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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40화 (440/473)

440화. 왔던 곳으로

느긋한 걸음으로 숲을 거닐었다.

걷기만 해도 심신이 맑아지며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황폐한 사막이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광경.

피투성이인 채로 걷는 게 약간 죄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온몸이 아주 끈적끈적하구만.”

실리카의 도시 차후아엔 딱히 씻을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었는데.

비샤카파트남으로 나갈 때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나 약간 막막했다.

사락.

“응?”

터덜터덜 걷고 있을 때 눈앞으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다가왔다.

은은한 초록빛을 띠며 앞에서 빙글빙글 돌아대는 작은 생명체.

반딧불이와 비슷한 생김새였다.

뭐지.

반딧불이 전문가는 아니지만 눈 앞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생명체는 왠지 모르게 자길 따라오라는 것 같았다.

찝찝해 죽겠는 거 말고는 딱히 급할 것도 없었기에 반딧불이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내 생각이 맞았던 건지 제자리를 돌던 반딧불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리카가있는 산과는 방향이 달랐지만 호기심이 생겨 열심히 따라가 보았다.

익숙한 궁댕인데.

어느 정도 따라갔을 때 뒤뚱뒤뚱 걸어가고 있는 부엉이가 눈에 들어왔다.

특유의 체격과 걸음걸이를 봤을 때 토토가 분명했다.

옆으론 토라와 다른 실리카로 보이는 부엉이들이 함께였다.

“토토. 어디 가.”

가까이 다가가 부르자 부엉이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안 그래도 찾으러… 기아아아아악!”

“갸아아악!”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던 부엉이들이 발라당 엉덩방아를 찧었다.

처음 차후아에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입을 쩍 벌린 상태였다.

“귀, 귀신!!”

빠악!

겁에 질려 외치는 어린 실리카의 뒤통수로 토토의 날개가 날아들었다.

“배, 백운이잖아! 바보야!”

그렇게 말한 토토도 열심히 심호흡하며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는 중이었다.

“괜찮은가!?”

“얼마나 다친 거야!”

나라는 걸 깨달은 실리카들이 주변으로 빼곡히 모여들었다.

토라와 토토는 내가 차후아로 돌아오지 않자 하늘섬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괜찮아. 여기저기 조금 스친 게 전부야.”

워낙 튼튼한 몸이라 흐르던 피도 어느새 다 멈춘 상태였다.

“어…!? 나무의 정령이다!”

“진짜다!”

“우와! 엄청 오랜만이야!”

반딧불이의 정식 명칭인 것 같았다.

실리카들이 정령 아래로 모여들어 기쁜 듯 미소를 지었다.

이제 보니 실리카도 저주가 풀려 원래의 몸으로 돌아와 있었다.

옷에 손을 슥슥 닦은 후 토토에게 뻗었다.

“오 푹신한데.”

예상했던 대로 몹시 뽀송뽀송한 감촉이었다.

내가 꾹꾹 누르는데도 토토는 나무의 정령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응! 알겠어!”

대화를 마친 토토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만지작거리던 손을 호다닥 거둬냈다.

덜 닦인 내 손 때문에 토토의 뒤통수가 시커메진 걸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무의 정령이 빨리 따라오래! 호수로 안내해준다고.”

“호수?”

“응. 여기 숲에서 제일 맑고 깨끗한 호수야. 치유 효과도 엄청나서 상처도 금방 나을 거야!”

“그래? 그럼 빨리 가자.”

상처가 낫는다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씻을 수 있다는 것.

너무 찝찝해서 뭐가 됐든 일단 뛰어들고 싶은 참이었다.

다시 앞장서기 시작한 정령의 뒤로 바짝 따라붙었다.

토토와 토라, 실리카들은 내 뒤로 따라붙었다.

의도치 않게 기차놀이가 된 순간이었다.

“와우.”

기차처럼 뿌뿌거려야 할 것 같은 욕구를 참으며 걷길 한참.

우거진 나무를 지나니 작고 맑은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의 수면은 나무 사이로 새어드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저런 깨끗한 곳에 정말 들어가도 되는 거야? 지금 내 꼬라지가 이런데?”

말을 알아들은 건지 나무의 정령이 허공을 한바퀴 돌았다.

“백운은 숲의 은인이니까 괜찮대! 조금만 기다리래!”

토토의 번역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들어가고 싶었다.

잠시 기다리라던 나무의 정령이 호수 중앙으로 날아갔다.

사아아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사방에서 엄청난 수의 나무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수 위를 빈틈없이 메운 정령들이 천천히 물로 가라앉았다.

“호수에 정령의 힘을 깃들이는 거야.”

파란색이었던 호수의 물색이 부드러운 느낌의 연두색을 띠기 시작했다.

추운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오로라가 물에 깃든 느낌이었다.

“들어오래!”

“오케이! 그 전에 혹시 뭔가 담을만한 작은 통 없을까?”

하늘섬에서 가져온 진시황의 조각상 가루.

당장 내 몸 씻는 것보단 이것부터 어딘가 멀쩡한 곳으로 옮겨주고 싶었다.

사용처를 설명하자 주변에 있던 실리카들의 눈이 커졌다.

오래된 그리움이 깃든 눈동자.

진시황의 이름을 들은 실리카들이 통을 찾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어 저기!”

그러던 중 토토가 날개를 번쩍 들어 보였다.

그곳엔 황금색과 검은색이 섞인 광석이 있었고 나무의 정령이 바쁘게 그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대단한데.

단순히 돌고 있기만 한 게 아니었다.

돌수록 광석은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용기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잠시 후 완성된 건지 나무의 정령이 옆으로 비켜섰다.

“고마워.”

가까이 다가가 용기를 내려다봤다.

영롱한 빛 때문인지 무척이나 고풍스러워 보이는 생김새였다.

평평한 바위에 앉아 가방에 담아왔던 조각 가루를 조심스레 용기로 붓기 시작했다.

멀리서 지켜보던 실리카들은 어느새 다가와 용기에서 새어 나가는 가루를 날개로 조심조심 모아 다시 넣어주고 있었다.

“됐다.”

뚜껑을 닫자 지켜보고 있던 나무의 정령이 날아왔다.

“닫아주겠대. 백운이 열 때까지는 절대 안 열릴 거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각상 가루를 모아온 건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진시황을 왔던 곳으로 돌아가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공명에서 만났던 진시황은 그리움 가득한 얼굴로 지붕 아래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결심하고 떠나왔지만 여전히 가장 사랑하고 가장 머무르고 싶어하는 장소였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용기를 바위 꼭대기에 올려두고 몸을 일으켰다.

“그럼 씻어볼까.”

기지개를 한 번 크게 켠 뒤.

바위 위에서 호수로 몸을 날렸다.

발끝을 시작으로 머리를 감싸오는 시원한 물의 감촉이 느껴졌다.

신기하네.

호수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 눈을 떴다.

물 자체는 차가웠지만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무 정령들 덕분인지 오히려 온기가 느껴졌다.

온기와 함께 칼린의 전투에서 생겼던 상처가 아물어 갔다.

몸을 감싸고 있던 찝찝함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정화된다는 기분이 이런 걸까 싶었다.

좋구만.

다시 한번 좋다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눈을 감고 호수에 몸을 맡겼다.

* * *

“벌써 가는 거야?”

“며칠 더 있다 가지.”

“아니야. 충분히 휴식했으니까 가야지.”

빵빵해진 배를 두들겼다.

실리카들은 틈이 날 때마다 숲에서 과일과 버섯을 가져다줬었다.

난 매일같이 그것들을 인도에서 가져온 음식과 곁들여 열심히 먹어댔고 말이다.

“또 올 거지?”

“당연하지. 어떻게 와야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나중에 힐링이 생각나면 무조건 방문할 생각이었다.

며칠 호수에 몸 좀 담갔다고 피부가 이렇게 뽀득뽀득해지다니.

마법의 호수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토토도 이제 바쁘겠네.”

도시 차후아가 있는 산을 바라봤다.

정령의 숲이 돌아왔지만 실리카들은 지금처럼 차후아에서 살아갈 거라고 토라는 말했었다.

대신 숲과 연결되도록 도시 정면에 커다란 구멍을 뚫을 거라고 했다.

“백운. 나중에 왔을 땐 다 만들어져 있을 거야! 조각상도!”

“진짜 만드는 거야?”

“당연하지!”

토토를 포함한 실리카들이 기대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 진지하게 고민하던 토라는 선언했었다.

새롭게 뚫어낸 도시 정면으로 진시황과 내 조각상을 만들겠다고 말이다.

“엄청 크게 만들 거야! 엄청! 엄청! 엄청!”

“그, 그래. 대신 내 위치는 조금 아래로 해줘.”

“왜?”

“무엄하니까…?”

세세한 지시사항을 전달하자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다고 대답하는 토토.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려놨던 가방을 챙겼다.

“그럼 갑니다. 부엉이 정령 여러분.”

“나중에 오면 부엉이 꼭 보여줘야 해!”

“오케이!”

계속 부엉이라 부르자 궁금해하는 토토에 사진을 보여주기로 했었다.

몸을 빙글 돌려 미리 열어 놓은 균열로 나아가려는 순간.

깜빡했던 게 떠올라 고개를 돌렸다.

열심히 날개를 흔들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부엉이 정령들.

그중 토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연히 들은 게 있는데요. 차후아 란 이름의 의미, 알았어요.”

의미를 알려주지 않고 떠났던 진시황.

토라는 도시를 차후아라 부르면서도 그 의미를 무척 궁금해했었다.

난 이번에 공명 속에서 여러 기억을 보던 중 우연히 그 단어를 듣게 되었고 말이다.

“차후아는 진시황이 살던 나라에서 동백꽃을 부르던 말이었어요. 그리고 동백꽃의 꽃말은 기다림.”

“…!”

“여러분이 희망을 잃지 말고 잘 기다려줬으면 하는 바람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눈을 크게 떴던 토라가 입을 열었다.

“그랬구만… 그랬어.”

고개를 끄덕이던 토라가 입가로 환한 미소를 그렸다.

“정말 감사했고, 그리고 감사하네.”

그런 토라를 향해 나 역시 환하게 웃음을 그려 보인 뒤.

“별말씀을요.”

균열로 발을 내디뎠다.

* * *

다행히 균열을 나오며 누군가와 마주치진 않았다.

며칠 지난 시점이라 그런지 난장판이던 사원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였다.

응?

밖으로 나가다 느껴지는 인기척에 문 근처로 슬금슬금 걸어갔다.

밤이 깊어 누군가 있을 만한 시간이 아니었다.

문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여러 사람이 모여 바닥을 쓸고 사원을 재정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리엔 식당 주인인 할아버지와 아시나, 릭신, 라샤드가 함께하는 중이었다.

레이저를 쏘듯 빤히 바라봐서일까.

시선을 느낀 아시나가 흠칫 놀라더니 스리슬쩍 내 쪽으로 다가왔다.

“배, 백운 님…!? 괜찮으세요?”

깜짝 놀라 내 몸을 살핀 아시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 엄청 괜찮으시네요.”

“놀다 온 건 절대 아니고요. 안 괜찮았는데 괜찮아진 거예요.”

현재 내 상태는 휴양지에 가서 푹 요양하고 왔다 해도 믿을 정도로 뽀득뽀득했다.

“그런데 뭐하시는 거예요? 이 늦은 시간에.”

“아. 백운 님이 떠나시고 꽤 많은 일이 있었어요.”

사원에서 일어난 일은 순식간에 비샤카파트남을 넘어 인도 전체로 퍼져 나갔다.

어느 순간부터 잘못된 신을 섬기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전부 말이다.

“현장이 정리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어요. 이곳 도시 사람뿐만이 아니라 인도 전역에서요.”

고개를 돌린 아시나가 청소 중인 사람들을 바라봤다.

“먼 곳에서 흘러와 아무 대가 없이 인도를 구해줬던 비샤카 신을 위하여 라는 목적으로요. 저랑 릭신, 라샤드도 마찬가지고요. 오늘부터 저희 셋은 비샤카 신의 신도입니다!”

“오. 그거 참.”

고개를 끄덕이며 모여든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걸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뭐랄까.

잘못되었던 퍼즐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 맞춰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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