾았으나 이걸 어쩌나 싶어서였다.

하나 들고 나간 다음에 조사한다 쳐도 그만큼 시간이 걸릴 터.

수화물이 없어진 걸 알아차리기라도 한다면 놈들은 일찌감치 꼬리를 자를 수도 있었다.

“자! 이제 싣자고!”

“충격 가지 않게 조심하고!”

서서히 다가오는 놈들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결정을 내리고 철제 상자 안으로 들어가 뚜껑을 닫았다.

누가 들으면 더럽게 위험하고 무식한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이만한 방법도 없었다.

들키지 않고 숨어있을 수만 있다면 더 추적하고 뭐 할 것도 없이 미사일이 사용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그곳이 아마 내가 오늘 낮에 도착하고자 했던 장소일 테고 말이다.

좋아 좋아.

훌륭한 판단이라 생각하며 꾸물꾸물 상자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혹시나 뚜껑을 열어봤을 때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적당한 위치를 잡고 누워 있다 보니 뭐랄까.

묘한 현자 타임이 찾아왔다.

별의별 걸 다 하고 살긴 했지만 이젠 하다 하다 미사일 옆에 나란히 누워있다니.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것도 좋은 경험이겠지. 아닌가? 그냥 그런 걸로 치자.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며 스핑크스 자세로 가슴에 팔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상자가 덜컹거리는 걸 보니 옮겨지고 있는 듯했다.

미친놈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스파이 첩보물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라 조금 두근거리는 느낌.

물론 주인공은 나처럼 미사일 옆에 누워있진 않겠지만, 어쨌든.

놈들은 다행히 뚜껑을 열어보거나 하지 않았다.

차에 실린 건지 일정한 간격으로 상자가 덜컹거렸다.

그럴 때마다 몸이 미사일에 부딪히고 있었다.

요 근래 겪어본 것 중 최악의 장소였기에 잠이 오거나 할 거 같진 않았다.

덜컹덜컹!

몸은 몹시 불편했지만 참을만한 수준이었다.

머릿속으로 놈들이 수송을 마치고 미사일을 꺼내기 위해 상자를 열었을 때를 떠올렸다.

깜짝 등장해 제대로 두들길 생각을 하니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지고 있었다.

얼른 도착해라.

입가로 기대 가득한 미소가 그려졌다.

얼른 두들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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