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화. 정령에게 내려진 저주
부엉이를 지나자 도시 차후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산 안쪽을 파내고 드러난 벽면에 조각하듯 집을 만든 것 같았다.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돌부엉이들이 이걸 어떻게 한 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해가 안 들어서 어두워.”
부엉이가 약간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고 도시 전체가 암흑에 잠겨 있는 건 아니었다.
중간마다 희미하게 불을 내는 연등 같은 게 배치되어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쪽으로 와.”
부엉이가 뒤뚱뒤뚱 도시 쪽으로 걸어갔다.
“부엉아. 너 이름 뭐야? 이름도 안 물어봤네.”
“부엉?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난 토토야.”
“난 백운.”
나도 모르게 스포츠 도박이 떠오르는 이름이었지만 꾹 참아냈다.
“토토. 해 지기 전에 빨리빨리 다니라…!?”
“왜 그렇게 놀라? 귀신이라도 본…!?”
토토는 항상 이 시간에 다니는 모양이었다.
쳐다보지도 않고 토토에게 말을 건네던 성체 부엉이들.
그러다 고개를 돌려 날 발견하곤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이, 이, 인가아아아아안!?”
“인간이다!!!”
“토토가 인간을 데려왔다!!”
고요하던 도시 차후아가 순식간에 소란에 휩싸였다.
허겁지겁 뛰어다니다 서로 부딪혀 돌부스러기가 튀기도 했고 혼자 달려가다 넘어져 아래로 대굴대굴 굴러떨어지기도 했다.
내가 당장 뭘 하기엔 혼돈인 상태라 일단 가만히 서 그 장면들을 지켜보았다.
“나 데려오면 안 됐던 거 아니야? 인간을 엄청 싫어하는 거 같은데.”
“아닐걸. 다들 그냥 놀라서 그런 거야.”
토토의 말대로였다.
한바탕 일어났던 소란이 잠잠해질 때쯤.
사방팔방 뛰어다니던 돌부엉이들이 슬금슬금 내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크기만 다를 뿐 대부분 토토와 비슷한 생김새였다.
“우와… 인간이라고?”
“어떻게 들어온 거지?”
“네가 물어봐. 제일 가깝잖아.”
“내가 왜? 네가 대장이니까 빨리 물어봐.”
“인간 세계에서 문 열고 들어왔어.”
“으아아악!”
“인간이 말했다!”
푸드득거리며 호들갑 떠는 돌부엉이들을 내려다봤다.
한 발자국 거리도 안 되는 곳에서 저런 말을 주고받길래 대답해 준 건데 아주 그냥 난리법석이었다.
“무슨 일이냐?”
부엉이들에게 둘러싸여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고 있을 때.
주변에서 촐싹거리던 부엉이들과는 달리 무게감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밖까지 들릴 수도 있으니 도시에선 조용히 해야 한다고.”
“토라 님이다!”
“길을 비켜드려!”
수군거리던 부엉이들이 천천히 길을 트기 시작했다.
키가 작은 건지 아직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도시에서 한 자리하고 있는 부엉이 같았다.
“대체 뭐가 있길래 이리 소란을 떠는….”
잠시 후 무리 중 제일 작은 키를 가진 부엉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긴 수염을 무릎까지 늘어뜨려 신선 느낌을 주는 부엉이었다.
그렇게 서로 마주쳐 약간의 정적이 흐르길 잠시.
“인갸아아아아아악!!”
토라라고 불린 부엉이가 기겁하며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차후아에 와서 들은 것 중에 가장 거대하고 우렁찬 목소리였다.
만약 밖에 데몬이 있다면 당장 들어오고도 남을 정도로 말이다.
“이, 인간이 어떻게!?”
벙찐 얼굴로 넘어진 토라를 바라봤다.
반응이 워낙 격해서 이건 뭐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두어 명의 부엉이가 토라를 부축해 일으키고.
방금 소리 지른 게 창피한 건지 흠흠 헛기침을 한 토라가 날 올려다봤다.
눈동자가 덜덜덜 떨리고 있는 걸로 보아 여전히 진정이 안 된 것 같았다.
그런 토라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전 백운이라고 합니다.”
토라에게 간단히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고개를 끄덕이곤 있지만 토라는 믿기 힘들다는 얼굴이었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무, 물어보게.”
“혹시 저 말고 인간을 만나신 적이 있나요?”
토라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커졌다.
약간 고민하는 듯 싶더니 빙글 몸을 돌리는 토라.
손을 휙휙 흔든 토라가 고개를 까딱였다.
“날 따라오게. 들어가서 얘기하지.”
“옙.”
토라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발을 옮겼다.
뒤에선 수많은 돌부엉이 무리가 나와 토라를 따라오고 있었다.
어렸을 적 친구들과 우르르 따라다니던 소독차가 된 기분이었다.
“여기네.”
꼬불꼬불 된 길을 한참 올라가고 나서야 토라의 집이 나타났다.
다른 집과 크기 자체는 비슷하지만 연등과 새겨진 문양 등으로 꽤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집이었다.
문을 열어주는 토라에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어허. 계속 졸졸 따라오기나 하고 그리 할 일들이 없는가?”
아무래도 정곡을 찌른 것 같았다.
멀뚱멀뚱 쳐다보는 돌부엉이들에 한숨을 내쉰 토라가 문을 닫지 않고 안으로 들어왔다.
맨 앞엔 인파를 뚫고 나온 토토가 서 있었다.
“배낭엔 뭐가 들었는가?”
갑자기 물어오는 토라에 배낭에서 각종 야채와 초콜렛, 음료 등을 꺼내 보여주었다.
“일용할 식량들이에요. 다른 건 없어요.”
“그렇군. 그럼 그거 하나 꺼내서 마시게.”
뜻밖의 말에 멍하니 토라를 쳐다보다 음료수 하나를 열어 마셨다.
안 그래도 마침 목이 마르긴 했었다.
“미안하군. 우린 내어 줄 게 아무것도 없어서 말이네. 아까워서 안 주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순간이지만 마음을 읽힌 줄 알았다.
엄청 짠돌이라 차 한 잔도 안 내어 주는 줄 알았다.
“보시다시피 우린 돌이라서 말이야. 아무것도 먹을 필요가 없거든.”
토라가 날개를 들어 톡톡 두들겨 보였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작은 돌부스러기들.
보통이라면 아무것도 안 먹어도 살 수 있다니 부럽다고 말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말을 하는 토라의 얼굴이 무척 씁쓸해 보였기 때문이다.
“자네가 아까 물어본 걸 대답해주지. 자네 말고도 이곳 차후아에 왔던 사람이 한 명 있네.”
그때를 떠올리는지 한 템포 쉰 토라가 말을 이었다.
“그 자도 자네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나타났었네. 나와 어린 정령들이 바깥의 짐승에게 잡아먹히려던 참이었지. 그는 나타나자마자 아무 말 없이 죽을 위기인 우리를 구해줬었어. 거대한 덩치의 짐승을 말 한 마디나 손짓 한 번으로 멀리 날려 보내더군.”
진시황이다.
이름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원리는 몰라도 진시황은 일정 범위에 있는 것들을 바깥으로 튕겨내는 힘을 가졌었다.
굳이 비슷한 걸 찾자면 척력 정도가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은 토토가 자넬 여기로 데려왔지만. 그날은 내가 그 남자를 여기로 데려왔었네. 뭐라고 부르면 될지 묻는 우리에게 남자는 이렇게 말했었네. 불사를 찾아온 이방인, 영정이라고.”
“분위기가 엄청났었지.”
“암…. 뭐라고 설명하긴 힘들지만 마주하고 있기 힘든 무언가가 있었어.”
뒤에 서 있던 정령들도 말을 보탰다.
진시황과 만났던 부엉이가 이렇게 많다니.
토토를 따라와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정…. 진시황은 이곳에서 뭘 했나요?”
“많은 일을 해서 전부 나열하긴 힘들어. 그걸 말해주기 전에 먼저.”
잠시 말을 멈춘 토라가 아련한 얼굴로 뒤에 늘어선 돌부엉이들을 바라봤다.
“자네가 보기엔 우리의 생김새가 무엇으로 보이는가? 깊이 생각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보게.”
“돌로 된 조각상요.”
“맞아. 우린 점점 돌로 변해가며 굳어 가고 있지.”
갑자기 몸을 일으킨 토라가 날 집 밖으로 데려나갔다.
토라의 집은 차후아에서 꽤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었다.
“한 번 쭉 둘러보게.”
토라의 말대로 천천히 도시를 훑어보았다.
그러자 정신 없이 올라올 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도시 곳곳엔 움직이지 않는 돌부엉이들이 있었다.
여럿이라는 말론 한참 부족할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숲의 정령 중 하나였던 우리 실라카의 말로라네. 점점 굳어 결국엔 저렇게 진짜 조각상이 되어버리고 마는 저주스러운 운명이지. 물론 우리도 처음부터 돌멩이는 아니었어. 한때는 숲에서 달콤한 열매와 청명한 물을 마시며 살았었지. 돌덩이가 되면서 아무것도 못 하게 되어버렸지만 말이야.”
토라를 포함한 돌부엉이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평소엔 서로 꺼내지 않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저주라면 누가 실라카 족에게 걸었다는 건가요?”
“맞아. 진시황이 이곳에 오기 한참 전의 일이었네. 하늘섬의 주인이 우리에게 저주를 걸어버린 건.”
토라가 작게 날갯짓하자 주변에 있던 부엉이들도 날개를 흔들었다.
부스러진 돌가루가 흩날리며 허공으로 작은 그림이 그려졌다.
아주 오랜 시간 숲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정령 실라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고 한다.
숲으로 정체불명의 균열이 열리며 한 데몬이 들어온 건 말이다.
“그 자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했네. 자신은 모든 것의 위에 군림하는 신이자 황제라고. 그리고 이제부터 숲은 자신의 것이라고 말이야. 그때부터 숲은 변해갔네. 정확히는 시들어갔지. 마르지 않던 샘에선 물이 사라졌고 싱그럽던 숲과 식물은 모조리 썩어 그 생명을 잃었네. 비옥했던 토양도 삭막하고 황폐한 모래로 변해버렸지. 그리고.”
토라가 고개를 내려 돌이 되어버린 날개를 응시했다.
“우리의 몸도 변하기 시작했어. 우리가 당황하자 그 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었지. 황폐해진 땅에서 살 수 있도록 허락하겠노라고. 먹을 게 없어도 죽지 않는 몸으로 바꿔 줄 테니 이런 축복을 내려 준 자신에게 감사하며 평생 살아가라고 말이야.”
“축복이라니….!”
“이런 저주를 내려놓고!”
사방에서 울분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토라가 말을 이었다.
“모든 걸 상실한 기분이었어. 맛있는 걸 먹는 즐거움도, 향긋한 풀 내음을 맡는 기쁨도, 상쾌한 공기를 맞으며 느껴지는 여유로움도, 하늘을 날며 느꼈던 자유로움까지도 전부 말이야. 심지어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으로 흉폭한 짐승들이 들끓기 시작하더군. 놈들은 돌로 된 우리를 먹지 못하는데도 재미로 부숴나갔어. 사냥 자체를 즐긴 거지.”
그래서였다고 한다.
살기 위해 헤매다 이 산 내부의 공간을 발견해 도망친 것은 말이다.
“놈들에게 죽지 않게 됐지만, 모든 걸 잃은 우린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어. 저주의 진행 속도도 제각각이라 갓 태어난 정령이 눈을 뜨기도 전에 굳어버리기도 했었지.”
토라의 시선을 따라가자 손바닥만 한 부엉이 조각상이 보였다.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상태였다.
“난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어 몇 명의 정령과 하늘섬으로 향했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주를 풀어 달라 부탁해보기 위해서 말이야. 그러던 중 짐승을 마주쳤고 잠시 후엔 진시황을 만나게 되었지.”
깊은 한숨을 내쉰 토라가 날 바라봤다.
“아까 진시황이 여기서 무얼 했냐고 물었었지?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네. 진시황은 모든 걸 잃고 살아갈 마음조차 사라져가는 우리에게….”
침울해 보이던 토라의 얼굴로 따듯한 미소가 그려졌다.
“희망을 줬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