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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33화 (433/473)

433화. 하늘섬 아래엔

순식간에 뿜어진 불꽃이 봉우리를 휩쓸며 내려갔다.

여기저기서 데몬의 비명이 들려왔다.

대부분의 데몬이 불꽃에 집어 삼켜졌으며 가까스로 불꽃에 닿지 않은 녀석들은 방향을 돌려 봉우리를 내려가고 있었다.

“올라오다 말고 어딜 가.”

곧장 놈들을 쫓아 아래로 방향을 틀었다.

달려서 하산하거나 날개를 꺼내진 않았다.

그대로 산 아래쪽으로 도약해 허공으로 몸을 맡겼다.

“크륵!?”

내려가던 중 마주친 녀석의 목을 움켜쥐었다.

치사하게 지 혼자 하늘로 내뺀 놈이었다.

“크아악!”

녀석의 비명은 길지 않았다.

불꽃이 닿기 무섭게 까만색 잿더미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쿵!

그대로 착지한 후 사방으로 불꽃을 뿌려냈다.

고새 어찌나 몰려왔는지 데몬은 물 반 고기 반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키아아아아…!”

한참 데몬을 구워대고 있을 때 묵직한 포효가 들려왔다.

멀지 않은 곳에서 달빛을 받으며 몸을 일으키는 거구의 데몬.

대충 지금 달려드는 놈 100마리를 합쳐야 비슷한 크기가 될 것 같았다.

뿜어내던 불꽃을 억누르며 오른손으로 모았다.

그리고 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마침 놈이 나타난 곳은 하늘섬 방향이었다.

“불… 안 통해…!”

놈의 어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히 데몬의 세계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밖은 여전히 말하는 데몬이 등장하면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는데.

여긴 잊을만하면 한 마리씩 꼭 튀어나오고 있었다.

“더럽게 크네.”

어느 정도 가까워지니 크기 체감이 확실히 됐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지면을 울리고 있는 녀석.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다 생각한 건지 놈이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웬만한 건물은 한 방에 부술 만한 공격이었다.

“뭉개… 져!”

계속해서 달리며 다가오는 주먹을 바라봤다.

우우웅거리는 묵직한 바람 소리까지 장착한 주먹.

타이밍을 재다 주먹이 내 몸에 도달했을 때쯤 가볍게 도약했다.

놀이기구 타는 느낌이네.

주먹에 올라타 팔을 타고 달렸다.

“크…!?”

덩치만 더럽게 컸지 움직임은 둔하기 짝이 없는 자식이었다.

놈은 날 발견했음에도 바로 대처하지 못하고 당황하는 목소리나 내고 있었다.

“어차… 피 안 통해!”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기 마련이지.”

어깨 부근까지 도달한 후 놈의 얼굴로 몸을 날렸다.

방어하려는 건지 반대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녀석.

그러든가 말든가 젖혀뒀던 주먹을 녀석의 손등으로 꽂아 넣었다.

“처맞기 전까지는 말이야.”

손등에 주먹이 닿은 순간.

새어 나오지 못해 억눌러져 있던 불꽃을 한 번에 터뜨려주었다.

푸화아아아악!

내 주먹에서 녀석의 얼굴로 뿜어진 라의 불꽃.

확실히 다른 놈들보단 조금 더 버텼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잠시나마 버티는 듯하던 피부가 녹아내리며 놈의 커다란 몸으로 불꽃이 번져갔다.

“뜨거워…!!!”

“원래 불은 뜨거운 거야. 네가 지금까지 만난 건 가짜 불이었던 거고.”

그대로 무너지는 놈의 몸에서 아래로 몸을 날렸다.

한참 뿌려댄 불꽃 때문에 근처 일대는 어느새 불바다로 변해 있었다.

데몬의 시체를 장작 삶아 활활 타오르는 불꽃.

불꽃은 어두웠던 암흑을 밀어내며 싸움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중이었다.

[잭 더 리퍼 - 면도칼]

불꽃이 바닥난 문양이 사라지고 면도칼을 꺼내 들었다.

몰려오던 데몬은 대부분 잿더미로 변해버린 상황.

이제부턴 목숨이 붙은 놈의 숨통만 끊으며 하늘섬으로 나아갈 예정이었다.

하늘섬 쪽으로 달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 불사의 검인가 뭔가 하는 놈은 안 나왔네.

자칭 신의 사도 셀베스는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말했었다.

신의 곁엔 절대 죽지 않는 불사의 검이 있어 난 신에게 절대 닿을 수 없다고 말이다.

나름 마지막 관문이란 걸까.

내심 불꽃을 터뜨리며 등장해주길 바랐는데.

녀석은 호락호락하게 모습을 보여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키르…!?”

서걱!

만나는 놈들의 목을 베어내며 하늘섬으로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개전을 알리는 불꽃과 하늘에서 뿌려지는 서늘한 달빛.

오늘은 뭐랄까.

싸우기 좋은 날이었다.

* * *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장소인 하늘섬.

하늘섬의 꼭대기엔 각종 보석으로 치장된 거대한 왕좌가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앉아 있는 중년의 남자.

남자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갑주를 걸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

풀벌레 소리 하나 없는, 아름다운 달빛만이 스며드는 고요한 밤이었다.

몇 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감은 눈 사이로 새어드는 빛에 남자가 눈을 떴다.

흑발과 매칭되는 새카만 눈동자였다.

‘무엇이냐.’

왕좌에서 일어난 남자가 꼭대기의 끄트머리로 걸어갔다.

이 세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장소.

평소라면 암흑만이 가득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꽃이 무서운 속도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집어삼킬 것 같은 엄청난 기세.

불에 강한 데몬조차 얼마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정도의 위력이었다.

눈을 찌푸리고 불꽃을 바라보던 남자가 섬을 감싸고 있는 황금색 띠로 시선을 옮겼다.

‘봉인의 힘은 거의 소멸되었거늘. 하필 이때…?’

아래에 보이는 세계는 남자에게 있어 아주 가까우면서도 아득히 먼 곳이기도 했다.

남자는 스스로를 이 세계의 신이라 칭하지만 정작 저 아래로 발을 내디딜 순 없었다.

하늘섬을 둘러싼 봉인 때문이었다.

이 빌어먹을 봉인으로 남자는 못해도 수백 년 동안 하늘섬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까득.

남자가 자기도 모르게 어금니를 깨물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저딴 미개한 새끼 한 명 때문에.’

남자가 왕좌 근처로 눈을 돌렸다.

그곳엔 돌로 된 조각상이 하나 서 있었다.

자신을 다른 세계의 황제라 밝히며 갑작스럽게 등장했던 남자, 진시황.

두 눈은 어디다 팔아먹은 건지 신기한 차림새로 등장한 진시황을 처음엔 비웃었었다.

하지만 진시황의 진짜 목적을 알게 됐을 땐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이미 하늘섬 전체로 봉인이 둘러진 후라 손 쓸 방도도 없었고 말이다.

‘살아만 있었다면 갈기갈기 찢어발겼을 텐데…!’

진시황이 목숨을 바쳐 펼쳐낸 봉인술.

하늘섬에 갇히게 됐다는 걸 알면서도 남자는 죽어 가는 진시황을 향해 조소를 날렸었다.

죽은 놈의 봉인 따윈 언젠가 풀릴 테고 그때가 되면 밖으로 나가 닥치는 대로 부숴주겠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 봉인이 풀려도 네놈은 나갈 수 없다. 그땐 밖으로 나갈 몸이 없을 테니까.

목숨이 다해 온몸이 돌로 변해가면서도 진시황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 그러니 해보거라. 할 수 있다면 말이다.

확신에 가득 찬 미소를 지었었다.

그날을 떠올리며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봉인이 끝나갈 때쯤 이 세계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불꽃.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찜찜함을 쉽게 떨쳐낼 수가 없었다.

“하!”

잠시 후 남자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한심하군. 겨우 이딴 별 볼 일 없는 새끼의 허언 때문에.”

가까이 다가간 남자가 조각상으로 손을 뻗었다.

남자의 손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대로 그냥 부숴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진시황은 이미 죽었지만 편히 잠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곳에 세워두고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다.

진시황이란 인간이 지키려고 했던 것들이 모두 불타 사그라드는 광경을 말이다.

“눈깔은 없지만 고개를 들고 똑똑히 지켜보도록 해라. 겁도 없이 이 세계로 온 놈은 이곳까지 올라올 수 없다. 아래에서 목이 잘려 평생을 먼 곳에서 떠돌게 되겠지. 목이 없는 놈의 시체를 여기로 들고 와 네놈 옆에 나란히 세워주마.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남자의 입가로 비릿한 미소가 그려졌다.

“네놈의 세계를 모조리 짓밟아주마!!”

하늘섬에 남자의 포효를 들을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늘섬의 주인인 남자 이외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

동시에 진시황 이후 그 누구의 침입도 허용하지 않았던 무적의 섬이었다.

* * *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하늘섬에 꽤 가까워졌을 즘부터였다.

진한 피비린내와 함께 역한 시체 썩은 내가 풍겨오기 시작한 건 말이다.

하루 이틀 피가 흘러서는 이런 냄새가 날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확신이 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 무언가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

한참을 달리다 속도를 줄여나갔다.

아직 누군가 모습을 드러낸 건 아니었다.

다만 벌써부터 느껴지고 있었다.

온몸의 털을 곤두서게 하는 누군가의 기운.

지금까지 이랬던 상대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강한 기운이었다.

저긴가.

얼마 지나지 않아 피비린내의 근원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묘한 장소였다.

넓은 장소로 수백 수천 자루의 검이 꽂혀 있었다.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녹슨 검부터 최근에 꽂힌 걸로 보이는 새 검까지.

생긴 모양도 가지각색이라 이 많은 검을 다 어디서 구한 걸까 의문이 들었다.

“불꽃의 주인인가.”

적막을 깨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낮게 깔리는 건 기본으로 음울함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데몬 하나가 있었다.

다부진 체격으로 외형만 봤을 땐 흡사 사람처럼 보이는 녀석이었다.

잿빛.

녀석을 보자마자 떠오른 단어였다.

머리와 피부, 눈동자 색을 제외하더라도 전체적인 분위기 자체가 재의 느낌을 주고 있었다.

“데몬이 아닌 걸 만나는 건 두 번째다. 인간… 이라고 부르던가?”

녀석이 느긋한 동작으로 몸을 일으켰다.

앉아 있던 바위에서 내려와 날 바라보는 데몬.

잠시 날 살피던 데몬이 입을 열었다.

“돌아가라고 해서 물러날 거 같진 않군.”

“잘 알고 있네. 그런데 돌아간다고 하면 보내 주기도 하는 거야?”

“오면서 맡았겠지만 이미 이곳에선 셀 수 없이 많은 존재의 피가 흘렀다. 생명의 불꽃도 사그라들었지. 굳이 거기다 하나 더 보탤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봐오던 데몬과는 확실히 뭔가 달랐다.

데몬인 건 분명하지만 얘기하는 거만 봤을 땐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걱정해주는 건 고마운데 사양할게. 아마 오늘도 여기에 하나 보태야 할 거 같거든. 물론 내 목숨은 아니고.”

“… 그런가.”

무미건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녀석이 검 한 자루를 집었다.

“이곳은 검의 무덤. 이 검들은 내게 도전했다가 죽은 이들의 검이다. 그리고… 내 이름은 칼린이다.”

이름을 밝히는 칼린에 나도 입을 열었다.

“난 백운.”

“… 이름은 들었으니 이만.”

고개를 끄덕인 칼린이 천천히 자세를 낮추고, 눈 한 번 깜짝일 찰나의 순간.

“죽어라.”

꽤 멀었던 거리가 순식간에 지워지며 칼린의 검이 내 목으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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