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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26화 (426/473)

426화. 그림자 속에서

처음 관에 누웠을 땐 생각보다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이동이 시작되자 이렇게 구린 잠자리가 또 있을까 싶었다.

운반 중인 신도들의 키가 제각각인지 관은 제멋대로 기울어져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심하게 덜컹거려 몸 여기저기가 관에 부딪히는 건 물론이었다.

조금만 참자.

심호흡하며 두 손을 가지런히 가슴 앞으로 모았다.

싸이비 신도만 아니었으면 이런 고생할 것 없이 두들겨서 목적지를 물었을 텐데.

아까 사라의 부모님을 보니 신도들은 쉽사리 입을 열 만한 부류가 아니었다.

지금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배달되는 게 최선일 것 같았다.

비밀스러운 사원일 거 같은데.

도시에서 일어나는 실종 사건 하나 때문에 관에 들어온 건 아니었다.

이런 늦은 시간에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는 관 이동 행렬.

사원에서 기다리는 게 뭔지는 몰라도 당당한 일을 하려는 건 아닐 터였다.

그만큼 지금 향하는 사원은 일반적으로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곳일 가능성이 컸다.

진시황과 비샤카의 연관성을 알기 위해 도시에 있는 사원을 다 방문하려던 내겐 나쁘지 않은 기회였다.

“사원이 보입니다.”

“조금만 더 속도를 올리죠. 시간이 이미 꽤 지체됐으니까요.”

거기다 행렬을 주도하고 있는 건 낮에 봤던 노인이었다.

더럽게 수상하며 데몬과 연관이 있을 거라 추정되는 노인.

언제 한 번 제대로 두들겨줘야지 했었는데 하루도 되지 않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처맞아야 하는 운명이라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끼이익하며 낡은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 쪽으로 관이 기우는 걸 보니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것 같았다.

자물쇠 푸는 소리가 들리고 몇 개의 문을 더 지나자 덜컹거리던 관이 드디어 잠잠해졌다.

꽤 많네.

최소 천 명은 넘을 듯한 숫자였다.

마음속으로 기도라도 하고 있는 건지 사람들은 모여있기만 할 뿐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오늘도 빠짐없이 모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의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웅얼거리는 기도 소리가 공간을 채워나갔다.

정확한 내용은 몰라도 대충 낮에 사원에서 올린 기도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가만히 누워 듣고 있자니 새삼스럽게 무엇을 위한 기도일까 의문이 들었다.

원래라면 관에 누워있어야 하는 건 내가 아닌 사라였다.

잔뜩 겁먹은 꼬마 애를 여기에 눕혀놓고 하는 기도는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스아아아…!

밀려오는 익숙한 감각에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낮에 사원에서 느꼈던 데몬 세계의 감각.

그땐 찰나의 순간만 느껴지고 끝이었다면 지금은 기운이 점점 진해지며 공간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공간과 어딘지 모를 데몬 세계가 이어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연결된 문 언저리로 커다란 기운을 가진 존재가 나타났다.

“사도시여!”

“사도를 뵙습니다!”

그 존재를 신도들이 사도라고 목 놓아 울부짖었다.

몇몇 신도는 울음까지 터뜨리고 있는 상황.

공간 전체가 순식간에 광기로 휩싸였다.

“사도시여! 오늘 제물은 특별한 걸 가져왔습니다! 신께서 직접 부정하다고 말씀하신 사탄의 자식입니다!”

쯧.

혀를 차며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너무 아무런 의심 없이 들고 간다 싶더니만.

알면서도 모른 척 한 모양이었다.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그냥 들고 가길래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긴 했었다.

쾅!

발을 뻗어 관뚜껑을 차냈다.

답답했던 만큼 상쾌한 공기가 반겨주길 바랐지만 욕심인 것 같았다.

공간은 데몬의 세계 특유의 텁텁한 공기로 가득했다.

“알고 있었으면 모른 척하지 말고 빨리 말하지. 안 그래도 따라왔을 텐데 괜히 답답하게 왔잖아.”

관에서 몸을 일으키며 노인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안에서 느낀 대로 작은 균열 하나가 열려 있었다.

그리고 데몬 하나가 기어 나와 있었다.

붉은 눈을 제외하곤 온몸이 일렁이는 흑색으로 물든 녀석이었다.

마치 그림자 그 자체인 듯한 느낌.

전체적인 형태만 보면 사람과 몹시 흡사했다.

“넌 무엇이냐?”

날 바라보던 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생긴 것과 비슷하게 바닥으로 내리깔리는 목소리였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이 늦은 시간에 싸이비들이랑 뭘 짝짝꿍 하고 있는 건지.”

이쯤에서 노인이 됐든 신도가 됐든 불경하다며 소리라도 지를 줄 알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모두가 머리를 박은 채 기도만 웅얼거리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데몬은 감히 고개를 들어 쳐다봐선 안 되는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겁이 없는 인간이구나.”

웃음을 터뜨린 데몬이 고개를 돌려 엎드려 있는 노인을 응시했다.

“신께서 부정하다고 말씀하신 게 사실이냐?”

“예. 그렇습니다. 사도시여! 분명 저 남자를 가리키며 내보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께서 진즉 내보내라 한 걸 넌 나한테까지 들고 온 거고.”

“!!”

노인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쉽게 나갈 거 같지 않은… 크어…!?”

빠르네.

순간 사라지는가 싶더니 노인 앞에서 나타난 데몬.

데몬이 노인의 목덜미를 잡고 끌어 올렸다.

“네가 해야 할 일을 사도인 내게 떠넘기다니. 용기가 가상하구나.”

“요, 용서를!!”

“눈은 도로 가져가마.”

“사도시여! 제발!!”

노인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기괴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그림자가 일렁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사라진 노인의 머리.

머리가 사라진 노인을 아무렇게나 내던진 데몬의 손엔 붉은 눈동자 하나가 들려있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오만하다.”

데몬이 들려있던 눈동자를 자신의 눈으로 가져갔다.

희미한 붉은빛이 새어 나오더니 작은 한숨을 내쉬는 데몬.

데몬의 눈은 조금 전보다 더 붉게 빛나고 있었다.

“약간의 권력을 허락해줬다고 그새를 못 참고 이렇게 기어오르다니. 안 그런가?”

데몬의 눈동자가 내게로 향했다.

노인의 죽음 때문인지 신도들은 아까보다 더욱 크게 기도하며 벌벌 떨어대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도망치는 게 정상일 텐데 그런 사고조차 불가능하게 되어버린 듯했다.

“신께서 신경 쓴 녀석이니 특별히 내가 먼저 알려주마. 내 이름은 셀베스. 신의 사도다. 그럼 다시 한번 물으마. 넌 무엇이냐?”

“내 이름은 백운. 뭐냐고 물으니까 좀 애매하긴 한데 아마도….”

얼굴을 긁적이다 입꼬리를 살짝 올려주었다.

“네가 안 만났어야 하는 사람?”

“… 그런가.”

셀베스는 화내거나 하지 않았다.

대신 약간의 정적이 찾아오고.

“오만한 대답이구나.”

나지막한 대답과 함께 셀베스의 몸에서 그림자가 뿜어졌다.

일렁이는가 싶더니 날카로운 갈고리 형태로 바뀌어 쏘아지는 그림자.

[이카로스 - 칼데아 윙]

콰앙!

연기로 갈고리를 막아내자 셀베스가 재밌다는 듯 날 쳐다봤다.

“흥미로운 기운이구나. 어디까지 막을 수 있는 것이냐?”

셀베스의 주위에서 수십 줄기의 그림자가 쏘아졌다.

다시 한번 연기로 그림자를 막아내며 입을 열었다.

“보시다시피 다 막을 수 있어. 자 대답해줬으니까 너도 대답해라. 저 너머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 데몬 놈이 여기서 뭐 하고 있던 거냐?”

“먹이를 받고 약간의 힘을 빌려주었다. 저들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더군. 빠짐없이 먹이를 바칠 정도로 말이다.”

“먹이라니.”

연기를 터뜨리며 순식간에 곁으로 다가간 후.

날카로운 형태로 바꾼 연기를 셀베스에게 쏘아냈다.

“…!”

분명 연기는 셀베스를 관통했지만 무언가에 닿은 감각이 없었다.

“그건 내가 아니다.”

연기에 닿은 형체가 무너지더니 다른 쪽 그림자에서 셀베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나였던 것이지. 인간이여. 넌 날 절대 죽일 수 없다. 이곳에 어둠이 존재하는 한 말이야.”

“네가 먹이라 부른 애들은 어떻게 됐지?”

“말하지 않았느냐. 먹이라고.”

“그러니까 왜….”

셀베스가 서 있는 곳으로 연기를 뿌려냈다.

“인간을 먹느냔 말이다! 네놈들이 원하는 건 단순한 살육일 텐데!”

아까와 마찬가지로 다른 그림자로 이동하는 셀베스.

셀베스의 입가로 미소가 그려졌다.

“진짜 먹거나 하는 건 아니다. 단지 이건 벌이다.”

“벌…?”

“네 녀석처럼 우리를 거슬렀던 인간에 대한 벌. 놈은 죽었지만 계속해서 고통을 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놈이 지키려고 했던 것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다. 그나저나.”

시선을 돌린 셀베스가 벌벌 떨고 있는 신도들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넌 대충 해선 죽을 거 같지 않구나. 영광으로 알거라. 최대 전력으로 싸워줄 테니.”

말이 끝나자마자 셀베스의 그림자가 신도들에게 쏘아졌다.

순식간에 신도들의 발로 뻗어 나가 발목을 끊어내는 그림자.

“끄아아아아악!”

“내 발! 아아악!”

“울부짖지 말거라. 나의 것을 다시 거두어 가는 것이니.”

사라의 부모님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신도가 발목 아래로 그림자를 품고 있었다.

아까 보여준 그림자 능력의 정체인 것 같았다.

별의별 데몬이 다 있구나.

능력을 나눠주는 녀석이라니.

이건 또 처음 보는 유형이었다.

“하아…. 힘이 넘치는구나.”

신도들에게 뽑혀 나간 그림자가 셀베스의 몸으로 합쳐졌다.

아까보다 덩치가 더 커진 모습.

황홀한 듯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던 셀베스가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자 그럼.”

콰아아아아!

셀베스가 빠른 속도로 내게 쏘아져 왔다.

“제대로 시작해보자.”

* * *

쾅! 쾅! 쾅! 쾅!

사방에서 쏘아지는 그림자를 쳐내며 뒤로 물러났다.

이것도 안 되네.

탄을 쏟아낸 리볼버를 해제하며 정면을 바라봤다.

본격적으로 전투를 시작하고 여러 가지 공격을 해보았지만 처음과 마찬가지였다.

셀베스는 공격이 닿는 순간에 자신과 이어진 그림자로 몸을 옮기고 있었다.

거의 순간이동에 가까운 스피드였다.

“더 보여줄 건 없는 것이냐?”

셀베스가 여유로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이동하는데 소모값이 없어서인지 주고받은 합만 수백 번이 넘어가는데도 놈의 호흡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에 반해 내 몸 여기저기엔 그림자가 스치며 상처들을 남겼고 말이다.

“신께서 왜 너를 신경 쓰셨는지 이유를 모르겠구나. 이렇게 나약한데.”

점잖은 척하면서도 한 마디 한 마디가 거슬리는 놈이었다.

“데몬 새끼라 탐색전이란 걸 모르는 모양이네.”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쭉 폈다.

빛 속성인 리볼버면 혹시나 대미지를 입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렇지 않은 걸 보니 애초에 셀베스 주변에 그림자가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듯했다.

현재 자신과 이어져 있는 그림자가 약간이라도 있다면 놈은 몸을 바꾸는 게 가능했다.

“딱 보니까 넌 주위에 그림자만 없으면 별거 아닌 새끼네.”

“그걸 알았다 한들 한낱 인간인 네가 뭘 할 수 있지?”

여전히 여유로운 셀베스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보자고.”

“뭐?”

“그림자가 사라진 다음에도 그렇게 여유 부릴 수 있는지 말이야.”

미소를 그리며 하늘로 손을 들어 올렸다.

[잔다르크 - 생카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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