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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92화 (392/473)

392화. 열기의 안쪽엔

“크릉….”

빠각!

마지막으로 달려들던 놈의 머리를 박살 낸 후.

허리에 손을 짚으며 고개를 젖혔다.

“그만.”

가능하다면 이곳 어딘가에 있을 데몬들에게 부탁하고 싶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니 그만 좀 튀어나오라고.

날씨도 푹푹 찌는데 몇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등장하니 아주 그냥 죽을 맛이었다.

“좀 덥지라도 말던가.”

손을 들어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말도 안 되는 열기에 터번을 벗어 던진 지는 이미 오래였다.

이번엔 입고 있던 상의도 벗어 휙 내버렸다.

어디 물에 푹 담갔다 나온 것처럼 젖어 옷의 기능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된 녀석이었다.

“또 나오겠지. 이번엔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나올 거야 또.”

간절히 바라며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아니나 다를까.

“크르르르!”

몇 발자국도 못 가서 귀신같이 다시 튀어나오는 녀석들.

오늘따라 데몬이 이렇게 징그럽게 보인 건 처음이었다.

한숨을 내뱉으며 아까 올라갔을 때 봤던 방향을 응시했다.

떠오른 순간 분명히 보였던 보라색 빛.

워낙 뜬금없는 장소라 처음엔 잘못 봤나 싶었지만 다시 한번 올라가 제대로 확인했었다.

수리검만 날아갔어도.

빛을 발견한 것까지는 아주 훌륭했다.

다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데몬에게 탄을 부은 후 단숨에 가기 위해 수리검을 최대한 세게 던져냈었다.

그리고 수리검은 얼마 못 가 허공에서 움직임을 멈춰버렸었다

동시에 발동한 페샨의 눈.

주변 하늘에 깔린 불그스름한 에너지가 눈으로 비쳤었다.

“너네 저거 뭔 줄 아냐?”

다가오는 데몬을 차례차례 박살내며 의미 없는 질문을 건넸다.

에너지는 내가 처음에 들어왔던 일부분을 제외하고 지역 전체에 깔렸었다.

무언가 하늘로 떠오르는 걸 막으려는 듯한 배치였다.

“악귀참도로 베어내도 그 순간뿐이고.”

쾅!

“저기까지 걸어가라는 거야 뭐야? 어!?”

콰아앙!

닥치는 대로 두들기며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우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망연자실한 건 아니었다.

보랏빛을 본 순간 내 눈은 이미 돌아가 있었다.

걸어갈 수밖에 없다면 최대한 달려서 빨리 도착하려는 중이었다.

저기서 뿜어지는 거 같은데.

에너지는 아까 빛을 봤던 방향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공장이라도 있는 건지 거의 무한 공급 수준이었다.

“인간… 인간이 또…!”

짤막하지만 말하는 녀석들도 심심치 않게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때마다 놈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고 있었다.

인간이 또 들어왔다느니 빨리 죽여야 한다느니.

약간 특이한 게 있다면 놈들의 눈에서 알 수 없는 공포가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후우우우!”

면도칼을 입에 문 채 수리검을 들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지형이 워낙 거지 같아 수리검을 쭉 던져내기도 힘든 상태.

아쉬운 대로 데몬을 박살내고 달리다 조금이라도 여유 공간이 보이면 수리검을 던지고 몸을 옮겼다.

“거기… 서!!”

뒤에서 포악스러운 외침이 들려왔다.

나도 마음 같아선 싸워주고 싶지만 더위가 날 갉아먹고 있었기에 전투는 최대한 회피할 생각이었다.

어쨌든 끝까지 따라오는 집념을 봐선 내가 걸음을 멈추는 순간 놈들도 한자리에 모이게 될 터.

그땐 끝까지 따라온 정성을 봐 탄이 됐든 불꽃이 됐든 시원하게 한 발 선물 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벽을 타고 데몬을 밟으며 속도를 올려가고 있을 때.

스아아아악!

위에서 떨어지는 무언가에 옆으로 몸을 날렸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곳을 짓뭉개버린 거대한 손바닥.

몸을 일으키며 정면을 주시했다.

바닥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못… 간… 다.”

몸을 일으킨 건 시야를 가득 채울 정도로 커다란 골렘 형태의 데몬이었다.

목소리도 어찌나 큰지 한마디 했을 뿐인데도 귀가 쩌렁쩌렁 울렸다.

“점점 더 궁금해지네.”

아깐 의아했지만 이젠 호기심과 동시에 기대가 솟구치고 있었다.

대체 저 너머에 있는 게 무엇이기에 데몬들이 이렇게까지 못 가게 막는 것인지 말이다.

“이거 어쩌지. 너네가 못 가게 하니까.”

[아이작 뉴턴 - 데모닉]

“더 가고 싶어 미치겠는데!!”

[그라비티 디바이스]

* * *

“다른 게 보였다고요?”

치쿠 족의 세계 치플린.

돌아온 류희수의 눈이 커졌다.

방금 다가온 키도가 묘한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도 직접 본 건 아니란다. 어린 아이들이 해준 이야기야.”

키도가 어린 치쿠들이 봤던 걸 최대한 자세하게 묘사해주었다.

너머로 보인 건 거대한 불꽃과 섬광이었고 그 사이로 처음 보는 것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모니터랑 미사일… 같은 건가.’

최신 기기 같은 걸 알 리 없는 치쿠 족이기에 그것들이 무엇인진 정확하지 않으나.

얼추 생긴 걸로 유추해보았을 땐 위의 것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류희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만약 치쿠들이 본 게 정말 이것들이라면 사태가 심각했다.

‘백운은 러시아가 일을 벌이고 있을 거라고 했었지.’

그렇다면 치쿠 족이 본 건 러시아가 숨겨둔 실험 장소일 가능성이 컸다.

어딜 찾고 싶어서 이런 일을 반복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잠시나마 치플린과 연결됐었다는 건 그들이 치플린에 몹시 근접했다는 증거기도 했다.

“오늘 푸른 눈을 가진 친구는 같이 오지 않았구나.”

“네. 오늘은 잠시 따로 움직이기로 해서요.”

류희수가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러시아 놈들의 민낯을 까러 간다며 기지를 떠났었던 백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백운과의 연락이 끊겼었다.

워낙 강한 터라 뭔가 잘못되거나 하진 않겠지만 러시아가 하고 있는 실험상 불안한 요소는 몇 가지 있었다.

‘놈들이 작정하고 다른 세계로 보내버렸다던가.’

러시아가 어느 정도로 문을 열고 닫는 걸 컨트롤 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이곳이 위험한 거구나.”

류희수의 심각한 얼굴에 키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에 잠시 망설이던 류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치플린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는 놈들이에요. 아마 이곳을 찾아낸 거 같아요. 제가 계속 있으면서 지키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조용히 고개를 돌린 키도가 치플린을 둘러봤다.

류희수가 지켜준다고는 하지만 키도 역시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류희수가 이곳에 머무를 수도 없는 노릇.

정 안된다면 이곳을 떠나 다른 곳을 찾는 최후의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오랜 시간 살아온 치플린을 떠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마 백운이 조사하고 있으니 조만간…!?”

걱정하는 키도를 위로해주려는 순간 다시 한번 치플린이 흔들렸다.

이전의 진동과는 달랐다.

원하는 곳을 찾아내기라도 한 건지 진동이 텀을 두고 끊임없이 울려대고 있었다.

그 덕에 여기저기서 문이 열려대며 데몬이 쏟아져 나오는 건 물론.

“…!”

아까 어린 치쿠들이 봤다는 공간으로 통하는 균열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류희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방금 멀지 않은 곳에 열렸던 균열을 통해 본 장소.

처음 생각했던 대로 각종 설비가 갖춰진 공간이었다.

순간이지만 거대한 모니터로 보인 건 츠크라의 샤샤였고 말이다.

“키도 님 준비해야 할 거 같아요.”

류희수가 다가오는 데몬을 마주하며 힘을 끌어올렸다.

“곧 다른 놈들도 올 거예요.”

* * *

땀으로 젖은 머리를 뒤로 넘겨냈다.

온몸이 땀투성이었다.

“어쨌든 왔네.”

목과 팔을 빙글 돌리며 몸을 한 번 싸악 풀어주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곳에 데몬은 없었다.

단지 아까까지만 해도 하늘에만 퍼져있었던 에너지가 지금은 사방에 깔려있었다.

몸 한 번 움직이기도 여간 거슬리고 불편한 게 아니었다.

[척준경 - 악귀참도]

또 흘러나오겠지만 에너지의 근원지에 온 만큼 시원하게 한 번 먹어치울 생각이었다.

[동기화]

악귀참도의 도신으로 검은 기운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백색과 뒤섞이며 서서히 키워지는 도신.

내 주변에 있던 희미한 기운은 순식간에 악귀참도의 먹이가 되어 삼켜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계속해서 커져갔지만 바로 휘두르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이곳은 데몬의 세계였다.

지구와 달리 무언가 엄한 걸 먹어버릴까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그저 최대한의 범위로 휘둘러 이 기운을 모조리 쓸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성해포가 풀리며 기운이 폭주한 악귀참도의 도신이 눈이 닿지 않는 곳까지 길게 뻗어졌다.

이쯤이면 될 거 같았다.

자세를 숙이며 팔을 뒤로 크게 젖혔다.

휘둘러질 준비를 마친 악귀참도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 최대의 힘을 실었다.

“다 먹어버려라…!”

횡으로 악귀참도를 크게 휘둘렀다.

커다란 반원을 그리며 사방으로 악귀를 뿜어내는 악귀참도.

날뛰기 시작한 악귀들이 순식간에 퍼지며 주변을 감싸던 기운을 먹어치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몸을 짓누르던 기운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사라져 갔다.

예상치 못한 점이라면 기운이 걷힘과 동시에 푹푹 찌던 더위도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원래 기후가 아니었던 건가.”

기운을 먹어가며 퍼지는 악귀와 빛이 새어나오던 동굴을 응시했다.

사람 한 명 정도가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는 크기의 동굴.

이곳을 뜨겁게 달궜던 기운은 저 동굴에서 뿜어지고 있었다.

“… 포기한 건가.”

끊임없이 기운을 뿜어내며 악귀참도와 힘겨루기를 하던 동굴.

안쪽으로 악귀를 밀어 넣자 동굴에선 더 이상 기운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힘을 다 소진해버렸던가 아니면 더 뿜어내는 걸 멈추기로 한 모양이었다.

스아아아악…!

뿌려졌던 악귀도 더 이상 먹을 게 없어서인지 서서히 옅어지는 중이었다.

깔끔하게 길을 열어 준 악귀참도를 해제하고 동굴로 걸음을 옮겼다.

날 쪄 죽이려던 더위가 사라지자 훨씬 살 만한 동네였다.

“음?”

몇 걸음 내딛자 동굴 입구로 희미한 형체가 생겨났다.

노인을 닮은 듯 했지만 아주 흉악스럽기 그지없는 생김새를 보니 데몬이었다.

방금 힘겨루기에서 진 탓인지 아주 누더기가 된 상태였다.

“멈춰라.”

“이 새끼들은 첫인사 통일이라도 했나. 언제 봤다고 멈추래. 자꾸.”

“이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온 것이냐.”

지금까지 만났던 놈들보단 훨씬 말을 잘하는 녀석이었다.

“모르니까 확인해보러 왔지.”

“넌 감당할 수 없다.”

미약하게 숨을 내쉬는 녀석에게 다가가 마주 섰다.

당장 죽일까 했지만 뭔가 아는 듯 싶어 잠시 놔두었다.

“안에 뭐가 있는데?”

“감당할 수 없는 힘.”

“솔깃해지는 소리를 하네.”

데몬의 몸이 서서히 흩어졌다.

지금은 가만히 서 말하는 게 최선인 모습이었다.

“그 힘을 억누르던 나의 힘을 네놈이 먹어치웠으니 이곳은 곧 지옥이 될 거다. 그리고 네놈은 동굴에 들어가는 순간 순식간에 죽겠지. 무엇이 널 죽였는지도 모른 채 말이야. 마지막으로 경….”

“마지막인 거 같아서 기다려주려고 했는데.”

푸화아악!

손을 크게 휘둘러 놈을 흩어냈다.

“너무 천천히 사라지네.”

상급 데몬까지 저렇게 호들갑 떨어대는 힘이라니.

더 이상 기다리기가 힘들었다.

완전히 가루가 된 놈을 뒤로하고 동굴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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