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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30화 (430/473)

430화. 어딘가 다른 곳

엉망이 된 잔해를 지나 걸음을 옮겼다.

아침이 밝아오는 건지 부서진 사원으로 햇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제대로 난리가 나긴 하겠네.”

사방에 널브러진 신도들의 시체와 완전히 타버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데몬 셀베스까지.

어두웠을 때 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니 절로 혀가 내둘러졌다.

아마도 오늘이나 내일 인도 뉴스의 1면은 비샤카파트남이 차지할 것 같았다.

“여기쯤이었지.”

균열이 열렸던 제단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육안으로 봤을 때 문은 완전히 닫혔지만 희미하게나마 너머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내가 본 건 오늘 한 번뿐이지만 이곳에선 여러 번 균열이 열렸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작 뉴턴 - 데모닉]

어스름한 갑주가 오른손으로 감싸졌다.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한 회로를 확인하고 기운이 느껴지는 곳 아래로 손을 짚었다.

문을 열기 위해 필요한 건 찰나의 순간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에너지.

지난번 데몬 세계에선 라의 불꽃으로 열었지만 지금은 쿨타임이라 대신 꺼내든 것이었다.

[그라비티 디바이스]

한 지점을 향해 데모닉의 중력을 집중시켰다.

드드드드득!!

안 그래도 박살 나 있던 사원이 흔들리며 완전히 주저앉고, 이걸 시작으로 내 주변의 지반이 움푹 패며 사원의 바닥까지 모두 금이 갔다.

중력을 집중하고 있는 곳은 벽돌마저 부서지며 가루로 변해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손을 딛고 있는 땅까지 무너지는 게 아닐까 싶을 때.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희미하던 기운이 선명해졌다.

고개를 들자 아주 작지만 선명한 균열이 일렁이고 있었다.

[척준경 - 악귀참도]

데모닉을 해제하고 악귀참도를 균열로 꽂아 넣었다.

힘을 줘 아래로 그어내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넓어진 균열.

균열 너머에 보이는 곳은 아까 셀베스가 등장했을 때와 같았다.

위치는 조금 다를지언정 제대로 열어낸 모양이었다.

“가볼까.”

배낭을 먼저 밀어 넣은 후 균열 안으로 발을 뻗었다.

몸의 절반은 원래의 세계에, 절반은 데몬의 세계로 넘어간 상태.

나머지 절반을 마저 옮기자 너머 세계의 공기가 날 덮쳐왔다.

응?

공기가 닿은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전히 텁텁하고 기분 나쁜 공기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 정도가 덜한 것 같았다.

조금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다른 공기가 섞이며 약간이나마 희석이 된 느낌.

어찌 보면 치쿠 족의 세계인 치플린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하기도 했다.

어디 보자.

들어왔던 균열이 닫힌 걸 확인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이제 보니 외관도 지금까지 봐오던 곳들과는 좀 달랐다.

내가 봐온 데몬의 세계는 태초부터 황폐했을 거란 확신이 드는 곳들뿐이었다.

데몬 외의 생명체는 절대 살지 않을 거란 확신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아니었다.

지금은 다 부서졌지만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여기저기에 남아있었다.

다 시들고 말라비틀어졌지만 식물 비슷한 것도 심심치 않게 보였고 말이다.

“침범당해서 집어 삼켜진 곳인가.”

배낭을 메고 천천히 걸어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당장 눈에 보이는 데몬은 없다는 것이었다.

들어오자마자 바로 전투가 시작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전체적으로 둘러보기 위해 시야를 가리고 있던 산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허.”

역시 주변 자체는 딱히 눈에 띄는 건 없었다.

단지 꽤 떨어진 거리에 눈을 의심케 하는 게 있었다.

“하늘섬?”

뭐라고 명칭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한눈에 봐도 더럽게 큰 섬이 공중에 떠 있었다.

섬은 뭐로 구성되어 있는지 햇빛을 받아 쉴 새 없이 빛을 뿌려내는 중이었다.

황폐와 적막만이 가득한 지상과는 분위기 자체가 다른 느낌.

마치 저곳만큼은 데몬의 세계에 속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일단 하늘섬이라 치고.

천천히 하늘섬을 뜯어보았다.

가장 특이한 게 있다면 섬 주변으로 둘린 반투명한 황금색 띠였다.

그리고 그 띠 전체를 빼곡하게 채운 한자.

데몬의 세계에서 등장하기엔 자연스럽지 않은 녀석이었다.

그러고 보니 빛이 보였던 거 같기도 한데.

턱을 문지르며 셀베스가 등장했을 때를 떠올렸다.

이 새낀 또 뭔가 싶어 너머를 자세히 살피진 못했지만 지금 하늘섬에서 뿜어지는 빛과 비슷한 게 보였었다.

저곳 근처에서 나왔던 건가.

주변 구경을 마치고 산 아래로 발을 뻗었다.

하늘섬이든 뭐든 일단 한 번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확신이 들었다.

싸이비 신도들과 사도라 불린 셀베스가 그토록 찬양하고 있는 그분 혹은 신.

안 봐도 거만할 거 같은 새끼였고 이 세계에서 그놈이 살고 있다면 저곳일 것 같았다.

건방지게 내려다보는 건 기본으로 모두의 위에서 군림하고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

열심히 뛰어 내려가다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하산을 멈췄다.

그리고 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부엉이처럼 생긴 조각상이 하나 서 있었다.

다시 산을 올라 조각상 옆으로 다가갔다.

이런 산 중턱에 있기엔 몹시 부자연스러운 조각상이었다.

“으음.”

눈썹을 치켜올리며 조각상을 이리저리 살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분명 눈이 마주쳤었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손을 뻗어 조각상을 툭 건드려 보았다.

의심할 것 없는 바위의 감촉이었다.

“잘못 봤나.”

어깨를 으쓱이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돌아가는 척하다가 다시 휙 고개를 돌렸다.

“!?”

아니나 다를까.

부엉이 조각상의 눈 한쪽이 반쯤 떠져 있었다.

내가 돌아본 순간 깜짝 놀라 잠시 커지기도 했었고 말이다.

끝까지 감지 못한 탓인지 눈동자 중간에 걸친 눈꺼풀은 바들바들 떨리는 중이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은 조각상이란 걸 어필하는 부엉이에게 입을 열었다.

“셋 센다.”

주먹을 꽉 쥐며 뒤로 최대한 젖혀 보였다.

당장에라도 꽂아버릴 기세를 뿜어낸 건 물론이었다.

“셋 안에 정체 안 드러내면 부술 거야. 하나, 둘.”

눈을 부릅뜨며 주먹을 휘두르려는 순간.

부들대던 눈꺼풀이 올라가며 땡그란 눈동자가 드러났다.

“자, 잠까아아아안!!”

조각상 부엉이가 멈추라는 듯 다급하게 날개를 내밀었다.

“후욱! 후욱!”

숨까지 참고 있었던 건지 부엉이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조각상 사이로 희미한 물이 흐르는 걸 보아 땀까지 난 모양이었다.

둘 사이에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의심 가득한 눈동자로 서로를 쳐다보길 잠시.

부엉이의 호흡이 진정이 됐을 때쯤 입을 열었다.

“너 뭐냐?”

* * *

“여기에 원래 살던… 정령이라고?”

“그렇다!”

의심 가득한 눈으로 부엉이를 내려다봤다.

혹시나 날아서 탈주라도 할까 봐 배낭끈에 묶어둔 상태였다.

“얘 안 되겠네. 입만 열면 거짓말하고. 네가 정령이면 난 정령왕이겠다. 너 데몬이지?”

“무슨 소리야! 아니라니까! 그리고 데몬은 또 뭔데!”

대충 데몬에 관한 걸 설명하자 부엉이의 눈이 혐오로 물들었다.

“그딴 포악한 짐승 새끼들과 이 몸을 비교하다니! 난 나뭇잎에 맺히는 이슬만 먹으며 살아왔다!”

거품을 무는 걸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애초에 데몬이라고 하기엔 생긴 것도 너무 동글동글 순했다.

킹냥이 족부터 다양한 종족을 만나며 데몬이냐 아니냐의 정의도 애매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고 말이다.

“너 움직일 수는 있는 거야? 몸이 완전 돌인데.”

“지금은 못 움직이지. 네가 묶어놨잖아. 평소엔 잘 움직여. 날진 못해도.”

“풀어줄 테니까 도망가지 마. 도망가는 순간 바로 돌부엉이에서 돌 부스러기 되는 거야.”

내 진심을 느낀 건지 부엉이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끈을 풀어주자 뻐근했던 건지 돌부엉이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댔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저기 하늘섬에 사는 새끼의 감시병이나 그런 거지?”

“무슨 감시야! 난 매일 이 시간대엔 항상 나와 있다고! 오늘도 평온하기 그지없었는데 네가 갑자기 나타난 거야!”

이 세계 입장에선 내가 손님일 테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안 그러게 생겨 가지고 생각보다 반박을 잘하는 녀석이었다.

“알았으니까 진정해. 부순다는 건 농담이었으니까.”

돌부엉이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날 응시했다.

이 새끼 진심이었으면서 거짓말 하네 라는 노골적인 눈동자였다.

“너, 넌 인간이면서 여긴 왜 온 거야? 성체 정령한테 듣기만 했지 인간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나?”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떠 있는 하늘섬을 쳐다봤다.

“저거 떨어뜨리러 왔는데.”

“뭐…?”

“내가 생각하는 놈이 사는 게 맞다면 말이야.”

충격을 받은 건지 멍하니 있던 부엉이가 날개를 들었다.

내 눈앞에서 몇 번인가 휙휙 왔다리 갔다리 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부엉이.

“왜 들어왔나 했더니 미쳐서 온 거였구만. 너 저기에 사는 게 누군지 알고 찾아온 거야?”

“아니. 대충 짐작만 하고 왔어. 누가 사는데?”

“신 혹은 황제.”

나도 모르게 입가로 미소를 그렸다.

“내가 찾던 놈일 거 같은데.”

“… 목숨 버리지 말고 돌아가.”

돌아가라고 말한 부엉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해가 지고 있네. 이제 네가 말하는 그 데몬이란 게 득실거릴 테니까.”

역시 돌이라 그런지 뒤뚱뒤뚱거리며 몸을 돌리는 부엉이.

부엉이가 곁눈질로 날 바라보며 부리를 열었다.

“따라와. 지금 돌아다니다간 죽을 게 뻔하니까 하루 정도는 재워 줄게.”

바스락거리며 걸어가는 부엉이를 잠시 바라보다 천천히 따라가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 살아온 정령.

저들이라면 이곳이 뭐 하는 세계이며 하늘에 떠 있는 섬은 뭔지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다 부엉이는 아까 말했었다.

성체 정령한테 인간의 이야기를 들었었다고 말이다.

그건 치쿠 족처럼 인간과 교류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이곳에 방문한 인간을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이 세계로 향했던 한 명의 사람을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 그걸 확인해 볼 예정이다.

* * *

자칭 정령 부엉이를 따라 계속 걸음을 옮겼다.

부엉이가 향한 곳은 조금 전에 오른 산의 내부였다.

비밀 요새 같은 느낌이네.

내부로 들어오는 입구는 가려져 있었다.

중간에 돌부엉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절대 찾지 못했을 만큼 교묘하게 숨겨진 입구.

입구로 들어온 후부터는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심심치 않게 갈래 길이 등장하는 걸로 보아 정령 이외의 침입을 막기 위함인 것 같았다.

“다 왔어.”

이젠 거의 산 아래까지 오지 않았을까 싶은 시점.

걸음을 멈춘 부엉이가 옆으로 비켜섰다.

“우리 종족의 산속 도시. 차후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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