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화. 주인 없는 왕릉
주변을 돌며 닥치는 대로 먹을 걸 사 왔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인다고 다녔는데 벌써 몇 시간이 지난 시점.
“휴우. 뭐 했다고 벌써 힘드냐.”
사 온 음식과 식기를 테이블에 세팅했다.
술도 손이 떨리는 비싼 것들로만 사 왔다.
당일에 급히 불렀음에도 와주는 고마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아?
세팅을 마치고 공허한 집을 둘러보았다.
잠시 간과한 게 있었다.
내가 뿌린 메시지에 답장한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었다.
갑자기 일이 폭풍처럼 몰아친다는 전수희의 불안한 답장을 제외하면 말이다.
“설마 손님 없는 집들이라고…?”
나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가고 약간의 초조함이 찾아왔다.
최근에 이렇게 초조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손가락을 잘근잘근 씹으며 아무도 오지 않았을 때의 상황을 가정해보았다.
“… 끔찍하군.”
나름 푸드파이팅엔 자부심이 있었지만 이걸 다 먹기엔 무리였다.
냉동시켜놓고 장기전으로 돌입해야 할 터였다.
초조함의 스노우볼이 데굴데굴 굴러가며 몸집을 키워가고 있을 때.
딩동!
“오!”
울리는 초인종에 빠르게 달려나가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백운 님!”
“오랜만이에요!”
“어서 오세요!”
초기 대산의 토벌전에서 만난 두 사람.
오랜만에 보는 배이슬과 유연경이 신기한 듯 내 얼굴을 살폈다.
“왜, 왜 그러세요?”
“갑자기 집들이를 부르셨는데 아크 라디스트라서… 스팸 문자인 줄 알았어요.”
“맞아요. 오면서도 이거, 가면 함정 아닌가? 엄청 고민했다니까요.”
“하하하…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함정이니 얼른 들어오세요.”
실례하겠다며 들어온 두 사람이 감탄하며 집을 둘러봤다.
“그런데, 저희 둘뿐이네요?”
“다른 분들은 아직 안 오신 건가요?”
여기선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아직 온다고 확정된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표정을 본 걸까, 두 사람이 연이어 입을 열었다.
“어… 셋만 있어도 재밌게 먹으면 되죠!”
“마, 맞아요! 저희가 맛있는 것도 사 왔어요!”
감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이 반이라고 일단 혼자는 아니니 첫 집들이는 50% 이상 성공했다고 봐야 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편한지는 모르겠네요. 저도 아직 한 번도 안 앉아봐서.”
“한 번도요? 언제 입주하셨는데요?”
“오늘요. 정확히는 몇 시간 전?”
“와우.”
배이슬과 유연경이 동시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뭔진 몰라도 여러 의미가 담긴 것 같았다.
딩동!
“!?”
또다시 들리는 초인종에 문을 열자.
“집들이 당일에 부르는 놈이 있으려나.”
“아마 없을걸.”
“와하하! 뭐 어때! 라면도 안 끓여주고 도망갔지만 오라는데 와야지.”
요란스러운 대화와 함께 순대국밥 집 삼인방과 류희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오십시오!”
90도로 고개를 숙이자 강태황과 기태랑, 류희수는 안쪽으로 들어가고.
마지막까지 남은 비광이 스윽 옆으로 다가왔다.
“너 출세했다. 고맙지? 내가 같이 가라고 했잖아.”
“형님!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뭘 갚아, 갚긴. 라면도 안 끓여주고 탈주한 놈이.”
어깨를 툭툭 친 비광이 들어가자 안에서도 화기애애한 인사가 오고 갔다.
“아, 먼저 오신 분들이 계셨군요. 헌터청 장관 강태황이라고 합니다.”
뒤이어 기태랑과 비광, 류희수도 인사를 건네자 배이슬과 유연경이 약간 넋 나간 얼굴로 120도 인사를 꾸벅였다.
아무래도, 헌터청 장관에 1급 헌터 세 명이 갑자기 들이닥친 상황이 영 적응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 문 열려있네요.”
“백운 님이다!”
“너무 오랜만이에요.”
뒤이어 도착한 김소연과 김희연, 이청아까지.
아까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도 쉴 새 없이 인사를 건네며 손님을 맞이했다.
“안녕하세… 허억!!”
그리고, 예상했던 반응이 이어졌다.
인천 헌터청에 근무하는 이청아가 끝판왕 상사들을 발견하곤 바짝 언 것이었다.
“하하하! 뭘 그렇게 얼고 그러나. 그냥 동네 할아버지라고 생각하게.”
“지나가는 아저씨 A, B라고 생각하세요.”
되겠냐고.
전혀 도움 되지 않는 말을 하는 강태황과 아저씨 A, B.
아니나 다를까 이청아는 어버버거리며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는 중이었다.
과연, 이청아가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는 있을까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이거 음식들은 네가 직접 다 만든 거야? 대단한데.”
아니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비광이 먼저 선수를 쳤다.
“만들었겠어? 다 사 온 거지. 그래도 맛있는 것들만 잘 사 왔네.”
순간 포크를 뺏을까 했지만, 이 집은 어떻게 보면 비광의 스노우볼이었으니 눈감아주기로 했다.
“일단 술 한 잔씩 받으시죠!”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났다.
“자 건…”
잔을 부딪치기 직전.
딩동!
“뭐야. 백운 집들이 올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비광의 말을 뒤로 하고 문으로 달려나갔다.
문을 열자 아침보다 다크써클이 한 뼘 늘어난 전수희가 서 있었다.
“조금 늦었지만… 세이프!”
숨을 헐떡이던 전수희가 옆으로 비켜서자.
언제 봐도 화사한 금발을 늘어뜨린 소피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옆에선 비서 아티라가 고개를 꾸벅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백운 님.”
“소피아 님. 여기까지 와주시다니.”
솔직히 소피아까지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감동한 얼굴로 소피아와 아티라를 안으로 안내하자, 뒤에서 척유라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오! 잘 지냈어?”
“응. 오빠 부자 됐구나.”
“부, 부자는 아니고. 감당할 수 없는 집을 가진 뭐 그런…? 어쨌든 얼른 들어와.”
척유라까지 들어가자 전수희가 선물 꾸러미를 들어 올렸다.
“최리아 실장님이랑 김정윤 실장님, 그리고 장판석 님은 옥시나 조사 때문에 못 오신대요. 대신 세 분 모두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수희 님도 들어가시죠!”
마음은 가볍게, 양손은 무겁게란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넓어 보였던 부엌이 아주 북적이고 있었다.
“배, 백운 님.”
“넵?”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인 배이슬과 유연경이 눈을 반짝였다.
두 사람의 눈은 강태황 옆에 앉은 소피아에게 꽂혀 있었다.
너무 눈부셔서 제대로 못 쳐다보겠다는 반응이었다.
“대체 인맥 무엇…?”
“대산 회장님이라고요…? 진짜 말도 안 되네요.”
“착하게 살았나 봐요. 복 받았어.”
씨익 웃어 보이며 새로 온 사람들의 잔을 다시 채워주었다.
“자 그럼 건배 한 번 할까요?”
테이블 중앙에서 잔을 들어 올렸다.
함께 잔을 올리며 날 쳐다보는 사람들.
“건…”
“집주인이니까 건배사는 당연히 하시겠죠?”
나지막한 소피아의 목소리에 마른침을 삼켰다.
절대 강압적이지 않지만 무조건 해야 할 거 같은 기분이었다.
어느 때보다 빠르게 머리를 굴리다 힘차게 입을 열었다.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위하여!”
얼떨결에 따라 외친 사람들이 서로 건배를 하고 잔을 기울였다.
“풉!”
“뭐, 뭐요!”
잔을 비우기 무섭게 비광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우리 할아버지가 하시는 건배사랑 똑같아서.”
“그만큼 좋으니까 할아버지도 하시는 거죠!”
“그렇긴 하지.”
“얼른 한 잔 더 드세요.”
잔을 받으며 비광이 주변을 둘러봤다.
“내일 아침엔 라면 끓여주는 거냐?”
“무슨…? 자고 갈 셈?”
“당연하지. 술 마셨는데 집에 어떻게 가냐.”
“저도요!”
“저도 재워주세요!”
비광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잔을 들었다.
“좋습니다! 내일 조식 라면은 제가 준비합니다!”
“와아아아아!”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즐기며 다시 한번 잔을 기울였다.
* * *
그렇게 몇 시간이나 먹고 마신 걸까.
“끄어어…”
돌아갈 사람은 배웅을, 자고 갈 사람은 방을 배치해주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여기가 내 방인가?
약간 의문이 들었지만, 기지개를 켜고 침대로 몸을 눕혔다.
내 방이고 나발이고 일단 좀 누워야 할 것 같았다.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딱히 한 게 없는 데도, 힘이 드는 묘한 상황.
아마 부엌에 쌓인 설거지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아! 자면 안 되지.
벌떡 일어나 미리 빌려놓은 노트북을 꺼냈다.
부팅되는 동안 손가락을 두드리며 아까 스치듯 본 뉴스를 떠올렸다.
일주일 뒤, 지금까지 중지되었던 진시황릉 발굴을 시작한다는 뉴스.
인터넷에 관련된 내용을 검색해 쭉 읽어보았다.
진시황릉 덕분에 세간의 시선이 중국으로 쏠려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무덤이라 불리는 진시황릉.
진시황릉 발굴은 꽤 오랜 시간 진행되어 왔었다.
그러다 데몬이 등장하며 기약 없이 중단됐었고 말이다.
“대산도 참여하는구만.”
이례적인 일이었다.
옛날이었으면 다 파헤칠 때까지 아주 폐쇄적으로 진행했을 텐데.
이번엔 발굴이나 탐사 쪽으로 유명한 각 나라의 기업을 초빙해 도움을 받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었다.
중국에 있어서도 실수가 있거나 실패해선 안 되는 프로젝트인 만큼 신중을 기하려는 것이었다.
“고민되네.”
침대에 대자로 누워 파닥거리며 눈을 감았다.
발굴하는 곳으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물론, 갈 생각이 든 건 혹시나 무덤에서 보랏빛 흔적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옆에서 스윽 보고 있다가 보랏빛 유물이 나오면 냉큼 손을 뻗고자 하는 흑심 그 자체.
그리고 이런 흑심이 뻔히 보이더라도 부탁하면 소피아는 날 데려가 줄 터였다.
중국 입장에선 내가 무기왕인지 뭔지도 모르니 들어가는데도 별문제 없을 테고 말이다.
“흐음… 의외로 가만히 앉아서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단지 마음에 걸리는 게 한 가지 있었다.
# 전문가들은 한 달 후엔 진시황이 묻힌 곳까지 도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재생해놓은 뉴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영원한 생을 원했지만 실패해 무덤에 잠든 비운의 황제. 과연 그 황제는 어떤 모습으로 묻혀 있을지 세간의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고개를 돌려 화면을 바라봤다.
당장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도 저렇게 기대하고 있을 만큼 진시황릉 발굴은 세기의 이벤트였다.
하지만 저들은 한 달 후 원하는 걸 발견하지 못할 터였다.
진시황의 무덤은 텅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난리 났었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했다.
텅 빈 무덤에 중국은 노발대발했었다.
그리고 나라의 가용 인원을 총동원했었다.
도굴의 가능성부터 프로젝트 중 누군가 먼저 손을 댄 건 아닌지 등 존재하는 가능성을 모두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조사가 진행되며 가능성이 하나씩 제거되고 마지막에 내려진 결론은 의외의 것이었다.
“애초에 진시황은 진시황릉에 묻히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이었다.
만약 대산을 따라 진시황릉에 갔는데 발굴하는 동안 보랏빛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랬다간 정말 낭패였다.
진시황의 부재에 중국의 조사가 끝날 때까지 발이 묶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음… 좋아!”
결정을 내리고 몸을 빙글 한 바퀴 돌렸다.
노트북으로 회귀 전 정보를 정리해놓은 수첩을 펼쳤다.
수첩엔 진시황과 관련된 몇 가지 정보가 나열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진시황과 관련되었을 거라 추정되는 정보라 당시에도 논란이 많긴 했지만, 어쨌든.
“어차피 텅 빈 걸 아는 무덤 파헤치는 걸 기다리기보단.”
미소를 그리며 나열된 정보의 맨 위를 짚었다.
“직접 찾으러 가보자고.”
진시황이 묻히지 않았다는 게 확인되고 새롭게 떠오른 세기의 의문.
진시황은 어디에서 죽음을 맞이했는가?
내일부터 그 의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