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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28화 (428/473)

428화. 황제의 흔적

개방과 함께 불가능이 사라진 세상이란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쉽사리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앞에 쓰여진 글귀는 분명 내가 회귀 전 뉴스를 통해 본 것이었다.

단순히 내용만 같은 게 아니었다.

어느 정도 기억의 오차가 있을 순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엔 회귀 전에 봤던 것과 글씨체까지 완벽히 똑같았다.

“본 적 있지?”

묻고 싶은 건 내가 훨씬 많았지만 먼저 입을 연 건 디안이었다.

마치 회귀 전에 내가 글귀를 봤다는 걸 알고 있는 말투였다.

작게 심호흡하며 입을 열었다.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디안이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묻고 싶은 거였는데.”

“…?”

“내가 쓴 적도 없는 글귀를 넌 어디서 보고 여기까지 찾아온 거냐?”

약간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라니.

회귀 전 학자들이 말한대로 저 글귀가 정말 진시황의 것이라면.

지금 눈앞에 있는 디안이 진시황이란 소리였다.

“괜한 기대를 할까 미리 말해주자면 난 진시황이 아니다. 정확히는.”

디안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목적을 가지고 본체의 눈에서 떨어져 나온 사념체라고 불러야겠지.”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미궁인 느낌인데. 일단 너 아까 날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잖아. 그건 무슨 얘기야? 우린 만난 적이 없는데 어떻게 기다릴 수 있는 거지? “

“봤거든. 너와 내가 처음으로 만난 사원의 숨겨진 공간. 벽에 글을 새기려는 순간 네가 그곳으로 찾아오는 미래를 봤다. 수백 년 전에 말이야.”

“그럼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기서 날 기다린 이유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를 묻기 위해서고?”

고개를 저은 디안이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그건 작은 궁금증일 뿐이다. 오랫동안 널 기다린 이유는 내가 실패한 걸 넌 할 수 있을 거 같아서였다.”

무언가를 더 물어보기 위해 입을 열려던 찰나.

새어 나오는 보랏빛에 입을 다물었다.

놀라운 일의 연속이라 이젠 더 놀랄 것도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디안에게서 흘러나오는 빛에 또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빛이 저기서 나오냐.

지금까지 수많은 보랏빛을 봐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스스로를 사람이 아닌 사념체라고 소개하긴 했지만 어쨌든 말하고 움직이는 무언가에서 흔적의 빛이 나오다니.

헤벌쭉해서 손을 뻗었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이대로 공명을 해도 되는 건지 약간 의문이 들었다.

“내가 본 미래에서 넌 알고 있더라고. 내가 이 도시에서 한 일들을 말이야.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망설일 필요 없다. 난 널 안내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니까.”

디안이 말하는 미래가 뭔지는 여전히 알 방법이 없었다.

다만 디안의 말대로 여기서 망설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디안을 향해 손을 뻗었다.

* * *

공명이 시작되고 재구성된 공간은 낯익은 장소였다.

건물이나 사람들의 차림새 등은 모두 다르지만 내가 조금 전까지 서 있던 비샤카파트남이었다.

아주 오래전의 기억인 것 같았다.

시선이 천천히 움직이는 걸로 보아 난 누군가의 몸 안에 있는 듯했다.

“멈춰라. 이방인.”

“이방인은 더 이상 들어올 수 없다.”

수백 명의 사람이 앞을 가로막았다.

기억의 주인이 비샤카파트남으로 들어가는 걸 막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차림새구나. 어디서 온 것이냐?”

사람들의 눈엔 짙은 경계심이 묻어 있었다.

시선이 내려가며 입고 있는 옷차림새가 눈에 들어왔다.

저들이 왜 경계하는지 알 것 같았다.

기억의 주인은 주민과 명확히 다른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단색의 옷을 걸친 도시 사람들과는 달리 금색과 검은색이 섞여 화려하기 그지없는 옷.

대충 조선 시대의 용포가 떠오르는 차림새였다.

“아주 먼 곳에서 왔다.”

“이름과 이곳에 온 이유를 밝혀라!”

잠자코 미소를 짓고 있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이름은 영정. 사람들은 날 진시황이라고 부른다. 불사를 찾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공명이 시작되고도 설마 했었는데.

내가 들어와 있는 곳은 진짜 진시황의 기억이었다.

“불사를 찾아? 그런 이유로 온 사람을 들여보내… 멈춰라!”

사람들의 경계에도 진시황이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누구도 날 멈춰 세울 순 없다. 처음 멈춘 것은 나의 마지막 자비였으니 옆으로 비켜서도록 해라.”

한 치의 의심도 없는 목소리였다.

저들이 비켜서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당당한 목소리.

듣는 사람 입장에선 어이가 없으면서도 강한 압도감을 느끼게 되는 목소리였다.

“더, 더 다가오면 공격하겠다! 마지막 경고다!”

사람들이 들고 있던 무기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든가 말든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걸어가는 진시황.

“그대가 자초한 일이다!”

머뭇거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진시황에게 무기를 집어 던졌다.

맞는다고 죽거나 할만한 건 안 보였지만 그것마저도 진시황은 맞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조용히 걸어가던 진시황이 무기가 날아드는 쪽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돌아가라.”

짧은 한 마디였다.

그리고 그 한 마디가 끝나기 무섭게 떨어지던 무기들이 반대로 튕겨 나가버렸다.

마치 무기가 진시황에게 향하는 걸 거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

그 모습에 주춤거리던 주민이 하나둘 길을 열며 몸을 숙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 깃든 건 단순한 공포심뿐만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 그리고 자신들을 이끌 새로운 신의 등장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 * *

진시황이 비샤카파트남에 도착하고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내가 볼 땐 빨리 감기를 한 것처럼 지나가 금세였지만.

풍경과 도시가 변해가는 걸 봤을 땐 못해도 몇 년은 지난 것 같았다.

진시황은 애초에 늙지 않는 존재였던 건가.

처음 진시황을 맞이했던 이들은 점점 늙어갔지만 진시황은 아니었다.

발견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내가 봤을 땐 주름 하나 늘지 않았다.

“비샤카 신이시여!”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부터인가 진시황은 비샤카라고 불리기 시작했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인도에서 비샤카는 아마도 영원을 의미하는 말인 것 같았다.

“새로운 악이 나타났습니다!”

진시황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곳 비샤카파트남에서 진시황이 한 일은 딱 한 가지였다.

쉴 새 없이 튀어나오는 데몬을 죽인 것.

처음엔 이미 늙지 않는 존재인 진시황이 왜 이 먼 곳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나도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불사를 찾는다.

많이 알려진 이야기에서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위해 불로초를 찾아 헤매다 결국 실패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당연히 난 이 말이 불로초 같은 걸 찾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진시황은 수많은 적과 재앙을 상대하며 증명하고 싶어 했다.

자신이 정녕 불사의 존재인지를 말이다.

“그래?”

밖으로 나간 진시황이 주민이 안내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바닷가.

그곳엔 거대한 데몬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딱 봐도 강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저주라도 받은 건지 비샤카파트남에 나타나는 데몬은 하나같이 다 무지막지한 놈들뿐이었다.

한국에 나타났다면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을 놈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튀어나왔다.

“키아아악!”

쏘아지는 데몬의 공격.

지난번과 마찬가지였다.

돌아가라는 한 마디에 쏘아지던 공격은 그대로 돌아가 데몬을 덮쳤다.

진시황은 딱히 무기라 부를만한 걸 들고 있지 않았다.

다만 싸울 때 입에서 새어 나오는 말은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거부할 수 없는 황제의 명령.

쿄스케의 능력과 비슷한 류의 힘 같았다.

쿵!!

거대한 몸집의 데몬이 쓰러지고.

진시황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족하다.”

부족하다 말하며 진시황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 어떻게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비샤카파트남의 높은 언덕 사원에서 갑자기 생겨난 균열.

익숙한 생김새의 균열은 데몬의 세계와 이어져 있었다.

그 날부터 진시황은 매일같이 균열을 찾아왔다.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단지 균열을 한참 지켜보다 돌아갈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구나.”

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되뇌면서 말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어느 날 진시황은 작은 칼 하나를 든 채로 균열 앞에 서 있었다.

뭘 하려는 거지.

멍하니 서 있는 진시황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푸화아아악!

진시황이 검을 들어 올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졌다.

뭐, 뭐야.

검으로 자신의 눈을 그어버린 진시황.

너무 예상치 못한 돌발행동이라 사고가 멈추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당황한 나와 달리 진시황은 눈에서 피를 흘리며 웃고 있었다.

“드디어… 보였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말을 한 진시황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넌 여기서 기다려라.”

말이 끝나며 진시황의 몸에서 무언가 분리되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내가 서 있던 위치도 변했다.

진시황에서 방금 생겨난 무언가, 정확히는 자신을 사념체라고 소개한 디안이 선 위치로 말이다.

“난 불사를 찾기 위해 나아갈 테니.”

멀지 않은 곳에서 진시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진시황은 망설임 없이 열린 균열 속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 * *

공명이 끝나며 시야가 돌아왔다.

눈앞엔 무기의 흔적이자 진시황의 사념체인 디안이 서 있었다.

“보고 왔구나.”

미소 짓는 디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진시황의 생각을 들여다본 건 아니기에 모든 정황을 이해할 순 없었다.

지금 당장 이해할 수 있는 건 한 가지였다.

진시황은 자신이 원하는 불사를 찾기 위해 균열 너머 데몬의 세계로 갔다는 것이었다.

“균열 앞에서 진시황은 뭘 봤던 거야?”

진시황이 가진 능력은 명령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미리 사념체를 남긴 거나 공명 속에서의 행동을 봤을 때 진시황은 불특정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다.

균열 앞에서도 무언가를 보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엔 보았고 말이다.

잠시 침묵하던 디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신의 죽음.”

“뭐…?”

“정확히는 균열에 들어감으로써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봤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균열로 들어가기 전에 그걸 봤는데… 왜 들어간 거야?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일 텐데.”

이번에 디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나도 모르지. 난 진시황이 본 것의 사념체일 뿐.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런 결정을 한 건지는 알지 못해. 그리고 진시황이 마지막에 본 미래 역시 난 일부분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방금 말한 게 그거고.”

사락.

“…!”

상황을 곱씹어 보고 있을 때.

디안의 몸이 천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놀랄 필요 없다. 임무를 마치고 원래 있어야 하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니까.”

더 묻지 않고 조용히 사라져가는 디안을 바라봤다.

“사념체 주제에 건방지지만 균열 안으로 들어간 이유를 감히 추측해보자면.”

이젠 푸른빛으로 물든 디안이 말을 이었다.

“그래야만 해서… 가 아닐까? 그렇게 해야만….”

흩어지는 빛의 입자와 함께 디안의 마지막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자신이 눈을 버려가면서까지 본 미래가 완성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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