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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91화 (391/473)

391화. 빛을 따라

뒤지겠다.

덜컹거리며 얼마나 이동한 걸까.

온 몸의 감각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태어나서 고문을 받아본 적은 없으나 당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고 지금 뛰쳐나가기에도 고생한 게 아까워 쉽지 않았다.

5분만 더 참는다.

상한선을 5분으로 잡아놨다.

이후엔 덜컹이든 뭐든 냅다 나가서 다 두들길 예정이었다.

조금 비효율적이고 오래 걸리겠지만 미사일의 도착 장소는 주리를 틀어 실토하게 만들기로 결정.

머릿속으로 빠르게 5분 뒤의 계획을 정립해나갔다.

“도착했습니다.”

그 사이 상자 너머로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차도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덜컹거림이 줄어들고 있었다.

처음엔 미사일 옆에 누운 것만으로도 몸이 결렸었는데.

몹시 혹사당한 지금은 흔들림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바로 집어넣자고.”

뭘 집어넣자는 건진 모르겠지만 내가 든 상자가 옮겨지고 있었다.

조만간 뚜껑이 열리고 짐을 옮긴 녀석들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꽤 옮겨지던 상자가 어딘가에 내려 놓아지고.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네.”

조금 기다리고 있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젯밤 막사에서 만난 샤샤였다.

목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들렸지만 스피커 같은 걸 통과해 나오는 듯했다.

누구한테 말하는 건가 일단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숨을 죽였다.

“너한테 말하는 거야. 터번.”

“!?”

뜻밖의 단어에 뚜껑을 걷어차며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주위 풍경.

대충 미사일의 정모 장소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았다.

온갖 미사일로 가득 찬 공간.

내가 실려 온 박스만 뚜껑이 따지지 않은 상태였다.

알고 있었구나.

혀를 차며 고개를 들었다.

엄청 두꺼워 보이는 모니터로 히죽거리는 샤샤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모르는 척 해주느라 힘들었다는 표정이었다.

# 네가 잠입한 줄 알고 신났었지? 사실 우리가 잠입시켜준 건데 말이야.

정곡을 찌르는 말에 난처한 미소를 그렸다.

내가 경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도둑인 그런 상황.

약간 의아하긴 했다.

내가 들어있는 줄 알면서도 원래 미사일이 와야 할 곳까지 옮겨놓다니.

슬슬 움직여 놈들을 찾아 나서려는 순간 샤샤가 말을 이었다.

# 이 정도로 미사일이 모인 건 처음 보지? 어때? 소름 돋지 않아? 한 발만 맞아도 널 가루로 만들 무기가 주위에 수백 발 쌓여 있다니.

여유 넘치는 샤샤의 말투에 움직이려던 걸 멈추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아무래도 샤샤는 날 이제 곧 뒤질 놈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어쩌면 가만히 선 채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매일 이런 짓을 벌이고 있었던 거냐?”

# 죽음이 코앞에 왔는데도 그런 걸 궁금해하다니. 한국 사람들은 호기심이 많다더니 진짜구나.

“미사일이랑 같이 폭사하게 생겼잖아. 갈 땐 가더라도 뭐 하는 곳에서 뒤지는지는 알고 가야지.”

호호거리며 처웃던 샤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 고맙게 생각해. 러시아 사람들은 곧 죽을 놈한텐 자비로운 편이니까.

퍽이나 고맙겠다라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샤샤를 응시했다.

무언가 뒤적이던 샤샤가 작은 광석 조각 하나를 꺼냈다.

묘한 붉은빛이 감도는 광석이었다.

# 공식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몽골 국경 부근에서 러시아에 대항하는 저항 세력과 커다란 전투가 있었지. 예상보다 큰 화력전이 펼쳐졌고.

결국엔 덧없는 저항이었다고 샤샤가 어깨를 으쓱였다.

# 전투가 끝난 직후. 현장을 정리하던 인원이 이 광석을 발견했어. 분석 결과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종류였지. 그런데 놀라운 건 이 작은 광석 안에 말도 안 되는 에너지가 담겨 있었다는 거야.

그때부터 러시아는 광석의 정체를 필사적으로 쫓았다고 한다.

저항 세력에게서 나온 건 아니라고 판단 후 전투 당시 녹화해뒀던 영상을 수십 번 되돌려본 러시아 정부.

그러던 중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커다란 화력이 터지는 순간 찰나지만 공간으로 균열이 생긴 것을 말이다.

# 균열에서 천천히 떨어지더군. 붉은빛을 머금은 이 광석이. 그 강한 화력에도 망가지지 않고 말이야. 넌 잘 모르겠지. 이게 얼마나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지.

역시 재수 없는 인간이었다.

알아서 술술 뱉어 주는 터라 잠자코 듣고 있긴 하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가 거슬렸다.

“요컨대 그 공간을 찾기 위해 사방에서 미사일을 터뜨려대고 있다?”

# 맞아. 순간이지만 열리는 균열을 통해 좌표를 파악하고 있지. 조만간 그때 열렸던 공간을 찾을 수 있을 거라 확신 중이고.

“너네가 광석 찾자고 벌인 일 때문에 몽골에 데몬이 쏟아지는 건 알고 있고?”

샤샤의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 그래서 너네가 평생 약한 나라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거야. 어떤 희생을 치르든 이 광석을 무한대로 얻을 수만 있다면 인류와 데몬의 대치도 전혀 다른 양상으로 펼쳐질 거란 걸 모르겠어?

“그거 얻으면 세계에 나눠 줄 것처럼 지껄이네. 입 싹 닦고 독점하면서 횡포 부릴 게 벌써부터 훤히 보이는데. 그리고 여기가 니네 나라냐? 남의 나라에 피해 주면서 무슨 희생을 논해. 데몬 같이 잡아 주지도 않는 새끼들이.”

# 하아.

의자로 몸을 기댄 샤샤가 입꼬리를 올렸다.

# 무식한 놈한테 괜히 입 아프게 떠들었네. 예정보다 훨씬 오래 살았으니까 이만 죽어.

빠르게 공간이 달궈지고 미사일의 표면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거대한 공간의 끝자락.

지금 달린다고 제시간에 도달하진 못할 것 같았다.

뭐 어쩔 수 없지.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였다.

곧장 빠져나가는 대신 놈들의 꿍꿍이가 뭔지 알아내는 선택지를 골랐었다.

원하는 건 제대로 얻은 셈이었다.

# 바이 바이.

재수 없게 손을 흔들어 재끼는 샤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준 찰나.

녹아내린 미사일이 폭발하며 눈앞이 순식간에 섬광으로 가득해졌다.

* * *

폭발로 가득 차는 공간을 보며 샤샤가 기지개를 켰다.

“흔적도 안 남았겠어요.”

샤샤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대한민국 1급 헌터인 류희수와 아는 사이든 뭐든 상관없었다.

저 폭발의 중심에 서 있었던 순간 터번의 남자는 가루조차 남지 않고 소멸했을 터였다.

“이반. 대신 처리해줬으니 감사히 여기세요.”

“예! 감사합니다! 샤샤 님!”

이반과 덩치들이 덩달아 고개를 푹 숙였다.

어제 힘을 봤을 때 남자는 신체 능력에 관련된 개방을 했을 터.

고작 신체가 조금 강해지는 걸로 지금 폭발에서 살아남는 건 불가능했다.

“그나저나 이번엔 어때요?”

샤샤가 모니터로 떠오르는 수치를 응시했다.

폭발을 일으킬 때마다 열리는 새로운 균열.

천문학적인 액수를 쏟고 있는 만큼 이번엔 부디 데몬만 튀어나오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일단 지금까지 열린 균열은 지난번과 같습니다. 데몬만 튀어나오는 중이고요.”

“쯧. 이번에도 꽝인가.”

담배를 문 샤샤가 끌끌 혀를 차는 사이.

모니터로 붉은빛이 점멸되며 새로운 좌표가 추가되었음을 알려왔다.

무언가 드나들 만한 크기는 아니었다.

사람의 팔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

하지만 그 정도 균열이면 충분했다.

미리 준비해둔 카메라와 측정기들이 바쁘게 돌아가며 새로운 공간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곳입니다! 대기의 질도 몹시 안정적입니다! 지금까지 열린 공간과는 다릅니다!”

“…!!”

기대에 가득 찬 샤샤가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이제까지 열린 곳은 하나같이 인간의 호흡이 거의 불가능한 공간이었다.

황폐하기 그지없는 공간에선 여지없이 데몬이 튀어나왔고 말이다.

지금 열린 공간은 유의미한 첫 발견이라 할 수 있었다.

“카메라는 아직이야?!”

“조,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이제 곧 화면이 나올 겁니다!”

샤샤의 재촉에 연구원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는 사이 카메라가 잡아낸 장면이 모니터에 조금씩 그려졌다.

이와 함께 샤샤의 기대도 부풀어갔다.

황폐와는 거리가 아주 먼 공간이었다.

공간에선 알록달록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공간에 무언가 있습니다! 확대해보겠습니다!”

연구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니터에 그려졌던 일부분이 확대되었다.

“하…?”

그곳엔 처음 보는 생명체가 잔뜩 모여있었다.

얼핏 보면 강아지를 닮은 생김새지만 두 발로 서있었다.

샤샤의 얼굴로 화색이 돌았다.

찾던 광석과는 상관없을지 몰라도 이건 엄청난 발견이었다.

인류 최초로 전혀 다른 존재가 사는 곳의 문을 열어젖힌 것이었다.

“좌표는 확인됐어?”

“예! 두어 번 더 터뜨리면 안정적으로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샤샤의 입가로 소름 돋는 미소가 그려졌다.

별다른 성과 없이 진행되었던 연구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 * *

“섬광탄 처맞으면 이런 기분이려나.”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몸을 감쌌던 유탈라스를 해제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계획은 간단했다.

유탈라스로 폭발을 견뎌내고 샤샤를 찾아내 죽탱이를 돌린다.

하지만 섬광이 그치고 눈을 뜬 곳은 아까 미사일이 쌓여 있던 장소가 아니었다.

일단 공기의 질이 아주 더러운 것이 데몬이 사는 세계였는데.

치플린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본 곳과는 또 달랐다.

도착하고 5분이 채 안 됐음에도 온몸이 끈적해질 정도로 엄청난 열기였다.

불지옥이라 불리는 대구의 한여름도 이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크륵…!”

“왜 안 나오나 했다.”

더운 곳이라 그런지 묘하게 흐느적거리는 놈들이었다.

“인… 간.”

“얼씨구.”

거대한 철갑을 두른 데몬이었다.

뜨거운 날씨 덕에 한껏 달궈진 상태.

조용히 날 응시하던 놈이 말을 이었다.

“인간… 죽여야 한다.”

“새삼스럽게 뭘. 나도 너 죽일 거야.”

[도윤 - 비전 수리검]

주변을 둘러싸는 데몬들에 수리검을 꺼냈다.

뭐 하는 세계인지는 몰라도 태양이 중천에 떠 있었다.

칼데아를 꺼내는 건 불가능하니 수리검으로 올라가 한바탕 갈겨 줄 생각이었다.

“빨리… 죽이던가… 내보내야 한다. 옛날처럼.”

옛날처럼?

묘한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마치 나 말고도 누군가 이곳에 들어온 적이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그때의 누군가는 죽이는 대신 내쫓은 모양이었고 말이다.

“죽… 여라!!”

데몬이 커다랗게 포효하자 흐느적거리던 놈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마음 같아선 잡아놓고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나 찬찬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말하는 꼬라지를 보니 원활한 대화는 불가능할 듯했다.

지난번 만났던 포이카 같은 자식이면 시도라도 해봤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었다.

“더 들을 게 없을 거 같으니.”

좁혀오는 데몬들에 수리검을 하늘 높이 집어던졌다.

“일단 죽어라.”

비전으로 위치를 바꾸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내가 순식간에 사라지자 어리둥절 해하고 있는 데몬들.

[앤 보니&메리 리드 - 리볼버]

놈들에게 시원한 탄 세례를 선물해주고자 리볼버를 꺼내 겨누었다.

그리고 지체 없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

여기서 한참 떨어져 거리가 가늠되지 않는 장소.

그곳에서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언제 봐도 눈이 번쩍 뜨이는 보라색 빛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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