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8화. 황명
오래전 하늘섬의 마천루.
진시황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정면엔 하늘섬의 주인인 자키도가 왕좌에 앉아있었다.
맨 처음 마천루에 올랐을 때와 마찬가지인 자세로 말이다.
‘역시 안 되는구만.’
진시황의 입가로 미소가 그려졌다.
죽음이 확정된 미래였지만 손 놓고 죽어 줄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자키도에게 힘을 뿌려냈었다.
결과적으론 헛수고였지만 말이다.
장소와 상성이 너무 안 좋았다.
“인간이여. 이제 다 한 것이냐?”
자키도가 따분하다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뒤에는 진시황을 쫓아온 불사의 검 칼린이 서 있었다.
“신기한 힘인 건 인정해야겠구나. 칼린이 죽지 않으면 하늘섬으로 오르는 길은 열리지 않는다… 라는 법칙을 깨버리다니.”
자키도가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자키도를 보며 진시황이 고개를 흔들었다.
어찌어찌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준 힘이었지만 저놈한텐 그저 신기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인간 중에도 나와 비슷한 류의 힘을 가진 자가 있다니. 역시 흥미로운 세계다.”
“그거 참 영광이군.”
진시황이 따라 웃으며 대답했다.
이건 진심이었다.
진시황이 가진 힘은 상대에게 적용되고 있는 법칙을 부수는 것, 그리고 본인에게 다가오는 걸 밀어낼 수 있는 척력이었다.
하지만 자키도의 능력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자키도는 그야말로 전지전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떨어졌던 목이 다시 붙는가 하면 손 휘두름 한 번만으로 진시황의 다리를 꺾어놓기도 했었다.
반면에 진시황의 힘은 자키도에게 닿지 않았다.
마치 자키도의 권한이 진시황보다 한 수 위라는 듯이 말이다.
“네 녀석도 한 나라의 황제였구나. 나 또한 그렇다. 많은 이의 신이자 황제였지.”
이야기를 듣던 진시황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눈썹을 꿈틀거리는 자키도.
“뭐가 웃기지?”
“네놈이 사는 세계에서 황제라 불릴 수 있는 자격은 무엇이지?”
“그야 당연히….”
“모두를 찍어 눌러 생명을 꺼뜨리는 힘인가?”
자신이 하려던 말을 가로채는 진시황에 자키도의 주름이 깊어졌다.
사실 자키도는 진시황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느끼고 있었다.
힘의 우위를 떠나 진시황이 가지고 있는 알 수 없는 기운을 말이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더러워지는 기운이었다.
분명 자신보다 나약한 존재임에도 범접할 수 없는, 동시에 자신은 가질 수 없는 걸 진시황은 당연하다는 듯이 지니고 있었다.
“내가 장담하는데 네가 지나온 모든 세계의 그 누구도 널 황제라 부르지 않을 거다.”
“건방지구나!!”
자키도가 크게 소리 지르자 진시황의 몸 여기저기에서 피가 뿜어졌다.
커다란 바람이 스치고 간 듯한 상처로 치명적이진 않아도 극심한 고통을 주는 상처였다.
그럼에도 진시황은 작은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이게 네 방식이다.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란 걸 알기에 힘으로 찍어누르는 거지.”
“기어코 선을 넘는구나. 그럼 지금 내 앞에 쓰러져 있는 넌 황제의 자격이 있는 것이냐?”
진시황이 고개를 저었다.
“나라를 내팽개치고 온 내게도 황제라 불릴 자격은 없다. 그렇기에 알 수 있는 거다. 나와 마찬가지로 네게도 자격이 없다는 걸.”
얼굴을 일그러뜨린 자키도가 몸을 일으켰다.
“넌 지금 내 마지막 인내심의 줄을 끊었다. 잘난 네놈 입에서 살려달란 비명이 터질 때까지 몸을 조각내고 붙이는 걸 반복해주마.”
“그거 참 기대되지만 이거 어쩌지? 내가 필요한 시간은 충분히 끌었는데.”
“…?!”
진시황의 몸에서 황금색 띠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이 공간에선 소용없다고 했을…!!”
불길한 기운을 막고자 자키도가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여전히 서 있는 곳은 자신의 공간임에도 진시황에게 힘이 통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시황의 힘이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너 하나 묶어놓는 게 한계지만, 충분하다. 여기서 좁아터진 섬이나 내려다보며 살라고.”
진시황이 팔을 펼치자 뿜어진 띠가 하늘섬을 감싸나갔다.
자키도 한 명을 위한 고유 결계.
황제의 목숨을 바쳐 만들어낸 마지막 힘이었다.
“어리석은 놈!!”
자키도가 포효하며 숨이 사라져 가는 진시황에게 울부짖었다.
“어차피 봉인은 풀리고 네놈의 죽음은 헛되이 될 것이다! 봉인이 풀리는 날 네가 사랑했던 모든 걸 가루로 만들어 주마! 그리고 네놈은 평생 사라지지 못한 채 그 광경을 봐야 할 거다!”
자키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진시황의 몸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든가 말든가 여유로운 얼굴로 입을 여는 진시황.
“봉인이 풀려도 네놈은 나갈 수 없다. 그땐 밖으로 나갈 몸이 없을 테니까.”
“헛소리!”
목 아래까지 석화가 진행된 진시황이 미소와 함께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러니 해보거라. 할 수 있다면 말이다.”
* * *
기억이 끝이 나고 처음 왔던 지붕 위로 위치가 바뀌었다.
방금 본 건 진시황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진시황이 수없이 많은 미래를 보며 그려낸 것의 최종장이기도 했다.
목숨을 바쳐 자키도를 묶어놨던 거구나.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그 시절에 자키도와 셀베스, 칼린이 튀어나왔다면 벌어졌을 참극이 말이다.
“내가 보여 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줬다.”
묘한 미소를 지은 진시황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다.”
“네?”
뜻밖의 사과에 고개를 돌렸다.
쾌활하던 아까와는 달랐다.
진시황이 슬픈 미소와 함께 날 바라봤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을 네게 떠넘겼다. 내가 미래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날 알지 못하는 넌 이곳까지 안내되어 왔지. 그 결과로 막강한 적들까지 마주하게 됐고 말이야.”
“아니에요. 진나라만 지키려고 하신 게 아니잖아요. 만약 자키도가 이곳에 묶이지 않았다면 제가 있던 곳에도 재앙이 펼쳐졌을 거예요.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여기에 온 건 제 선택이니까요.”
회귀 전 과거 중에 어떤 게 자키도의 짓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굳이 그런 걸 따질 필요도 없이 세상은 빠른 속도로 종말에 가까워졌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 자식 어떻게 죽여야 하나 고민이네요. 아까 보니까 공격이 안 통하던데.”
방금 기억 속에서 자키도에게 진시황의 힘은 통하지 않았었다.
내가 마천루에 도착해 겪은 것과 똑같았다.
악귀참도로 한 번 베어봐야겠네.
벨 수 없는 걸 베는 힘.
마지막엔 악귀참도에 걸어 볼 생각이었다.
“너라면 다를 거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명령이라 해도 그걸 내리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명령에 실리는 권한과 힘이 달라지니까.”
진시황이 내 입으로 손을 뻗었다.
“나보단 너한테 잘 어울리는 힘이다.”
손끝에서 새어 나오는 황금색 기운.
선명히 느껴지고 있었다.
진시황이 가지고 있던 권한과 힘이 내게 넘어오는 것이 말이다.
“그리고… 자격이 없는 나지만 염치불구하고 부탁하마.”
서서히 흩어지는 공간.
잠시 뜸을 들인 진시황이 입을 열었다.
“부디 내가 찾아 헤매던 불사를 완성해줬으면 한다.”
말을 마친 진시황을 가만히 바라보다.
“무기왕 백운.”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입가엔 시원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황제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 * *
멈췄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고.
여전히 내 목을 움켜쥔 자키도가 눈에 들어왔다.
건너편에 있던 진시황의 조각상은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거냐?”
갑자기 무너진 조각상에 자키도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알 거 없고. 이거 좀 놔라 이제.”
발을 뒤로 젖혔다 시원하게 앞으로 뻗어냈다.
빠악!
자키도의 면상을 차며 뒤로 몸을 옮겼다.
뒤로 젖혀진 고개를 원위치시키며 자키도가 입을 열었다.
“네 녀석 또한 예의를 갖추지 않는구나. 먼저 그 다리부터 없애야겠다.”
손을 들어 올린 자키도가 내 무릎을 가리켰다.
“…?”
눈썹을 꿈틀거린 자키도가 몇 번이고 내 무릎으로 손을 내저었다.
“왜? 뭐가 잘 안돼?”
미소를 지으며 자키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짐이 명령한다! 멈춰라!”
그러든가 말든가 계속해서 걸어갔다.
“자격도 없는 새끼가 명령한다고 누가 듣겠어?”
이건 예상했었다.
최리아의 암시부터 최근에 만난 샤샤의 능력까지.
자키도가 어떤 힘을 가졌든 그 힘이 법칙과 관련 있는 이상 내게는 통하지 않을 터였다.
“너 일단 내려와라.”
남은 문제는 자키도에게 적용되어 있는 이 공간의 법칙.
이것을 간섭해서 깨버려야만 자키도를 묵사발 낼 수 있었다.
“건방 떨지 마라! 어차피 네놈의 힘은 내게 닿지 않으니!”
머릿속으로 진시황이 행했던 많은 명령을 떠올렸다.
[진시황 - 황명]
내 몸에서 시작된 황금 띠가 섬으로 퍼져 나갔다.
황명이 닿는 공간을 나타내듯 원형의 금빛 결계가 만들어졌다.
동시에 양쪽 입꼬리를 시작으로 황금빛을 띠는 문양이 좌우로 길게 늘어섰다.
무언가 느낀 건지 자키도가 황급히 손을 휘둘렀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수십 개의 원형 조각상이 떨어져 내렸다.
어느 정도 다가온 조각상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물러가라.”
“!!!”
짧고 간략한 한 마디였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내게 다가오던 조각상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이내 반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말했지. 안 어울리니까 일단 내려오라고.”
왕좌 바로 앞까지 걸어가 자키도의 어깨를 잡고 아래로 찍어 눌렀다.
“어리석은! 이 공간에서 넌 내 힘을 이길 수 없다!!”
거친 포효와 함께 일어서려는 자키도.
순간 자키도의 몸에서 말도 안 되는 완력이 뿜어졌지만.
“불허한다.”
쿵!!
솟아오르던 완력은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고.
그 덕에 내 힘을 이겨내지 못한 자키도는 왕좌에서 끌어 내려져 어느새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
자키도는 의아한 표정을 한 상태였다.
자신이 지금 왜 이런 자세로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너 진짜 별거 아닌 새끼구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자키도에게 전지전능한 권한을 주는 이 공간의 법칙.
이걸 깨고 나니 자키도에게 남은 건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무기를 꺼내지 않았는데도 내 힘에 짓눌리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이곳만 벗어나면 한낮 데몬보다 약한 새끼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오기 전에 만난 칼린은 칼에만 베인다는 법칙을 제외하더라도 막강한 존재였다.
말도 안 되는 검술과 신체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키도는 법칙이 깨지자 당황한 얼굴로 날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렇다 할 만한 대항조차 하지 못하고 말이다.
“너, 넌 뭐냐…!!”
이젠 자키도 역시 깨달은 모양이었다.
자신이 뭘 하려 하든 내 앞에선 모조리 무효화 된다는 걸.
그 증거로 자키도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왕좌에 앉아 온갖 거만과 오만을 떨던 자식이 말이다.
“내가 뭔지에 대해 말하기 전에 우선.”
왼손으론 자키도의 머리채를, 오른손은 꽉 쥔 채 미소를 그렸다.
“일단 좀 처맞자.”
힘을 잔뜩 실은 주먹을 자키도의 면상으로 꽂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