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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21화 (421/473)

421화. 글귀는

집 청소 완료했고.

옷에 손을 대충 닦은 후 기지개를 켰다.

요란스럽게 파바박 했으면 금방 치웠을 텐데.

자는 사람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사부작사부작 치우느라 시간이 꽤 걸리고 말았다.

라면도 사놨고.

테이블 위엔 라면 한 보따리가 쌓여 있었다.

아침에 깬 사람들의 해장용.

물론 어제 건배하면서 선언한 것과 달리 요리사가 변경될 예정이었다.

슥슥.

쪽지 한 장을 적어, 라면 보따리 옆으로 가져다 놨다.

# 급한 출가 이슈로 요리사 변경. 백운 -> 비광.

“완벽하군.”

고개를 끄덕이고 베란다로 걸어갔다.

어느 때보다 마음도 가벼웠다.

순대국밥 집에서 강태황은 내게 말했었다.

류희수와 비광도 돌아왔으니 떠나고 싶을 때 마음껏 떠나도 된다고 말이다.

“새벽 공기 좋고.”

밖으로 나가니 상쾌한 공기가 날 반겼다.

바로 보이는 새벽 한강뷰도 아주 훌륭했다.

곳곳에 켜진 조명과 새벽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조명이 어우러지니 이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카로스 - 칼데아 윙]

날개를 펼치고 한강 쪽으로 몸을 날렸다.

이제부터 갈 곳은 머나먼 나라 인도.

좀 뜬금없지만 회귀 전 진시황의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된 곳이었다.

진짜 진시황의 것이다, 아니다 얘기가 많았지만 직접 가서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만약 흔적이 진짜라면 거기서 이어지는 나머지 흔적들도 확인해 볼 가치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의 무단 입국이네.

몇 시간 전까지는 한숨 푹 자고 일어나 멀쩡히 비행기를 타고 갈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진시황을 찾고자 마음을 먹으니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기가 쉽지 않았었다.

목적지를 정하며 또렷해진 눈도 잠들기를 거부했었고 말이다.

마치 수학여행을 앞둔 초등학생이 된 기분.

못 참고 나온 만큼 괜히 문제가 되지 않게끔 조용히 입국할 생각이었다.

“저번엔 잠들어서 걸린 거니까.”

잠든 채 동동 떠가다 머리에 총구가 겨눠졌던 영국.

그때처럼 잠드는 것만 아니면 딱히 걸릴 일은 없었다.

“좋구만.”

여유롭게 새벽 공기를 가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어딘가를 갈 때는 자유로운 무단 입국만 한 게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으며.

인도를 향해 힘차게 연기를 터뜨렸다.

* * *

어딘가로 침투하는 특수 요원처럼 물 밖으로 눈을 빼꼼 내밀었다.

전방 이상 무.

한참 시원하게 연기를 터뜨리며 날아온 인도.

거의 다 왔을 때쯤 해가 떠 해상 경로로 이동을 시작했었다.

열심히 팔을 휘저은 덕에 어느새 육지가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

상륙 작전 실행.

거창하게 말하긴 했지만, 작전을 실행하고 말 것도 없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다고? 의문이 들 정도로 인도의 바닷가 근처는 한산했다.

싱겁게 해안가로 올라가며 주위를 둘러봤다.

인도가 아니라 어디 외딴 무인도에 잘못 온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람 사는 냄새가 안 나는 동네였다.

어디 보자.

# 비샤카파트남.

방수팩에서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켜보았다.

인도 끝자락에 위치한 항만 도시.

진시황이 들렸다고 알려진 첫 번째 발자취가 있는 곳이었다.

“제대로 왔고.”

허리에 손을 짚은 채 스스로의 훌륭한 방향 감각을 칭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제대로 찾아온 거 말곤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 으, 음.”

처음 오는 나란데 너무 대책 없이 왔나 싶긴 했다.

몇 시간 전까지 한강 앞 베란다에 서 있었다는 것도 약간 현실성이 없기도 했고 말이다.

“뭐 일단 가보자고.”

어쨌든 왔으니 힘차게 첫발을 내디디며 지도를 살폈다.

“비샤카 사원이라. 꽤 머네.”

목적지인 비샤카 사원의 안쪽엔 숨겨진 장소가 있었다.

몇 년 뒤에 우연히 발견될 장소였다.

그곳에서 진시황의 필체와 일치한다고 알려진 간단한 글귀가 발견됐었다.

# 불사를 찾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좀 애매하긴 해.”

찾아가고 있으면서도 너무 뜬금없는 장소라 약간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중국 땅이면 모를까 한참이나 떨어진 인도라니.

진시황 시절엔 비행기도 없었으니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건가부터 설명이 쉽지 않았다.

빠르게 돌아보고 답도 없겠다 싶으면 바로 후퇴해야지.

사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진시황에게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여러 무기를 사용했다고 알려지긴 했지만 딱히 특정할 무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에 진시황을 찾기로 한 이유는 간단했다.

무기가 없다면 약간 슬프긴 하겠지만 발견되었던 발자취가 있는 만큼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없다는 걸, 현대에서 진시황을 찾을 방법이 없다는 걸 말이다.

그게 아니면 가능성이란 녀석이 계속 눈앞에서 아른거릴 것 같았다.

응?

사원 쪽으로 얼마나 걸었을까.

이제 막 해가 뜬 시간인데 촛불을 든 행렬이 보였다.

모두가 하얀색 망토를 뒤집어쓰고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걷고 있었다.

방향을 보니 내가 가는 사원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잠시 행렬을 구경하고 있자 옆으로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왔다.

“자넨 관광객인가?”

내 신기한 차림새를 한 번 훑더니 묻는 할아버지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방금 도착해서 좀 둘러보고 있었어요.”

“행색만 보면 바다라도 건너서 온 거 같군. 허허!”

“하하하!”

약간 뜨끔하며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저건 무슨 행렬이에요?”

“비샤카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라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원을 찾아가 기도를 올리지.”

“다른 분들은 안 가시는 거 보니 모두가 비샤카 신을 모시는 건 아닌가 보네요.”

“그렇지. 인도엔 여러 신이 있거든. 각자 모시는 신도 다르다네.”

해가 뜨고 시간이 꽤 흐른 건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매일 볼 수 있는 모습일 텐데도 적지 않은 인원이 모여 나와 같이 행렬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넨 어디로 가고 있었나?”

“저도 비샤카 사원으로 가고 있어요.”

“그래?”

다시 내 옷차림을 훑은 할아버지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 차림으로 갔다간 돌 날아올 텐데?”

할아버지의 시선을 쫓아 내 행색을 한 번 훑었다.

돌 던질 정도인가 싶긴 했지만 어쨌든 갈아입을 필요가 있긴 했다.

순대국밥 집부터 입고 있던 것도 모자라 바닷물에 쫄딱 젖기까지 했으니 한계라고 봐야 했다.

“혹시 옷 살만한 곳 있을까요?”

“날 따라오게.”

할아버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화색을 띠며 몸을 돌렸다.

뭔가 낚이는 기분이었지만 일단 할아버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어느 낡은 가게로 가더니 셔터를 올리고 주섬주섬 옷을 꺼내는 할아버지.

아니나 다를까 할아버지는 가게의 주인장이셨다.

“내 가게야. 원하는 옷을 골라보게.”

고개를 끄덕이며 튼튼해 보이는 가방 하나와 옷가지들을 집었다.

나이스부터 아도다스까지 묘하게 철자만 다른 옷이 가득했다.

“긴팔에 긴바지면 사원도 문제없이 들어갈까요?”

“그럼. 그 정도면 상관없지.”

“좋네요. 이렇게 부탁드려요.”

“긴팔 세 개에 바지 세 개, 속옷이랑 양말 다섯 개라… 음.”

한참 계산기를 두드리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이것만 주게.”

계산기엔 숫자 10만이 쓰여 있었다.

인도의 돈 단위는 루피.

핸드폰에 루피와 원 환율을 쳐보았다.

# 160만.

뭐야.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할아버지가 미소를 그렸다.

아까 내내 짓던 인자한 미소는 아니었다.

“왜 마음에 안 드나? 안 들면 가지고 있는 거 다 내려놓고 나가게.”

잠시 후 반쯤 열린 셔터 아래로 열댓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저마다 몽둥이를 하나씩 든 상태였다.

“오 이게 인도식 거래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160만은 너무 비싸다 생각했는데 공짜로 주겠다고 이렇게 몸부림을 치다니.

안 받으면 실례일 것 같았다.

* * *

잠깐 여기에 두고.

원래 사려고 했던 것보다 다섯 배는 더 커진 배낭.

배낭을 사원 구석에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인도 화폐도 없었는데 잘됐네.

가게에 들어갈 때까지 깜빡하고 있었다.

환전이고 뭐고 하나도 해 오질 않아서 돈이 없다는 걸 말이다.

다행히 먼저 나서 준 할아버지 덕에 옷가지와 더불어 돈까지 넉넉하게 챙겨올 수 있었다.

기도 중인가 보네.

아까 봤던 망토 행렬이 사원 한쪽에 모여 있었다.

촛불을 들고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

다행히 내가 가야 하는 곳은 기도 장소와 꽤 떨어진 장소였다.

단숨에 도약해 계단을 뛰어올랐다.

사진으로만 봤던 터라 가물가물하긴 했지만, 다행히 사원은 헤맬 정도로 복잡한 구조는 아니었다.

여긴가.

딱히 출입 금지 장소는 아닌 모양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제단이 있는 안쪽까지 걸어갔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괴기한 형상이 그려진 벽.

주위를 한 번 슥 훑어본 후 벽의 한쪽 면을 더듬거렸다.

드드득.

손이 묵은 먼지로 덮여 갈 때쯤.

만지작거리던 곳이 움직이며 벽이 갈라지기 시작하고.

갈라진 사이로 숨겨졌던 공간이 나타나며 퀴퀴한 곰팡내가 뿜어졌다.

모양새만 봤을 땐 영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공간이었다.

“가, 가보자고.”

입을 대충 옷으로 가리고 걸음을 내디뎠다.

회귀 전에 사진으로 봤던 건 여기로 들어오는 벽과 공간의 끝에 쓰여 있을 진시황의 글귀뿐이었다.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오래된 통로는 처음 보는 장소였다.

애초에 무엇을 위한 장소인지도 알 수 없었고 말이다.

“귀신 나오겄네.”

어디서 바람이 새는지 소름 돋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이카를 찾던 때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데몬은 몰라도 귀신과 만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지양하고 싶었다.

“있는 거 다 아니까 나와라. 지금 나오면 봐줄 테니까.”

어두컴컴한 공간에 허세까지 부리며 계속 나아갔다.

마음 같아선 라의 불꽃이라도 꺼내 길을 밝히고 싶었지만, 엄한 사원을 다 태워 먹을 순 없었다.

여기가 끝인가.

통로의 끝엔 커다란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회귀 전 사진에서 봤던 것과 같은 녀석이었다.

더 이상 이어지는 길은 없는 거 같고.

조용히 비석을 올려다보았다.

“… 하아.”

어두컴컴한 벽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사실 걸어오며 약간이지만 낭패감이 들었었다.

날강도 마인드일 수도 있으나 비석에 적힌 글귀에서 내심 보랏빛이 새어 나오길 기대했었기 때문이다.

“얼레? 그나저나 빛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치고… 글귀는 왜 없냐.”

자세히 살피니 글귀는커녕 글자 비슷하게 생긴 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비석으로 손을 뻗었다.

어두워서 못 찾는 건가 싶어 비석의 파인 부분이 있나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 진짜 없네.”

더듬거리던 걸 멈추고 미간을 찌푸렸다.

납득이 안 가는 순간이었다.

이곳의 글귀를 발견하는 건 지금보다 1년 후지만 이건 딱히 상관없었다.

당시 조사 결과 글귀는 못 해도 수백 년 전에 새겨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이 아니라 100년 전에 왔어도 이곳엔 글귀가 새겨져 있어야 했다.

기사 자체가 사기일 리는 없는데.

한곳에서만 비석의 글귀를 다룬 게 아니었다.

소문이 퍼지며 여러 매체가 연구원까지 동원해 이곳을 찾았었다.

모두 동일한 결과를 내놨었고 말이다.

난감하….

“어두워서 뭐 보이겠어?”

사원을 다시 한번 뒤져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어두컴컴하던 비석으로 불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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