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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37화 (437/473)

437화. 진시황이 찾던 것

조각상의 주인이 누군지는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진시황.

자신을 사념체라고 소개했던 디안과 거의 같은 생김새였기 때문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저기까지 어떻게 가야 하나.

마음 같아선 손부터 뻗고 싶지만 조각상의 위치가 영 좋지 못했다.

왕좌의 뒤쪽이라 어찌 됐든 앉아있는 자키도를 지나쳐야 했다.

“왜 말이 없느냐? 짐의 능력에 얼기라도 한 것인가?”

이 새끼도 말 더럽게 많네.

자키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최대한 조각상엔 관심 없는 척하며 살피느라 조용했던 건데.

자키도는 그새를 못 참고 제멋대로 떠들어 재끼고 있었다.

“날벌레처럼 잘 피하던데. 어디 한 번 계속 피해보거라.”

눈앞에 떨어진 조각상과 비슷한 게 여러 개 더 튀어나왔다.

왕좌에서 한 손을 올리더니 손가락을 움직이는 자키도.

그와 동시에 조각상이 내 쪽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코앞까지 다가온 조각상에 몸을 숙여 피해냈다.

뭐냐 이건.

피해냈던 조각상이 찰나의 순간에 방향을 틀어 다시 날아들었다.

무게나 중력을 무시한 말도 안 되는 움직임.

류희수의 염력을 떠올리게 만드는 힘이었다.

근육통 확정이네.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며 기둥을 피해냈다.

다른 무기로 자키도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지만 그러기도 쉽지 않았다.

혹시나 왕좌 뒤에 있는 조각상이 부서질까 싶어서였다.

열심히 움직여서인지 마천루 바닥은 안 그래도 줄줄 흐르던 내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잭 더 리퍼 - 동기화]

내 피로 동기화하는 건 또 오랜만이었다.

“허어? 더 빨라 질 수 있는 건가.”

무슨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말하는 자키도.

놈한테 지금 이 상황은 가벼운 여흥에 불과한 듯했다.

몸으론 기둥을 피해내며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대충 왕좌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위치였다.

기둥을 피하는 척하며 조금씩 왕좌 근처로 다가갔다.

이쯤에서.

머리 위로 떨어지는 기둥을 피해내고.

그 기둥을 발판 삼아 자키도에게 쏘아져 나갔다.

여전히 자키도는 왕좌에 앉은 채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지루하구나.”

따분한 표정인 자키도가 내 목으로 손을 뻗어왔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속도였다.

하지만 피하지 않았다.

콰악!

그대로 목을 잡히자 자키도가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그러든가 말든가 면도칼을 횡으로 휘둘러 자키도의 눈을 그었다.

마찬가지로 자키도는 막지 않았다.

아까처럼 푸른 피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소용없다고 했을 텐데. 내 영역에선 나의 법칙과 명령만을 따라야 한다.”

예상한대로 피가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자키도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아 이 새끼야. 다시 복구되는 거. 그래도 잠깐은 안 보이잖아.”

“…?”

미간을 찌푸리는 자키도에 나도 미소를 그려주며.

“조금 있다 보자.”

왕좌 건너편으로 손을 뻗었다.

* * *

암흑이 사라지고 나타난 공간에 고개를 돌렸다.

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어느 높은 건물의 지붕 위였다.

약간 의외의 장소가 아닐 수 없었다.

진시황의 공간인만큼 화려한 왕실이나 의자 같은 게 나올 거라 생각했었다.

고개를 드니 달빛 사이로 수많은 별이 촘촘히 박힌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다.”

“!?”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언제 나타난 건지 진시황이 지붕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있었다.

조금 멍한 얼굴로 진시황을 바라봤다.

뭔가 살아오며 생각했던 이미지와 너무 달라 당황스러웠다.

“이런 새끼가 황제라고….? 생각하고 있지?”

진시황의 말에 깜짝 놀라 바로 고개를 숙였다.

“무슨 말씀을!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백운이라고 합니다!

“뭘 그렇게 딱딱하게. 처음 본 사이도 아니고. 아닌가? 처음 본다고 하는 게 맞는 건가.”

자기가 말해놓고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진시황.

그런 진시황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갔다.

맨날 책에서나 보던 그 진시황이 눈앞에 있다니.

항상 겪는 상황이면서도 적응이 쉽지 않았다.

“일단 여기 앉아. 멀뚱멀뚱 서 있지 말고.”

“넵!”

반쯤 몸을 일으킨 진시황보다 몇 칸 아래로 가 앉았다.

왠지 모르겠지만 나란히 앉으면 불경죄일 것 같았다.

“호들갑 떨지 말고 옆으로 와. 목소리 안 들리잖아.”

“네, 넵!”

주춤주춤 기어 올라가 진시황 옆으로 몸을 앉혔다.

“지금도 의심하고 있는 거 아니야? 이 새끼 진짜 황제 맞나. 나 황제일 때도 신하들이 자주 그랬었거든. 여러 가지 말로 치장하긴 했지만 제발 황제답게 체통을 지키라고 말이야. 뭐라더라. 행동이랑 말에 무게가 너무 없다고 그랬었나.”

진시황이 킬킬 웃음을 터뜨렸다.

진시황이 신하들의 그런 반응을 보며 오히려 즐겼다는 건 안 봐도 비디오였다.

“뭐 어쩌겠어. 나란 인간이 이렇게 태어난 건데. 안 그래? 여기도 올라가지 말라고 엄청 뭐라 그랬었지. 밤마다 지붕에 기어 올라가는 황제가 세상에 어디에 있냐고 하면서.”

좀 특이하긴 했다.

밤마다 지붕에서 별구경을 하는 황제라니.

내가 생각하던 진시황의 이미지는 엄격, 근엄, 진지가 가득한 무서운 황제였는데 실제로 보니 정반대였다.

“아 이름이 뭐야?”

“백운입니다.”

“백운이었구나.”

진시황이 내 이름을 되뇌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편적이게 보기만 했던 터라 이름은 몰랐거든. 궁금한 게 많지? 얘는 처음 보는데 왜 이렇게 아는 척을 하나.”

“인도에서 만났던 디안에게 미래에서 절 보셨다고 어느 정도 이야기는 들었어요.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긴 하지만요.”

“궁금한 게 많았을 텐데 여기까지 잘 왔네. 물어보고 싶은 게 있겠지?”

마음껏 물어보라는 진시황의 표정에 입을 열었다.

“이건 개인적인 궁금증인데요. 처음부터 늙지 않으셨던 거죠?”

불로초를 찾다 실패해 죽음을 맞이했다고 알려진 진시황.

지난 공명에서 봤을 때 진시황은 몇 년이 지났음에도 약간의 주름조차 생기지 않았었다.

“맞아. 이 나이 때쯤 난 시간이란 굴레에서 벗어나게 됐어. 이유는 몰라. 갑자기 그랬으니까.”

대답하는 진시황에 천천히 다음 질문을 골랐다.

하고 싶은 질문이야 태산이었지만 가장 궁금한 것이었다.

“어떻게 이곳에서 먼 인도까지, 그리고 인도에서 데몬의 세계까지 가시게 된 건가요?”

“데몬이라 불리는구만. 뭐…. 더럽게 먼 길이긴 했지. 시작은 이 지붕 위였다. 여느 날처럼 성을 내려다보며 술을 기울이고 있었지.”

진시황이 천천히 손을 휘젓자 눈앞에 펼쳐져 있던 것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달빛과 별이 가득했던 하늘은 전운이 감도는 붉은빛 하늘로.

웃음소리가 들려오던 평화로운 성은 흔적도 없이 파괴되어 있었다.

돌아다니던 사람들은 처참한 시체가 되어 바닥을 뒹굴었고 말이다.

저 새끼들은…!

처참히 파괴된 폐허엔 눈에 익은 놈들이 있었다.

자키도와 셀베스, 그리고 칼린이었다.

“이곳뿐만이 아니야.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사랑했던 모든 존재가 죽음을 맞이했지.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 미래 예시 같은 힘 따윈 없었어. 그럼에도 본능적으로 깨닫게 되더라고. 지금 눈앞의 광경은 언젠가 이곳에 펼쳐질 미래라는 걸.”

그때부터였다고 한다.

뜬금없는 타이밍에 눈앞으로 미래가 펼쳐지기 시작한 것은 말이다.

“처음엔 병사를 양성하고 진나라의 힘을 키우려고 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겠더라고. 그런 걸로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그려졌던 미래.

진시황은 그걸 토대로 나아가야 할 길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나의 진나라, 그리고 진나라가 위치한 이 세계를 난 사랑했다. 그래서 난 이곳이 영원하길 바랐다. 말 그대로 불사가 되길 원했지. 그걸 위해선 아이러니하게도 사랑하는 이곳을 떠나는 방법밖에 없더라고.”

눈앞으로 천천히 장면이 지나갔다.

진시황은 가장 믿던 이에게 자신의 이름을 물려줬었다.

진나라엔 여전히 진시황이 필요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불사를 찾아 왔다는 말이… 이런 거였나.

진시황은 자신의 불사를 찾기 위해 그 먼 길을 간 게 아니었다.

진시황이 찾고자 했던 불사는 진나라와 이 세계의 영원이었다.

“떠나면서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미련이 생길 거 같았거든. 그래서 앞만 보며 그려지는 미래를 따라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러다 도착한 곳이 네가 말한 나라였지.”

진시황이 비샤카파트남에서 보낸 몇 년의 시간을 읊었다.

보랏빛 흔적과 공명하며 본 것들이었다.

역시.

진시황의 이야기를 들으니 확신이 들었다.

공명을 보며 의아했던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너머의 세계로 가기 위해 몇 년간 데몬을 잡았던 진시황.

하지만 진시황이 한 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머무르는 동안 틈이 날 때마다 진시황은 그곳의 사람들에게 많은 걸 알려주었다.

덕분에 비샤카파트남의 사람들은 훨씬 윤택한 삶을 사는 게 가능해졌고, 그걸 감사히 여겨 오늘날까지 진시황을 비샤카 신으로 모신 거였다.

마지막엔 속아서 방향이 틀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황제의 자질이란 건가.

데몬의 세계로 넘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진시황은 어려움에 처한 정령들을 모르는 척하지 않았다.

그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해주고 희망을 줬었다.

“그리고 드디어 문이 열렸지.”

그날을 곱씹느라 잠시 멈췄었던 진시황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나타난 미래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경우의 수를 수도 없이 바꾸며 미래를 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보이지 않더군. 내가 그토록 찾던 불사가 말이야.”

수많은 장면이 눈앞을 지나쳐 갔다.

진시황이 인도에 머무르며 본 미래들이었다.

모든 미래는 과정은 달랐으나 결과는 똑같았다.

결국 자키도와 사도들이 인간 세계로 넘어와 파멸을 불러오는 것이었다.

“더 많은 미래를 봐야 했다. 지금으로선 볼 수 없는 미래를 말이다. 그래서 눈을 버렸다.”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진시황이 망설임 없이 눈을 버리던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약간 오싹했다.

“그리고 새로운 미래를 봤지.”

고개를 돌린 진시황이 날 응시했다.

“그 미래엔 이제껏 보지 못했던 두 가지가 있었다. 너라는 존재와 나의 죽음.”

“실리카 정령들에게 들었어요. 죽을 걸 알면서도 망설이지 않고 가셨다고요.”

“그건 조금 잘못 안 거야.”

“넵?”

진시황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난 망설였다. 네가 등장한 미래는 이제까지 선명했던 것과 달리 아주 불안정했으니까.”

“불안정요?”

“다른 것 때문은 아니었어. 너란 존재 때문이었지. 넌 누군가가 그린 미래대로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었어. 다르게 말하면 그 누구도 확정적인 네 미래를 그릴 수 없었지.”

“그런데도… 그 미래를 선택하신 건가요?”

진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래 하나뿐이었거든. 내가 원하는 불사가 이루어지는 미래는. 그래서 결정했었다.”

진시황이 손을 올려 내 이마를 짚었다.

“너한테 걸어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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