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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24화 (424/473)

424화. 언덕 위 저택

물어뜯던 닭다리를 내려놓고 할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봤다.

잘못된 신을 섬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당장은 와 닿지 않았다.

깊은 한숨을 내쉰 할아버지가 말을 이어 나갔다.

“도시 이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곳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진 건 비샤카 신이네.”

“도시 곳곳에 새겨진 벽화만 봐도 비샤카 신이 가장 많으니까요.”

“맞아. 하지만 벽화에 그려진, 그리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전설 속의 비샤카 신과 지금 그들이 모시고 있는 비샤카 신은 다르단 말일세. 간단하게 말해서 엉뚱한 놈을 숭배하며 기도를 하고 있는 거지.”

턱을 슥슥 문질렀다.

티는 안 냈지만, 솔직히 비샤카 신을 숭배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약간 경계심을 가졌었다.

사원에서 느꼈던 감각과 날 불러냈던 신도 무리의 노인.

그 둘 덕에 난 비샤카 신이 데몬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샤카 신에 관련된 벽화를 보면서도 싸이비들이 지들 멋대로 그려놓았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둘이 이름만 같고 전혀 다른 존재라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조금 궁금한데요.”

이야기를 같이 듣고 있던 아시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한두 명도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이 다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무지하니까.”

“네?”

“시간이 흐르다 보면 기록은 흐려지고 변질되기 마련이지. 그 틈으로 새로운 사실이 끼어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고. 여기에 새로운 존재가 직접 나타나 자신이 비샤카 신임을 칭하며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을 눈앞에서 행한다면? 냉정한 판단이 불가능한 이들은 넘어가는 수밖에 없겠지.”

디안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옅어진 기억을 새로운 기억이 나타나 채우고, 그 기억의 주인으로 숭배의 대상이 바뀌기도 한다고 디안은 말했었다.

지금 이야기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을 행한다면 그… 가짜 비샤카 신도 능력이 있긴 한 거 아닌가요? 왜 굳이 새로운 신이 되지 않고 남의 이름을 뺏는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걸까요?”

“그 반대네. 더 쉬운 길을 선택한 게지.”

아시나의 물음에 할아버지가 벽화로 손을 뻗었다.

손끝으로 왼쪽부터 천천히 벽화를 훑어가는 할아버지.

“이미 숭배의 대상이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신이 나타나 숭배를 받는다는 건 힘든 일이야. 하지만 이미 숭배받던 신의 이름을 빼앗는다면 그 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걸 손쉽게 자신의 것으로 앗아 갈 수 있는 게지.”

할아버지가 하는 말이 진짜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사실이라면 망토 무리가 숭배하는 신은 천하의 도둑놈 새끼라 봐도 무방했다.

처음 생각했던 대로 신 흉내를 내는 데몬일 가능성도 충분했고, 말이다.

일본에서 헤키리스가 보여준 케이스도 있었으니 마냥 놀랄 일은 아니었다.

“괜한 말을 해서 식사 분위기가 이상해졌군. 난 이만 갈 테니 마저 들게. 노인의 넋두리니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듣진 말고. 어차피 증명도 못 하는 말이니까.”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다시 시작된 식사.

세 사람이 무언가 열심히 말을 주고받았지만 당장 내 귀엔 들리지 않았다.

새롭게 떠오른 가능성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원에서 디안은 말했었다.

도시에서 진시황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며 곳곳에 기록이 되어있을 거라고.

하지만 정작 도시엔 비샤카 신의 기록뿐이었다.

진시황의 이름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대신 모두가 알고 있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비샤카.

손가락을 두드리며 벽화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혼잣말로 되뇌었다.

“비샤카 신이… 진시황이다.”

* * *

가게에서 식사를 마치고 세 사람은 가볼 곳이 있다며 손을 흔들었었다.

난 곧장 낮에 왔던 사원으로 올라왔고 말이다.

“어디 갔지.”

양치기 소년을 만나기 위해 왔지만, 디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거짓말을 했다고 따지려고 온 건 아니었다.

묻고 싶은 게 한 가지 있었다.

도시 대부분이 모르는 진시황이란 이름을 넌 어떻게 알고 있었으며 언제부터 어떤 근거로 비샤카 신과 연관 지은 건지 말이다.

“다른 사원부터 가봐야 하나.”

언덕 위에서 봤을 때 망토 무리는 꽤 많았었다.

그만큼 기도하러 가는 비샤카 사원이 많다는 이야기.

그들의 기도 대상이 짭이든 진짜든 혹시 모르니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했다.

사원을 내려와 다시 번화가 쪽으로 걸어갔다.

사원은 번화가를 중심으로 길이 퍼지니 차례대로 가볼 생각이었다.

아시나 님은 뭐 좀 찾았으려나.

세 사람을 보며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었다.

모두가 무시한 실종 신고를 조사하기 위해 리스크를 감당하면서 여기까지 오다니.

훌륭한 헌터상 같은 거라도 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응?

사람이 북적이는 길을 걷고 있을 때, 골목에서 튀어나온 애가 내 쪽으로 달려왔다.

기껏해야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인데 거의 슬라이딩 하다시피 내달리고 있었다.

피하면 그대로 나자빠질 거 같아 손으로 부딪히려는 아이를 받아주었다.

“앞은 보면서 뛰어가야지. 그러다 자빠…?”

고개를 든 아이는 뭐에 쫓기기라도 하듯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사라! 사라!”

“사라야! 잠시만 기다려보렴! 엄마랑 아빠가 잘못했어!”

잠시 후 뒤에서 성인 남자와 여자 한 명이 아이 쪽으로 달려왔다.

“부모님 맞아?”

조용히 묻자 울먹이던 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부모님이 완전히 옆으로 도달하기 전.

다시 한번 질문을 건넸다.

“도움이 필요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이번에 사라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흔들리는 눈으로 날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 사라가 빙글 몸을 돌려 달려오는 부모님에게 다가갔다.

“갑자기 뛰쳐나가면 어떡하니! 엄마가 걱정했잖아!”

“미, 미안.”

“아이가 부딪힌 건가요? 정말 죄송합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네. 괜찮아요.”

이내 다가온 남자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딱히 부모를 연기한다거나 하는 거 같진 않았다.

“아이가 요새 들어 무서운 꿈을 꾼다고 하더니 종종 이렇게 뛰쳐나가 버립니다. 혹시나 선생님께 이상한 꿈 내용을 말하거나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날 빤히 쳐다보는 남자에 고개를 저었다.

“네. 그런 말은 안 했어요. 그냥 울기만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정말 죄송했습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꾸벅인 남자가 사라를 데리고 멀어져 갔다.

거칠거나 강압적이진 않았다.

사이에서 걸어가는 사라의 움직임이 잔뜩 힘이 빠져 보일 뿐이었다.

그나저나.

자신을 사라의 아빠라고 소개한 남자를 바라봤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물어 오긴 했지만 어색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었다.

우연히 부딪혔을 뿐인데 딸이 꿈 얘기를 한 게 없는지 묻다니.

마치 딸이 뭔가를 말했을까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거기다.

부스럭.

사라와 부모님이 시야에서 완전히 멀어진 걸 확인하고 손에 쥔 작은 쪽지를 펼쳤다.

사라가 부딪힌 순간 내 손에 쥐여 준 것이었다.

꼬깃꼬깃 구겨진 종이엔 급하게 휘갈겨 쓴 글이 있었다.

# 살려주세요. 집에 다친 사람들이 있어요.

어린아이의 장난일 수도 있었다.

글 옆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핏자국이 없었다면 말이다.

저벅.

쪽지를 챙기고 걸음을 옮겼다.

사라가 부모님과 사라진 방향이었다.

* * *

한참 뒤따라가 도착한 곳은 도시 언덕에 위치한 저택이었다.

도시 곳곳에 있는 다른 집보다 훨씬 크고 깔끔한 집.

조금 전 사라는 부모님과 함께 이 집 안으로 들어갔었다.

발자국이라.

정문 근처론 최근에 생긴 걸로 보이는 발자국들이 찍혀 있었다.

방금 들어간 세 사람의 것 말고도 최소 두 종류는 더 많아 보였다.

“흐음.”

꽤 높은 담벼락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다, 가볍게 뛰어 담을 넘어갔다.

“뭐 훔치려는 건 아닙니다. 도둑 아니에요.”

듣는 이 없는 혼잣말을 마치고 천천히 집을 탐색해 나갔다.

외관만 봤을 땐 도시에서 좀 잘 사는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

방금 화약 냄새가 코를 스치지 않았다면 말이다.

전투가 있었던 건가.

냄새를 따라 저택 뒤편으로 걸어갔다.

아직 냄새가 남아있다는 건 발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끄으….”

주변을 둘러보던 중 집 아래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신음이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걸으니 지상으로 약간 드러난 쇠창살 창문이 보였다.

집의 지하실인 모양이고, 소리는 그곳에서 새어 나오는 중이었다.

옆에 놓인 돌로 땅을 좀 파낸 뒤 쇠창살로 눈을 가져갔다.

“…!”

지하실에 널브러져 있는 건 아까 만났던 아시나와 릭신, 라샤드였다.

상처가 꽤 깊은 건지 세 사람의 주변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창문의 쇠창살을 잡고 천천히 힘을 주었다.

드드득.

조금씩 불협화음이 나더니 이내 뜯어지는 창문.

간신히 사람 한 명 지나갈 수 있는 창문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괜찮으세요?”

“배… 백운 님…?”

배 아래를 움켜쥔 아시나가 힘겨운 눈으로 날 올려다봤다.

릭신과 라샤드는 숨은 쉬고 있지만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빠르게 움직여 세 사람의 상처 부위를 옷으로 꽉 조여 맸다.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삼킨 아시나가 날 바라봤다.

“여, 여기 계시면… 안 돼요.”

아시나가 힘겨운 눈으로 동료들을 돌아봤다.

“위험… 해요. 다시 나가셔야 해요. 이 집에 있는 사람들… 보통 인간이 아니에요.”

세 사람의 상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7급 헌터면 나름 혼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급수일 텐데 이렇게 처참하게 당하다니.

이 저택에 살고 있는 건 적어도 일반인은 아니란 증거였다.

“여기로….”

품을 뒤지던 아시나가 내 손으로 명함 하나를 건네주었다.

인도 중앙 헌터청의 번호가 적혀 있었다.

“죄송하지만 연락 좀 부탁드려요. 저나 릭신, 라샤드 전부 바로 죽거나 할 상처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거…!!”

말을 잇던 아시나가 헛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른 척 돌아갔으면 목숨은 잃지 않았을 텐데.”

익숙한 목소리였다.

아까 길에서 만난 사라의 아버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구리로 칼이 날아들었다.

콰악.

옆구리로 뻗어진 손목을 붙잡았다.

“언제 기어 나오나 했네.”

“!?”

창문을 뜯고 들어와 아시나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을 때쯤.

그림자로 스며든 놈이 내 바로 뒤까지 다가온 걸 이미 느끼고 있었다.

언제까지 저기에 있으려나 기다리는 중이었고 말이다.

“숨어서 남의 얘기나 엿듣고 말이야. 이거 완전.”

손목을 잡은 손으로 힘을 주었다.

“변태 새끼네.”

우드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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