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9화. 추락
쩌억! 쩌억! 쩌억!
쉬지 않고 자키도의 면상에 주먹을 꽂았다.
처음 몇 대까지는 감히 너 따위가 하면서 울부짖던 자키도였는데.
어느새 예절 주입이 된 건지 잠잠해져 있었다.
“죽은 거 아니지?”
피범벅이 된 주먹을 거두며 자키도를 내려다봤다.
몸을 축 늘어뜨린 자키도는 약간의 미동조차 안 하고 있었다.
자키도의 힘이 다해서인지 멀리선 하늘섬을 가득 채우고 있던 조각상들이 부서지고 녹아내리는 중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대화가 될 거 같으니까 잘 대답해라.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네가 저주를 건 정령들이 있어. 기억하지?”
“그… 그딴 건….”
지체 없이 자키도의 팔 하나를 뒤로 꺾었다.
“끄아아아아악!”
괴기한 우드득 소리와 함께 하늘섬으로 퍼지는 자키도의 비명.
처음엔 얼굴에 수리검이 박혀도 꿈쩍 않길래 잘 버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비명 지르는 걸 보니 그땐 고통이 느껴지지 않도록 법칙을 정해 놓았던 모양이다.
보면 볼수록 치졸하고 얍삽하기 그지없는 새끼였다.
“아직 부러뜨릴 곳 많으니까 잘 대답해라. 너 뒤지면 정령들 저주는 풀리겠지?”
자키도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벌벌 떨며 식은땀까지 흘리는 자키도.
자키도의 얼굴은 공포로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신이니 황제니 하며 거들먹거리던 그놈이 맞나 의심될 정도였다.
“두 번째 질문이다. 인도에서 데려간 애들이 있을 거다. 어떻게 했어?”
아이들을 데려가자마자 먹이로 던져준다고 셀베스가 말했었기에 큰 희망을 갖고 물어본 건 아니었다.
단지 실낱같은 가능성을 걸어본 것이었다.
“….”
이번에 자키도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마른침을 꿀꺽 삼킬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답에 대한 내 반응을 예상했기에 입을 다문 것이었다.
“질문은 끝났다.”
“자, 잠깐!”
무언가 말하려는 자키도를 기다려주진 않았다.
곧장 남은 팔과 다리를 모조리 박살 내버렸다.
아까보다 몇 배는 더 큰 자키도의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 잠깐만 그러고 있어라.”
꽥꽥 소리 질러대는 자키도를 뒤로 하고 왕좌 옆으로 걸어갔다.
공명이 끝나자 바스러져 내렸던 진시황의 조각상.
바닥에 흩어진 조각상 가루를 최대한 모아 가방에 챙겨 넣었다.
가방을 몸 안쪽으로 소중히 둘러매고 일을 마치기 위해 몸을 돌렸다.
“끄으… 끄아아!”
자키도의 머리채를 잡고 하늘섬 중앙으로 끌고 나갔다.
섬을 이루던 조각들이 부서지며 바닥은 난장판이었다.
“짐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거냐…!”
한숨이 나왔다.
사지가 박살이 나 질질 끌려가면서 짐이라니.
조금만 더 들었다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자키도를 아무렇게나 던지고 황명의 남은 시간을 가늠했다.
충분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아침이 찾아오는 건지 하늘은 어스름한 색을 띠고 있었다.
한 차례 숨을 고르고 섬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키도의 트로피 격이었던 조각들은 모두 부서지고 녹아내렸지만 아직 한 가지 남은 게 있었다.
자키도가 스스로를 모두의 위에 군림하는 신이라 착각하는데 큰 도움을 줬던 하늘섬.
이걸 떨어뜨려야 끝이 나는 싸움이었다.
[유탈라스 - 1단계 의태]
비늘로 오른팔을 감싸나갔다.
자키도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청명한 색을 띠는 비늘을 바라봤다.
본능적으로 죽음을 느낀 모양이었다.
“이대로 죽어 줄….”
콰앙!!
몸을 일으키려는 자키도의 복부로 의태된 주먹을 내리꽂았다.
하늘섬 전체로 울려 퍼지는 굉음.
자키도의 입에서 다량의 피가 뿜어지고, 주먹이 꽂힌 곳이 움푹 들어가나 싶더니 섬의 지면으로 금이 갔다.
다시 팔을 젖히고 쉴 새 없이 자키도의 몸으로 주먹을 날렸다.
자키도의 몸을 넘어 고스란히 하늘섬까지 전달되는 충격.
세 대 정도 꽂아 넣자 하늘섬은 크게 진동하며 기울어지고 있었다.
몸이 갈라진 자키도는 마지막 숨을 내뱉는 중이었다.
그런 자키도를 잠시 내려다보다 두 발에 힘을 주고 최대한 높은 곳까지 도약했다.
“후우…!”
몸을 빙글 돌려 얼굴을 아래로 향했다.
날 올려다보고 있는 자키도의 눈동자가 보였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순간이나마 저놈에게 선명한 공포를 새겨 줄 수 있어서 말이다.
“그 더러운 오만이랑 같이.”
마지막 남은 비늘을 끌어모은 뒤.
아래를 향해, 어긋날 대로 어긋나 자격따윈 없는 가짜 황제를 향해 쏘아져 내려갔다.
“사이좋게 추락해라.”
콰아아아아앙----!!!
* * *
정령 실리카가 머무는 산봉우리.
토토와 토라를 포함한 정령들이 숨을 헐떡이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는 중이었다.
지금 세계 전체를 울리고 있는 굉음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성체 정령까지 전부…!’
앞장선 토토가 뒤를 돌아봤다.
얼마 만일까.
토토를 제외한 성체 정령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은 말이다.
‘전부 같은 생각이구나.’
토토 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말이 안 된다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부디 일어났으면 하는 것.
밖으로 나갔을 때 그런 광경이 보이길 모두가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한마음으로 얼마나 달려왔을까.
“출구예요!”
해가 떠오르는 건지 출구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쯤부터 토토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백운이 떠나기 전에 남겼던 말이 떠올랐다.
- 토토. 하늘섬 쪽에서 큰소리가 나면 잘 보고 있어.
심장박동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쯤.
토토와 정령들이 출구로 쏟아지는 햇빛을 헤치며 밖으로 나갔다.
“…!!!”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입을 벌린 채 정면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하늘에 있던 오만한 놈이 추락하는 걸 보여 줄 테니까.
토토는 매일 아침 나올 때마다 마주해야만 했었다.
자신을 포함한 실리카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하늘섬을 말이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달려가 부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증오와 분노를 토토는 어떻게든 꾹꾹 누르며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토토에겐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도, 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끄흡…!”
토토가 터지려는 울음에 입술을 깨물었다.
힘이 없는 자신이 미웠었다.
무기력해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자신이 혐오스러웠었다.
다른 실리카들도 토토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자신들이 매일같이 고통을 느껴도 하늘섬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우뚝 솟아있을 테니까.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하늘섬이… 떨어진다아아아!!”
하늘섬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그리고 아래로 빠르게 추락하는 중이었다.
쿠구구구!!
얼마 안 가 하늘섬의 잔해가 지면에 닿으며 다시 한번 굉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지면에서 엄청난 먼지가 일어났다.
일대를 한 번에 집어삼킬 것 같은 양이었다.
떠오르는 태양에 눈이 부셨지만 실리카들은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단 한 순간도 놓칠 수 없었다.
오랜 시간 이 세계를 정복했던 신이 떨어지는 순간을 말이다.
“토라 님! 짐승들이!”
멍하니 하늘섬을 바라보던 토라가 고개를 돌렸다.
하늘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
엄청난 수의 짐승이 움직이며 새로운 먼지가 일어나고 있었다.
무너진 하늘섬 쪽으로 가는 건 아니었다.
“짐승들이 도망치고 있어요.”
데몬은 반대편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무너진 하늘섬에서 최대한 멀어지려는 몸부림이었다.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았다.
지금 저곳에 있는 존재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어어?”
“왜 그러…!?”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려던 토라가 묘한 감각에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갑자기 조각상이 되어버린 건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석화가 진행되었던 몸에서 돌부스러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선 영영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한 깃털이 드러났다.
“저주가 풀렸다!”
“몸이 돌아오고 있어요!”
입을 벌린 토라의 귓가로 진시황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 내 기나긴 여정에 종지부를 찍어 줄 사람이 올 거다. 그가 오면 너희의 저주도 풀릴 거고. 그러니까.
토라가 무너진 하늘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기다려라.
선선한 아침 바람이 불어와 토라의 얼굴을 훑었다.
오래전에 잃어버린 감각이었다.
기분 좋은 햇살과 바람의 감각에 토라가 눈을 감았다.
천천히 젖어들고 있는 눈가와 달리.
토라의 입가엔 부드러운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 * *
불어온 바람에 재로 변한 자키도가 흩어졌다.
떨어진 하늘섬에 자욱하게 피어올랐던 흙먼지도 잦아들고 있었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잔해 위로 쓰러지듯 몸을 눕혔다.
생각보다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아니면 피로가 누적되어서인지 약간 몽롱한 기분이었다.
뺨을 스치는 아침 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하늘을 바라봤다.
“흉측한 거 없어지니까 훨씬 낫네. 시원시원한 것이.”
전에는 조금만 눈을 돌려도 하늘섬이 보여서 기분이 영 별로였는데.
지금은 그저 새파랗게 맑은 하늘이 쭉 펼쳐져 있었다.
응? 맑은 하늘?
지금까지 데몬의 세계에 청명한 하늘 같은 건 없었었다.
어제 도착한 이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이상할 정도로 공기가 맑고 상쾌했다.
싸움이 끝나서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게 아니었다.
코로 스며드는 공기의 질 자체가 어제완 달랐다.
완전히 일어나 하늘섬의 잔해 위로 올라섰다.
“허어.”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달라진 건 하늘과 공기뿐만이 아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황폐하기 그지없던 땅이었는데.
그 위로 새싹이 돋아났고, 돋아난 새싹은 눈 깜짝할 사이 커져 푸른 나무가 되고 있었다.
천천히 몸을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무너진 하늘섬을 중심으로 숲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자라나는 식물에게만 시간이 몇십 배 속 빠르게 흐르는 느낌이었다.
이게 실리카가 살았던 정령의 숲인가.
자세히 뭐라고 설명하긴 힘들지만 일반적인 숲이 아니었다.
몸을 가득 감싸는 맑은 기운과 상쾌함.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크라악…!”
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우거진 나무줄기들이 남은 데몬을 차례차례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곳에 있어선 안 되는 존재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것이었다.
일 하나 줄었네.
좀 쉬다가 마저 정리하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자키도와 하늘섬이 아니라면 남은 데몬은 정령숲으로도 충분할 터였다.
끝도 없이 확장해 나가는 정령숲을 조용히 바라봤다.
형태는 다르지만 치플린과 마찬가지로 실리카의 정령숲도 자키도가 죽으며 새 생명을 얻어가고 있었다.
이번 경우를 보니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되찾을 수 있구나. 아니.”
입가로 미소가 그려졌다.
“뺏을 수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