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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13화 (413/473)

413화. 무기왕 입국

냉탕 입수 후 온천까지 풀코스를 마친 상태.

마을로 돌아오자 차냑이 간단히 먹을만한 차와 과일을 준비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해가 지면 간다고 했었지.”

“예.”

하늘을 바라봤다.

아까 동굴로 들어가기 전보다 해가 많이 사라져 있었다.

해가 짧은 설원의 특성상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어두워질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차냑이 건넨 차를 홀짝였다.

“우리가 떠나더라도 원할 땐 와서 온천을 사용하게. 이대로 버려지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우리도 가능하다면 오긴 하겠지만 쉽지 않을 거 같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 조금 뜨끔하긴 했다.

방금 오는 길에 지도로 온천의 위치를 저장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로 무단 입국하는 게 쉽진 않겠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무조건 들릴 생각으로 말이다.

역시 난 염치가 없는 걸까.

아니겠지 라고 애써 위로하며 차 옆에 놓인 과일을 집었다.

“아 그리고.”

함께 홀짝이던 차냑이 날 바라봤다.

“자네가 속한 나라는 무언가 찾기 위해 왔다고 했었지?”

“네 맞아요.”

“이야기 좀 더 해줄 수 있겠나?”

물어오는 차냑에 수색대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었다.

혹시 모를 일이었다.

마을과 교류를 끊은 지 꽤 오래된 라피타 부족이지만 무언가 아는 게 있을 수도 있었다.

“흐음… 자네와 같은 국적의 사람을 본 적은 없네만 한 가지 생각나는 게 있어서 말이야. 몇 년 전 설원에서 한 청년을 발견했었다네. 자네랑 나이가 비슷한 러시아 사람이었지. 당시 주변을 순찰하던 나와 부족민 몇 명이 발견했었지. 청년은 꽤 깊은 부상을 가지고 있었어. 추위에 오래 노출된 건지 손과 발의 동상이 특히 심했었고.”

찻잔을 내려놓은 차냑이 안타까운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청년을 발견했을 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네. 그저 조용히 이불을 덮어주고 잦아드는 숨을 지켜봐 줄 수 밖에 없었지. 그때 청년이 무언가 필사적으로 말했었는데….”

한참 기억을 더듬던 차냑이 날 바라봤다.

“자네가 말한 수색대, 그리고 연구원이란 단어를 말했었네. 그들이 발견해선 안 되는 걸 발견해버렸다고 했었지.”

발견해선 안 되는 거라.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어루만졌다.

당시 왔던 수색대가 어떻게 죽었는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러시아에게 당했다고 가정해보면 차냑이 한 말이 아예 상관없다고 보긴 힘들었다.

봐선 안 되는 걸 봐버린 타국의 연구원들과 그걸 감추기 위한 러시아의 입막음.

충분히 그럴 놈들이라 더 신빙성이 느껴지는 가정이었다.

“청년이 입은 상처는 날카로운 것에 찔린 것 같았어. 젊은 나이였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이었지.”

차냑이 혀를 차며 차를 마셨다.

수색대와 청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거 같긴 한데 당장 뭔지는 알기 힘들었다.

그 열차도 알아봐야 하는데.

대산과 한국 정부 인원들이 휘말릴까 미뤄뒀던 열차의 조사.

김정윤이 알아보고 있긴 하지만 직접 가볼 필요가 있었다.

얼음 기둥으로 다가갔을 때 본 거인 데몬과 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엔 얼려놓긴 했지만 그걸로 완전히 놈을 죽인 게 맞는 건지 의문도 들었고 말이다.

만약 심장이 다른 곳에 있다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런 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무적의 존재가 아니라면 분명 어딘가에 게이볼그가 찾지 못했던 거인 데몬의 심장이 숨겨져 있을 터였다.

놈을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게 어디에 있든, 러시아를 다 뒤지는 한이 있어도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찾아내야 했다.

데몬의 세계에서 헤스티아의 팔을 날린 것도 모자라 호시탐탐 때를 기다리다 얼음 기둥을 덮쳤던 녀석.

놈이 확실히 뒤졌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떠날 수 없었다.

“그때 청년이 가지고 있던 명찰을 보관해놨었네.”

잠시 뒤적거리던 차냑이 플라스틱으로 된 낡은 명찰을 건네왔다.

러시아 이름이 적힌 명찰 옆으론 보조 요원이란 글자가 적혀 있었다.

당장 이것만 보고 뭔가를 떠올리기는 힘들 것 같았다.

“별 도움은 안될 것 같지만 혹시나 해서 말이야.”

“고맙습니다. 제가 가져가서 알아볼게요.”

띠링.

감사 인사와 함께 명찰을 챙기고 있을 때 핸드폰의 알림음이 들려왔다.

혹시나 김정윤이 보낸 신호인가 바로 열어봤지만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대신 다른 내용의 문자가 찍혀 있었다.

# 무기왕 러시아 입국.

강태황에게 요청했던 무기왕 입국이 오늘이었던 모양이다.

짧은 메시지 아래론 대략적인 도착 시간이 적혀 있었다.

러시아 측 이동수단으로 오이먀콘까지 이동할 거란 내용과 함께였다.

문자를 확인하고 나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다른 이유에서는 아니었다.

뜬금없이 러시아로 불려와 추위 속에서 고생할 누군가가 생각나서였다.

고생하세요.

마음속으로 되뇌며 그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조심하라는 걱정은 딱히 필요 없을 것 같았다.

* * *

오이먀콘에서 공항이 있는 아쿠츠쿠로 되돌아온 열차.

다시 오이먀콘으로 출발하기 시작한 열차에 기관장이 조용히 무전기를 들었다.

“무기왕 탑승했습니다.”

# 그래요?

너머에서 옥시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동행은?

“없습니다. 혼자입니다.”

# 허.

옥시나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무기왕을 보낸다곤 했지만 동행이 한두 명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제아무리 무기왕이더라도 자기가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걸 알고 있을 터.

최소한의 보험은 들 거라 여겼는데 의외였다.

# 건방진 새끼.

보고 있지 않아도 기관장은 알 수 있었다.

너머의 옥시나가 이를 갈고 있다는 걸 말이다.

틈이 날 때마다 예의를 모르는 건방진 새끼라고 옥시나는 무기왕을 욕했었다.

# 열차에 타고 있는 전력은요?

“1급 헌터 한 명에 2급 헌터 셋, 3급 헌터 다수입니다.”

아쿠츠쿠에서 픽업한 건 무기왕 뿐만이 아니었다.

아직 오이먀콘으로 가지 않은 러시아 측의 전력도 함께였다.

# 계획은 알고 있겠죠? 저번에 말했듯이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준비는 다 해놨으니까요.”

기관장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무기왕을 잡을 본 전력은 이미 오이먀콘에 도착해 대기 중이었다.

러시아의 최대 전력이라 불리는 남자 또한 훨씬 전에 오이먀콘 쪽으로 건너가 있었고 말이다.

# 거기선 약간의 전력만 상실시켜도 작전은 성공이에요. 어차피 놈은 오이먀콘에서 죽음을 맞이할 테니까. 아참, 그리고 알고 있겠지만 열차 지하층까지 충격이 가선 절대 안 됩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큰 소란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몇 마디를 더 나눈 기관장이 무전기를 내려놓았다.

‘이건 기회다.’

기관장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본연의 임무는 무기왕을 오이먀콘까지 데려가는 거였지만.

이런 절호의 기회를 그렇게 날릴 생각은 없었다.

지금 운전하는 열차에 있어선 누구보다 빠삭한 기관장.

이걸 이용해 무기왕의 전력을 줄이는 걸 넘어 완전히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혼잣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 기관장이 무전기를 들었다.

“가스 틀겠습니다. 전원 방독면 착용해주십시오.”

기관장의 말이 열차에 탄 러시아 인원들에게 전달되었다.

각 칸에서 착용 완료했다는 연락을 받은 후.

기관장이 앞에 놓인 레버를 올렸다.

천천히 열차의 환풍구를 통해 준비한 수면 가스가 뿌려지기 시작했다.

“10분 뒤에 들어가겠습니다. 혹시 모르니까요.”

한 번이라도 들이켜는 순간 누가 깨우기 전까지 정신을 잃게 만드는 가스였다.

아무리 무기왕이라고 해도 호흡기로 침투하는 가스를 어쩌진 못할 터.

시계를 보며 10분을 기다린 기관장이 가스를 멈추고 대기 중이던 인원들과 칸으로 들어갔다.

“하!!”

기관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예상대로였다.

가면을 쓴 무기왕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조금의 움직임도 없는 걸 보아 제대로 잠에 든 것 같았다.

“가면을 벗길까요?”

3급 헌터의 말에 기관장이 고개를 저었다.

“얼굴은 목을 자른 뒤에 확인해도 늦지 않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겁이 많지만, 좋게 말하면 기관장은 방심하지 않고 신중을 기하는 타입이었다.

그럴 확률은 거의 없지만 혹시나 마스크를 벗기다 무기왕이 깨어나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졌기 때문이다.

거대한 칼을 든 기관장이 무기왕 앞에 섰다.

‘내 손으로 무기왕을 죽이다니.’

두근거리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기관장이 칼을 치켜들었다.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만… 죽어라!!’

들어 올려졌던 칼이 빠른 속도로 떨어져 무기왕의 목을 내리쳤다.

카앙!!

기관장의 확신과 달리 무기왕의 목은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살과 칼의 만남에서 들릴 수 없는 소리가 열차로 울려 퍼졌다.

완전히 부러진 칼날이 허공으로 솟구친 건 덤이었다.

“!?”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기관장의 눈이 커졌다.

부러진 칼날이 눈앞을 지나 뒤로 날아갔음에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기관장이 방금 칼날이 닿았던 무기왕의 목을 살폈다.

그곳에선 열차의 빛이 다채로운 색으로 반사되고 있었다.

마치 보석이 뿜어내는 빛 같았다.

“러시아식 인사법인가?”

나지막한 목소리에 기관장이 뒷걸음질을 쳤다.

“어, 어떻게 벌써…!”

타격이 있었다곤 하나 이렇게 바로 깨어나다니.

준비한 수면 가스의 강도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걸 누르라고 했었나.”

약간 잠에 취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남자가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삐이이이이이익-----!!

“윽!”

귀를 찌르는 소리에 러시아 인원들이 끼고 있던 인이어를 내던졌다.

“기관장님! 열차에 있던 통신 장비가…!”

인이어 뿐만이 아니었다.

가지고 있는 핸드폰 및 열차의 장비들도 모조리 먹통 상태였다.

“요즘에 나온 새로운 장비라고 하더군. EMP 기능이 탑재된 뭐라고 했는데 기억은 잘 안 나네.”

“너… 너 누구냐!?”

기관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기왕이 새로운 힘을 얻은 게 아니라면 이건 뭔가 이상했다.

분명 잠들어 있어 능력을 꺼내고 말고 할 여유가 없었는데 칼을 튕겨내다니.

더군다나 칼날을 막은 건 무기왕 동영상에 등장했던 푸른색 비늘이 아니었다.

“나?”

천천히 몸을 일으킨 남자가 가면과 모자를 벗었다.

동시에 앞에 서 있던 기관장과 러시아 헌터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직 이름을 밝히기 전이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한국은 물론 세계적에서도 유명한 1급 헌터이자 절대 죽지 않는 다이아몬드 인간으로 알려진 남자.

“대한민국 소속 1급 헌터, 기태랑.”

묘한 미소를 지은 기태랑이 목을 풀었다.

강태황이 이번 임무를 전달했을 땐 웃음이 나왔었다.

백운이 비광이 아닌 자신을 지목하며 강태황에게 남긴 말이 있었다.

- 태랑 님이 죽을 일은 없으니까요!

무기왕을 잡아 죽이고 싶어 별짓을 다 하고 있는 러시아.

무기왕이 러시아 땅을 밟는 순간부터 공격이 시작될 게 뻔했기에.

백운은 대한민국 최강의 방패라고 불리는 기태랑을 부른 것이었다.

“그런데 좀 의외긴 했어. 아무리 그래도 자는 사람 목을 칠 거라고는 생각 못 했거든.”

“이, 이 새….”

콰악!

“꺼억…!”

순식간에 손을 뻗은 기태랑이 기관장의 목을 움켜쥐었다.

“EMP탄에도 열차가 왜 안 멈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거랑 별개로.”

기태랑이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할 건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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